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03)
잘 어울리는 이웃 (8)
“국민의회 의장님, 의원님, 그리고 프랑스 공화국의 자유로운 시민 여러분.”
모두가 숨을 죽이고 단상에 오른 이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정확히 말해서 1813년 2월 27일. 이날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배워나갈 세계사에 길이길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는 차분했다. 마치 오랫동안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듯. 수십, 수백, 수천 번 시뮬레이션한 것처럼.
“그러나 한 가지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이날을 두 가지 형태로 배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1813년 2월 27일을 프랑스 공화국 군대가 이름 모를 외국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거룩한 날이라 배울 것입니다.
아이들은 1813년 2월 27일을 프랑스 공화국 군대가 유럽의 평화를 해치고 고귀한 자들의 피를 흘리게 한 날이니 프랑스인으로서 반성해야 하는 날이라 배울 것입니다.”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의장님, 의원님, 시민, 국민 여러분.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와 우리 공화국 정부는, 혁명 이후부터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하여 전 세계에 평화를 원한다는 유화적 제스처를 보였습니다.
왜냐, 우리가 원한 것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박애주의적인 세상이었지, 서로 품고 있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배에 칼을 찔러 넣고 머리에 납탄을 박아넣는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잠시 연단에 놓은 물컵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누군가는 우리의 존재 자체에 맹목적인 증오와 괄시를 보내며 우리가 중히 여기는 소중한 가치, 요컨대 존엄한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를 짓밟았습니다.
1813년 2월 27일. 신성로마제국의 대공인 카를 루트비히의 지휘하에, 신성로마제국 육군은 트리어라는 소도시에 사는 자국민들을 상대로 물리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리력. 나라를 지킨다는 군인들이 오히려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품속에서 편지를 한 통 꺼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흔들었다.
“여러분. 이것은 당시 현장에 나가있었던 국민방위대 육군 준장, 프랑수아 마티유 장군이 제 앞으로 보낸 서신이자 보고서입니다.
여기엔 한적한 소도시인 트리어가 하루아침에 얼마나 참혹한 곳이 되었는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잔혹한 일을 당했는지 명명백백하게 적혀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사형이 도시를 채웠다. ···총살형, 화형, 교수형… 일찍이 프랑스에서 사라진 야만적인 형태의 단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시민 대표인 마르크스 씨와 시민들은 시뻘개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평생을 살아온 도시를 나섰다. 이곳은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그리고 이건, 마티유 장군의 사직요청서입니다.”
사직서라니? 남자가 품속에서 꺼낸 또 다른 서신에, 자리에 앉은 의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본관은 외교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원정군 지휘관으로서, 개인이 지닌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지 못하고 제국과의 외교 관계를 파탄 냈으며 장병들의 목숨을 희생시켰으매 모든 책임을 통감하고 전역을 신청하겠습니다.]“의장님, 의원 여러분. 입법부 여러분들에게 감히 여쭙고자 합니다.”
프랑수아 마티유 준장의 전역을 허가해야 합니까?
그는 누가 뭐라 말할 틈 없이 빠르게 이어 말했다.
“제가 감히 두둔하겠습니다. 아니오! 아니오! 그에게 훈장을 줄지 언정 결코 그를 전역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나, 기욤은 군인의 본분인 명령에 대한 의무를, 명예를 버리고 가장 존엄한 생명을, 우리 공화국이 좇는 가치를 구한 그에게 찬사와 존경과 박수를 보낼 겁니다!
나, 기욤은 감히 정의로운 공화국 군대의 앞에서 같은 인간을 도륙한 저 파렴치한들에게 중지를 치켜들고 저주를 내리겠습니다!”
우리는 저들을 존중했다.
저들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존중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것입니다. 한쪽이 존중한다 하여도, 상대가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중이 아니라 굴종이고 비굴입니다.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가치를 짓밟는 저들에게 더 이상의 존중이 필요합니까?
자국민을 학살하며 거기에 손가락질을 하면 내정간섭을 운운하는 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꺼드럭거릴 때마다 굽신굽신해야 합니까?”
그는 풀어진 넥타이를 고쳐매며 말했다.
“이 전쟁은 우리가 시작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이 비겁한 평화를 계속해서 유지할지. 아니면 우리의 운명을 걸고 싸울지.
