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iting Filmography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제 생각에는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오전.
안시현이 손해수와 만났다.
대한영화제에 참여하기 전,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함께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서였다.
식사를 하며 손해수가 안시현을 슬쩍 떠보았다.
“박 감독님 슬슬 시나리오 집필 마무리하고 계시겠네. 최근에 연락해 봤어?”
“아뇨. 대한영화제 끝날 즈음에 먼저 연락 주지 않을까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죠.”
“……그래?”
“어째 저보다 선배가 더 시나리오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인데요? 시나리오가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요?”
“응. 오죽하면 내가 오디션도 괜찮다고 사정했겠냐. 할리우드고 뭐고 다 떠나서 그냥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서 완성본을 빨리 보고 싶어.”
“저도 비슷해요.”
박의준 감독이 시나리오를 완성하길 기다리는 건 안시현과 손해수가 같았다. 심지어 손해수는 그사이 제주도를 몇 번이나 방문하며 박의준 감독의 작업 현황을 체크하기도 했다.
그만큼 박의준 감독의 차기작에 거는 기대가 컸다.
물론, 안시현의 시선은 박의준 감독의 차기작이 아닌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대한영화제에 향해 있었지만 말이다.
‘네 번째 대한영화제 남우주연상이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 줬지만, 『위장취업』이 워낙 압도적으로 흥행했기에 상대적으로 빛이 바라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안시현과 손해수가 흥행 성적에 비해 아쉬운 연기력을 보여 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위장취업』의 흥행에는 안시현과 손해수의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 정도다.
결국 유력한 수상 경쟁자는 손해수이며, 안시현이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안시현과 손해수, 박철우와 김현수.
둘 중 어느 쪽이 『위장취업』의 흥행에 더 큰 공헌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안시현과 박철우의 손을 들어 주는 이들이 더 많을 거다.
손해수가 좋은 연기를 보여 준 건 사실이다.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김현수 캐릭터를 통해 연기 변신에 성공했고, 안시현과 함께 『위장취업』의 흥행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안시현과 존재감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매 순간 헛다리를 제대로 짚으며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 준 박철우의 존재감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심지어는 손해수마저도 그렇게 생각했다.
『위장취업』의 흥행에 힘입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면, 그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안시현이여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대한영화제 시상식.
『위장취업』은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올해의 작품상, 감독상, 인기상 등, 도합 5개 부분에서 후보를 배출하며 2017년 상반기 최고 흥행 영화로서의 면모를 당당히 과시했다.
가장 먼저 수상의 영애를 안은 건 안시현이었다.
과반수가 넘는 득표를 기록하며 한국 연예계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당당하게 증명해 보였다.
안시현 다음은 최한수 감독의 차례였다.
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 감독상과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하며 『위장취업』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수상 소감을 말하며 최한수 감독은 눈시울을 붉혔다. 감독상을 받을 때에는 비교적 무덤덤했지만,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할 때는 벅차 감정을 좀처럼 다스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미련을 남기지 말자는 생각으로 『위장취업』을 준비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만, 이 자리에서는 두 사람만 언급하겠습니다. 뭐 하나 준비된 게 없는 상황에서도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 준 안시현 배우, 그리고 시나리오조차 보지 않고 제가 메가폰을 잡는다는 이유만으로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 준 손해수 배우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두 분이 있었기에 『위장취업』을 만들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과분한 상을 받으며 감독으로서 살아온 오랜 시간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순간부터 눈시울이 붉어져 있던 최한수 감독은, 수상 소감이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에는 결국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한 채 숨죽여 울었다.
덩달아 『위장취업』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눈시울 또한 붉어졌다. 안시현 또한 대한영화제 시상식 이후 조촐한 은퇴식을 마지막으로 메가폰을 내려놓을 최한수 감독을 바라보며 눈물을 참느라 고생해야만 했다.
그렇게 대한영화제는 대미를 장식할 남우주연상의 수상만을 앞두게 됐다.
전년도 대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송강식이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대망의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을 것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위장취업』의 안! 시! 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다수의 언론들이 예상했듯이 『위장취업』의 흥행을 이끈 안시현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됐다.
“축하한다, 시현아!”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역시 안 배우가 받을 줄 알았어요. 축하해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손해수의 진심 어린 축하를 시작으로, 『위장취업』을 함께 배우와 스태프들과 최한수 감독의 축하를 받으며 안시현이 무대 위에 올랐다.
품에 다 껴안지도 못할 만큼 꽃다발을 받은 뒤, 안시현이 스탠딩 마이크 앞에 얼굴을 가져다댔다.
그와 동시에,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붉어져 있던 안시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 번째 남우주연상이다. 심지어 세계 3대 영화제인 황금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도 받아 보았다. 그 외에도 수많은 상을 받아서 트로피를 전시하기 위해 방 하나를 통째로 사용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수상이 유독 의미 있게 다가왔다.
회귀 전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을 다시 한번 연기하며 더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거니와,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대한영화제 남우주연상 4회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안시현이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차분히 수상 소감을 이어 나갔다.
