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32)
국제 철도건설주식회사 (4)
본디 프랑스 남자라면 여자 둘 셋 정도는 후리고 다녀야 프랑스인이라 할 수 있는 법이다.
암, 그렇고말고. 나폴레옹이 제인 한 명을 만나는 이유는 그녀의 지성을 따라 잡을 만한 여자가 더 없기 때문이지 절대 자신이 능력이 없거나 화가 난 제인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아무튼 간에, 폴린이 팔짱을 끼자 얼굴에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사라지는 기욤의 모습은 제법 볼만 했다.
하여간 29년 인생 통틀어 땀내 나는 남자들하고만 붙어 다니니 저렇게 여자도 다룰 줄 모르지. 쑥맥도 저런 쑥맥이 따로 없다.
두 선남선녀를 반강제로 데이트 코스로 쫓아낸 나폴레옹은 텅 빈 응접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읊조렸다.
오늘 반차를 쓰고 나온 목적은 모두 달성했다. 마음씨 좋은 오빠로서 여동생에게 이 프랑스 최고의 신랑감을 소개시켜 줬으니 더 뭘 할 수 있겠나. 이젠 폴린 그 아이 손에 달린 거지.
누군가 듣는다면 ‘나폴레옹 이 새끼 이거 정치 쪽에 연줄 대려고 하는 거 아니냐?’라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도 있겠지만 나폴레옹은 사실 그런 쪽보다는 기욤이란 사람 자체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폴린을 소개시켜 준 거였다.
남들이 보기에 기욤이란 사람은 베르사유와 런던, 빈, 필라델피아를 종횡무진하는 괴물이고 무시무시한 거물이지만 나폴레옹이 보는 기욤이란 사람은 달랐다.
아마 그 녀석 대가리 속에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향후 프랑스의 미래를 책임질 101가지 방안’같은 거보다는 그냥 자기가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설 것이다.
매년 세금 낼 때마다 입이 댓 발 나와서는 ‘아니, 프랑스가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다고 세금을 뭐 이렇게 뜯어감? 재무부 한 번 들어가서 엎어봐?’하면서 툴툴 대는 것만 봐도 그 녀석의 성정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그 녀석의 성정은 다른 곳에서도 보이기 일쑤였다. 가령 그··· 삼부회 3신분의원 때 말이다.
누군가 막중한 책임감과 권력이 있는 자리를 던져주었을 때 그걸 온전히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하던가.
대부분은 그 힘에 취해 정신이 나가거나 광포해지기 일쑤고, 그렇지 않은 소수 또한 슬그머니 그 힘을 이용해 뒷주머니를 채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기 장원에서 밭을 가는 소작농들에게 지세를 6할로 매긴다던가, 소득의 9할을 세금으로 때간다던가 하는 일이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기욤 드 툴롱, 그 녀석이 특별한 거다.
하루아침에 거대한 힘을 얻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그 힘을 휘두르지 않았다.
무슨 일이던지 간에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눈 감고 휘두르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걸 모두 치워버릴 수 있음에도, 시부렁시부렁 군소리를 주워섬기며 먼 길을 돈다.
칼을 한 번 휘두른다고 해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수많은 군중이 사라지지도 않고, 그 누가 불평이나 험담을 늘어놓지도 않을 텐데도.
나폴레옹은 내심 그를 역사책에서 봤던 사람들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페리클레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가이우스 그라쿠스···.
***
나폴레옹이 반차를 쓴 다음날.
하얀 대리석과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한껏 꾸며진 파리 방첩사령부 사령관실에는 아침부터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경찰장관이, 내게 그러더군. 이제 슬슬 비밀경찰쪽에 그 영국인의 신병을 넘기는 게 어떻겠소? 어차피 방첩사에서는 더 할 게 없어보이오만.”
누구 하나 입 뻥끗하지 않는 고요와 적막. 여기서 잘못 입을 놀렸다간 대가리가 두 동강이 아니라 오십 등분이 날 수도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또 당연하게도, 그 고요를 깬 건 부하장교들의 머리를 깔끔하게 오십 등분으로 커팅 할 수 있는 권력자였다.
