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32)
지상 최대 폭탄 배달작전 (4)
1814년 9월 3일.
격전지, 스페인 말라가.
시 외곽, 프랑스군 야전 사령부 막사에 원수를 상징하는 황금색 독수리 깃발이 하늘 높이 걸렸다.
흉갑기병대가 호위하는 자동차가 흙먼지를 뚫고 사령부 앞에 다다르자, 삼색기와 임시 스페인 공화국기를 든 의장대 사이사이로 병사들이 군모와 소총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나폴레옹! 나폴레옹! 나폴레옹!”
“제군들. 훌륭히 잘 싸워줬다. 이제 이 꼬마 부사관(Le Petit Coporal)이 제군들을 위대한 승리자로 만들어주겠다!”
““와아아아!!!””
차에서 내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을 연호하는 수천, 수만 명의 감미로운 세레나데를 음미하다가 번쩍 군모를 벗어 병사들을 향해 던져주었다.
“우아아아!!!”
“나보! 나보! 나보!”
이거지.
이 죽여주는 뽕맛. 질리고 싶어도 질릴 수가 없다.
한 차례 더 손을 들어 올려 화답해준 그는 야전 사령부 안으로 들어갔다.
“군모는 왜 또 던지셨습니까?”
“이런이런, 페탱.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나폴레옹을 봐왔으면서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나?”
“장군님 취향이 보통 까다로우셨다면 이런 말 안 했죠. 제가 새로 가져다드리면 또 어디가 맘에 안 드네, 미적 감각이 부족하네 하실 거 아닙니까.”
“당번 장교가 짜증 몇 번 내는 대가로 병사들 수천 명을 열광시킬 수 있으면 수지맞는 장사지.”
“와. 와아아. 못 해 먹겠네. 차라리 절 전역시키고 새로 당번 장교를 뽑으시면 안 됩니까?”
“오. 친애하는 페탱 소령. 어디 전역 요청해보게. 통령 앞에 가서 들이 눕는 한이 있어도 반려시켜줄 테니.”
나폴레옹이 자리에 앉자, 참모 장교가 사령부 막사 안에 있는 병력을 사열했다.
“전체- 차려!”
“워워. 격식 차릴 시간 없다. 브리핑만 간단하게 하지.”
“알겠습니다, 각하.”
잠시 얘기를 들은 나폴레옹은 말라가 시내를 그려놓은 지도를 톡톡 두드렸다.
“말라가 시내에 있는 무역청 거리를 확보하면 도시 전체로 향하는 길을 뚫어낼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항구 도시 특성상 무역청이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하기에, 최대 격전지가 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노리는 곳도, 적이 역량을 집중시킨 곳도 그곳입니다.”
“돼지 놈들이 바리케이드를 쌓고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적 방어선에 영국군 군복이 확인됐습니다. 군기(軍旗)로 봤을 땐 스코틀랜드 근위 연대 깃발입니다.”
“각하. 우리 스페인 국민들이 이 시간에도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한 뼘이라도 더 해방구를 확보해야 합니다.”
“흠.”
나폴레옹의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직 수에즈 운하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
지브롤터를 장악하면 지중해라는 이름을 가진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자기 마음대로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다.
결국 스페인 전역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반불동맹군을 잡아 죽이느냐가 아니라 지브롤터를 자유연합군이 따느냐 마느냐.
해안을 따라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알메리아를 함락시키고 지브롤터의 동쪽 입구나 다름없는 말라가를 공격하는 자유연합군의 입장에서, 제일 시급한 건 길게 늘어진 전선.
우선 빈약한 측면에 대한 군사적 옵션부터 고려한다.
“쉬셰.”
“예, 각하.”
“지브롤터를 공략하기 위해선 우리는 무조건 측면에서 적의 위협을 소거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저 요새지대에 대가릴 들이밀다가 옆구리를 찔리고 박살 날 테니까.”
“옳은 말씀이십니다.”
“코르도바(Córdoba)를 함락시킬 수 있겠나?”
“무슨 일이 있어도 코르도바 행정청에 삼색기를 걸겠습니다.”
“좋네. 4개 사단을 쥐어주지. 만일 12월까지 코르도바를 점령하지 못하면, 코르도바 동남쪽에 참호선을 파고 측면을 엄호만 해도 좋네.”
기동과 기만에 능한 쉬셰에게 넉넉한 병력을 밀어줬으니 측면에 대한 걱정은 끝.
이제 정면, 말라가 공방전을 생각할 차례.
