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21)
예나-아우어슈테트 (3)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공작 각하. 호젠하우젠에서 아군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퇴각? 퇴각이라…”
양손을 모아 턱을 괴고 있던 호엔로에 공작은 참모의 말에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자넨 퇴각이라는 단어가 이 상황에 알맞은 말이라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호젠하우젠 요새가 함락됐고 아군은 소대 단위로 나움부르크에 복귀하고 있습니다.”
“끔찍하군. 실로 끔찍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간을 찡그린 채 탁자 위에 펴진 지도를 바라보았다.
“지리멸렬 그 자체군. 정말 프랑스가 이집트에서 이슬람 마법사라도 데려온 건가? 하늘에서 운석이라도 떨군 거냔 말이야!”
“······.”
“다들 꿀 먹은 벙어리야!? 뭐라도 말 좀 해보란 말이야! 제기랄!”
따악!
호엔로에가 화풀이 삼아 지휘봉을 바닥에 던져버리자 참모부 전체가 몸을 움찔했다.
두 사람만 제외하고.
“공작 각하.”
“뭔가 그나이제나우.”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선택하셔야 합니다.”
“뭘.”
“라이프치히와의 교통로, 통신로가 완전히 끊겼습니다. 이제 우리가 여기서 매시간, 매분, 매초를 보낼 때마다 전세가 불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게다가 호젠하우젠을 접수한 다부가 병력을 동원해 북쪽 길을 틀어막으면 우린 모든 면에서 포위될 뿐입니다.”
“안다고 했잖나.”
“그러니 선택하셔야 합니다.”
첫째.
그나이제나우는 자신의 뻣뻣한 부동자세만큼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군을 북쪽으로 빠르게 물려 우릴 차단하려는 프랑스군보다 먼저 마그데부르크에 당도하는 것.”
“······.”
“그렇게 된다면 블뤼허 장군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께서 이끄는 증원군과 함께 후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음.”
둘째.
이번에는 그나이제나우의 옆에 있던 샤른호르스트가 입을 열었다.
“야전 총참모부를 마그데부르크로 먼저 옮기고, 병력은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는 것.”
“···뭐라고?”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곳 나움부르크에 있는 8만 명을 모두 챙겨 마그데부르크까지 퇴각시키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각하. 몇몇 척탄병 연대처럼 최정예 부대를 제외하고 보시지요. 병사들이야 언제든지 다시 뽑아낼 수 있지만 높은 수준의 장교들은 그리 쉽게 양성해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특히 프로이센의 장교라면 말이지요.”
“으음.”
“대국적으로 생각하십시오, 각하.”
차갑다 못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샤른호르스트의 말에 호엔로에는 짧게 신음을 흘렸다.
‘포위망이 완성되면 그대로 끝이다.’
‘무조건 그전에 무슨 수라도 둬야 해.’
‘두 가지 경우의 수 중 성공했을 때의 이득만 따지면 첫 번째가 맞다.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는가?’
8만.
8만 명을 전부 챙기면서도 대오를 맞춰 마그데부르크까지 갈 수 있을까.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퇴각로가 저 프랑스군의 압도적인 기동력에 위협당하지 않을 보장이 있겠는가.
그리고.
“샤른호르스트.”
“예, 각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입에 발린 소리는 됐으니 그냥, 그냥 자네 흉금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말해보게.”
“매우 공격적이고, 매우 기민하며, 판이 돌아가는 향방을 미리 읽고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후하군.”
샤른호르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첨언했다.
“개인적으로는 프리드리히 대왕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보시오! 샤른호르스트 대령!”
“감히 대왕을 개구리 적장에게 비교하다니! 기욤에게 돈이라도 받았소?”
“당장 불손한 언행에 대해 사과하시오!”
이름에 ‘폰(Von, 독일계 귀족 성씨)’이 붙는 이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지만 부사관의 아들, 샤른호르스트는 꿋꿋하게 말했다.
“각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휘하에 있는 루이 니콜라 다부, 장 란, 그리고 상세불명의 기병군단을 이끌고 있는 조아킴 뮈라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범상한 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제가 감히 아뢰겠습니다. 송구하지만. 첫 번째 방안은 불가합니다.”
