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외전 -6-
에밀 졸라는 잠시 머릿속에서 인명록을 뒤진 후 입을 열었다.
“몰트케 장군이라면 지금 합참의장 아닙니까?”
“맞네. 부임한 지 이제··· 한 3년쯤 됐었나? 늙으니까 시간 개념이 떨어진단 말이지.”
에밀 졸라의 앞에 있는 노인은 잠시 숨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여하튼 그때 동양은 개판이었네.”
중국? 수도 인근이 초토화되며 혈전 끝에 적을 몰아내긴 했다.
문제는 그 적이 하필 해적질의 Goat, 영국이었다는 거지.
“장강 이남의, 지금의 남중국 공화국 영토에 있던 지식인들의 대다수는 증발해버렸고 항구는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렸으니.”
“그렇군요.”
“조선, 지금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지.”
삼도수군통제사 전사.
경기, 전라, 충청 수영 전멸.
청의 협박 반 애원 반에 못 이겨 출정한 조선 수군은 넬슨의 스파이시한 웍질에 드라군 녹듯 사라져버렸다.
“황제, 그리고 왕이란 작자들은 그 책임을 평민들에게 떠넘겼다고 했었죠.”
“잘 알고 있군.”
어마어마한 재정 소모, 수많은 상비군의 증발.
답은 뭐다? 만만한 사람 쥐어짜기 뿐이지.
“임칙서와 홍경래 그 친구가 괜히 나온 게 아니고, 인민들이 괜히 그 친구들에게 열광한 게 아닐세.”
기욤은 잠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겼다.
***
나는 전쟁이 싫다.
‘우애앵 사람이 다치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오’ 같은 말캉말캉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
수천, 수만 명을 묘지로 보내고 백만 넘는 사람을 전쟁터로 보낸 사람으로서 그딴 마인드는 도저히 가질 레야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왜냐고?
솔직히 말하겠다. 힘들다.
병사 하나를 전장으로 보내기 위해선 3명의 사람이 뒤를 받쳐줘야 한다.
밥 만드는 농부, 총 만드는 노동자, 서류 작업할 노예.
개중에서 노예가 바로 내 포지션이다. 별로 좋지 않다.
그러나 서당집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전쟁 두 번 한 노예면 얼마나 노하우가 쌓여있겠는가.
일단은 견적부터 짜보자.
‘왜 우리 잉글랜드 연방은 끼지 못하는 겁니까? 우리 또한 연합의 일원입니다!’
‘각하, 그렇다는데요?’
과연 영국인이 가서 ‘님들 도우러 왔음!’ 했을 때 중국인과 조선인이 환대해줄까? 난 아니올시다인데.
됐고 물자나 대쇼.
옛날이었으면 온리 프랑스 하나를 굴려야 했지만 지금은 유럽 전체에 외주를 맡길 수 있는 배부른 상황.
잉글랜드 연방은 화물선이나 빌려주고 깨끗한 면포나 주면 된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요롷게-”
대강 견적은 쉽게 나왔다.
원정군 규모는 최대 5만. 최적 3만 5천.
내가 누군가. 재무부의 영원한 아이도루 기욤 드 툴롱 아닌가.
내가 마 버스터콜 한번 때리면 재무부 싹 다 집합하는 거다.
‘차라리 죽여주세요.’
‘나중에.’
야근 수당 1.5배로 줬으니 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고 정당한 산출품을 얻었다. 결코 불공정하지 않다.
최대 5만, 최적 3만 5천이라.
중국은 냅둬야겠구만.
중국에 가봤자 역효과만 날 거다. 지금이 1820년대인데, 내 기억 속에선 1800년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의화단이니 ‘서양 귀신 때려잡자’니 하는 게 있었던 거 같거든.
지금 봉기를 일으킬 사람들 다 영국인에게 최소 가족 하나씩은 잃은 사람들 아닌가.
굳이 자극할 필요 없다.
임칙서에게는 무기와 식량만.
그러면 순수하게 3만 5천을 조선에 투입할 수 있다.
조선을 확보한 이후엔 압록강 너머에서 알짱거리면서 청나라 뒤통수를 갈겨도 되고.