반불 동맹군이 병신빙다리핫바지가 아닌 이상, 이미 무역청 앞엔 방어진지 구축이 끝나 있을 터.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돋운 적을 밀어내기 위해선 압도적인 화력을 퍼붓거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고속 기동하여 허를 찌르거나, 그도 아니면.
무수한 생목숨을 제물로 바치거나.
톡톡톡.
지도가 펼쳐진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한다.
시가지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전개하려면 포병대를 전열에 배치해야 한다.
위험하긴 하나 엄호만 잘 된다면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통과.
시가지에서 고속 기동을 한다? 적이 요새화한 이상 기병대를 투입하는 건 자살 행위. 이건 불가.
“어쩔 수 없나.”
야지에서 붙는다면 기동과 화력의 조합으로 적을 싸 먹어버릴 수 있으련만, 시가지는 참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전장이었다.
오로지 강 대 강. 힘을 겨루는 정직한 싸움터.
나폴레옹에게 별로 호감 가는 곳은 아니다.
사실. 굳이 부딪치지 않고 피한 뒤, 포위만 해서 저들이 굶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백기를 받아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말라가를 함락시켜야만 지브롤터로 가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정치적인 옵션.
– 우린 말이지. 병신 같은 옛 왕들처럼 존나 큰 몽둥이가 있다고 빡대가리마냥 제 하고 싶은 것만 해선 안 돼.
– 뭔 소리냐?
– 팍스 프란치아나를 실현하기 위해선 타국의 말을 기꺼이 경청해야 한다고. 우리가 손해를 약간 보더라도, 타국의 요청을 기꺼이 들어주는 그림.
자유롭고 정의로운 프랑스라는 이미지를 지켜야 앞으로 어떤 개잡놈의 새끼도 우릴 함부로 까 내리지 못한단 말이야.
반불동맹군이 제 점령지에서 민간인 재산을 뜯어 보급품을 해결하고 민간인들이 굶고 있는 지금.
과연 순수하게 ‘군사적인’ 판단에 의해 말라가를 방기한다면, 스페인 공화국이 프랑스를 보는 시선이 지금과 같이 뜨끈뜨끈 불타오르는 시선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러니 박아야 한다. 그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결론이다.
그리고 박을 거면, 시작부터 제대로 있는 힘껏 박는 게 낫다. 괜히 우유부단하게 행동했다간 사망자만 는다.
그는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며 말했다.
“척탄병 연대 중 멀쩡한 연대가 있나?”
“저희 93 ‘생도맹그’ 사단 소속 척탄병 연대가 남아있습니다.”
“투베르튀르 장군.”
머나먼 생도맹그에서 드넓은 대서양을 건너 도착한 검은 용사들.
구 왕정 시절 프랑스 정규군을 수많이 물 먹인 그들의 전투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괜찮겠소? 시가전에 익숙지 않을 텐데.”
생도맹그는 도시보다는 밀림, 공장보다는 거대한 농장이 익숙한 곳.
그곳 출신이 야지라면 몰라도 도시에서 잘 싸울 수 있을까?
그러나 투베르튀르 준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각하. 밀림에서의 전투도 어떻게 보면 시가전과 비슷합니다. 언제 적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고, 근접전을 상시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요.”
“···좋소. 포는 원하는 만큼 불출해 드리리다.”
“맡겨주십시오.”
“공화국 고참 근위대도 예비대로 준비하겠소. 공간이 벌어지면 바로 찔러넣을 수 있게.”
그는 말라가 지도를 군데군데 두드리며 계속 이어 말했다.
“나머지 부대는 무역청이 떨어지면 바로 총반격을 개시한다. 스페인 공화국군이 서쪽을 맡고, 우리 프랑스군이 북쪽과 동쪽으로 그물을 던지듯 들어가, 동맹군을 남쪽에 묶어버리고 외부와 단절시켜야 한다.”
“““예!”””
“내일 0400을 기해 전투를 시작한다. 우리가 무역청에 다다를 즈음엔 동이 틀 무렵, 놈들의 눈이 방해받을 거다. 이상 전달 끝.”
*
“나폴레옹이 왔다고?”
“정찰병들 말에 따르면 원수기가 프랑스군 막사에서 올라갔답니다.”
“혹시 블러핑 아닌가?”
“진짜 같아 보입니다. 포츠담에서 원수기가 사라진 지도 꽤 됐습니다.”
“그렇다면.”
지브롤터를 노리는군.
