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15)
칙칙폭폭 (2)
나는 평화를 사랑한다.
그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유유히 살고 싶은 게 바로 나란 말이다.
···아직까지 님이 없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흑흑.
애초에 내가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대관절 우리 루이 오귀스트 씨가 어떻게 살아있고, 뿐만 아니라 이삭의 민족 잡지사를 통해 >무소유>라는 이름의 책을 내서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 수익 중 일부는 판매수수료가 되어 내 호주머니 속을 빵빵레후하게 채워주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다 차치하고서, 지금은 불행히도 상식이 통하는 21세기가 아니라 18세기다.
이 18세기 인외마경이라는 현실이 그런 기욤의 꿈을 용납하겠는가?
우리의 친애하는 18세기 말께서는 ‘평화라고? 어림도 없다! 암! 아암!’ – 이라며 호시탐탐 내게 주먹감자를 먹여줄 생각에 가득 차 있을 거다.
생각해보자. 루이지애나 누벨 오를레앙에서 저어어어기 미네소타까지 장장 1850km라고 하지 않았나.
스마트폰 같은 괴력난신 뺨치는 기물이 나온 21세기, 가로 세로 400km의 작달막한 나라인 대한민국에서도 간간히 시골 촌구석 어딘가에서는 노예를 부리고 있다니 뭐 한다니 하는 식겁한 내용이 몇 년에 한 번씩 매스컴을 타기 일쑤였다.
그런데 스마트폰도 없는, 심지어 시험적인 자동차가 이제야 나온 이 병신 같은 시대에 1850km라고? 와! 대충 누구 하나 죽여서 암매장해도 누구 하나 알아차리지 못하겠는걸.
백 번 양보해서 사람들이 별 분란 없이 잘 지내고, 그 덕에 장장 400km를 혼자 맡게 된 파출소 경관들이 늘어지게 낮잠을 때린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아메리카 땅에는 위험요소가 너무나도 많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
그래, 그 서부시대 다루는 영화에서 흰색 깃털 꽂고 활을 퓽퓽 쏘던 그 인디언들 말이다.
사실 이 시대를 살아보면서 알게 된 건데, 그 영화는 좀 틀린 게 많다. 예를 들어서 야만적인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적을 공격할 때 아옳옳옳 소리를 지르며 공격한다-거나, 활을 쏴서 목을 노린다-거나 그런 거.
우리 아메리카 원주민 분들은 하늘에 맹세코 그러지 않는다.
우리 아메리카 원주민 분들께서는 우리가 모닥불을 펴놓고 졸고 있을 때 슬그머니 멱을 따버리지 절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지 않으신다.
우리 아메리카 원주민 분들께서는 분대 단위로 병력을 쪼개 숲 속에서 치고 빠지는 유격전을 펼치지 멍청한 미디어에서처럼 말을 타고 달려와 꼬라박아 주지 않으신다.
우리 아메리카 원주민 분들께서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풀린 머스킷을 손에 꼬나 쥐고 납탄을 쏴재끼지 절대 제대로 맞지도 않는 활 따위 쓰지 않으신다.
아, 머스킷은 그렇다 치고 원주민들이 대체 무슨 수로 납탄을 만들어서 쏘냐고? 영국령 캐나다에 사시는 영국계 상인들이 모피 받고 팔아넘긴단다. 시발.
미국은 독립 이후 장장 10여 년 동안 이 원주민들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긋지긋한 국지전을 벌인 끝에 그들을 일리노이 주 서쪽으로 쫓아낼 수 있었고, 저어엉말 안타깝게도 일리노이 주의 서쪽은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다.
“그럼 뭐, 끝난 거 아닙니까. 남의 땅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사장님께서 명령만 주시면 이 우디노가 그런 토인들 따위는 싹 다 쓸어버리겠습니다!”
“어허.”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하자 우디노는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다.
유럽에서 여기까지 먼 길 오게 만든 건 미안하지만, 그런 전근대적인 발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게 둘 수 없다.
