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80)
몰락 (7)
“살려달라.”
“무조건 항복인가?”
“그건 아닌데.”
“그러면 뭔데.”
“우리 목숨은 살려줘야 하고, 재산도 보장해줘야 하고-”
“들을 가치도 없군. 꺼져.”
“일, 일단 들어봐요. 우리도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경제적 이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양보를 해줄 용의가 있습니다.”
“그래? 우리는 개인의 탐욕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비도덕적인 정부를 가만 놔둘 용의가 없다.”
“뭐무뭣?”
“애초에 이 전쟁, 니들이 낸 거 잖아? 쌈박질 시작했으면 이빨 몇 개 추수될 각오는 하셨어야지.”
“그, 그럼 프로이센은?! 프로이센은 봐줬잖아!”
“국왕 빌헬름 씨가 말하길, 프로이센은 애초에 이 전쟁에 참전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던데.”
“야! 그걸 믿어?!”
“프로이센은 조건 없이 항복했으며 주요 전범들의 신병을 프랑스에 넘겼다. 그것만 봐도 니들하고 너무 다르지 않니?
그리고 내가 믿든 안 믿든 니가 뭘 어쩔 건데 이 새끼야.”
제국 외무대신이 쓰고, 차르의 도장이 찍힌 문서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태워버렸다.
그게 무슨 뜻이겠나.
“기욤이가… 대포를 끌고 와서 우릴 다 날려버리겠다는데?”
“미친놈!”
“야! 기욤은 합리적이라던 새끼 어디 갔어! 그냥 피에 미친 살인마잖아!”
러시아 제국 공무원들은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아니면··· 협상에서 몸값을 더 올려보려는 게 아닐까요?”
“몸값? 벼랑 끝 전술, 뭐 이런 거?”
“그렇지요. 기욤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애먼 목숨을 버리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요구한 조건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배짱 장사로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우리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며 괘씸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에겐 불행히도, 기욤은 시시각각 상트페테르부르크 안의 >12월 청년단>으로부터 내부의 동향을 보고 받고 있었다.
어디에 병력이 얼마나 배치되어 있는지, 식량 사정은 어떤지, 심지어는 스타브카와 외무부에서 어떤 말이 오고 가고 있는지까지도.
따라서 러시아인들은 또다시 똥볼을 차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나?”
“여러 면에서 통 크게 양보를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일단 목숨부터 구해야지요.”
“아닙니다! 차라리 우리도 똥배짱으로 나간다면 기욤 그놈도 ‘아 뜨거라’-하며 뺄 겁니다! 애초에 우리 러시아식 외교가 뭡니까, 바로 허허실실 아닙니까. 없으면 있는 척, 있으면 더 있는 척!”
“실패했을 때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 짐작도 안 가는군. 기각.”
그들은 기욤이 좍좍 찢어버린 항복 문서를 얼기설기 맞춰 다시 한번 전달했지만.
“아 안 사요.”
“한 번만! 한 번만 더 봐주십쇼!”
“에이잉. 안 산다니깐? 소금 뿌리기 전에 썩 꺼져!”
문전박대라는 사자성어가 무엇인지 직접 깨닫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책상들은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군. 헛짓거리할 힘이 있으면 프랑스 놈 하날 더 잡아 죽여야지.”
“하지만 프랑스 놈들은 고기나 구워 먹을 뿐이지 포탄 한 발 쏘질 않습니다만.”
“놈들도 이 두터운 요새벽에 머릴 처박고 싶지 않은가 보지. ···그런데 배에 힘 딱주고 으르렁거리진 못할망정 애새끼들마냥 징징거리기나 하고 말이야.”
군인들이 앞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데, 후방에선 협상이나 항복이니 운운한다?
이 시점에서, 러시아군 고위 장교단은 문민관료들에게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져 버렸다.
이렇게 윗선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이상, 아래쪽이라고 이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영관급 장교들이 하는 말은 위관급 장교가 엿들었고, 위관급 장교들이 쑥덕이는 건 부사관들의 귀에 들어갔고, 부사관들이 읊조리는 건 곧 사병들이 엿듣는 법.
“젠장, 또 시작이야.”
“빌어먹을 새끼들. 그렇게 먹을 게 남아도냐?!”
몇 주 째 희멀건 죽과 싹 난 감자로 끼니를 때우다가 며칠째 진동하는 고기 굽는 냄새로 완전히 삔또가 나가버린 러시아군은 코르크 마개로 코를 막고 강아지풀을 질겅질겅 씹으며 동시에 상관들도 씹어댔다.
어차피 프랑스군은 온종일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시고 쉬기만 할 뿐, 총알 한 발 쏜 적 없지 않은가.
이들에게는 혼자 생각할 시간도, 옆의 동료와 이야기할 여유도 넘쳐났다.
“얼마 전에, 부사관들 하는 얘길 들었는데 말이야.”
“들었는데?”
“높으신 분들이 프랑스인들에게 찾아가서 항복하겠다고 했대.”
“뭐? 그러면 전쟁이 끝난 거야?”
“집에 갈 수 있나??”
“아니. 프랑스인들이 코웃음을 치면서 꺼지라고 했다더군.”
“왜, 왜??”
“몰라.”
쌍방향 통신, 팩트체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19세기.
그렇다면 21세기에도 타문화에 대해선 단순한 무지를 넘어 빡대가리 수준의 모습을 보여주는 러시아인들이, 과연 19세기에는 얼마나 대단하겠나.
“빌겔름(기욤의 러시아어 명칭)은 악마를 숭배한다더라.”
“항복을 왜 거부했겠냐, 우릴 모두 죽여 없애려는 추악한 음모야.”