우리의 아이들이 1813년 2월 27일을 거룩한 날로 기념할지! 아니면 수치스러운 날로 기념할지! 모든 것이 오늘, 지금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저, 통령 기욤 드 툴롱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입법부 여러분, 국민의회 의장님과 의원님들께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강요가 아닙니다. 요청입니다. 반대를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삼권분립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저는 여러분께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저, 그리고 우리 공화국 행정부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심력(心力)으로, 때로는 지혜로, 마지막에는 모든 정력을 사용해 승리할 것입니다.
들에서, 늪과 산에서, 숲에서, 언덕에서, 도시에서, 거리에서 싸워 이길 것입니다.
들을 해방하고, 늪과 산을 해방하고, 숲을 해방하고, 언덕과 도시를 해방하고, 끝내 거리를 해방할 것입니다.
아무런 의미 없는 핏줄과 거짓 왕관에 집착하는 모든 이들을 몰아낼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 공화국은 저 거악(巨惡)에게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존경하는 의장님, 의원님.
오늘. 이 시간부로, 프랑스인을 대표하는 공화국 정부가 압제자들에 맞서는 전쟁상태에 돌입하는 걸 승인해주십시오.”
그는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30년 전 테니스코트에서처럼 손수건들이 하늘을 날았다.
***
“아! 아악!! 그만! 그만해!”
“허, 피해?”
“아니 아니. 한 대만 맞아준다고 했잖아! 왜 더 때려!?”
“닥쳐.”
시…발… 나 대통령 아니야? 내 권위와 카리스마에 세상이 벌벌 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내가 저 붕붕 돌아가는 주먹에 맞을까 벌벌 떨어야 하지?
그래. 내가 누구? 선전포고를 날린 대프랑스 공화국 통령. 으딜 감히 원수도, 대장도 못 단 준장따리 준장따가 덤비느냐.
“야, 기욤아. 우리 애들. 많이 죽었다.”
···그냥 몇 대 더 맞을 걸 그랬다.
“미안해.”
“해야만 하는 일 아니었냐?”
“그렇지.”
“우리 애들, 개죽음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그럼 됐다.”
마티유는 손을 훌훌 털었다.
“이제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통령 각하?”
“뭐긴. 다 때려잡아야지.”
“그니까 그 계획이 뭐냐고.”
“일단 그… 뭐라고 번역해야… 그래, 동원령(Décret de mobilisation) 때려야지?”
“동원령…?”
“동원령 몰라?”
그게 뭔데 씹덕아- 같은 표정을 짓는 마티유에게, 나는 21세기 예비군 정훈교육에서 배웠던 내용을 읊어주었다.
전 프랑스에 있는 공장과 시설을 임시 국유화한 뒤 무기를 찍어내고,
징병제를 통과시켜 훈련소에서 병사를 찍어내고,
신체부적격자와 여자, 대체불가한 기술자는 공장에서 군수품과 소비재를 생산하고.
왜 이걸 모르지?
“기본이잖아 기본.”
“···뭐라는 거야?”
“아니 뭐. 전쟁이면 백만 대군은 기본 동원해야 하는 거 아냐?”
“뭐, 뭐?”
5천만 정도 대한민국이 한 5백만 정도 동원하니까, 그 반절인 프랑스면 시대의 한계 고려해서 한 150만은 뽑아낼 수 있지 않나?
좀 더 무리하면 200만도 꿈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런 개또라이새끼…”
“아니. 전 유럽이랑 한 따까리 뜰 건데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이기려고?”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긴 해.”
“후리려면 다시는 대가릴 못 내밀게 후려야지. 어설프게 했다간 우리가 죽어.”
기존 국민방위대의 전 병력은 7만이다. 이제 이걸 150만까지 펌핑하려면 기존 병력은 싹 다 쪼개서 신생 사단의 뼈대로 삼고 거기에 신병을 살로 붙여야 한다.
으윽. 벌써부터 머리가 막 아프다. 재무부를 진짜 커피를 그라인더에 갈 듯이 갈고도 행정력이 모자랄 거 같은데.
···은퇴한 사람까지 싸그리 싹 긁어모으면 될라나?
***
“다들 모이셨습니까?”
“예, 통령 각하.”