이 18세기에 다시 태어났다 해도 이 껍데기 속의 나는 머리가 말랑말랑한 초딩 시절에 슬기로운 생활과 바른 생활을 주입당한 21세기 한국인 아닌가.
자전거를 제외하면 절대 남의 걸 훔치지 않는 도덕적인 한국인으로서 남의 모가지를 따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발상은 사절이다.
“하지만 우리 프랑스인의 목숨을 노리는 걸 좌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장님.”
“언제든지 원주민들이 소통과 대화가 가능하게 창구는 열어놓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력을 사용한다면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예, 사장님.”
고개를 끄덕이고 방에서 나가는 우디노의 뒤로, 수백 명에 달하는 이삭의 민족 신입사원들이 총을 메고 성큼성큼 군홧발을 내딛고 있었다.
1795년 2월, 이곳은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미네소타 오대호였다.
***
춥다. 존나게 춥다.
“으으, 분, 명히 저번 달까지는, 버틸만, 했는데.”
이삭의 민족 소속 기술자, 필리프 르봉은 외투를 다시 한 번 꽉 여미면서 말했다. 연중 따듯한 지중해성 기후를 만끽하는 프랑스 프로방스 출신의 르봉으로서는, 영하 10도에 달하는 미네소타의 겨울날씨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 저쪽에는 자재창고를 만들면 좋겠군요. 아, 그리고 수운이 쉽도록 요 앞에는 간이 부두를 만듭시다.
“대체 사장님은, 어떻게, 저렇게 팔팔하게, 돌아다니신담?”
동갑내기 중 한 쪽은 두꺼운 털옷을 붙들고 덜덜 떨기 바쁜 반면에, 다른 한 쪽은 속에 유황불이라도 있는지 옷도 대충 입은 채로 인부들에게 뭐라뭐라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 머독 씨와 트레비식 씨는 언제쯤 도착한답니까?
– 저번 달에 루이지애나에 왔다고 했으니, 이제 대강 하루에서 이틀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 좋네요. 두 사람 오면 바로 작업해봅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장님만 기다리고 있다간 얼어 죽겠다는 생각에, 르봉은 결국 사장님보다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후. 이제야 살겠다.”
대강 나무와 돌을 가져다가 얼기설기 만든 건물. 그러나 건물 안은 이 세상에 있는 어느 곳보다 후끈후끈하게 달아오른 지 오래였다.
철광석을 녹이고, 그걸 두들겨 철로 만든다.
말로는 정말 단순하지만, 그 과정을 실제로 본 사람은 결코 간단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일.
이제 막 광산에서 들여온 철광석을 거대한 흙더미 안에 넣고 코크스로 불을 떼자, 시뻘건 쇳물이 울컥거리며 춤을 춘다.
숙련공들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 한 방울마다 쇳물에서 반사된 붉은 빛이 실내를 채운다.
아름답다.
어릴 적, 어머니가 밤마다 들려주던 동화 속에서 나오는 빛나는 요정들이 저렇게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몇몇 숙련공들이 너무 오랫동안 쇳물을 바라보면 눈이 삭는다고 뭐라뭐라 떠들었지만 르봉은 쇠가 토해내는 강렬한 붉은 색에 이미 정신이 꽂힌 지 오래였다.
르봉이 배우기로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건 다이아몬드였다. 하지만 다이아몬드가 어디 보통 물건인가? 당장 자기 위에 있는 라부아지에 고문이 그걸 실험한답시고 태워먹었다가 단두대로 갈 뻔 하지 않았나.
다이아몬드는 사치품은 될 수 있을망정, 실생활에서는 쓸 수 없다.
그러니 강철이다. 비록 지금은 기술의 한계로 캐낸 철의 백분지 일 만이 강철이 되지만, 사장님의 원대한 계획이라면 앞으로 10년 안에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철강제품은 모두 강철로 만들어질 것이다.
농기구도, 연장도, 총도, 대포도, 검도 모두!
강철의 나라, 프랑스!