스페인 전역 영국군 사령관 존 무어(John Moore) 중장은 프랑스군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애초에 뻔했다. 지중해 제해권을 대영제국에게서 빼앗으려면 무조건 지브롤터를 함락시킬 수밖에.
“원수가 정말 왔다면 놈들의 기세가 머리끝까지 올랐겠군. 조만간 공세가 시작되겠어.”
“어쩌시겠습니까.”
“오늘 밤. 야습으로 개구리 놈들을 무역청 밖 800야드까지 밀어낸다. 그렇지 않으면 곧 있을 공세에 무역청 앞까지 밀려날지도 몰라.”
“병력이 부족합니다만.”
“부족한 병력은 스페인 왕국 병사로 채워. 주공인 우릴 보조해줄 정도면 충분해. 우린 날카로운 창끝 하나로 승부를 본다.”
무어 중장은 추가로 자리에 동석한 해군 연락 장교에게 말했다.
“왕립 해군에서 해병대 병력을 내어 줄 수는 없소?”
해군 장교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장군님. 저희도 지금 상황이 상당히 난처한지라…”
“천하의 왕립 해군이? 정말로?”
“정말입니다. ···이건 극비입니다만. 왕립 해군 지브롤터 함대는 기존 전력의 2/3 정도만 가동할 수 있습니다.”
“개구리 놈들의 잠수함이라는 게 그리도 대단한 무기요?”
“잠수함 자체는 그리 대단한 물건이 아닙니다. 다만 야습이라는 조건, 그리고 경계 실패라는 조건이 이루어질 때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경계 실패 때문에 우린 줫댔어요 우애앵’ 이라는 거 아닌가.
군인이 경계도 제대로 못 서다니. 하여간 콧대만 높은 물개 새끼들.
“밤마다 순찰조를 짜 초계함을 내보내 차단 기동을 실시하고, 추가로 항구 밖에 바지선을 건조해 경계부대를 배치했습니다. 저희 함대는 육상전에 투입할 병력이 없습니다.”
“허.”
무어 중장은 턱을 쓸어내렸다.
저 정도로 인원을 할애해 야간 경계에 투입한 걸 보면, 물개들이 보통 공포에 질린 게 아니구만.
기욤 드 툴롱, 역시 난 놈은 난 놈이다. 천하의 왕립 해군을 벌벌 떨게 만들다니.
“그렇다면 말라가 항에 군함을 배치해 포격 지원은 가능하오?”
“그건… 가능할 듯 싶습니다. 어느 정도로 지원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렇다면… 74문 3급 전열함 한 척과 보조함을 몇 척 보내드리겠습니다.”
“좋소.”
***
지중해 공해상.
말라가로부터 동남쪽, 12km
“육군 쪽은?”
“계획대로라면 현재 말라가를 공격 중일 겁니다.”
“오늘 안에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나중에 파리에서 만났을 때 보나파르트가 내게 총을 들이밀지도 몰라.”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일단 정찰선을 보냈으니 잠시 기다려보시지요.”
“그러지.”
루카스 제독은 뒷짐을 지며 말했다.
그 순간.
“우현 견시보고! 우현 견시보고! 아군 정찰선 확인! 깃발 전문입니다!”
“어서 해독해!”
“적-파-견-함-대-조-우. ···전열함 하나에 보조함 다섯 척! 말라가 항으로 간답니다!”
“지금부터 내가 조함한다.”
“함대장 조함!”
“함대장 조함! 총원 전투배치! 총원 전투배치!”
루카스 제독은 선실을 나와 키를 잡은 조타수 옆에 섰다.
“우현 전타, 45도.”
“우현 전타, 45도. 아이아이 써.”
“포술장. 포수들에게 전해. 초탄은 돛대를 노리지말고 선체를 노린다.”
“예? 기존 훈련했던 것과 다릅니다만.”
“저쪽이 말라가에 먼저 기항한 이상, 공격권을 잡은 건 우리야.
항구에선 어차피 기동이 제한되니 굳이 기동력을 깎기 위해 돛을 노릴 이유가 없다. 배때기에 몇 방 더 놔주는 게 더 나은 선택이야.”
“알겠습니다!”
“좋아. 이제··· 통신관?”
“예, 함대장님.”
“뒤쪽 함대가 모두 볼 수 있게 깃발을 올리지.”
“뭐라고 알리면 되겠습니까.”
“공화국 해군 전 장병에게 알린다. 지브롤터로 가는 문은 육군이 아니라 우리가 연다. 장 에티엔 루카스 제독 이상 전달 끝.”