“부사령관.”
“···예, 사령관 각하.”
나폴레옹은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있는 노장군의 부름에 답했다.
“내가 자네에게 지금 이딴 거나 만들라고 했나? 아니면 자네가 할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했나?”
노장군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고는 책상 위에 있던 종이뭉치를 집어 든 뒤, 나폴레옹의 앞에 턱-하고 던지듯이 놓았다.
[현 국민방위대 편제에 대한 고찰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사령관님, 그건 제가 소소하게 연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절대 공무를 내버리고 한 게 아닙···.”
“네 놈이 무슨 프리드리히야? 아니면 빌라르 백작(17세기 프랑스의 전쟁영웅)이야? 회전 두 번 이겼다고 네가 불세출의 명장이라도 된 것 같나!?”
방첩사령관, 부이예 소장은 이마에 핏줄을 내보이며 책상을 쾅 소리가 나게 두들겼다.
“네 놈 보직이 대체 뭐야! 방첩대야, 아니면 사관학교 교장이야?! 어디 네 입으로 한 번 말해보라고!”
“···방첩대입니다.”
“그걸 아는 새끼가 간첩 아가리를 열게 하지는 못할망정 이따위 불쏘시개를 만들고 있어!?”
그는 종이뭉치를 다시 집어 들고 나폴레옹에게 일갈했다.
“연대를 사단(Division)이란 편제 밑에 두고 지휘를 해야 한다니 뭐니 하는 헛소리 전에 네 놈 할 일이나 잘해. 알겠나?!”
“예, 장군.”
까드득.
나폴레옹은 이를 갈았다.
***
1799년 3월 초.
스페인 왕국의 중심지.
왕궁, 팔라시오 레알 데 마드리드(Palacio Real de Madrid)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금테 두른 옷을 입은 고위급 공무원들과 그에 질세라 돈 깨나 바른 영국제 외투를 두른 상인 및 금융가들.
재상부가 며칠 전 자기들 실적 발표 한답시고 초대장을 돌린 일을 몰랐다면 오늘 밤 국왕이 무도회라도 열려고 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날 왕궁에 발을 들인 이들의 옷차림과는 별개로, 이들이 초대를 좋아라했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글쎄올시다-였다.
“카아악! 퉤! 고도이 이 놈, 운 좋게 어디 쓰레기통 속에서 살점 붙은 뼈다귀라도 몇 개 찾아냈나보군.”
“할 줄 아는 건 여자 속옷 벗기는 것 뿐인 놈 밑에서 알랑방구나 뀌려니 구린내가 너무 심해 각혈할 지경이야.”
현 재상에 대한 스페인 지식인들의 평가는 이미 시궁창을 너머 저 마리아나 해구 언저리까지 처박힌 지 오래였다.
첫 번째는 그가 고귀한 중앙 귀족이 아니라 지방에서 소나 치던 유사 푸른 피 출신이라는 것.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재상이란 자리를 영국의 피트, 프랑스의 기욤 마냥 제 실력으로 얻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고도이가 재상직을 꿰찬 이유는 그런 것과 굉장히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자리를 꿰찼냐고? 욕구불만에 빠진 루이사 왕비의 아랫도리를 너무 잘 빨아줘서.
국왕과 사이가 소원해진 왕비,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는 잘생기고 근육 빵빵한 젊은 근위대원. 딱 봐도 막장 드라마 한 편 뚝딱 나오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그 자꾸 한 줄씩 추가되는 그 놈의 병신 같은 작위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프랑스에 들입다 선전포고를 때리더니 꼴에 육군 중장이랍시고 병력을 자기가 이끌고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프로이센을 무찌른 프랑스의 영웅 뒤무리에에게 뚝배기가 대차게 깨지고 말았다.