그 뿐 만인가? 기관차의 하중을 버티는 철도가 깔리고 그 위를 기관차가 달리게 되는 순간 그게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르봉은 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 대업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을 수 있다니, 과학자로서 기술자로서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하지만 부족했다. 탈수에 걸린 사람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만족할 수 없듯, 르봉은 더 많은 걸 원했다.
더, 더, 더 많은 발명과 더, 더, 더 많은 혁신만이 르봉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 덜컥.
쇳물을 토해내는 용광로가 있는 건물을 나와, 멀리 떨어진 자신의 방까지 돌아온 르봉은 천천히 자신의 품에서 몇 가지 샘플과 수첩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펜에 잉크를 묻혔다.
그렇게 수식을 적어 내려가는 르봉의 탁자 위에 놓인 샘플 중 하나에는 [석유]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
“트레비식 씨, 머독 씨. 루이지애나에 온 걸 환영합니다!”
나는 배에서 이제 막 내린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나 팔팔한 나와 달리 두 사람의 눈 밑은 시커멓기 그지없었다.
“사, 사장님 잠시만. 시간을··· 욱! 우욱! 우웨엑!”
오, 이런.
장장 대서양을 건너길 두 달, 거기에 미시시피 강을 오르길 한 달. 세 달 간의 항해로 지친 탓일까. 트레비식은 자신이 점심에 뭘 먹었는지 내게 보여주고 말았다.
아차. 트레비식이라니, 말을 잘못했네. 머독을 추가해서 이제 둘이다.
“으으…”
“···두 분,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예에에…”
으음. 내가 보기엔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그러나 한바탕 곤욕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자! 어서 가시죠!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몸이 그래서 괜찮겠습니까?”
“오히려 몸이 가벼워졌으니 더 빨리 갈 수 있겠지요. 자, 사장님! 어서!”
저 눈. 어디선가 본 적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세렝게티 초원의 사자들이 저런 눈빛이었는데.
“···본격적인 일은 며칠 요양하신 후에 진행하는 걸로 하지요. 몸을 축낼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예? 그, 그치만!”
뭐? 그으으으치마아안?
나는 뭐라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트레비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크, 크흠.”
“두 분은 우리 이삭의 민족에서 제일가는 엔지니어들입니다. 두 분 몸이 안 좋아 지는 날에는 우리 회사에 심각한 타격이 간다는 점. 알아두셨으면 좋겠군요.”
“알, 겠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축 쳐지지 말라고. 여러분 둘이 몸져누우면 대체할 사람이 없잖아.
미치겠다. 무슨 장난감 사달라고, 까까 달라고 떼쓰는 애들도 아니고. 이젠 내가 떡잎마을 유치원 햇님반 선생님인지 아니면 기욤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후우. 알겠습니다. 대신 오늘은 눈으로 살피기만 하시는 겁니다.”
““당연하지요, 사장님!”“
짝사랑하는 사춘기 때 소년들도 아니고, 돌겠네 진짜.
***
트레비식과 머독 두 사람이 오대호에 도착한지도 두 달이 지난 1795년 4월.
우리들은 모두 거대한 공터에 모여 초조한 마음으로 눈앞의 광경을 시시각각 구경하고 있었다.
누군가 본다면 ‘아니, 저 거대한 솥단지는 뭐야?’라고 말할 법하게 생긴 전로에 코크스를 넣고 온도를 올린 지 3일 째.
이 전로가 토해내는 쇳물이 강철이냐, 아니면 연철이냐에 따라 우리가 근 몇 개월 동안 기울인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지 아니면 희대의 혁신이 될지가 달려있었다.
입에 담배를 물었다가 다시 빼길 십 수 번. 혹시라도 돼지머리를 꿰다가 제사상을 차려 툴롱 가의 조상신을 모셔왔어야 하나 생각하길 또 다시 십 수 번.
한 숙련공이 전로에서 나온 철괴를 몇 차례 두들기고는 날 쳐다보았다.
“사장님.”
“예.”
“강철입니다.”
난 손에 든 담배를 하늘 높이 던지며 폴짝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