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65)
대회전 (16)
겨우 3천 남짓이 살던 작은 마을을 낀 채, 양측 도합 60만의 대군이 모여 치르는 대회전(大會戰).
영국군이 든든하게 삼았던 엄폐물들은 숱한 포화에 쓸려나갔고.
프랑스군이 든든하게 삼았던 포병들은 양군 최전선이 얽히며 침묵했다.
혹시라도 아군이 맞는다면 그야말로 대참사 아닌가.
서로 팔 한 짝씩을 묶었으니 이제 남은 건 순수한 힘 대 힘. 강 대 강의 정석적인 싸움뿐.
새벽에 울려 퍼진 총성은 해가 떨어진 이후로도 작은 마을을 가득 메우며 양군은 달빛에 의지해 육박전을 벌였다.
“21사단은 지금부터 각 연대별로 찢어서 전 전선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넣는다.”
“콜드스트림 연대가 적 기병대를 잘 막아줬다. 이번 프랑스군의 반격을 잘 격퇴하기만 한다면 이 전역은 끝이야!”
나폴레옹과 아서 웰즐리.
각각 일신의 재주로 황제가 된 이와 후작이 된 자.
이기는 쪽이 패자의 모든 걸 취하는 이 합법적인 도박에서 양군 사령관은 담배와 커피를 물처럼 들이켰다.
“결국 중요한 건 저 빌어먹을 마을이지, 보나파르트?”
“그렇지.”
나폴레옹의 송곳, 폴란드 기병대가 뚫은 곳으로 보병이 파도처럼 쏟아진다.
날이 어두워진 이상, 영국군의 장기인 원거리 화력전은 불가.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장기인 속사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
날이 어둡던 밝던 어차피 프랑스군이 올 곳과 방향은 정해져 있다.
– 타타탕!!
레드코트의 응집된 소총 화력이 불운한 프랑스군의 몸을 꿰뚫었다.
“그렇다고 낮처럼 명중률이 높은 것도 아니잖나.”
나폴레옹은 무표정으로 계속 보병대를 전선으로 밀고 밀고 또 밀어 넣었다.
어쩔 수 없다. 해가 사라진 지금, 얼마나 진격했느냐에 따라 내일 얼마나 많은 목숨을 더 바쳐야 할지가 결정된다.
아끼면 결과적으로 더 많이 죽는다.
“솔직히. 이제 우리 손은 벗어난 거 같은데. 안 그런가 웰즐리?”
“······.”
지휘관들이 판을 깔았으니, 남은 건 병사 개개인에게 달렸을 뿐.
두 지휘관은 말없이 지도를 응시했다.
***
– 까앙!
“이런 썅!”
“당신 맞았어?! 맞았냐고!”
“스, 스쳤어. 도탄이야. 난 괜찮아!”
“안 뒈졌으면 내 손 잡아! 거긴 적 사로라고!”
수아송은 총알 때문에 흉갑이 움푹 파인 타부대 기병의 손을 잡고 훅 뒤로 당겼다.
– 파파팍!!
기병대원이 움직이자마자, 그가 있던 자리에 총알이 꽂히며 땅이 튀어 올랐다.
“씨, 씨발.”
“쉿. 영국 놈들 저격병이 소리로 우리 위치를 추측해서 쏘고 있어. ···그런데 당신 기병 아니야? 왜 여기 있어?”
“난 용기병이야. 하마해서 싸울 수도 있는 기병. 멍청한 기마돌격 밖에 못 하는 중기병 새끼들이랑은 다르지.”
“용기병이면 그루시 장군네 부대?”
“그래.”
“니미. 왜 용기병이 중년 근위대랑 마주치는 거야? 전투지경선이 얼마나 섞였는지도 모르겠구만.”
