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76)
몰락 (3)
1816년 4월 1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롭니다. 오늘치 물량은 없어요.”
“아니 이 사람아! 물건이 없다니? 그러면 난 오늘 장사하지 말라는 소리 아냐? 당신 미쳤어!?”
“누군 안 팔고 싶어서 안 파는 줄 아쇼?! 아, 물건이 안 온다고!!”
“쑤까 블럇!”
기본적으로 도시는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소비하는 곳이지.
물론 말 그대로 도시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도시가 생산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가가치.
도시는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을 노동력으로 삼고, 지방에서 경작해 올려보낸 식량을 사서 먹고, 지방에서 캐낸 원자재를 가공해 상품을 만들어 가치를 창출한다.
1을 도시에 넣으면 3, 5, 10이 나오는 거지, 스스로 창출해내는 가치는 0에 가깝다.
하물며 한 나라의 수도라면? 더하면 더하지.
21세기 현대 문명이 집적된 메갈로폴리스, 대한민국 서울을 보라.
서울이 세계에서 손꼽는 경제 도시이자 문화 도시, 과학 도시라 해도 서울을 똑 떼어내 어디 태평양 한가운데 드랍한다면 과연 서울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김제평야에서 농산물이 들어오고, 인천항에서 원자재를 실어오고, 울산 원전에서 전기를 끌어 와야 비로소 서울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현대보다 훠어어얼씬 열악한 19세기에, 한 나라 수도의 물류 유통망을 싹뚝 잘라버리면 어떻게 될까.
– 와장창!!
“이 개새끼야! 한 번 뒤져봐라!”
“악! 악!!”
– 삐익! 삐이익!
“이게 지금 무슨 짓들인가!”
“경관님! 이놈이 우리 가겔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게 분명합니다요! 물건을 안 떼줘서 손님들을 못 받은 게 벌써 일주일쨉니다!”
“···그게 사실이오?”
“끄으으… 저도, 팔고 싶은데, 물건이 안 오는 걸 어찌합니까…”
물건이 안 온다.
“뭐요? 지금 장난해? 감자가 어떻게 일주일 만에 세 배가 오른단 말이오!”
“꼬우면 사지 마쇼. 근데 하나 알아둘게, 내일이 되면 다섯 배 비싸질 거요. 어쩌겠소, 사겠소?”
“젠장. 이리 주쇼.”
아니, 정정하자. 모든 게 안 온다.
그러자 당연히도 물가가 뛰기 시작했다.
전시상황이라 가격이 어느 정도 경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7일 만에 곡물가는 3배 가까이 올랐다.
그렇게 물가가 박살나니 당연히 치안이 불안정해졌다.
“대체 차르께선 뭘 하는 거지?”
“옆집 이바노프네 막내가 배를 곯아서 쓰러졌다는데.”
안 그래도 쿠투조프 장군이 이끌던 70만 러시아군이 전멸했다는 흉흉한 소문(말이 소문이지 신민들도 진실임을 슬슬 눈치채고 있었다)이 돌고 있는데, 제국 정부가 겨우 물가 하나 못 잡고 있다는 점에서 불온한 분위기는 이전과는 다르게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제국 정부는 경찰력을 더 늘리고, 헌병대를 투입해 거리마다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냐는 먼 동방의 속담을 증명하듯, 불온한 분위기는 걷히긴커녕 점점 더 늘어만 갔다.
당연히 러시아 관료는 전부 뇌텅텅 병신이 아니었고, 이들은 모두 전쟁과 제도의 물가 폭등이 장기화될 걸 우려해 지방에 있는 여유 식량을 수도로 옮기려 했으나.
“키예프에서 한 달 전에 보냈다는 식량이 왜 지금도 도착을 안 한 게야!”
“그, 그게 날짜가 오기입 됐다고 합니다.”
“뭐? 오기입? 지금 장난해!!”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식량이 생산되는 우크라이나 흑토 지대.
그러나 키예프에서 수도를 향해 출발했다던 막대한 양의 식량은 십 분지 일조차 도착하지 않았다.
“아… 식량? 그게 있었는데 말이오.”
“있었는데?”
“없어졌소.”
“없어졌다?”
“키예프를 출발하긴 했는데, 중간에 드네프르강을 지나다 말들이 떠내려갔지 뭐요. 드네프르강이 워낙에 유속이 거센 강인지라…”
“억, 어억!!”
물살 거세기론 울돌목 뺨치는 드네프르강에 빠뜨리고, 중간에 인원불명의 유목민 마적 떼를 만나 빼앗기고, 짐꾼이 통수 치고 도망가고… 여하튼 그랬단다.
“감찰관, 감찰관을 파견해! 당장 저 횡령범 새끼들을 잡아넣으라고!!”
“마음은 굴뚝 같습니다만… 지금은 전시인지라…”
“갸아아악!!!”
