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58)
대회전 (9)
– 뽀각.
측면에 엉성하게 놓인 러시아군 1개 사단 팻말이 순식간에 뽑혀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이로써,
프랑스군 30만 6240명.
동맹군 31만 2230명.
양측 도합 60만 대군이 서로를 바라보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긴 일렬을 이루었다.
양측 중앙 간 거리는 중포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2km.
프랑스군의 좌익, 러시아군의 우익에는 작은 마을 몇 개와 몇 개의 감제고지가.
프랑스군의 우익, 러시아군의 좌익에는 얕은 여울과 기동하기 좋은 평야, 그리고 작은 숲이.
이렇게 전장이 완전히 전개됐다.
“첫수는 꽤 아팠소. 보나파르트.”
“이런. 만난 기념으로 인사나 잠깐 나눴을 뿐인데 벌써 그렇게 곡소리를 내면 쓰나.”
“하여간 프랑스인들은 첫 만남부터 화산처럼 타오르는군. 그래서인지 사랑이든 뭐든 금방 식어버리지.
내 이번에 그대에게 러시아인의 우직함을 보여주겠소. 잘 배워서 애인에게 써먹으시오.”
“미안하지만, 난 이미 임자가 있어서.”
나폴레옹은 어깨를 으쓱하며 전선 우익에 20군단 팻말을 밀어 넣었다.
“20군단. 그 반푼이 부대로 대러시아 제국군을 감당하려고?”
“말이 많군. 쿠투조프.”
“말이 적은 것보단 수다로 적에게 힌트라도 하나 얻어내는 게 낫지. 아닌가?”
쿠투조프는 웃으며 말했다.
애꾸눈만 아니었으면 꼬마 아이에게 사탕 하나 노나주는 자상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졌으리라.
“경보병 사단을 하나 배치하지.”
푸근한 노인은 단단한 군인의 손으로 프랑스군 좌익을 향해 팻말을 쭉 밀어 넣었다.
“정찰은 경기병으로 이미 충분히 하지 않았나?”
“정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지.”
“과연 이번에 얻을 정보에 그만한 값이 있을지 모르겠군.”
프랑스군 좌익에 위치한 경포 포대에서 산탄을 쏘아 올리자, 쿠투조프가 밀어 넣은 경보병 사단 중 최전방에 있던 1개 대대가, 수백 명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걸작이야. 걸작. 화망이 아주 대단하군 그래!”
“더 시험하고 싶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만, 아까 병사들 목숨이 어쩌고저쩌고하지 않았소?”
“수만을 위해 수백 정도야 던질 수 있는 팻감 아닌가.”
보나파르트는 뚱한 얼굴로 쿠투조프를 쳐다보았고, 이번엔 쿠투조프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러시아의 군인이 보기에 프랑스군은 너무 사람 목숨에 민감하게 굴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닌가. 프랑스 사관학교에선 수학을 안 가르치는 건가?
“2개 보병연대를 중앙 고지에 투입하지.”
다시 한번 쿠투조프가 팻말 두 개를 밀어 넣었고, 나폴레옹은 중앙 고지에 배치해놨던 기병 중대를 빼냈다.
이번엔 쿠투조프가 별다른 피해 없이 중앙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을 탈환해내는 데 성공했다.
“흠, 막상 올라보니 언덕이지만 그리 높진 않군.”
그래도 포를 놓고 좌, 우익을 찔러 들어오는 적 기병대에게 포격을 때려줄 순 있으리라.
“흠.”
“왜. 주고 나니 아까운가?”
“뭐, 관점의 차이 아니겠소?”
나폴레옹은 미간을 찡그리며 턱을 쓸어내렸고, 그걸 본 쿠투조프는 추가로 중앙에서 포병 연대를 차출해 2개 보병 연대가 방어하는 중앙에 꽂아 넣었다.
‘이로써 20군단의 모가지를 칠 사전 준비는 끝났다.’
단단할 게 뻔한 프랑스군 좌익에 일부러 경보병을 밀어 넣었다.
왜? 시야를 끌기 위해.