커다란 원탁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굳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 국방 및 국가안전보장회의(Defence and National Security Council).
행정부 수반인 통령과 각 부 장관들, 입법부와 사법부 대표, 민간 저명인사가 모인 일종의 테스크 포스는 원활한 전쟁 수행을 위해 기욤의 강력한 건의로 만들어진 임시 기구였다.
일부는 기욤이 이걸 토대로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냐- 는 발칙한 생각을 했지만, 언제 저 인간이 옥좌에 앉고자 하던 사람이었나?
싫은데요. 제가 왜요. 꼭 해야 합니까. 라고 투덜대면서 입이나 빼쭉 내밀던 인간이지.
따라서 그런 의혹은 개소리로 치부되어 알지도 못하면서 깝친다는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승리를 위해 구상한 대전략에 미흡한 점이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첨언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각하께서 품고 계신 생각을 알려주신다면 온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무부 장관님.”
기욤은 일어나서 한쪽 벽면에 친 커튼을 걷어냈다.
“저게 뭡니까?”
“다들 편하고 쉽게 보시라고 만들어봤습니다.”
아아… 이것은 PPT라는 것이다.
연극 무대장치를 통째로 뜯어와 설치한 PPT는 나름 잘 작동하는 것 같았다.
사실 저 뒤에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르래를 쉴새 없이 돌리는 인부가 탈진하지 않는 이상 고장은 안 난다.
기욤은 기다란 막대로 PPT(인력)을 착착 두드리며 읊어나갔다.
“제가 취하고자 하는 대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잠재적 적국인 프로이센과 러시아 제국, 대영제국, 이탈리아의 제후국들에게 우리가 확실히 앞서는 것은 도덕적 위신.
따라서 우리는 이 포지션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2. 세계 각지에는 눈을 뜬 지식인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 현지인들의 공화정 수립을 지원한다.
단, 확장주의적 견해를 가진 자들은 철저히 걸러낸다.
3. 성립된 현지 공화국을 동맹으로 끌어들이고 보조전력 및 현지 봉건국가를 무너뜨리는 무기로 삼는다.
“그러면 굳이 우리가 그… 백만 대군을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프랑스 대신 저들의 피가 흐르게 두면 되잖습니까.”
“차라리 우리 프랑스군이 보조전력이 되고, 저들이 주력이 되면-”
음… 괜히 나폴레옹이 다 줘패놓고도 10년도 못 간 게 아니구만.
지금 포섭하려는 이들, 공화주의를 부르짖는 이들 중 대부분은 지식인이다.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란 말이지.
그런 인간들이 우리가 자기들을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수단’으로 이용하는 걸 모를까?
당근빠따 모를 리가 없다.
내가 봤을 때 저 지랄이 나면 진짜 딱 10년 뒤에 증오와 앙심을 품은 이들이 총부리를 거꾸로 잡게 될걸.
그러니 주력군은 어디까지나 프랑스군이 되야한다.
우리가 피를 가장 많이 흘려야, 저들도 ‘아 이 새끼들 진짜 이상에 미친 새끼구나.’-하면서 우릴 이득충으로 안 본다고.
사람 마음 사는 게 어떻게 쉽겠나.
원래 믿음과 신뢰는 강요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진심을 얻었을 때, 이웃들이 우리와 기꺼이 어울리고자 할 때. 그때 비로소 프랑스는 리더가 되어 세계를 주도해 나갈 수 있으리라.
“팍스 프란치아.”
파멸의 조동아리
파리, 4구.
진즉에 재개발이 끝나 신작로가 들어서고 새 건물이 올라간 이곳.
하지만 아무리 뜯어고친다 한들. 수십, 수백 년 동안 조금씩 조금씩 커져나간 뒷골목 슬럼가를 완전히 일소할 수는 없었다.
그거 다 때려 부수면 거기 살던 사람은 다 어디서 살라고? 노숙?
기욤과 재무부는 일부 슬럼가를 매입하고, 재건축해서 판 뒤, 다시 그 돈으로 슬럼가 나머지 구역을 매입해 개발을 진행하는 점진적인 방법을 채택했고.
그 덕분에 4구는 가스등 나오고 상하수도가 정비된 최초의 구역인 주제에, 뒷골목에선 파리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과일 찌꺼기로 만든 싸구려 양조주를 기울이는 술집 또한 존재했다.