프랑스도 아니고 유사-국가 러시아가 언제 그렇게 대단한 행정력을 가졌다고 1500km 떨어진 키예프까지 감사팀을 파견할 수 있겠나. 그것도 전시인데.
불행하게도 NKVD와 KGB 같은 서슬퍼런 인간백정들이 즐비한 소비에트 연방이 아니라 러시아 제국에 취직한 상무부 차관대신은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그와 동시에 제국 재무부 차관보좌대신은 머리가 하얗게 새버렸다.
“잠깐, 툴라! 툴라는? 툴라는 괜찮겠지?”
“예? 툴라요? 요 앞에 툴라?”
“그래!”
그리고 제국 재무부와 상무부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깨닫자, 바로 툴라에 급전을 쳤다.
모스크바와 120km, 상트페테르부르크와는 580km 떨어진 툴라는 표트르 대제가 설립한 제국 최대의 조병창이 있는 곳.
평시에도 1년에 22,000정의 제식 소총과 50문의 포를 제조하던 이 대형 조병창은 전시를 맞이하며 생산량을 최대로 끌어올린 지 오래였다.
하루 종일 말 달려 도착한 이들을 향해, 툴라에 있는 조병창 장인들은 격려와 위로
···대신에 끔찍한 현실을 알려주었다.
“주괴가 안 옵니다.”
“···선생, 그게 무슨 말이오?”
“청동도, 단조철도 동났고, 구리 주괴도 바닥났습니다. 무기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어요!”
광산에서 원자재가 안 온다.
툴라 조병창의 거대한 화로에는 잔불만이 남았고, 수많은 굴뚝에서는 거무튀튀한 연기가 아니라 희끄무레한 연기만이 간간이 튀어나올 뿐.
이 시점에서, 재무부 짬밥을 먹은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하나라면 모를까, 모든 유통망이 엉망이 됐다.’
즉, 누군가 장난질을 치고 있다.
1816년 4월 25일.
이들은 제국의 주요 물류망을 책임지던 이들을 찾아가 노기등등하게 물었다.
“스티클리츠 남작. 당신 지금 반역행위를 하는 거요!?”
“···다짜고짜 찾아와서, 제국에 그동안 지대한 공헌을 한 날 향해 반역도라고 쏘아붙이는 거요?”
“남작 당신이 가진 물류망과 유통망이 하나 같이 간질환자처럼 마비됐소. 그것도 하루 만에!”
“다들 전쟁이 일어나니까 머리가 회까닥 도신 모양인데, 내 본업은 해운업이요. 지금 발트해 항로가 망할 개구리 해군한테 봉쇄당했는데 내가 지금 육상 물류망을 신경 쓸 여유가 있을 거 같소?”
미리 정교하게 짜 맞춘 건지 청산유수로 내뱉는 말에, 재무부 공무원들은 더욱 얼굴을 찡그렸다.
“허허, 준비를 아주 많이 하셨나보오?”
“하! 갑자기 쳐들어와 민폐를 끼치는 것도 모자라서, 애먼 충신을 반역도로 모시는군. 그 논리라면 법정에서 자기변호도 하면 안 되겠소?”
“그래? 본인이 아주 결백하다고 자신한다면, 지금 바로 장부를 내놓으시오. 우리가 한번 읽어보고, 문제가 없으면 돌려드리리다.”
“정말 미안하지만, 내 장부들은 죄 뤼벡에 있소. 기욤 드 툴롱 그 호로새끼의 손에 있다고.”
“당기 장부는 없더라도 옛날부터 쓴 예비 장부는 있을 거 아니오.”
“···나중에 값은 톡톡히 받아낼 거요.”
“결백하시다면야.”
은행가, 해운업자, 유통업자 등등에게서 마치 강탈하듯 장부를 뜯어간 제국 재무부는, 꼬박 일주일을 새며 장부를 짜 맞췄다.
결과는.
“끔찍하군.”
“얼마나 누더기가 됐는지, 우리 집 사냥개가 물어뜯은 제 바지보다 심한 것 같습니다.”
각각의 장부는 나름 봐줄 만했지만, 여러 장부를 합해 차변과 대변을 맞대본 결과, 뜯어낸 장부들은 모두 사기와 기만, 혼이 담긴 구라로 점철된 쓰레기들이라는 결과가 산출되었다.
“망할 반역자 새끼들! 게임 오버, 싹 다 구속시켜!”
재무 대신은 길길이 날뛰며 경찰을 투입했지만.
“···없어?”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사라졌는지, 저택은 물론이고 별장까지 뒤졌는데도 그림자조차 못 찾았습니다.”
어쩐지, 그들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안전 가옥입니다. 자유 연합군이 올 때까지는 이곳에서 지내십시오.”
“무라비요프 준장. 프랑스가 우릴 버리지 않겠다는 확신이 필요하오.”
“기욤 드 툴롱 선생께선 여러분들의 머릿속에 있는 그 숫자와 지식이 향후 러시아의 재건에 필수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결코 여러분의 신변에 위험을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야, 믿어 보겠소.”