“···그런가.”
“예.”
그렇다면 남는 건 두 번째 방안.
– 야전 참모부를 마그데부르크까지 ‘이동’시킨다.
– 척탄병 연대, 엽병 대대를 위시한 정예 부대도 마그데부르크까지 동행한다.
– 현재 나움부르크를 지키는 일반 부대 대다수는 그대로 이곳을 지킨다.
‘이동’이니 뭐니 최대한 중립적인 단어로 블링블링하게 치장했지만, 까놓고 말하면 제물을 바치고 런 하자는 것 아닌가.
“잠깐 기다려보게.”
차마 바로 승낙할 만큼 명예로운 일은 아니었기에, 호엔로에는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끄트머리를 잘라낸 뒤 입에 물었다.
“···.”
“···.”
독한 시가 냄새가 야전 참모부의 홀애비 냄새를 밀어내고 깃발을 꽂을 무렵.
“후우. 결정했다.”
“““!!!”””
“총퇴각은 없다. 대신 야전 참모부를 마그데부르크로 옮기도록 하지.”
공작은 시가를 재떨이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
“프로이센군 진영이 분주합니다.”
“정찰대와 스파이들이 수집한 정보로는 퇴각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 같습니다.”
“흠.”
참모들의 보고를 받은 나폴레옹은 잠시 턱을 매만지며 막사 안을 몇 바퀴 돌다가 대뜸 입을 열었다.
“추하군. 저게 정말 유럽 최강 프로이센군이 맞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딱 봐도 꼬락서니가 보이지 않나? 까치밥 좀 던져줄 테니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이거지.”
명예도 없는 새끼들 같으니.
나폴레옹은 뒷짐을 진 채, 막사 입구 너머 저 멀리 나움부르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적군이긴 하지만 프로이센 장병들은 국가의 부름에 응해 시키는 대로 용감하게 싸웠거늘, 지휘관이란 놈들은 그자들을 고기방패로 삼을 생각이야.”
프랑스군은 이미 놀라운 기동으로 프로이센군을 두 차례나 놀래켰다.
당연히 프로이센군으로서는 프랑스군의 기동력에 지레 겁을 먹었을 터.
“총퇴각을 개시하면 8만에 달하는 대군이 길게 늘어지고, 당연히 우린 놈들의 옆구리를 신나게 쑤실 수 있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군.
그런데 프로이센군 입장에서 보면 이게 참 위험하게 느껴질 거란 말이야. 그러니 딱 살려야 될 사람만 선별해서 후방으로 빠르게 튀고, 나머지는 우리 보고 먹으라고 주는 거지.”
“···너무 비인간적인 추측이십니다만.”
“베르티에. 전쟁에 인간적이고 비인간적인 게 어디 있나? 그리고 저자들은 봉건주의자들이야. 우리 같은 자유주의자, 공화주의자도 아니고, 민주정의 명령을 받지도 않지.”
사람을 목적으로 다루는가, 수단으로 다루는가.
나폴레옹에게 군권을 내려준 자유공화정부에게 사람이란 목적이다.
그러나 프로이센 융커들에게 군권을 내려준 전제군주정에게 사람은 수단일 뿐이다.
재산을 불리기 위한 수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보신을 위해 희생시킬 수단.
나폴레옹은 코담배를 들이마시며 씁쓸하게 말했다.
“내가 알렉산더 대왕부터 샤를마뉴 대제, 프리드리히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쟁 영웅들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게 뭔지 아나?”
“뭐지요?”
“결과가 아주 아주 좋으면, 중간에 무슨 짓거리를 했던 배경이 어떻던 간에 다 묻혀버린다는 거지.
알렉산더는 동성애자에 샤를마뉴는 글자도 모르는 모지리, 프리드리히는 동성애자 플러스 괴팍함까지 겸비했다지? 그런데 보게. 지금은 모두 그 셋을 군신(軍神)처럼 떠받들지 그런 허물은 입 밖으로 안 내잖나.”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그, 좀…”
“삭막하다고?”
“예, 좀.”
“세상살이가 원래 다 삭막하··· 음. 생각해보니 전부 다 그렇지는 않군. 간혹가다 몇몇 또라이가 있긴 하지.”