이렇게 복잡한 배경이 얽혀있는 곳에는 응당 여러 인간군상이 살아 숨쉬기 마련이었고.
쥐새끼도 끓기 마련이었다.
– 쾅!
이른 아침. 우악스러운 발길질에 경첩이 반쯤 나가 삐걱거리던 문이 쓰러졌다.
“다 손들어 이 씹새끼들아!”
“육군 방첩대다! 두 손 다 머리 위로 들어!”
“통령 령(令)이다. 다들 허튼짓 하덜 말라고!”
“싹 다 뒤져! 먼지 한 톨 남기지 마!”
동전 몇 닢에 방을 빌려주는 낡고 허름한 여관에 총과 곤봉을 든 경관과 군인 십수 명이 난립했다.
“으, 으아아… 경, 경관님들…! 전, 전 아무고토 모릅니다요!!”
“307호 투숙객. 지금 이 안에 있나?”
“예, 예! 오늘 아무도 안 나갔으니 있을 겁니다…!”
방첩대 대원들과 경관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계단을 뛰어 올라가 몸통 박치기로 객실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 쐑!
괴한이 휘두른 단검이 제일 선두에 서 있는 경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두 번째로 따르던 방첩대원의 곤봉이 괴한의 관자놀이를 후드려 까자, 괴한은 단말마를 지르고 더러운 나뭇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거 새끼. 여기까지 몰렸으면 그냥 항복할 것이지 사람 식겁하게 만드네.”
“이놈이 마지막입니까?”
“그래. 보나파르트 사령관님께 파발 보내. 파리에 있는 간첩은 싹 다 잡아넣었다고.”
*
팔락, 하는 소리와 함께 보고서가 닫혔다.
“나쁘지 않군.”
나폴레옹은 맨 앞에 >기밀>이라는 도장이 큼지막하게 찍힌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리에서 쥐새끼들이 모두 씻겨나갔다는 소식은 계획이 착착 잘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참 우스운 소리지만, 선전포고를 날린 지금 시점이야말로 나폴레옹이 생각하기에 이번 전쟁에서 프랑스가 가장 약할 시기였다.
징병, 병력 재편, 신규 부대 창설, 군수 물자 생산, 기타 등등…
대부분은 기욤이 해야 할 일이지만 병력 재편과 신규 부대 창설은 나폴레옹 자신이 관여해야 할 일.
7만 중 현재 전선을 맡아 방어할 2만을 빼고, 항구를 지킬 해군육전대(해병대)를 빼면 4만여 명의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을 쪼개야 한다.
징병해 군복만 입혀놓은 신병들을 적어도 총은 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선 최소 한 달은 필요하고, 쪼갠 기간장병들을 토대로 부대를 만들려면 넉넉잡고 두 달.
적어도 서너 달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군신, 알렉산더 대왕조차 모욕하는 세계사 최강의 군사 천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방안이 떠올랐고, 그는 개중 가장 비용도 저렴하고 효과도 확실한 한 가지 방법을 채택하기로 했다.
‘일단 연막을 친다.’
방첩사 시절 왜 저 쥐들을 잡지 않았겠나.
쥐란 동물은, 원래 한두 마리 잡아선 해결이 안 되는 법.
불을 지른 뒤 한데 몰린 놈들을 싸그리 일망타진하는 게 바로 쥐 구제법이다.
프랑스가 제국에,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압제자’라는 누군가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린 지금.
파리에 널린 쥐들은 제 머리 위에 달린 마리오네트를 쥔 주인들을 위해 발바닥에 땀나게 달리고 있었다.
왜 기욤이 ‘압제자’라는 모호한 단어를 사용했겠나, 당연히 저 마리오네트의 주인들을 겨냥한 말이다.
‘혹시 나한테 하는 말인가?’ 싶어서 제들이 풀어놓은 쥐들을 채근하도록.
안 그래도 쫓기던 놈들이 숨기는커녕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 몰이꾼들에겐 거의 식탁 위 케이크 같은 일이다.
몰이가 끝난 케이크는 방첩대가 맛있게 먹었습니다. 옴뇸뇸.