한 번 불벼락을 맞고 ‘어맛 뜨거랏!’하며 사정거리 바깥에서 알짱거리는 러시아 경보병 사단.
사실 그건 아무런 전술적 가치가 없는 행동에 불과하다.
그러나 프랑스 좌익에 위치한 경포 포대와 중앙에 위치한 중포 포대는 꾸준히 그 병력을 감시하기 위해 포문을 왼쪽으로 돌려놓을 수밖에 없다.
사람인 이상, 자기 목숨을 가볍게나 한 번 위협한 상대에게 눈이 저절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게 프랑스군의 장기인 포병 화력 중 3분지 2가 좌측에 눈이 홀린 지금.
‘숨긴 병력을 우익으로 쏟아붓는다!’
쿠투조프가 팻말을 한 움큼 주워 전선에 밀어 넣었다.
“바그라티온 대공 전하. 놈들이 중포를 방열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밀어내야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사령관.”
바그라티온 대공이 지휘하는 제 2야전군이 발을 구르며 프랑스군 우익 앞 평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 우라아아아–!!!
– 생, 생시르 장군님! 이반 놈들이 몰려옵니다!
20군단이라고 써진 말판 위, 생시르는 굳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생시르, 자네가 해내느냐에 우리 군 전체의 운명이 달려있네.”
“잘 알고 있습니다, 각하.”
생시르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린 후 빠르게 군단장 명의로 명령문을 휘갈겼다.
20군단 소속 코르시카 저격병 연대가 작은 숲에 숨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달라붙은 뒤 강선이 파진 >이삭>제 라이플을 들고 여울을 건너는 적 선봉에 화력을 꽂아 넣었다.
진격하던 수많은 러시아군 보병이 단말마와 함께 이역만리 땅과 개울에 고개를 처박고 쓰러졌다.
그러나 쓰러진 자리는 다른 이로 바로 채워진다. 그것이 러시아군이니까.
“좀 더 와라. 좀 더.”
20군단 포병 준장, 생틸레르는 망원경 너머에 넘실거리는 러시아군의 파도 – 마치 녹색 바다가 밀려오는 듯 했다 – 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요새화는 원래 비효율적인 일이다.
적에게 하여금 많은 피해를 강요하긴 하지만 우회해버리면 말짱 도루묵인데다가, 부대 전체를 수동적이고 뻣뻣하게 만든다.
기껏 요새를 만들어놨는데, 함부로 자리를 비웠다가 적이 차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적이 어딜 때릴지 예측한다면. 그리고 그곳으로 적이 걸어 들어온다면.
“거리 40에서 일제 사격 준비. 탄종은 포도탄으로.”
프랑스군의 우익은 작정하고 적에게 어떻게 하면 찰지게 맞을까 고민한 결과, 우익에 위치한 작은 숲을 킬링 필드로 개조했다.
왜?
총사령관이 그럴 거라고 했으니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예측하고 명령했으니 그 명령에 따른다.
그 끝에 죽음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군인으로서 충실하게 명령을 따를 뿐.
나무란 나무 뒤에는 보병이, 덤불이란 덤불에는 경포가 그 모습을 감추고 오매불망 불벼락을 쏘아낼 준비를 끝낸 지 오래.
엽병 연대와 저격병 연대가 착실하게 줄여놓은 러시아군 대열에 숨겨놓은 경포가 근거리에서 포도탄을 쏘아내자, 순식간에 적이 죽은 표트르 대제를 만나러 먼 여행을 떠났다.
아마도 오늘 뱃사공 카론의 팔엔 알이 배기리라.
착실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공격을 분쇄한다.
“음.”
“왜, 뭐가 잘 안되나?”
나폴레옹은 편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린 쿠투조프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단단하군.”
러시아인이 다시 팻말을 움직였다.
그러자 중앙 고지에 있는 러시아군 포대가 포문을 움직여 20군단에게 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번엔 프랑스군이 얻어맞을 차례.
작은 숲에 중포가 떨어지자, 땅이 통째로 뒤엎어지고 포탄이 직격한 나무가 작은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동시에 야전군을 다시 한번 밀어 넣는다.