– 크하하핫! 키시시싯!
나폴레옹은 머리 어드메에서 잠시 떠오른 목소리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 입을 열었다.
“여하튼 저자들의 머릿속엔 ‘아 지금 아프긴 해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 같은 말로 가득 차 있을 거야. 프리드리히도 궁전이 적군에게 넘어갔지만 결국 승리하고 추앙받잖나. 개같은 놈들.”
“그러면 어찌할까요.”
“흠.”
나폴레옹은 뒷목을 주물럭거리다가 말했다.
“나움부르크는 방기한다.”
“···예?”
“놈들이 바라는 대로 해 줄 순 없지. 딱 포위 유지가 가능한 1만만 남기고 전부 추격대로 활용하자고.”
“그랬다가 나움부르크의 적이 뛰쳐나와 우리 후방을 끊어먹으면 난감해집니다.”
“이봐 베르티에. 생각해보라고. 나움부르크에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을 만한 인간이 남아 있을 거 같나?
없어. 아무도 없단 말이야. 저곳은 그냥 고기방패라니까?”
“참모장으로서 생각했을 때, 너무 도박수입니다.”
“베르티에. 내가 언제 실패한 적 있었나? 믿음을 가져보라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는 상관의 모습에 베르티에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잠자긴 다 글렀군.’
총사령관이 큰 그림을 그렸으니, 이제 선도 따고 색도 칠하고 명암도 넣어야 하지 않겠나.
***
나움부르크 남부, 예나.
“포격이다!!”
“꺄아아악!!”
“우와아 개쩐다.”
넷플릭스라던가 유투브도 없고, 간간이 찾아오는 유랑 서커스단을 제외하면 볼거리도 마땅찮은 이 19세기. 전쟁은 하나의 오락거리였다.
“망원경 빌려드립니다! 5분에 은화 한 닢! 20분에 금화 한 닢!”
“나 5분짜리로 하나만 끊어 주쇼!”
“알겠습니다 손님!”
“지붕 빌려드립니다! 지붕! 예나에서 가장 전장이 잘 보이는 집입니다!”
“입장료는 얼마 받소?”
“인당 금화 두 닢씩 받습니다.”
“젠장, 아주 탈탈 털어먹는구만. 여기 있소.”
“프랑스가 이긴다에 금화 다섯 닢!”
“난 프로이센에 걸겠소!”
“조수! 이분들한테 칩 좀 내주게!”
“알겠습니다!”
예나 시민들은 망원경을 지참하고서 가족 모두 함께 전장이 가장 잘 보이는 목 좋은 집 지붕에 올라가 하하호호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누가 이길지 내기 도박에 돈을 걸었다.
“우와! 엄마! 기병대예요! 기병대! 완전 멋있다!”
음. 꼬꼬마까지 지붕에 걸터앉아 망원경으로 전쟁을 직관하는 이 세상.
참으로 멋진 세상, 19세기 만만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대충 집 한 채 빌려서 보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쌩! 고생을 해야 하는데?!”
“잘 안 보이잖나.”
“오. 게오르크 제발. 그 깐깐한 성격 좀 어떻게 안 되겠나?”
“오늘은 안돼. 대신 내일은 피히테(Johann Gottliedb Fichte) 자네가 하자는 대로 하지.”
“예나 대학에서 제일 미친놈에게 말한 내가 잘못이지.”
게오르크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과 그의 친우, 요한 피히테.
예나 대학에서 교직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두 학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예나 외곽에 있는 야산을 오르고 있었다.
“후우! 도착이구만.”
“운동부족일세 피히테. 겨우 동네 뒷산 오르는데 그리 힘들어해서야.”
“그만그만. 자네가 무슨 사감 선생이야? 어서 구경이나 하자고.”
피히테는 옆으로 맨 가방에서 망원경을 두 개 꺼내 하나는 자기가, 하나는 헤겔에게 내밀었다.
“오. 저자가 바로?”
“그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기욤 드 툴롱의 주머니칼.”
자동차 위에서 수십만 대군을 움직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군인을.
그리고 그에게 검을 내려준 거대한 시대 정신을.
이곳엔 없으나 그 시대 정신을 만들어낸 어떤 이를.
헤겔은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