고참 근위대가 투입되어 적 최전선을 무너뜨린 뒤로, 중년 근위대는 병력을 추슬러 고참 근위대의 측면을 봐주는 역할로 다시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자 부대는 마을에 돌입한 어느 순간부터 각개전투를 하다시피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수아송은 퉷-하고 침을 뱉은 뒤 소총을 들고 일어섰다.
반쯤 허물어진 담벼락 위로 슬그머니 눈까지만 머리를 올리고 살폈지만, 해적 놈들과 아측 모두 등화관제를 실시해 도통 앞이 보이질 않는다.
“뭐 보이는 게 없구만.”
“···아저씨?”
-철컥.
수아송은 옆에서 들린 소리에 반사적으로 총검을 들이댔지만, 이내 힘없이 소총을 내리며 김새듯 웃었다.
“너 설마 싸가지냐?”
“세상에 수아송 아저씨? 근위대로 끌려갔다길래 죽었을 줄 알았는데. 용케 아직 살아있네요.”
“형씨. 저 친군 뭐요?”
“내가 근위대 오기 전에 있었던 부대 친구인데…”
“···그래? 이봐 어린 친구. 소속이 어디야?”
“6사단임다.”
“미치겠군. 6사단, 용기병, 공화국 근위대까지 다 섞여 있는 건가? 무슨 브레멘 음악대야?”
“방금 옆 참호에선 폴란드인도 있던데, 대강 총사령관 휘하에 있는 부대는 다 섞인 거 같던데요.”
폴란드 기병대, 4군단, 11군단, 원수 직할 근위대에 1기병여단까지. 잡탕도 이런 잡탕이 있나.
“대체 이 조그마한 마을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군.”
“왜긴. 이제 안 보이긴 하지만 저 어드메에 있는 성탑을 따면 웰즐린지 뭔지 하는 그 영국 놈 대가리도 딸 수 있다잖아.”
“씻팔. 그 새끼 대가릴 따면 뭐해? 이젠 똥땅 러시아로 우릴 끌고 가겠지.”
“글쎄 전 좀 반댄데요. 원수님이 병신도 아니고 그 쓰레기 땅에 우릴 밀어 넣겠어요?”
수아송은 코웃음 쳤다.
“난 높으신 분들 안 믿어.”
“···그러면 기욤은요.”
“기욤?”
“예. 통령이요. 통령이 우릴 러시아 땅에 밀어 넣겠어요?”
“모르지. 그건.”
“진짜로?”
“···반절. 그 양반은 반절 정돈 믿을 수 있지.”
수아송은 잠시 침묵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말이야. 솔직히 아직도 긴가민가해.”
“뭐가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공화국의 안녕과 국민의 안전, 그리고 헌법의 수호-”
공화국의 안녕? 국민의 안전? 헌법의 수호?
학교 나온 지식인이라면 몰라도, 하루 벌어 한 끼 간신히 먹고 살았던 신문팔이 소년에겐 너무나도 와닿지 않는 어려운 이야기.
1년 넘게 전장을 누비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장교들이나 높으신 양반들이 말하는 거창한 대의 같은 건 겉핥기로만 조금 이해 갈 뿐.
까놓고 말해서. 그냥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일 뿐이지 어디 샌님들처럼 고상한 목적을 위해 순교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수아송은 보급 담배를 입에 물기 위해 손을 올렸다가, 잠시 멈칫했다.
축축한 궐련에서 쇠 맛이 났다.
“······.”
언제부터일까. 자신의 손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흠뻑 묻어 있었다.
축축한 궐련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담뱃갑에서 새로 장초를 뽑아 질겅질겅 씹었다.
···죽기 싫다. 여태까지 아득바득 악으로 깡으로 살아왔기에 이 지옥에서도 살아남고 싶다.
다시 돌아가서, 목 좋은 곳에 세워놓은 가게 문을 열고 여느 때처럼 한 시간에 두어 명 오는 손님을 시큰둥하게 맞이하며 살고 싶다.
···탈영할까?