내 기억상 지금 조선은 그 뭐냐… 세도 정치? 그걸로 박살 나고 있을 시기.
유럽을 다 두들겨 팬 프랑스군 수만이 상륙한다? 조선이고 고조선이고 못 조질 이유가 없다.
‘마, 기욤아. 총사령관은 나지?’
‘꺼지쇼.’
나폴레옹은 원정군 총사령관에 자신이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에 기함했다.
어쩌라고 치질 환자 주제에. 꼬우면 지가 엉덩이 관리를 잘했어야지.
핑크색 도넛 방석에 앉아 지휘하는 지휘관 따위 그 어떤 병사도 따르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 밖에도 병기고에서 A급 물자들 봉인을 뜯어 손 본다던지, 병사 1인당 식대는 어느 정도가 적합할지 등등등.
‘각하.’
‘오랜만에 옛날 생각나고 좋죠?’
‘죽여달라구요.’
‘나중에.’
특근 수당도 얹어줬다. 다시 한번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해줬으니 난 무죄다.
바다는 어차피 우리의 것.
청나라나 조선이나 넬슨이 다 부숴버렸으니 해군은 그나마 신경을 덜 써도 돼서 다행이다.
만일 해군까지 신경 썼더라면 누가 입에 칼 물고 밤중에 내 집무실로 침투했을 거다.
“아빠? 아직도 일해?”
“아니, 왜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있어?”
“나 다음 주에 학교에서 운동회 하는데, 아빠 올 수 있어?”
“미안하구나. 이번엔 아빠가 일이 좀 많네.”
“웅… 알겠써…”
후우. 감히 날 나쁜 부모로 만들고 우리 애를 시무룩하게 만들다니.
김. 조. 순.
네놈은 내가 내 아들, 그리고 5천만 한국인의 염원을 담아 반드시 죽인다.
***
“당분간은 바다를 잠그는 게 어떻소?”
“그것보다는 앞으로 주교사가 안전할 때를 판단하여 배를 들이고 나가게 함이 나을 것 같습니다.”
김조순.
후세 한국인들의 발암세포, 세도 정치의 스타터.
그는 비변사 제조 겸 주교사 당상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주교사는 곧 세운을 담당한다.
수군이 사라짐으로써 그는 바다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고 눈치 볼 견제 세력조차 없어진 그는 원 역사보다 더 많은 몫을 제 뱃속으로 챙길 수 있었으니.
50년 앞선 쇄국정책과 안동 김씨는 온 한반도를 지옥도로 만들었다.
그 지옥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불과 몇 년 전 일어났던 반란, 그것도 국가를 진짜 먹을 뻔했던 반란은 무엇이었을까.
“의병이다 뭐다 해서 쌔빠지게 달려갔드만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이삭 하나 없구만.”
“만약 홍경래 대원수가 이겼었다면 뭔가 달랐을까?”
홍경래는 어느새 평안도를 넘어 온 조선 반도가 속삭이는 이름이 되었다.
“사실 홍경래는 살아있다더라.”
“도술을 배워 하늘을 닫고 승천했다더라.”
충청, 전라, 심지어 경상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가짜 홍경래’가 속출하고 홍경래가 살아있다는 풍문이 산과 들과 강을 넘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언문으로 쓰인 책이 나돌기 시작했다.
저 멀리 서양에 있는 불란서라는 국가.
왕도 양반도 상놈도 천민도 없는 나라.
뭣도 없이 카더라만 쓰여있는 사이비 [정감록>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성 넘치는 책.
적어도 그 서양 나라는 존재한다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진인인지 뭔지보다 훨씬 낫다.
“이 기욤이라는 자, 기씨인 것을 보니 기자의 후예 아닐까?”
“우리 조선도 기자의 후예 아닌가. 우리가 이 불란서라는 나라처럼 못할 것이 무언가?!”
“맹자께선 본래 왕이 부덕하면 그자는 더 이상 왕이 아니라 필부에 불과하다 하셨다! 필부가 정치를 하는 판에 내가 해서 안 될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
“대원수? 정말 대원수가 맞으십니까!?”
“그렇네. 옛 동지들, 만약에 살아있다면 그들에게 전해주게나. 이 홍모가 돌아왔다고.”