고위 장교들과 귀족들은 이들을 끌고 온 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악독하고, 사악한지를 매일마다 병사들의 귓전에 때려 박았고, 이제 러시아군 병사들은 프랑스군을 숫제 사탄의 군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전까진.
“어, 어어. 저게 뭐야.”
“하늘! 하늘에 이상한 게 떠 있다!”
일평생 문명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영위하던 러시아인들은 프랑스군 진지에서 둥실둥실 떠오르는 무언가를 보고 경악했다.
“프랑스인들이 흑마법을 쓴다!!”
“사탄이다! 사탄이야!”
“다들 정숙해라! 정숙!”
두려움에 떨던 병사들의 소요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장교들의 설명에 점차 가라앉았다.
“아아. 저건 열기구라는 거다.”
“열기구?”
“프랑스 놈들이 만든 장난감이지.”
“마법입니까?”
“···마법은 아니다. 신경 쓸 것 없다.”
“저, 저놈들이 폭탄이라도 들고 우리 머리 위에서 떨어뜨리면 다 죽는 거 아닙니까?”
지식이 없지 지능이 없겠는가.
프랑스군 진지에서 하늘 높이 떠올라 상트페테르부르크 쪽으로 서서히 날아오는 열기구들을 본 러시아군은 집단 패닉에 빠졌다.
“당장 사격합시다.”
“하늘에 대고? 대공사격이라니, 그건 역사상 그 누구도 해본 적 없소.”
“저 망할 바게트 새끼들이 무슨 꿍꿍이인 줄 알고!!?”
어떤 부대는 하늘에 소총을 겨누고, 어느 부대는 일단 지붕이 있는 곳으로 피신하고.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에 각 부대마다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 팔랑.
“···종이?”
“놈들이 종이를 뿌립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들의 옆으로 종이가 펄럭거리며 하나둘 떨어졌다.
[러시아의 죄 없는 시민들과 장병들에게 알림.온 세상에 자유와 정의, 그리고 사랑을 뿌리는 우리 연합군은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 연합군은 약탈과 살인 같은 전쟁범죄를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우리의 목적 또한 살육이 아닙니다.
우리는 유서 깊고 아름다운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절망과 비탄에 빠뜨릴 생각 또한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위. 여러분들이 모시는 가장 존귀한 자들은 감히 여러분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우리 연합군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가려는 망동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연합군과 러시아 두 국가 사이의 전쟁 상태를 끝내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의 보장, 그리고 그 잘나신 차르의 통치를 용인해줄 것을 제안이랍시고 내밀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의 시작에서부터 시민들의 고혈로서 살아가는 모든 압제자를 타도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으며, 따라서 러시아 제국 외무부가 이러한 해괴한 조건을 항복 조건이랍시고 들이민 것에 일체의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의 위정자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에 조금의 양심이 존재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오랜 고사를 보여주십시오.
귀족이랍시고 떠받들어질 때는 아무런 말이 없다가,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때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나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 자리를 빌어, 러시아의 위정자들에게 요구합니다.
무조건 항복하십시오. 여러분들의 목숨, 재산 모두 공정한 법에 의거하여 재판에서 판결할 것입니다.
죄 있다면 죽을 것이고, 죄가 없다면 살 것이니.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당장에라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 않는 것일 뿐.]
“이게 뭐야. 항복 조건이 자기들 목숨을 보장하는 거라고?”
“···그러면 우리는?”
100년 앞선 삐라에 글 읽을 줄 아는 이들이 전부 충격에 정신이 나가 있을 때.
– 툭.
그들의 옆에 빵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떨어져, 빵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프랑스 공화국 통령, 기욤 드 툴롱.]
그 안에 담긴 삐라들도 같이.
“주, 줍지 마라!”
“줍는 사람은 군법으로 참형하겠다!”
곧, 정신이 돌아온 장교들이 검을 뽑고 고래고래 난리치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러시아군 장병들은 주머니에는 프랑스인들이 준 선물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
포위 29일째.
“때가 온 거 같소.”
“맞습니다. 충분히 병사들 분위기가 불온해졌어요.”
“그럴 만도 하지. 적은 나날이 강해지는데, 군량조차 이젠 적이 던져주는 자비에 의존해야 하지 않소.”
“사제들이 말하길, 시민들이 시위대를 조직해 항복을 요구하는 황궁행 가두시위를 열겠다는 말이 군데군데서 나오고 있답니다.”
“그걸 차르와 그 떨거지들이 가만 두고 보지는 않을 텐데.”
“정보부에 있는 친구를 통해 ‘미리 힘 빼지 말고, 놈들이 기어 나오면 일망타진하면 된다.’-는 식으로 설득했습니다.”
“아주 잘했습니다, 동지.”
데카브리스트. >12월 청년단>은 불꽃이 이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값비싼 청금석으로 창문을 꾸며, 푸른 빛이 감도는 이 밀실.
제국의 배를 찢어 나라 다운 나라, 새로운 러시아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이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도를 탁자 한가운데 펼치고 군데군데를 짚어나갔다.
“세메뇨프스키 연대는 포섭해놨습니다.”
“해군 소속 몇 개 중대도 우리 측에 합류했소.”
“차르가 만일… 시위대의 바램을 들어주면 어떻게 하지요?”
“복잡할 거 없지. 그러면 입헌군주국 러시아를 만들면 되고, 아니면 기존 계획 그대로 이 러시아에서 군주정을 거세해버리면 되는 거요.”
3000명.
데카브리스트가 확실히 동원할 수 있는 병력 3천.
“차르 측에 설 병력은 9천.”
“속전속결로 끝내고, 프랑스군에게 성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들은 다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독한 술을 각자 잔에 따른 뒤, 결의에 찬 얼굴을 한 채 건배했다.
“차르에게 죽음을!”
“““차르에게 죽음을!!”””
>피의 30일>이라 불릴, 포위 마지막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