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25)
주사위 (2)
“웨스터민스터에서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뭐라나?”
“[협상 결렬. 프랑스인들은 영국의 도움 없이 독립적인 전쟁 수행을 원함]이랍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 옛날 기욤을 만났을 때보다 이마에 주름 서너 개를 더 추가한 프랜시스 베어링은 저 웨스터민스터에 의원이랍시고 앉아있는 놈들의 대가리를 쪼개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멍청하기 짝이 없군. 꼭 찍어 먹어봐야 똥인지 브라운소스인지 아나?”
기욤 드 툴롱이 여태껏 보여준 행보만 보더라도 적당히 얼개가 잡히지 않는가.
그 거대한 철강산업체며, 물류 유통망. 한 나라의 국방부서를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강력한 영향력까지.
기욤 드 툴롱은 명백히 온 세상을 불태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놈은. 내친김에 나와 내가 만든 이 왕국을, 베어링의 금융 왕국을 파묻어버리려는 게야.”
“···너무 과대망, 아니. 확대해석 아닐런지…”
“아니. 그놈. 그 맑은 눈의 광인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온 탐험가들이 말하길, 사자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사자는 매번 젊은 사자들과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태그매치를 붙는다고 했다.
인간사도 매번 똑같지 않은가. 기득권을 가진 늙은 권력자는 항상 야망을 가진 젊은이에게 도전받았다.
– 당신. 내가 두렵군?
이번에는 베어링의 차례가 되었을 뿐.
“웨스터민스터는 아직도 긴가민가하나?”
“프랑스가 아주 척을 지려한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봅니다. 그저 ‘신경 끄셔’ 정도로 받아들인 거 같습니다.”
“휘그당에 로비를 늘려. 해군성 군바리들 뒷주머니에도 파운드를 쑤셔주고. 무조건 주전론을 메인 토픽으로 올려야 해.”
주전론이 퍼지면 퍼질수록 영불관계는 나빠지고 영불관계가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피트 수상 이래 ‘프랑스는 말 잘 듣는 따까리, 이걸 만든 게 누구? 바로 토리당’ 이라고 표를 끌어모은 토리당은 정국 주도권을 잃는다.
그리고 호전적인 해군성 인사들의 지지를 받는 휘그당이 정권을 쥐는 순간.
“그때 국채를 전부 매입한다.”
“예?”
“아직도 모르겠나? 전쟁은 군대로 하는 게 아니야. 전쟁은 곧 돈으로 하는 거라고! 이 전쟁은 런던에 있는 베어링과 파리에 있는 기욤, 두 사람이 치르는 셈이란 말이다!”
기욤이 제 모든 힘을 쏟아 프랑스를 강화시켰다면, 베어링도 필시 그래야만 한다.
어차피 지는 순간 모든 게 불탈 테고, 이기면 모든 걸 얻을 텐데 뭐가 아깝겠는가.
***
“존경하는 옥쇄관님. 그리고 존경하는 상원, 하원 의원님들! 드디어 프랑스의 시건방이 도를 넘었습니다! 저들은 이제 중부 유럽을 짓밟고 국왕 폐하의 영지인 하노버에 총검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날려라!!”
“발칙한 개구리를 몰아내자!!”
“신성로마제국군이 무너지고, 이젠 프로이센군까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토리당 의원들은 두 팔을 끼고 온 유럽이 프랑스군에게 유린당하는 꼴을 관망만 하고 있으니, 이게 영국 의회인지 프랑스 국민의회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토리당 의원들께선 프랑스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삼색기를 꽂은 뒤에야 일하실까 참으로 궁금하군요!”
“말 잘했다!!”
“친불 토리당은 꺼져라!”
“토리당 의원으로서, 전 우리 토리당의 친구이신 휘그당 의원님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민생이고 경제고 귀찮게 머리 굴리고 생각할 필요 없이 시티 오브 런던 금융가에서 ‘이렇게 말해주세요’하면 그게 개소리인지 쌉소리인지 의심치 않고 입으로 두두두 쏘기만 하면 계좌에 파운드가 두두두 꽂히니 말입니다.”