때가 왔다.
홍경래는 믿을만한 자들을 모아 전국 팔도에 동양의 오랜 전통인 격문을 뿌렸다.
“[토왕소격문(討王巢檄文)>!”
“홍경래 동지를 따르라!”
“기름이 번들번들한 군수 배를 따버리자!”
“관찰사 대감! 민란입니다! 의주가 다시 역적들 손에 넘어갔습니다!”
“반역향 아니랄까봐 목숨을 살려주신 상감의 지극한 은혜를 잊은 짐승들이 들끓는구나. 군병을 준비하고 각지 수령들에게 집결하라고 이르라.”
“예, 대감.”
평안도 관찰사 아래 집결한 조선군은 천천히 나아갔다.
어차피 한 번 해본 일 아닌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그러나 이번엔 한 가지가 달랐다.
“대감! 역도들이 양인과 함께 있습니다!”
“양인들이 사절을 보냈사온데, 그 내용이 심히 흉참합니다.”
“무슨 내용이길래 그런가.”
“항복하여 군병을 상하게 하지 말라 합니다.”
“허허, 오랑캐들이 죽고 싶은가 보구나.”
“페탱 장군님. 적이 항복 권유를 거절했습니다.”
“좋다. 1500에 포격 개시. 해군 육전대가 길을 열고 용기병 연대가 측면을 타격한다. 조선인 동지들은 제일 후방에 배치하도록. 민간인 피해는 최소화한다.”
“예!”
단 일주일.
나폴레옹의 참모장교는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개성을 향해, 한양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성공했습니다. 왕이 수도를 버리고 남쪽으로 몽진 중입니다.”
“좋군. 우리도 간다.”
평양성을 함락시킨 페탱이 개성에도 깃발을 꽂고 파주에 다다랐을 무렵.
몰트케는 2만 병력을 움직여 전라도에 상륙, 그대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도착한다. 지방관이 썩은 탐관오리인지 파악한다.
탐관오리면 족치고 창고를 열어 재물과 식량을 민간인들에게 나눠준다.
만약 탐관오리가 아니다?
“반갑소 장교. 혁명군에 합류하시지 않겠소?”
“어찌 신하된 자로서 두 왕에 충성하겠느냐? 너희 오랑캐들은 왕이 없느냐?”
“없는데.”
“···.”
“우린 만민이 평등한 공화국이오, 장교. 우린 왕이란 개인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하오.”
전주 목사와 나주 목사가 모은 진압군을 어린애 손목 비틀다시피 박살 낸 프랑스군을 본 지방관들은 대개 저항할 생각을 접고 충(忠)을 위해 자결하거나 전향했다.
전자는 어쩔 수 없다. 피가 흐르지 않는 전쟁은 없으니까.
나주-전주-충청을 거쳐 북상한 몰트케 군은 어느덧 경기도에 도착했다.
“저기가 왕이 있다는 곳이오?”
“그렇습니다 몰트케 동지.”
“흠. 요새에서 농성을 하시겠다라.”
“경상과 강원에서 의병이 구원하러 올 때까지 버티는 게 조선군의 기본적인 교리입니다.”
군사적으로 명백히 타당하다.
“무슈 홍. 나와 내기합시다.”
“뭡니까?”
“내가 저 남한산성이란 요새를 이틀 안으로 함락시켜 보겠소.”
헬무트 폰 몰트케.
요새 상대로 그 누구보다도 강해지는 자.
본래라면 40여 년 뒤, 스당에서 프랑스군을 때려잡는 데에 썼을 그의 능력이 남한산성에 강림했다.
그리고 이틀 뒤, 홍경래는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올랐다.
“나라를 좀먹는 간신배들을 방관한 죄인, 이공(李玜)을 처형한다!”
“망탁조의에 버금가는 간신, 김조순 또한 처형한다!”
“풍양 조씨 조만영(趙萬永)과 조인영(趙寅永)을 찾아라!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것이다!”
쓰레기 소각 타임을 가진 이후, 그는 곧장 신정부를 선포했다.
임시 대통령으로 자신이 취임하고, 재무부 장관에는 의주 만상 임상옥(林尙沃)을 반강제로 데려다가 앉혔다.
