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84)
잠자는 사자의 사지를 쳐라 (3)
현직 총리가 암살, 전직 총리가 중상을 입은 희대의 사건이 일어난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에서는 수많은 말이 오고 가고 있었다.
“망자인 퍼시벌이야 어쩔 수 없고, 피트는 어떻다던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 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하기론 꽤 시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사태인지 원. ···일단은 상원의장이 임시 총리를 맡아보시오.”
“휘그가 가만히 있을까요? 보궐 선거를 열자고 하지는 않을지…”
“그러고 싶으셨으면 다수당을 먹으셨어야지! 자기들도 그걸 알 테니 적당히 투덜대는 선에서 끝일 거요. 문제는 다음 선거까지 피트가 제대로 회복되느냐, 이거지.”
“토리는 당분간 식물인간이겠어. 피트는 중태에 퍼시벌은 카논과 스틱스 강에서 하이파이브 중이고 윌버포스는 아편 때문에 제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고 있지.”
“토리 쪽에 보내는 수레를 줄이고 휘그 쪽에 보내는 수레 수를 늘릴까요?”
“그렇게 하게. 섭정공 전하께서 휘그에 힘을 실어주는 판에 굳이 가라앉는 배에 안주할 필욘 없지.”
“퍼시벌이 뒈졌으니 이제 계엄령이 좀 풀리겠지? 젠장, 경찰 곤봉도 아픈데 해병대 놈들이 총검까지 들이민다고!”
“우우우! 해병대로 진압이라니! 우리가 아일랜드인으로 보이냐! 이 눈깔 병신들아? 우린 영국인이다! 해병대는 더블린으로 꺼져서 아일랜드 놈들이나 회 치라고!”
“곡물법을 폐지하라! 밥 좀 먹고 살자!”
“오오~ 템즈 강 밑 장어만큼 끔찍한 스펜서가 뒈졌다네~ 오오~ 지금쯤엔 지옥에서 맥베스와 유황불에 타고 있겠지!”
정치인들은 지끈거리는 머릴 붙잡고 야합, 협잡, 눈치싸움에 열중하고 있고 돈 있는 놈들은 누구 뒤에 줄을 서야 앞으로 순탄한 길을 걸을 수 있는지 주판을 튕기고 있으며, 맨체스터에선 연일 노동자들이 야음을 틈타 기계를 부수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일삼고 있었다.
나라 꼴이 참 엘레강스한 지금.
“폐, 폐하! 부디 고정하십시오!”
“이거 놔라!!! 저기! 저기서 우리 딸내미가 날 부르잖아!”
“폐하! 거긴 난간입니다!”
“아멜리아! 아멜리아!”
“폐하! 아멜리아 공주 전하는 없습니다! 그저 공기 뿐이라구요!”
– 아바마마, 아바마마…
“그래 그래 아멜리아! 거기서 기다리렴! 이 아비가 지금 간단다!”
“근위벼어어어엉! 폐하를 끌어내게! 어서!”
“하, 하오나 시종관님…”
“썅! 내가 책임질 테니 당장 폐하를 끌어내!”
“예, 예! 시종관님!”
차마 명령도 없이 국왕에게 직접 손은 못 대겠고, 그렇다고 가만히 둘 수는 없는 탓에 삐질삐질 식은땀만 흘리던 근위병들이 달려들자 노구의 국왕은 난간으로부터 질질 끌려 나왔다.
“안돼! 안돼! 이거 놔라! 이거 놓으란 말이다! 왕명이야!”
“송구합니다 폐하.”
“오 아멜리아! 어디 가지 말고 거기서 기다리렴! 언젠가 내가 반드시 구하러 가마!”
절명한 막내 공주의 이름을 숱하게 외치던 국왕은 끝끝내 근위병들의 손에 이끌려 난간 없는 안전한 방에 24시간 감금당하고 말았다.
왕실 돌아가는 꼬라지가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섭정공, 조지 프레더릭 왕세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좋은 분이셨는데. 안타깝구려.”
“전하…”
역시나. 소싯적 술 처먹으러 궁을 월담하고, 사창가나 들락거리고, 부왕을 수발드는 메이드나 따먹고, 예쁜 메이드랑 몰래 연애하다가 결혼 안 시켜줄 바에는 평민이 되겠다고 바락바락 대들던 날라리 왕자도 부왕이 저렇게 되니 자식으로서 철이 들었구나.
수십 년간 왕실을 보필한 시종관은 내심 울컥하며 섭정공을 쳐다보았다.
“섭정공 전하, 심지를 단단히 하소서. 마음이 흔들린다 하더라도 전하께서 굳건하게 넘기셔야 합니다. 전하께선 이제 왕실의 대들보이시니.”