“옥쇄관 각하! 지금 토리당은 근거 없는 비방을 난사하고 있습니다!”
“야! 꼬우면 계좌 까라!!”
“지난 20년. 우리 영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했습니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부족해졌던 곡물 생산은 값싼 프랑스산 곡물이 수입되며 타파되었고, 그 덕택에 영국산 공산품은 더 많이 더 싸게 생산되어 전 세계 시장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본토의 쓸모없는 군비경쟁이 사라진 덕에 우리는 해외영토를 2배 넘게 늘릴 수 있게 되었고 늘어난 해외 식민지는 곧 무역거점이 되어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뭐? 전쟁하자고요? 우리 고매하신 휘그당께선 집권에 눈이 멀어 대가리에 이 나라 경제를 조져버릴 생각밖에 없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하군요.”
“와아아!!”
“우우우!!”
– 니들이 뭘 알아.
– 너넨 뭘 아는데.
– 휘그당 니들 베어링한테 얼마 받고 일하냐?
– 토리당은 식물인간 피트 똥이나 닦아주러 꺼져라.
주먹만 주고 받았다면 마치 21세기 어느 나라 국회의사당 돌아가는 꼬라지와 100% 완벽한 싱크로율이라 말할 수 있으련만, 아직까지 공작 백작 자작 같은 고상한 작위를 지닌 이들은 거기까지 떨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의원님. 아까 계좌 운운하신 거, 알고 찌른 겁니까?”
“오 설마 진짜 받은 거였소? 시티 오브 런던에 찌라시가 돌길래 한 번 재미 삼아 건드려 본 건데.”
“자꾸 그러시면 이튼 스쿨에 자제분 부정 입학한 거-”
“어어. 아는 사람끼리 왜 이러나. 서로 소중한 고간은 지켜줍세.”
무울론 베어링과 시티 오브 런던의 금융가들이 자신들의 뒷주머니와 지갑에 맛난 파운드를 이빠이 꽂아주긴 하나…
그 돈을 받아 먹는다 하여도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유서 깊은 귀족이다. 게다가 베어링과 금융가들은 대부분 평민 출신.
술값 좀 쥐어준다고 앞이 아니라 뒤에서까지 나팔수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 심지어 뒤에서 이렇게 같이 위스키 까고 노는 자들은 대부분 이튼 스쿨 출신의 선후배인데?
이렇게 놀고 먹는 뒷자리에서까지 ‘우리 휘그당은요~’, ‘글쎄요. 전 좀 반댄데요~’ 하는 순간 눈치 없는 새끼, 교양도 없는 새끼 취급 받을 게 분명하다.
21세기 현대까지도 쓰는 단어를, 억양을, 문화를 달리 유지해온 영국 귀족들은 19세기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따라서 웨스터민스터 인근의 프랑스식 고급 살롱. 방금 전까지 의회에서 상대방에게 손가락을 치켜들고 개새끼 소새끼 하던 이들은 고급 위스키가 담긴 잔을 함께 기울이며 읊조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전황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프랑스군이 서쪽으론 하노버 앞에 도달했고, 동쪽으로는 베를린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도 프랑스군이 파도처럼 들이닥치고 있다고 제노바 공사가 말하더군요.”
“걱정할 거 없소. 러시아군이 메멜에 당도했으니 곧 프랑스군의 기세도 꺾이고 전선이 고착화될 거요. 그때 되면 기욤 그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걸 깨달을 테지.”
전쟁부 출신으로 오랫동안 공직에 몸담은 어느 의원이 잔에 얼음을 추가로 채워 넣으며 말하자, 몇몇이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전 인력이 100만? 단기전이면 몰라 그걸 연 단위로 어떻게 운용해?”
“보급은 할 수나 있겠습니까?”
“그랬다간 나라가 망하겠죠.”
군의 일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들은 맞장구를 쳤고, 돈과 숫자를 만지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그러했다.
“기욤 그자가 여태껏 우리에게 보여준 게 거짓된 모습이라 해도.”