“프랑스 놈들이 무력화됐다! 돌격!”
“““차르 폐하 만세! 우라—!”””
“총검을 들어라! 20군단 모두 백병전을 준비해라!”
“““민중의 공화국이여 영원하라!”””
난전.
박살 나버린, 더 이상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전장에서 양 군이 뒤섞였다.
20군단은 이제 하나의 선이자 그물이 되어, 러시아 2야전군의 공격을 튕겨내고 흡수했다.
기어코 살아남은 포병이 영거리에서 포도탄을 날려 소대 하나를 통째로 삭제해버리고.
죽은 척 누워있던 보병이 적 뒤통수에 단검을 박아 넣고.
근거리에서 일제사를 주고받으며 순식간에 양쪽 부대가 반으로, 반의반으로 줄어든다.
뚫어라.
뚫리지 않겠다.
길을 열고 제국을 구한다.
길을 막고 공화국을 지킨다.
망치가 되어 전선을 두드린다.
모루가 되어 전선을 버텨낸다.
“차르 근위 기병대를 투입해. 대오가 흐트러진 20군단 측면을 찌른다.”
“공화국 근위 기병대 준비하지. 아슬아슬해진 20군단 측면을 엄호한다.”
양측 중기병대가 출발해 맞붙는다.
검은 술을 투구에 달고 붉은 계급장을 어깨에 단 차르 근위 기병대.
용맹함을 상징하는 곰 가죽을 어깨에 짧은 망토처럼 두르고 곰 가죽 군모를 쓴 샤쇠르 공화국 근위 기병대.
“상트페테르부르크 숙녀들 치맛자락에 눈물 자국을 만들어주자!”
“차르 폐하 만세!”
양측 중기병대가 보병들을 엄호하기 위해 측면에서 맞붙었다.
베고, 찌르고, 쏜다.
어느 용맹한 프랑스군 대위는 검을 들고 10여 명의 중대원과 함께 차르 근위대 대열을 횡으로 뚫어버렸다.
어느 러시아 제국군 근위 중위는 기병도에 7번 베이고 넓적다리에도 총탄이 박혔지만 오른손 힘줄이 프랑스군이 휘두른 기병도에 끊어질 때까지 검을 휘둘렀다.
수많은 삶과 생명이 뒤섞여 자신의 삶과 생명을 연료로 살의를 불태운다.
“달만!”
“예! 쿠아녜 중령님!”
“3개 창기병 중대를 이끌고 충격을 주게! 놈들의 정면이 생각보다 약해!”
“알겠습니다! 공화국의 자랑스런 아들들이여! 날 따르라!”
그리고 그 속에서 영웅이 태어나고,
“창을 들어라!”
“개새끼들! 다 꼬챙이로 꽂아버려!”
영웅이 진다.
“컥!”
“코스타네츠키 대령님!”
제국의 영웅이 공화국의 영웅이 찌른 기병창에 가슴이 꿰뚫린다.
“차르 근위대가 밀린다. 코사크를 보내!”
“드루에! 지금 당장 1개 보병사단을 데리고 출발해! 우리 기병의 측면을 엄호해라.”
코사크 기병대의 기병 돌격에 프랑스군 근위 부사관 몇몇이 목숨을 잃었다.
드루에 준장의 프랑스군 증원 사단이 방진을 짜고 노출된 코사크의 측면에 총탄을 듬뿍 먹여줬다.
돌파가 성공하느냐,
성공하지 못하느냐.
이 전투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양쪽 모두 도박장에 판돈을 아낌없이 붓는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
이곳은 나폴레옹이 선택한 도박장이다.
“······.”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낸 미하일 쿠투조프는 다시 손을 팻말로 가져갔다.
‘돌겠구만.’
아무리 심심하면 오스만을 두들겨 패며 경험을 쌓았다지만 결국엔 징집한 농노로 이루어진 제국군.
지난 수십 년 동안 일류열강과 수 차례의 혈전을 치르며 만든 대육군.
병력의 질이 너무 다르다.