그 뿐인가? 왕국의 식민 영토였던 아메리카 대륙을 양도하는 끝에 평화조약을 체결하고선, 마치 자신이 잘나서 좋은 조건에 평화를 얻어낸 것처럼 스스로 자신의 작위에 ‘평화 대공(Príncipe de la Paz)’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내용을 더하니, 이게 이제는 사람새끼인지 돼지새끼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다.
“오늘, 기꺼이 본인 고도이의 초대를 받아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 모두께 감사 인사 드리며···.”
마침내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붉은 비단을 두르고 나타난 재상은 기본적인 수사를 던지기 시작했다.
“으음.”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잘 안 들리시면 자리를 앞으로 옮겨달라고 할까요?”
“이 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귀가 잘 안 들리게 된 이후 좋은 일이 하나 있다면 저 놈 아가리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을 다른 사람들보다 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란다.”
“예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한 자신의 말에 시종을 드는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왕실 궁정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는 다시 평소처럼 얼굴을 폈다.
“에, 그러니까 향후 우리 스페인으로서는 전통과 관습을 지키고···.”
남이 버린 쓰레기나 퍼먹는 괴물 같은 놈 같으니.
고야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일발 장전, 발사하면서 단상 위에 서있는 젊은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런 놈이 재상이라니. 이게 나라냐?
저런 썩어빠진 기생충들이 이 스페인의 뿌리를 잠식하고 있으니까 지금 나라꼴이 이 모양 이 꼴 아닌가.
과거, 왕명에 따라 지방을 돌아다니며 명승지를 그리면서 깨닫게 된 농민들의 얼굴과 노동자들의 얼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지방 곳곳에서는 가톨릭 사제들이 농민들을 쥐어짜고, 수도에서는 배부른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쥐어짠다.
인민들이 배운 것이라도 있다면, 하다못해 알파벳과 숫자라도 배웠다면 좋으련만.
순박한 인민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지주와 사제와 자본가들이 짜놓은 수렁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자기뿐만 아니라 배우자, 자식, 손주들까지 모두.
엎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계몽주의자들과 파리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듯이, 이 마드리드에서도 아프란쎄사도(Afrancesado, 스페인 계몽주의자)들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고야의 생각은 항상 방파제에 부딪히듯 흩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들고 일어날 것인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프란스시코 고야였다. 그는 결코 기욤 드 툴롱이 아니었다.
예술가는 흙 묻은 옥수수로 연명하는 인민의 삶에 분노를 느낄 수 있었지만, 군과 행정부, 나라를 전복시킬 치밀한 계획을 짜낼 수는 없었다.
그는 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지만, 깃발을 들고 선봉에서 사람들을 이끌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프란쎄사도와 함께 비밀스러운 모임을 만들었다. 교육가, 행정가, 군인, 총독 등 신분과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이 스페인의 인민들을 위해 뭉친 계몽주의자들의 모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미신과 신앙에 의지하는 스페인 사람들을 계몽시키기에 고야와 아프란쎄사도가 가진 힘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그러나.
“큼큼, 마지막으로 자랑거리는 아닙니다만. 본인 고도이가 엊그제 프랑스로부터 그 증기기관차라는 신문물을 들여오기로 했습니다. 왕국의 심장인 마드리드에서 헤타페까지 이어지는 이 철도는, 곧 우리 스페인의 우수한 과학력이며···.”
고야는 뒤로 이어지는 자질구레한 얘기는 모두 잊어버리고 오직 두 단어에 온 심신을 기울였다.
철도, 증기기관차. 프랑스 언론에서 그렇게 줄기차게 떠들던 그 이성의 신전이 들어온다.
아무리 까막눈이고 무슨 일만 생기면 하느님부터 찾는 이들이라 해도, 눈앞에 강철마가 질주하는 걸 본다면 눈이 깨일 터.
뭐든지 상관없다. 직접 보든 아니면 소문을 듣든, 사람들에게, 인민들에게 자신들이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고야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스페인의 인민들을 어두운 중세의 그림자에서 깨우기 위해선 그와 함께할 동지가 더 많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