‘이걸로 당분간 프랑스 내부에선 기도비닉을 유지할 수 있다.’
배후에서 정보를 퍼 나르는 놈들을 다 잡아냈으니 이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그것은 곧, 이쪽이 그짓말을 얼마나 치든 간에 저쪽은 매 순간 돌다리를 두들기듯 진위를 1부터 100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폴레옹이 아는 기욤은 구라질과 아가리질에는 도가 튼 놈이었다.
***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을 무엇에도 단호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동료애! 그리고 세계 시민으로서의-”
“야 이 개잡놈 새끼들아. 느그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100만 시민군을 몰고 가서 니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구텐 모르겐, 굿 모닝, 부에노스 디아스, 도브라예 우트라. 전 세계에서 간난고초를 겪고 있는 공화주의, 계몽주의, 자유주의 동지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자유의 군대가 여러분과 함께할 테니-”
두두두두두두.
무슨 소리게?
뭐긴. 바로 내가 입으로 기관총을 쏘는 소리다. 히히 발싸!!!
선전포고문 발표, 그리고 나폴레옹이 트리어에 임시총사령부를 만든 이후 난 매일 같이 연단과 신문, 잡지 기자들을 만나 미주알고주알 얄라리얄랴성 떠들기 시작했다.
아, 한 가지 더.
외국인 기자도 만난다.
“스웨덴왕국 관보(Post-och Inrikes Tidningar)에서 나온 크리스테르손입니다, 각하.”
“반갑습니다 기자님.”
나는 허허롭게 웃으며 커피잔을 기울였다.
“저어… 각하. 그, 오늘 질문의 선은 어디까지인지 혹여 말씀해주실 수-”
“아아. 우리 프랑스 공화국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있는 나랍니다. 걱정은 마시고 질문하고픈 거 다 하십쇼.”
“옙.”
스웨덴인 기자는 수첩과 펜을 꺼내 질문을 시작했다.
“그, 우선 여쭙고 싶은 건 선전포고문에 있는 그… 단어입니다.”
“어떤 단어지요?”
“‘압제자’라는 단어 말씀입니다.”
“말 그대롭니다. 압제자. 우린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하는 압제자에 대해 선전포고한 겁니다.”
“그, 그 말이 아니옵고 그, 있잖습니까. 조금 더 구체화를-”
“아니. 압제자가 압제자지 뭘 구체화를 합니까? 혹시 스웨덴어는 프랑스어에 비해 단어가 모자랍니까?”
“그러니까… 그, 어떤 국가가 압제자라는 것인지-”
“그걸 말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못하네요.”
“예?”
“압제자는 곧… 압제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압제자니까.”
나는 근엄한 표정으로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말했고, 스웨덴 기자는 날 무슨 또라이 쳐다보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음. 사실 나도 내가 좀 또라이 같긴 하다.
하지만 뭘 어째. 광대짓이라도 해야 저 놈 뒤에 있을 높으신 분들 대가리가 아플 거 아냐.
좀 자뻑 같긴 한데. 원래 일반인이 이런 짓하면 정신병원에 수감되지만, 나 정도 되는 위치의 사람이 이러면 ‘이 새끼 품고 있는 진의가 뭐지?’하고 제 머리털을 지가 뽑는 법이다.
“···다음 질문 해도 되겠습니까?”
“아 그럼요. 우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핫핫핫.”
“예에에. 그러시군요.”
그럼요~ 당연하죠~.
음. 갑자기 배가 고프네. 저녁은 치킨으로 해야겠다.
“최근 각하께서 군으로… 그러니까… 음…”
“깝치면 대가릴 다 날려버리겠다?”
“예에… 그으으런 말씀을 하셨지요… 말이 말이다 보니 몇몇 인사들은 굉장히 호전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기자님. 전 ‘개잡놈’들의 머릴 날려버린다고 했지, 생사람 머릴 날려버린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제 말이 호전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글쎄요. 자신 스스로 자길 개잡놈이라고 여기시나 봅니다.”
“······.”
내 앞에 있는 기자는 정신이 참으로 화끈해진 듯 눈을 질끈 감더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각하께선 현재 공화국에 100만 대군이 준비되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사실입니까?”
“아 물론이죠. 우리 군은 현재 만전 태세에 들어갔으며, 향후 어떤 군사적 위협에도 단호히 대처할 준비가 끝난 지 오랩니다.”