말라가 함락
“Ready–! Fire!!!”
파파파팍!!
스코틀랜드 근위대가 바리케이드 뒤에서 2열로 순차사격을 퍼부을 때마다 전우가 땅에 쓰러진다.
“하나 포, 쏴!”
위험한 최전방까지 포가를 끌고 온 아군 포병들이 포탄을 퍼부을 때마다 적이 한 주먹씩 사라진다.
강 대 강의 순수한 힘 싸움.
고작 20m를 두고 적과 아군이 납탄을 주고받는 시가전.
양측 모두 자신들의 장기를 꺼내 들어 적과 맞선다.
“척탄병 연대, 약진 앞으로!”
“수류탄 까 넣어! 전진!”
“포 가져와! 저기! 해적 놈들하고 바리케이드를 통째로 날려버려!”
쾅!
가정집 문짝 따위에 모래주머니를 덧대 만든 조악한 바리케이드는 포탄을 얻어맞자 힘없이 무너졌고, 프랑스군은 총검을 꼬나쥐고 무너진 바리케이드 사이로 파도처럼 들이쳤다.
“와아아아!”
“길이 뚫렸다! 돌격! 돌격!”
“컥!”
프랑스 군악병들의 북소리와 피리 소리, 스코틀랜드 군악병들의 백파이프 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웠고.
백병전으로는 서로 뒤지지 않는 프랑스군 척탄병과 스코틀랜드 근위병이 서로를 향해 총탄과 총검을 교환하고, 수류탄이 곳곳에서 펑펑 터져나가며 파편을 온갖 곳에 쏟아냈다.
건물이란 건물의 벽엔 죄다 총알과 파편이 스치고 맞으며 흉터를 남겼고, 선원들로 숱하게 붐비던 거리엔 군데군데 보도블록이 깨져나가 흉한 포탄 구덩이가 생겨났다.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고 죽어가는 이들이 내지르는 신음 소리가 군악대가 연주하는 당당하고 발랄한 군가 소리와 섞여 기괴한 배경음을 만든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다.
왜 물러서지 않는가.
그것은 물러서지 않아야 할 이유를 알기에.
“우리가 지면 생도맹그는 다시 노예의 섬이 된다!”
“죽어도 자유인으로 죽자!”
“나를 따르라!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밟고 나아가라!”
생도맹그 대표 국민의원이자, 사단장인 투생 루베르튀르가 직접 검을 들고 선봉에 섰다.
누가 감히 물러서겠는가.
노예의 사슬에 묶여 살던 이들이 다른 이들의 발에 묶인 족쇄를 어떻게 보고 지나칠 수 있겠는가.
드넓은 대서양을 건너온 척탄병들은 총을 꼬나쥐고 다시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
말라가 시 외곽.
영국군 야전 사령부.
“이게 프랑스 놈들이 제식으로 채택한 소총인가?”
존 무어 중장은 참모부 탁자 위에 놓인 프랑스제 소총을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굉장히··· 인상적이군.”
첫째는 자랑스러운 영국군의 제식소총, 브라운 베스에 프랑스군의 샤를르빌을 더해 쓰까국밥처럼 생긴 외관.
둘째는 평범한 소총과 확연히 달라 보이는 격발부.
셋째는.
[이삭의 민족, 알자스-로렌 병기창. 1811년 제조]“···기욤 그자가 군수 사업도 하나?”
“예? 아,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무어는 총을 다시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일선 장병들이 평하길, 이 소총이 그렇게 대단하다던데. 사실인가?”
“8주간 훈련소를 수료하고 온 프랑스군 신병들이 숱한 사격훈련으로 만들어낸 우리 측 신병들보다 겨우 살짝 느린 속도로 사격하고 있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데.”
영국 육군의 힘은 압도적인 속도의 속사와 정확한 사격으로 이루어지는 보병의 소화기 화력에서 기원한다.
프랑스보다 인구수도 딸리고 예산은 해군이 제일 먼저 받아 가고, 남은 예산을 받는 육군 입장에선 병사들을 늘려 예산을 쓰기보단 최대한 정예화시켜 일당백으로 만든 것이다.
영국군 보병 한 사람이 1년에 사용하는 훈련탄 소모가 타국군 보병 다섯과 맞먹으니 그 굴리는 수준이 얼마인지는 잘 알 수 있으리라.
“그런데 프랑스 놈들이 신병기로 그 간극을 따라잡는다면… 별로 재미없군.”