“저번에는 실례가 많았소이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그럼 인민을 위해 분골쇄신하시오.”
일전에 악연이 있었던 만큼, 임상옥은 재무부 의자에 앉아 죽을 때까지 사이킥 에너지를 빨아 먹힐 운명이리라.
“이로써 조선 왕국은 없다! 이제 조선은 민주주의에 입각한 인민의 공화국이다!
그렇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우리의 조국은 이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그 명칭이 대한민국으로 바뀌는 것은 파리에서 이 얘기를 들은 기욤이 각혈한 이후, ‘도, 도대체 왜? 왜 그런 거 써요?’하고 보낸 연락선이 한반도에 도착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더 걸리고 나서였다.
“조선엔 군사고문단만 남겨도 되겠습니다.”
“몰트케 장군의 말이 맞소. 굳이 남아서 현지인들과 반목할 바에 필리핀으로 철수해 국제연합의 명령을 기다립시다.”
“중국은 어떻게 하지요?”
“뭐어, 조선을 보면 그쪽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중국의 거대함, 광활함은 임칙서의 ‘독립군’과 청나라의 진압군 사이 만 4년의 내전 끝에 평화가 찾아옴으로써 종식됐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저 만주 황제를 모시는 거냐 왜!”
“황상과 황태자께선 직접 총칼을 쥐시고 직례를 지키셨다! 한간인 네놈들이야말로 자금성에 앉고 싶어서 이상한 이유를 대는 것 아니냐!”
남중국은 가장 많이 수탈을 당했으며, 한족 비율이 거의 100퍼센트를 달성했으나.
북중국은 황제와 함께 싸웠다는 동지의식이 전통적인 관점과 맞물려 충성파를 고수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적다 한들 만주족과 몽고족 등이 함께 사는 것도 그렇고.
결국 중국은 장강을 경계로 남과 북, 남한(南漢)과 청으로 나뉘었다.
물론, 그 4년이란 시간 동안 기욤은 헤이그에 있는 최고 의장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사이킥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었다.
전쟁 중이잖아? 밑은 바뀌어도 헤드는 그대로 유지해야 하지 않겠나.
***
“빌어먹을.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어.”
“그래도, 세계의 평화를 지키셨잖습니까.”
“세계의 평화라.”
노인, 기욤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 되물었다.
“졸라,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럼요.”
“아니. 학교에서 배운 것 말고. 자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평화에 이바지한 것 같은가?”
자네에게 충분히 많은 걸 풀은 듯한데.
“목적이 어찌 됐든, 얼마나 고상하고 고결한 이상을 제시했던. 난 전쟁을 계획하고 전쟁을 했어. 내 결정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
과연 자네가 보기엔 이 내가 평화를 이룩한 것 같나?”
졸라는 잠깐, 노인이 앉은. 천천히 삐그덕 대는 의자 아래 무언가 묵직하고 축축하며 기분 나쁜 것이 깔려 있는 듯했다.
저건 뭘까.
노인은 그런 졸라의 마음을 추측한 듯 싱긋 웃었다.
“젊은 친구. 사람이 죽을 때가 가까워 오면 말일세. 옛날 옛적에 나중에 처리하겠다고 미뤄뒀던 것들이, 이제 정산할 때가 됐다며 찾아오곤 하네.”
“무얼 정산하지요?”
“죄책감.”
노인의 의자는 그대로 삐그덕 소리를 냈다.
“아 뭐, 미치겠다. 그런 건 아니네. 일전에 말했다시피 내가 그리 말랑한 생각을 지니진 않아서.”
다만 알고 싶네.
“자네가 보기에, 내가 한 일은 의미가 있었는가?”
그 수많은 불행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많은 행복이 피어났는가?
나의 선택은 옳았는가?
나는 최악을 택하지 않았는가?
졸라는 눈을 한번 감았다 천천히 뜨며 말했다.
“예, 회장님.”
“그래?”
“충분히. 넘치도록 의미 있었습니다.”
“그럼 됐군.”
노인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자, 이제 깝깝한 얘기는 재껴두고, 신나는 얘기 하세나.”
“신나는 얘기요?”