저 비실비실해 보이던 우익이 끝없이 게걸스럽게 러시아의 아들들을 포식하지 않는가.
밀기만 하면 다 복구할 수 있다.
하지만 빼면 매몰 비용조차 회수하지 못할 터.
‘위험하군. 더 많은 병력을 투자했다가 못 밀면, 퇴각하는 수밖에 없다.’
저 숲에 만 단위가 넘는 병사의 목숨을 깔았으면 개평이라도 얻어가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회군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번 작전은 빠그러지고, 웰즐리가 이끄는 2파는 기껏해야 프라하 인근에서 깔짝대며 프랑스군을 불러내는 그 이상 역할을 할 수 없다.
‘···어떻게 좋은 수가 없나?’
쿠투조프는 중앙과 좌익으로 눈을 돌렸다.
‘프랑스군도 우익에 증원을 보냈다. 그렇다면 그만큼 중앙과 좌익이 얇아졌을 텐데…
아니. 혹시나 그걸 노린 건가? 단단한 중앙이나 좌익에 꼬라박아주길 원하는 건가?’
생각이 많아진다.
“거, 전쟁하던 양반 어디 갔나?”
쿠투조프는 전장을 내려보던 고개를 들었다.
거만한 코르시카 놈.
“할 거 다 한 거요, 쿠투조프?”
“···그렇다면?”
“그럼 이제 맞으셔야지.”
나폴레옹은 코담배를 한 움큼 집어 피우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캉브론, 페탱.”
““예.””
“중앙 언덕에 있는 저 포대 걷어내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가?”
“20분만 주십시오.”
“아주 좋군. 15분 주겠다.”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말판을 움직였다.
“세나르몽(Alexandre-Antoine Hureau de Sénarmont).”
“예, 각하.”
“자네한텐 25분 주지. 저쪽 포대를 침묵시켜.”
“알겠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포병 소장, 세나르몽은 자신의 포병대를 불러 모았다.
“지금 즉시 포대에서 경포를 분리한다! 중포는 놔두고 경포만 말에 결속시켜.”
프랑스군의 중앙에서 보병대, 그리고 말에 포가를 결속시킨 포병대가 달려 나왔다.
“중포는 지금부터 적 포대에 대포병 사격 실시. 아군에게 단 한 발도 못 쏘게 만들어.”
웬만한 성곽에도 구멍을 낼 수 있을 법한 포탄이 러시아군 중앙 감제 고지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군단을 넘어서는 포병 전력, 그것도 중포가 동원되자 고지에 전개된 1개 포병 연대는 억-소리와 함께 으깨졌다.
“중포 전력을 그렇게 쉽게 돌려도 되겠나? 자네 우익은?”
“당신 걱정이나 하시오. 쿠투조프.”
중앙이 얻어맞는 만큼 나폴레옹이 우익에서 포문을 거두니 당연히 20군단을 공격하는 러시아군은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이지선다.
적 포문이 중앙을 향한 지금, 우익을 더 거세게 압박할 것인가?
아니면 적 포문을 따라 중앙을 엄호해줄 것인가?
‘편제상 포를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군과 일대일로 포격전을 벌이는 건 별로 재미없다. 그렇다면.’
쿠투조프는 아껴놨던 예비대를 우익을 향해 추가로 동원했다.
고지 하나 내주고 상대 우익을 통째로 찢어 먹으면 나쁘지 않은 딜.
그 순간. 나폴레옹이 싱긋 웃으며 팻감을 들었다.
중앙인가? 우익인가?
“좌익에 공화국 근위대를 투입하지.”
“그렇다면 나도-”
쿠투조프는 예비대를 추가로 동원하고자 팻말을 집어 들었다.
아니, 들려고 했다.
어느 순간.
그의 손에도, 그의 주머니에도, 그 어디에도.
더 이상 러시아 제국군의 예비대는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건 폐품인 다름없는 스웨덴-덴마크 군단.
어쩔 수 없다. 투입한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전략 예비대, 공화국 근위 보병대 1개 사단은 스웨덴-덴마크 군단의 7개 사단을 만나자마자 통째로 으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