섭정공은 근엄한 얼굴로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잘 알고 있소 시종관. 왕실의 대들보가 유약해선 아니 될 말.”
아아 역시.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양아치도 나이를 먹으면 철이 드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닌가.
시종관은 부푼 마음을 안고 천천히 열리는 섭정공의 입을 쳐다보았다.
“그러니 의회에 왕실예산 증액을 서둘러 요구해야겠소.”
“······예?”
“생각해보시오. 시종관. 부왕께서 저리되신 지금. 왕실이 의회에 꼬리를 만다면 우리 왕가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고 말 거요. 위기일수록 더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왕실을 가볍게 여기지 못 하는 법!
게다가 때마침 그 눈엣가시 같던 퍼시벌도 천벌을 받아 세상을 떴으니,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한 나라의 왕가가 동양 도자기 하나 팍팍 못 사는 게 말이 되는가!
저어기 베르사유에는 중국에서 사 온 도자기니 그림이니로 수백 평짜리 방을 채웠다는데 말이다.
섭정공은 만족스럽다는 듯 턱을 쓸어내렸고, 그 꼬라지를 보고 있던 시종관은 일그러지는 얼굴을 평소처럼 유지하기 위해 온힘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씨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 틀린 게 없구나.
탁 트인 바다에서 뺑이 좀 치면서 철 좀 들라고 보낸 해군에서, 해군경이 직접 ‘일선 장교들 왈. 프레더릭 왕자 전하는 우리가 감당하기 너무 큰 그릇이다’ 운운할 때 그 싹수를 알아봤어야 하는 것을.
시종관이 오늘 집에 가서 사직서를 쓸까 말까 고민하던 그때.
누군가 헐레벌떡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섭, 섭정공 전하! 큰일입니다!”
“자넨 외무 차관 아닌가? 무슨 일이길래 그리 소란인가.”
“신성로마제국에서 내전이 터졌습니다!”
***
며칠 전. 신성로마제국 수도, 빈.
쇤브룬 궁.
“때가 무르익었네, 제군들.”
최고전쟁회의 의장, 카를 대공의 말에 방에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 관료, 학자, 은행가 등등.
십수 년의 시간 동안 제국의 곳곳에서 거르고 골라 뽑은 동지들이다. 모두가 제국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릴 각오가 된 이들.
카를 대공은 벅차오르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침착하게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읊기 시작했다.
“제군들.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향인 제국은 실패했다.
우리의 적들이 한 명의 국왕 밑에서 일치단결해 힘을 기를 동안, 우리는 카이저, 선제후, 공작, 백작, 자작··· 수백 개로 쪼개져 서로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렇게 칼을 꽂는 수백 년 동안, 우리의 자랑스러운 제국은 주변국에게 패배하고, 패배하였으며, 또다시 패배했다.
이것이 실패가 아니면 무엇인가?
제국은 프랑스에게 제국의 강역인 에스파냐를 잃었다.
제국은 배신자 호엔촐레른에게 브란덴부르크를 잃었다.
제국은 영국에게 네덜란드와 스위스를 잃었다.
제국은 스웨덴에게 포어포메른과 페르덴을 잃었다.
제국은 껍데기만 남은 로마의 황관을 제외한 모든 명성과 명예를 잃었다.”
대공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제국은 아직 애국자들을 잃지 않았다.
기꺼이 제국을 위해 알자스, 포어포메른, 티롤과 이탈리아에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전사자들.
밤낮으로 카이저 폐하를 위해 일하는 빈의 신민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모인 우리까지.
이제 우린. 갈레갈레 찢긴 제국을 다시 기워 맞추고 제국을 더 이상 누더기 국가가 아닌, 로마 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시 만들어낼 것이다.”
30년 전, 쾰른에서 들고 일어난 반동분자들. 카를 대공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다.
진압에 나선 황제군과 그에 맞선 작은 아버지, 쾰른 선제후의 선제후군.
반란이 일어났다면 응당 힘을 모아 진압을 하긴커녕 정부군과 지방군으로 나뉘어 서로 총칼을 겨누다니. 이게 유사 유목연맹이지 정상적인 나라인가?!
이 구역질나는 꼬라지를 끝내기 위해 30년 동안 조용히 담금질했다.
떨거지 지방 귀족 출신의 프랑스인에게 황족인 자신이 숫제 빌기까지 해 불간섭을 얻어냈고, 제들 마음대로 유럽의 균형을 수호하느니 뭐니 하는 같잖은 영국 놈들이 틈을 보이길 기다렸다.
카를 대공은 허리에서 검을 뽑아 높이 들어올렸다.