“프랑스의 힘이 다하고 전세가 제 살 깎아 먹는 식으로 바뀐다면, 다시 가면을 쓰고 우리의 손을 잡을 겁니다.”
“바로 그거일세.”
그러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자, 대영제국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술잔이 짠-하고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다음날.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러시아야! 러시아가 프랑스와 편 먹고 프로이센 뒤통수를 친 겁니다!”
“거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는 자제하시오!”
[프로이센군 최정예 브라운슈바이크 척탄병 연대 전멸. 프랑스군, 베를린 5km 앞 포츠담 함락!] [상수시 궁전 근방에서 산발적인 교전이 일어나고 있으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공화국 고참 근위대가 투입되어 속속들이 제압되고 있다.] [프로이센군 총사령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전사(戰死)! 사인은 우측 눈의 총상!]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동프로이센으로 피난 중]“그, 그 군사 강국 프로이센이 졌다고? 아예 전멸을 했다고?”
“이건, 이건 말도 안돼! 꿈이요!”
위스키에 쩔은 이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뺨을 때리고, 심지어는 날카로운 날붙이로 허벅지를 쿡쿡 찔러보기도 하였으나.
“악! 아파! 아파!”
“이게, 진짜라고?”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거나 사라지지는 않는 법.
그들은 창문을 열어 방 안에 든 술냄새를 빼내고 나란히 둘러앉았다.
“베를린이 아직 함락되지는 않았소.”
“함락은 기정사실로 보입니다만.”
“아직은. 이라고 말했잖소.”
“오늘 아침에 전해진 소식이니 아마 지금쯤이면 함락됐을 텐데요.”
“현장은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건 런던이지. 런던에서 베를린은 아직 삼색기가 아니라 검독수리 깃발이 꽂혀있는 곳이요.”
“파장이 꽤 클 텐데 어떻게 단도리 하면 되겠습니까.”
부패하고 탐욕스럽다 한들 머리가 없겠는가. 애초에 머리가 모자라면 이들처럼 귀족의 고상함을 지키며 사리사욕을 채우지도 못한다.
“단도리라. 난 못 할 듯 싶소만.”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카드를 뽑아야 할까요.”
“관세인상과 군수물자, 원자재 판매 금지.”
“씁. 약한데.”
“그걸론 부족합니다. 아예 기욤 그자의 사업체에 철수명령을 내리시죠.”
“···예?”
“그 개구리 놈이 1년에 벌어가는 파운드가 얼마요? 그놈 주머니에 들어간 동전은 프랑스군이 쏘아댈 총알이 될 게 분명하잖소?”
“그, 그건 좀…”
군부 출신 인사의 단호한 말에, 재무부 출신 인사는 헉-하며 손을 내저었다.
“안 그래도 돈에 관해서는 귀신 같은 작잡니다. 그런데 사업 철수라뇨?! 그 인간이 느끼기에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을 겁니다!”
“이래서 펜대만 굴리는 새끼들은 안돼.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이보시오. 지금 프랑스를 경계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 수십 배나 되는 고생을 해야 할지 모른다니까?”
“그, 그건 압니다만…!”
“그만. 그만. 이건 군에서 하는 말이 맞소.”
난 이제 모르겠다… 하고 재무부 인사는 제 관자놀이를 만지며 작게 뇌까렸다.
***
“···오늘 아침. 영국 재무부와 웨스터민스터 의회는 우리 공화국 정부에게 일방적으로 관세인상, 프랑스 국적의 사업체 철수 등 고강도의 경제 제재 의사를 타진하였습니다.
야훼께서 이르시길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거늘, 오늘날 우리의 이웃은 도적과 싸우고 있는 우릴 돕기는커녕 그 틈을 노려 제 뱃속을 채우려 들고 있습니다.
우리 프랑스 공화국 정부는 이에 매우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얼마나 오래 참나 싶었다. 해적국 새끼들이 그러면 그렇지.
그런데 잽을 날리셨으면, 카운터 훅 맞을 생각도 하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