“···사실 이 소총의 제작자가 영국인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뭐? 그거, 신빙성 있는 소문인가?”
“특허권자 이름이 영국식에, 전쟁부 군수처에서 이와 엇비슷한 작동 방식을 지닌 소총을 본 적 있는 장교가 있다고 합니다.”
“하.”
그게 사실이라면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다 못해 크리켓 방망이로 두들겨 패고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이웃에게 가져다 준 격 아닌가.
“잠수함이란 신병기에 신형 소총까지.”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물 밑에서 준비해놓은 거냐.
그리고 어디까지 내다본 거냐.
무어는 척추를 타고 서늘한 느낌이 오소소 올라오는 듯 했다.
“장군님. 전황이 시급합니다.”
“···미안하네. 내가 황금 같은 시간을 까먹었군. 전황이 어떤가.”
“프랑스 놈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근위대는 아직 건재하지만, 저 버러지 같은 스페인 왕국군은 시시각각 밀려나고 있습니다.”
“음.”
존 무어 중장은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턱을 쓸어내렸다.
“두 블록… 아니. 세 블록까지 내준다. 착실하게 전력을 온존하면서 지연전을 펼쳐.”
“그랬다간, 무역청이 프랑스군의 사정권에 들어갑니다만.”
“대신 우린 든든한 화력지원을 받을 수 있지. 시가전인 이상 놈들이 중포를 가져올 순 없어. 그리고 중포 없이는 전열함에게 제대로된 타격을 입힐 수 없지 않나.”
그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서 입항하는 왕립 해군의 전열함을 바라보았다.
*
총반격 개시 7시간째.
오후 1시.
쿠콰아아앙–!!
“엎드려!!”
“아아아악!!”
“앰뷸런스! 앰뷸런스 불러!”
프랑스군 93사단 척탄병 연대는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귀를 막아 공기를 찢어버리는 포성에서 고막을 보호했다.
“저, 저 미친 괴물새끼…”
“야! 포병대!”
“왜애애애!!”
“뭐 좀 해봐!! 저 새끼들 좀 날려보라고!! 저 빌어처먹을 새끼가 우리 애들을 다 죽이잖아!!”
“못해! 좆만한 130mm로 쏴 봤자 스크래치도 안 난다고!”
전열함.
바다의 요새.
전략 병기.
근대의 바다를 지배한 상징적인 무기.
저 괴물이 한 번 불을 뿜을 때마다 37발의 대포알을 프랑스군의 머리 위에 떨어졌고 불운한 전우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300mm에 가까운 전열함의 선체 두께를 순수한 물리력으로 부수기 위해서는 공성용 박격포나 곡사포를 가져와 통째로 퍼부어야 하나, 좁아터진데다가 시시각각 근접전이 벌어지는 시가지에 공성포를 가져올 순 없는 노릇.
용맹하게 돌격해 영국군의 방어선을 뚫어낸 이들은 손가락만 깨물며 저주할 뿐이었다.
그때.
“어?”
“괴, 괴물이 움직인다!”
“그, 그런데 우리 쪽으로 오는 게 아닌데?”
하나둘 장병들은 엄폐물 위로 고개를 슬금슬금 들어 괴수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바라보았다.
“저 새끼, 우리 쪽이 아니라 바다 쪽으로 가고 있어.”
“뭐야, 뭔데.”
“망원경! 망원경 가져와!”
병사들은 죽은 장교나 포병에게서 망원경을 빌려 저 멀리 괴물이 사라지는 쪽, 수평선을 눈에 담았다.
“양현 전타. 우리 불쌍한 땅개들을 괴롭히는 저 개같은 새끼를 반으로 토막 낸다.”
“우! 우! 우! 우!”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프랑스 지중해 함대. 말라가 입항.
망원경 너머 돛대 위에서 삼색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
“견시보고! 견시보고! 후위에 적함 출현!”
“프랑스 해군이라고?!”
“함장님! 적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프랑스군 지중해 함대는 전열함 8척에 호위함 20척, 보조함 15척으로 이루어진 대함대.
평소라면 영국 해군 정찰선이 발견하지 못할 리 없는 규모지만,
하룻밤 만에 잠수함에 의해서 건선거에 정박해놨던 배 중 3분지 1을 잃은 영국 해군은 정찰자산을 그대로 지브롤터 인근의 초계에 돌려놓은 상태였다.
즉, 대양에선 비교적 과거보다 정찰자산이 부족해졌다는 사실.
루카스 제독은 그걸 정확히 찌르고 들어왔다.