“나, 카를 대공은 구국의 마음을 담아 결단을 내리겠다! 귀관들은 날 따르겠는가!”
“““예, 전하!”””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오는 서슬퍼런 소리가 방을 가득 채우고, 양초에서 나오는 불빛에 잘 닦인 검면이 번쩍였다.
이 유사국가도 오늘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리라.
***
프랑스, 파리.
[주신성로마제국 외교대사,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 송신.어제 자정을 기점으로 황실친위대와 최고전쟁의회 소속 부대가 빈을 점거.
친 봉건성향의 관리, 군인, 영주들의 가족들을 모두 감옥에 투옥하고 있음.] [외교대사, 샤를 드 탈레랑 송신.
최고전쟁의회 의장 카를 대공이 제국 육군 야전 원수에 임명되어 카이저에게 검을 받아 제국 내부에 있는 반적을 물리치겠다고 맹세를 함.
빈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음.] [탈레랑 송신.
라데츠키 중장이 헝가리 군을 이끌고 빈을 출발함. 사안이 매우 시급함.] [탈레랑.
총감.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기 바랍니다. 내가 입 털어서 여기 있는 프랑스인들 지키는 거야 쉽지만, 총감은 거기 만족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무슨 미친 짓을 해 어떤 것을 얻어낼지, 또 내가 그 짓거리를 어떻게 변호하면 될지 서둘러 알려주시오.]
오늘 아침에 파리에 도착해, 이제 막 암호를 풀고 내 책상 위에 배달된 보고를 읽고 있자니 탈레랑이 꽤나 똥줄이 타고 있구나, 싶다.
나는 탈레랑이 쓴 편지를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주위를 바라보았다.
“탈레랑 대사의 보고대로, 현재 신성로마제국은 근황주의자들과 봉건주의자들로 나뉜 상태입니다.”
“글쎄. 중간에 눈치 보는 놈들도 있을 거 같은데. 아닙니까?”
“맞긴 합니다만, 사태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만 하면 바로 그쪽 편을 들 자들입니다. 실상은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오케이 오케이. 그러면 민간인 소개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빈에 있는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프랑스 대사관에서 보호하고 있으나 보헤미아나 헝가리 쪽은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내무부 차관, 외교부 차관. 일주일 주겠습니다. 무조건 다 파악해서 소개하세요.”
““예, 각하.””
나는 고개를 돌려 군수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그루시 군수사령관.”
“예, 각하.”
“현재 창고에 남아 있는 샤를르빌 소총은 몇 정 정도 됩니까.”
“대략 3만 정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포장 다 뜯어서 준비하세요.”
“예. 각하.”
“무역국장.”
머리가 희끗희끗한 무역국장이 내 앞으로 나왔다.
“예, 각하.”
“지금 제국의 상황은 어떤 거 같습니까?”
“그야··· 내전 아닙니까. 혼란스러울 거 같습니다만.”
“그러면 지금 제국 시민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불안하겠지요. 30년 전쟁에서 약탈을 안 당한 마을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똑같이 반복될까 두려워 할 겁니다.”
“좋습니다.”
나는 가볍게 책상을 톡 치면서 말했다.
“화약, 탄알까지 합해서 샤를르빌 소총 3만 정을 민간인한테 풀어버릴 방법을 찾아오십쇼.”
“예?”
“내 집, 내 마을, 내 가족은 자기 손으로 지켜야 하는 법 아닙니까? 안 그래도 내전으로 불안하니, 마케팅도 돈 안 들이고 제대로네.
이익은 생각하지 말고 군수창고에 있는 소총 3만 정을 다 풀어버리세요. 어디 시골 동네를 가도 총 든 자경단 한 20명 쯤은 있게끔.”
“···저어, 내전 불간섭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내가 언제? 난 내전 하는 교전 당사자들한테 불간섭한다 그랬지. 그리고 민간인들이 내전에서 교전 당사자인가요?”
“아니지요?”
“그럼 됐지.”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어렸을 때 성당 헌금 몇 번 삥땅친 거 빼면 하늘에 우러러 한 치의 거짓됨도 없는 진실한 사람이란 말이다.
그렇지 양심아?
– 응 맞아.
양심도 맞다고 하잖나.
이렇듯 묠니르도 들 수 있을 정도로 정의로운 내가, 선량한 시민들이 위협을 당하는데 어떻게 손을 놓고 있을 수 있담? 적어도 자구책은 만들어줘야지.
물론 그걸로 시민들이 사슴을 쏘든, 자기 집 약탈하는 누군가를 쏘든 그건 그 시민의 몫이지. 내 탓은 아님. 절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