밤이 이렇게 깊고, 간간이 눈발도 휘날리며 부대와 부대가 얽히고설켜서 제대로 인원 파악조차 불가능한 지금.
살포시 도망가면 모두들 수아송이란 이름의 부사관은 격전 중 전사했다고 믿을 테고, 신분이야 패물만 챙겨 툴루즈, 생도맹그 같은 먼 곳으로 도망가면 금세 위장할 수 있다.
길거리 신문팔이 소년에서 어엿한 잡화점 사장까지 온 자신이, 제 몸 하나 건사 못하겠는가?
“······.”
수아송은 질겅이던 장초에 손을 대어 으직-하고 부러뜨렸다.
“벼엉신새끼 같으니.”
“예? 누구요? 저요?”
“아니. 너 말고.”
부러진 장초를 땅에 버리고 군홧발로 콱콱 밟았다.
다시는 입에 넣을 생각조차 못하도록.
“싸가지.”
“예?”
“내가 애새끼 시절. 혁명이 일어났다.”
날 때부터 혼자였던,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가 있었다.
이름이 없어 자신이 살던 수아송 시(市)를 따와 스스로 이름을 만든 고아는, 말을 뗀 이후부터 신문을 팔기 시작했다.
시장.
변호사 사무실.
뒷골목.
길가는 행인.
때론 더러운 새끼가 어딜 기어들어오냐며 구둣발에 맞기도 했고, 하루 종일 뼈 빠지게 팔아 번 푼돈을 불량배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세상은 너무 매정했고, 너무 냉담했고, 너무 무서운 곳이었다.
고아는 세상이 그런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몇몇 이들이 이건 아니지 않느냐, 라며 세상에 중지를 치켜들었다.
세상은 고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말에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그들은 ‘아 그러시구나?’라고 말하며 세상을 통째로 깡그리 태워버리곤 새로운 세상을 짜 맞춰버렸다.
그중 제일 돋보이던 이.
‘참 슬픈 세상 아닙니까?’
자신보다 수십 살 더 먹은 자들을 상대로 결코 물러서지 않고 대가릴 들이밀던 이.
‘비둘기세? 아잇 씻팔 지금 나랑 장난해?!’
그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평범한 사업가라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뭐가 달라졌냐고, 시니컬하게 받아치는 자들도 숱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때마다 그런 자들의 입을 틀어막을 변화를 일으켰다.
‘아아… 이건 간편식사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영양간식, 우리 남편 술안주로 딱이지…’
‘지금부터 보도지침 같은 건 없습니다. 뭐? 그랬다가 외설스러운 잡지가 퍼지면 어떻게 하냐고? ···아니 뭐어 그런 잡지가 있을 수도 있지 왜 그래요? 혹시 가톨릭 원리주의자입니까?’
‘경제 전반에 대해 대대적인 개혁 및 수정을 가할 겁니다. 프랑스 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신용 있는 은행을 묶어 중앙은행을 발족합니다.’
‘이, 이, 씨발 경알못 새끼들. 토지 몰수! 20년 무이자 만기로 유상 분배! 뭐? 싫다고? 그러면 내 배를 째시든가! 그럴 거 아니면 통과시키쇼!’
‘이야 이 최고가격제라는 게 참 좆같은 거거든요?’
마치 실력 좋은 의사가 중환자를 살려내듯.
막힌 혈관이 뚫리고 장기들이 제 역할을 다하며 사람이 살아나듯.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변해갔다.
‘전 사업가입니다. 사업가로서 지켜야 할 덕목으로는 여러 가지를 뽑을 수 있겠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두 가지라 할 수 있겠군요.
제 1원칙, 모든 거래에 합당한 대가를 주며 신뢰를 얻을 것.
제 2원칙, 어떠한 일이 있어도 1원칙을 준수할 것.’
어느덧, 고아는 성인이 되었다.
신문이나 날품을 팔아먹던 고아는 돈을 악착같이 모아 자그마한 가게를 열었고
어느덧, 사업가가 되었다.