“일부 군사 전문가나 군인들은 각하의 ‘백만 대군 설’에 관해 물리적으로, 행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곤 하는데요. 혹시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하, 어이가 없군요. 우리 이삭의 민족은 세계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기업입니다. 우리는 혁신과 진보를 추구하며 여태껏 수많은 발명품과 아이템을 개발해 왔지요. 이 제가 그깟 납품기일 하나 못 맞출 거 같습니까?”
“으음…! 확실히…”
응, 사실 구라야. 백만 대군을 먹여 살릴 군수품 납품기일? 상식적으로 그걸 맞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대한민국 같은 뭔가 반쯤 맛이 간 이상한 국가에서나 그게 가능하지, 멀쩡한 기업이 그런 짓을 하면 오장육부가 비틀려 뒈진다고.
평소에 7만 명 ±3만 정도에 맞춰진 군수품 생산체계를 100만에 맞춰서 뜯고 고치고 기름칠하려면 최소 1년은 걸린다.
우리야 내가 미리미리 준비를 해놨으니 그게 몇 달 내에 되는 거고.
여하튼 난 위풍당당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그, 그렇다면-”
“예. 이미 100만은 동원이 완료됐고, 우리 행정부는 앞으로 150만을 더 뽑아낼 수 있으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대략… 1년이면 되겠군요.”
“1, 1년이요?!”
응, 사실 뻥카다. 공갈포.
공갈포의 묘미는 바로 상대방이 믿고 호달달 떠는 것인데, 내 눈앞의 스웨덴인의 눈이 요리조리 돌아가는 걸 보니 꽤 먹힌 듯싶다.
그 뒤로도 레퍼토리는 비슷비슷했다.
– 이거 진짜임?
– 당연하지(구라임)
– 이게 가능함?
– 왜 못 함?(못했음)
당연히. 첫 질문처럼 내가 손해 보는. 구라나 공갈이 통하지 않는 질문은 회피했다.
– 이거 왜 그럼?
– 아아… 모르는 건가…
– 아니 왜 그러냐고.
– 그래… 그럴 이유가 있었지…
– 알려달라고.
– 아직도 모르는건가…
– 왜 내 말 씹음?
– 그렇게 된 건가…
키헤헤헷. 네가 원하는 답은 해주지 않겠다. 슉슉슉. 이거슨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 내 회피기동 소리다.
우리 스웨덴 기자 친구는 어떻게 해서든 내 입을 열고 싶어하지만… 내가 왜 입을 열어줘야 하지?
내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허공에 기관총을 갈기면 다들 개쫄아서 수구리 상태에 들어가는데, 내가 왜 굳이 손으로 딱딱 꼽아서 저격을 해줘?
어차피 니들 나 미친놈으로 알잖아. 미친놈이 미친 짓 좀 하면 어때?
에베베벱.
***
“그러니까 프랑스군 추산 병력이 얼마 정도 되나?”
“···모르겠습니다.”
“전쟁부 장관,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영국.
“저건 아가리질이오. 백만? 배애액만? 그걸 보급을 어떻게 해? 그러다 나라 망한다니까?”
“하오나 저쪽은 지면 정말 나라가 망하는 판국입니다, 폐하.”
“그러면 전쟁대학 교장은 지금 저걸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요?”
“···물론 거짓말이 섞여 있는 허풍이겠지요. 하지만 기욤 그자 직업이 사기꾼도 아니고, 사람이라면 허풍을 친다 해도 반 정도는 진담 아니겠습니까.”
“쯧. 50만이라…”
프로이센.
“우리보다 수도 적은 프랑스 놈들이 백만을 뽑았다면 우린 그 배를 뽑을 수 있지 않겠나?”
“···차르시여. 그게 대체 무슨-”
러시아.
“프랑스! 프랑스 놈들이 피레네를 건너려 해!”
“전쟁이 나면 아메리카 부왕령이 위험합니다! 아메리카를 뺏기면 파산이란 말입니다!”
“선제타격! 프랑스를 선제타격해야 합니다!”
“당신은 게릴라들이나 잡고 말하시오!”
스페인.
전 세계가 기욤의 혓바닥 위에서 춤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