“오늘 저 전열함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격침한다.”
“““예!”””
첩보 상 지브롤터에 정박 중인 왕립 해군 전열함은 7척.
그중 한 척은 잠수함에 의해 중파되어 건선거에 들어가 수리 중이니, 실질적으로 적은 6척.
지금 저 새낄 잡아버리면 8대5의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
“기욤 텔이 선행한다. 우리 르두터블은 두 번째로 놈들과 들이받는다.”
1급 전열함 기욤 텔이 그 늠름한 모습으로 선두에 섰다.
영국 전열함 또한 함수를 돌려 항구에서 대양 쪽으로 변침했다.
“그런데 방향이 우리 쪽이 아니군.”
“놈이 도망치려고 합니다.”
“우린 여덟이고 저놈은 하나니까 당연하지.”
“좌현 견시보고! 좌현 견시보고! 좌현 15도에서 적 호위함 두 척 접근 중! 거리 800!”
“호위함 몇 척 줄 테니 먹고 떨어져라 이건가.”
그렇게는 안 되지.
루카스 제독은 통신관을 불러 깃발 전문을 지시했다.
“3번 함. 좌현 030으로 변침 후 차단기동 실시하라.”
– 알겠습니다, 제독님.
“4번 함은 우현 035로 변침 해 차단기동 실시. 학의 날개처럼 놈을 감싸서 퇴로를 막는다.”
– 우현 035. 차단기동. 확인했습니다.
그의 지시 아래, 일자 단종진으로 이동하던 대함대가 우산이 펴지듯 갈라졌다.
무조건.
무조건 잡아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 프랑스는 영국의 생산력을 다 따라잡긴 했지만, 선박 건조에선 명백히 열세다.
전쟁 시작 후, 영국은 그 곱창난 경제 속에서도 신규 예산을 편성해 대량 발주를 넣었다. 역시 배박이들 중 넘버원이다.
무려 74문 3급 전열함 40척.
물론 프랑스도 선박 건조에 열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와 노하우는 그리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지금.
영국 런던데리와 포츠머스에서 적함이 본격적으로 건조되기 전에 놈들의 지중해 주력함대를 전멸시키고 대서양 함대와 일전을 치러야 한다.
“제독님. 기욤 텔이 적과 접촉합니다.”
“보고 있네.”
1급 전열함 기욤 텔은 그 육중한 몸을 들썩거리며 적함과 접촉.
“우현 전포 발사!”
“발사!”
바다가 흔들리며 40발이 넘는 포탄이 영국군 전열함의 선체를 뚫고 지나갔다.
그러나 바다의 요새는 한 번의 일제사격으로 수라장이 됐을지언정 부서질 만큼 약하지 않았다.
기욤 텔은 유효타를 먹여줬으나 잡지는 못했다.
영국 전열함은 신음을 토해내며 기욤 텔을 스쳐 지나갔고, 어떻게 해서든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변침하며 안간힘을 썼다.
공화국 해군은 놈이 가려는 곳마다 막아섰지만, 왕립 해군은 어떻게 해서든지 전열함을 탈출시키기 위해 보조함들이 제 몸을 산화시키듯 던져댔다.
···적이지만 대단하다.
그러나 왕립 해군 수병들과 장교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놈이 도망가는군. 역시 영국 놈들이야. 어떻게 저런 식으로 조타 할 수 있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쫓아야지. 기관에 전원 넣고 작동시켜.”
“알겠습니다!”
– 푸쉬이이이익!!
기관실에 있는 증기엔진에 석탄을 털어 넣자, 거대한 기계가 증기를 내뿜으며 물을 부글부글 끓이기 시작했다.
양옆에 있는 거대한 물레방아가 돌아가며 세계 최초로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에 의해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 미친.”
어이가 없다는 듯 조소하는 영국군 함장의 뒤로, 르두터블이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달라붙었다.
“개구리 새끼들이… 괴물을 만들었군.”
신기에 달한 항해술이 있다 해도, 저 자연을 거스르는 괴물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세상이 순간 환해졌고.
영국군 함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방금까지 아군을 갈아 마셨던 괴물이 저 대양의 어두컴컴한 밑으로 가라앉았다.
“괴물이 뒈졌다!!”
“죽은 전우들의 복수를 하자!”
“오늘 말라가를 떨어뜨린다!!!”
“공화국 만세!”
“전원 착거어어엄!! 돌격 앞으로!!”
늦은 밤.
말라가는 함락됐고, 지브롤터로 가는 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