항상 신문 너머에서, 사람들이 바다처럼 모인 광장 끝에서 희끄무레한 형태로만 보던 그처럼 사업가가 되었다.
“···제 1원칙. 모든 거래에 합당한 대가를 주며 신뢰를 얻을 것.”
사업가와 사업가는 거래를 했다.
사업가는 다른 사업가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삶을 거래 대상으로 제시했다.
다른 사업가는 사업가에게 대가를 주려다가, 중간에 참으로 나쁜 생각을 하고 말았다.
만일, 다른 사업가가 물건을 들고 도망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래에 있을 어느 고아에겐, 지금의 고아와 달리 꿈도 희망도, 삶도 없어지겠지.
신뢰란 한 번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니까.
“제 2원칙.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제 1원칙을 준수할 것.”
수아송은 총알을 소총에 다시 먹이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싸가지. 그리고 용기병 형씨.”
“왜 그러쇼.”
“마지막으로 봤을 땐 그 빌어먹을 성탑이 우리 쪽에서 200보가량 앞이었는데, 200보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을까?”
“뭘 하겠다는 거요?”
“뭐긴. 수류탄 있는 대로 줘봐. 내가 가서 까 넣을라니까.”
“아저씨 혹시 미쳤어?”
“당신 미쳤소?”
모두가 경악했지만 수아송은 요지부동이었다.
“나 뒈지는 거 보기 싫으면 옆 참호 아저씨들하고 같이 영국 놈들 시선이나 끌어줘.”
“저, 저, 저!!”
-탁!
수아송은 순식간에 제 앞에 있는 둘 허리춤에서 수류탄을 뜯어내, 근위대만 입을 수 있는 – 하지만 간지난다고 다들 몰래 입고 다니는 – 하얀 탄입대에 쑤셔 넣었다.
“미쳤어. 미쳤다고.”
“야 싸가지. 얼른 안 가면 나 죽어? 목 덜렁덜렁?”
“이, 이, 씨발. 좀만 기다려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전우가 헐레벌떡 뛰어 옆 참호로 들어가 쫑알거리는 사이, 수아송은 탄입대에서 수통을 꺼내 벌컥벌컥 목을 축였다.
역시나.
코냑을 물 대신 꼬불쳐놓은 건 좋은 생각이었다.
***
“전방 부대로부터 입전은?”
“아직, 없습니다.”
“제길. 40년 군생활하면서 오늘처럼 애간장 졸이는 날은 처음이군.”
나폴레옹은 뒷짐을 진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세나에겐 연락이 왔나?”
“그것이, 아직…”
“뭐? 이, 이, 앙드레 마세나! 이 밥버러지 새끼 같으니!!”
– 팍!
나폴레옹은 신경질적으로 군모를 벗어 땅에 던졌다.
“마세나의 마지막 위치 보고는?”
“2일 전, 베네샤우(Beneschau, 프라하 남동쪽 40km)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쯧. 마세나가 지금 오기만 했다면 새벽을 틈타 웰즐리를 완전히 포위할 수 있었을텐-”
그 순간, 어느 연락장교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경례를 올렸다.
“보고드립니다! 밤 때문에 길을 헤매던 전령이 지금 도착했답니다! 어제 보낸 내용입니다!”
“전문, 전문은!”
“여기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연락장교가 품에서 건넨 문서를 홱 낚아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하.”
“각하?”
“하하하!! 하하하!!!”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야, 문서 마지막에 찍힌 도장은 그가 너무나도 잘 아는 놈의 것이었으니까.
[현재 위치 콜린 통과, 드제 장군의 18군단과 합류 완료. 이대로 급속행군으로 주파해 적 후위를 치겠음.]그리고.
루첸에 드리워진 칠흑 같던 밤의 장막을, 누군가 만든 인공적인 빛과 폭발이 잠시 걷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