“돈 버는 얘기 말이야. 기삿거리 찾아가야 한다며? 자네, 내가 어떻게 전화기를 만들었는지 들어봤나? 자, 들어보게 저어기 한 30년대쯤이었나. 영국에서-”
“잠, 잠깐만 기다려주십쇼!”
정신없이 쏟아지는 말에 에밀 졸라가 필기체로 정신없이 속기하기 시작할 무렵, 저 멀리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
“회장님, 발 조심하십시오.”
“폐는 맛 갔어도 아직 눈까지 맛 가진 않았다 이놈아.”
기욤은 익숙하게 자리를 찾아 앉았다.
세느 강이 보이는 곳, 가장 큰 아름드리 나무 옆.
“쯧. 내가 공장을 너무 많이 세웠나? 옛날보다 별이 덜하군.”
이 쓰레기 같은 시대에 처음 떨어졌을 적 새카만 하늘을 수놓던 수많은 별 중 많은 수가 사라져있었다.
아마 대부분은 도시의 불빛을 이기지 못하고 바래버린 4등성, 5등성이겠지.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고급 와인을 개봉해 아름드리 나무 밑둥에 꼴꼴 부었다.
“거, 이게 마지막 병이요. 나도 이젠 더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으니까 찡찡거리지 말고.”
주치의 겸 비서가 옆에 기립해 있는 동안, 기욤은 혼자서 계속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요 며칠 젊은 기자 친구 하나가 와서 이것저것 묻더라고. 눈에 뭐랄까, 생기가 가득해서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알려줬소.
예를 들어서 형이 핑크색 도넛 방석 썼던 거 같은.”
“그때 기억납니까? 교장한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생도가 가서 3년 치 수업 1년에 다 듣겠다! 한 학기에 60학점씩 듣겠다! 하던 미친놈.
그리고 그 미친놈 다음엔 자기 사업하고 싶은데 허가 좀 내주면 안 되겠냐고 하던 미친놈.
이야 그땐 댁도 나도 그 혈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참 이제 이 세상도 징글징글하다. 거긴 좀 살만한가? 얼마나 좋길래 일흔에 간 건지 모르겠군. 한 10년만 더 있다 가지 그랬어.
이제 나 틀딱이라 같이 얘기할 사람도 별로 없다고.”
그는 이제 마지막 한잔 분량 남은 와인을 밑둥에 털어냈다.
“어이 코르시카 촌뜨기 아저씨. 그래도 우리가 한 일이 의미는 있었나 봐.
한 잔해. 그럼 된 거지.”
밑둥 앞 흙바닥이 와인을 방울방울 빨아들였다.
“···클레망소?”
“예, 회장님.”
“내가··· 병석에서 일어난 지 이제 며칠 째던가?”
“오늘로 3주째입니다.”
“3주라···. 오늘도 회사는 별일 없는가?”
“예, 회장님. 부회장님께서 잘 운영하고 계십니다.”
“역시 내 아들이야.”
그는 잠시 질문을 골랐다.
“동양엔 회광반조라는 말이 있다고 하더군.”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죽기 전에 잠깐 동안 상태가 좋아진다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님 말고지 뭐.”
노인은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레망소.”
“예, 회장님.”
“자넨 꿈이 크지?”
“예? 아, 예.”
“정치인 하고 싶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람 보는 눈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거 하나 모르겠나? 애초에 돈 좀 준다고 앞길 창창한 데다가 깐깐하기까지 한 의사가 여길 왜 와? 좋은 연줄 하나 잡고 싶은 거지.”
조르주 클레망소는 침묵했다.
“그래. 내 옆에서 배울 점은 많이 있던가?”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신 인물이신데 배울 점이 왜 없겠습니까.”
“내가 훌륭한 사람이다?”
“예.”
“훌륭한 사람이라… 그래. 뭐, 혀 잘 돌아가는 거 보니 정치해도 패가망신은 안 당하겠군. 딱히 뭐라 조언하고 싶은 건 없는데, 하나만 명심하게.”
“뭐지요?”
기욤은 지팡이를 짚고 발을 내디뎠다.
“난 그냥 보통 사람이야.”
일주일 후, 기욤 드 툴롱은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