제국 상층부, 특히 프랑스군에게서 탈출한 고급 장교들은 반쯤 와해 된 러시아군 상층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진급에 진급을 거듭했고,
지금 러시아군의 요소요소에는 “데카브리스트(10월 청년단)”이라는 이름의 비밀 혁명조직이 완성되어 온갖 사보타주를 가하고 있었다.
결국 제국 재무부와 상무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는 집안 가재를 있는 대로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이,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 니놈들이 지금 제국을 날려 먹었어! 제국을 날려 먹었다고!”
장부들은 하나 같이 맞지도 않는 쓰레기며, 이들이 잡고 있던 유통망은 박살 났고, 중간에 옮기던 화물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조차 없다.
어디서부터 어딜 어떻게 고쳐야 하나. 애초에 고칠 수는 있는가? 고칠 수 있다면 과연 프랑스군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당도하기 전에 가능한가?
프랑스군이 진격을 개시했다는데, 안 그래도 엉망이었다가 지금 반푼이까지 된 제국군이 그 대육군을 맞아 싸울 수 있는가?
최소한 그러려면 그들이 먹을 군량과 무기, 탄약은 대줘야 하는데, 오장육부에 피를 공급해줄 제국의 혈관이 모두 잘려 나갔다.
아니지. 군도 문제지만 제도도 문제다. 과연 지금 이 상황이 계속되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지?
“다들 모여보게.”
“예, 각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자고. 만일 이대로 제도로 오는 물류가… 차단된다면 제도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걸려야 물류가 정상화 될지.”
계산 결과는 순식간에 산출됐다.
산에 있는 풀뿌리까지 캐서 먹는다고 치면 한 달.
물류 정상화는 3개월.
“갸아아아악!!”
“각, 각하!?”
“기욤, 이 빌어먹을 새끼! 하느님의 저주가 두렵지도 않느냐!! 억! 어, 어억!!”
“재무 대신 각하!”
제국 행정부가 이렇게 무력화되고 ‘우린 이제 망했어 잉잉’거릴 때.
최고지휘사령부 스타브카(Stavka)에 있는 장교들은 하나같이 푸르죽죽한 얼굴로 고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프랑스군이 민스크를 향해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브레스트 요새가 함락됐습니다! 추가로 프랑스군이 리보프 방면에서 포착됐다는 소식입니다!”
“세바스토폴 요새에서 급보! 공화국 해군이 방금 보스포로스 해협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온 러시아인이 대가 없는 존경과 복종을 바치는 단 한 명.
신의 대리인.
차르, 파벨 1세는 특유의 못생긴 입을 더욱 삐쭉 내밀었다.
“···왜 들어오는 보고가 다 이 모양이오? 대체 자랑스러운 제국군은 무얼 하는 게요. 당장 요격하지 않고.”
“송, 송구합니다. 폐하. 하지만 우리 러시아의 이점을 백분 활용하기 위해선 프랑스인들을 더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래? 어디까지 끌어들일 생각이오?”
“참모들과 장성들 의견으로는 최소한 스몰렌스크까지는 내줘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뭐, 좋소. 자네들이 전문가니 잘 알겠지. 짐은 환궁할 테니 뭔가 이상이 있으면 알현을 요청하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차르가 나간 뒤, 스타브카의 장교들은 지위고하 따질 것 없이 모두 담배를 장전했다.
잠시 정적과 함께 구름과자가 몽실몽실 떠오르고.
“적이 일곱 갈래로 진격하고 있소. 코사크 정찰대 말로는 각 부대가 최소 10만이라더군.”
“농노고 자유민이고 일단 잡히는 대로 군에 처넣고 있습니다만, 우리 러시아군이 레드코트까지 깨뜨린 프랑스군과 대적하려면 최소 세 배 이상의 병력을 보유해야 합니다.”
“210만 명을 징병하겠다고? 미쳤군. 반은 징집소에서 전선으로 가다가 아사하겠어.”
“재무부에서 말하길, 지금 제도에 있는 병사들만 먹이려고 해도 신민들의 입에 들어갈 배급량을 반으로 줄여야 한답니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 대체 돈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왜 우리 제국에는 기욤 같은 자가 없는가!”
“스몰렌스크까지 끌어들인다면, 이길 수는 있습니까? 놈들이 열차를 통해 보급을 하고 있다면 우리의 종심유인작전도 말짱 도루묵일 텐-”
“그러면 그 작전 외에 다른 명안이라도 내 보던가!!”
지도 위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막강한 대육군이, 길잡이로 삼은 자유 러시아군의 인도대로 빠르게 러시아를 파고들고 있었다.
전쟁이 재개된 지 겨우 5일 만에, 이미 승리라는 단어는 저 멀리 어드메로 사라져버리고, 시시각각 그들의 목을 향해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