“중학교 연극부 활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제 인생의 반 이상을 연기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네 번째 남우주연상을 받았지만 제 인생은 지금까지와 달라지는 게 없을 겁니다. 죽는 순간까지 연기만 보고 사는, 연기로 보답하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회귀 전.
『위장취업』으로 대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말했던 소감에서, 단 세 글자만 더 추가된 짤막한 소감을 말이다.
그렇게 『위장취업』과 관련된 안시현의 마지막 스케줄이 종료되었다.
* * *
대한영화제 수상 다음 날.
혜인원 사옥에서 최한수 감독의 은퇴식이 진행됐다.
30명의 관계자와 몇몇 기자들만 초대한 채 최대한 조촐하게, 다 함께 식사를 하고 최한수 감독에게 공로패와 각자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는 정도였다.
은퇴식 다음 날, 안시현과 손해수는 출국하는 최한수 감독을 배웅했다.
“두 사람 다 프랑스에 한번 놀러 와요. 지방이라 그런지 파리와는 느낌이 전혀 달라요. 굳이 비교하자면 칸느와 비슷한 느낌이겠네요.”
“분위기가 장난 아니겠네요? 시간 내서 가족들과 함께 놀러 갈게요. 간만에 동민이도 한번 봐야죠.”
“허허허. 그래요. 간간히 연락합니다. 아마 몇 년 동안은 귀국하지 않을 터라 많이 보고 싶을 겁니다.”
“저희도요.”
“못 참을 정도로 보고 싶으면 보러 갈게요.”
최한수 감독을 떠나보내고 이틀 뒤.
안시현은 박의준 감독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번째 대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역시 시현 씨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해낼 줄 알았어요. 요 며칠 바빴겠네요?
“뒤풀이하고, 최 감독님 은퇴식 하고, 공항까지 배웅하고, 해수 선배 우울하다고 하셔서 대학로 가서 배우들하고 술자리 가지다 보니 며칠이 훌쩍 지나 버렸네요. 감독님은 어때요. 제주도의 여름은 좋아요?”
-제주도 떠난 지 며칠 돼서 잘 모르겠네요.
제주도를 떠났다는 말에, 안시현은 박의준 감독이 어디에 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혹시 지금 서울이에요?”
-네. 진모 씨랑 같이 올라왔어요. 처리할 게 조금 있어서 연락하는 게 늦었네요. 내일 점심에 시간 어때요? 진모 씨랑 둘이서 점심 식사 하려고 하는데. 손 배우님은 진모 씨가 전화해 보니까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당연히 되죠. 제가 이 연락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아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건 아니죠?
“딱 적절했어요.”
대한영화제가 끝나고 최한수 감독을 배웅해 준 이후에 연락이 왔다. 타이밍만 놓고 보면 안시현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위장취업』과 관련된 스케줄도 끝났으니, 이제 마음 편하게 박의준 감독의 차기작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다음 날 오전.
안시현이 점심 식사를 위해 박의준 감독이 미리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미리 와 있던 김진모와 박의준 감독이 보였다.
“딱 맞춰서 왔네. 해수 선배님도 다 왔대.”
“진모 너, 살 좀 찐 거 같다?”
“티 나? 나래 임신하고 나서 같이 엄청 먹었더니 좀 불었어. 작품 들어가기 전에 다시 몸 만들어야지.”
“먹고 싶다는 거 장난 아니게 많을 텐데?”
“응. 가끔씩 자다 일어나서 뭐 먹고 싶다고 그러면 나가서 사 오고 그러는 중이다.”
4월 초.
김진모는 SNS을 통해 한나래가 임신했으며, 2017년 연말에 아빠가 될 것이라고 알렸다.
회귀 전 다수의 배우와 염문설을 뿌리면서도 결혼 생각이 없었던 김진모가, 이번 생에서는 제주도에 터전을 잡은 가장 큰 이유였던 2세 계획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게 된 것이다.
안시현은 김진모가 아빠가 된다는 게 영 어색했다.
물론 그와 별개로 몇 달 내로 2세와 함께하게 될 김진모의 미래를 축하해 주고, 선물 또한 약속했지만 말이다.
근황에 대해 대화를 나눈 뒤.
식사를 하며 본격적인 일 이야기가 시작됐다.
“시나리오는 완성됐는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요?”
“네. 아직 타이틀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후보군은 여러 개 있는데 죄다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말인데, 시현 씨와 손 배우님이 시나리오를 보고서 타이틀을 정해 줬으면 합니다.”
보통 시나리오 집필 전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타이틀이 정해지거나, 집필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타이틀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혹은 아무리 늦어도 집필이 마무리될 시점에서는 타이틀이 정해지곤 하는데…….
집필이 마무리됐는데 아직까지 타이틀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다소 의외였다.
안시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나리오를 보고 타이틀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읽어 보고 생각나는 대로 던져 볼게요.”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정 안 되면 타이틀 공모전이라도 한번 하면 되는 거죠.”
박의준 감독이 가방에서 시나리오 두 부를 꺼내 각각 안시현과 손해수에게 건넸다.
안시현과 손해수는 식사가 끝난 뒤, 디저트를 먹으며 차분하게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두 시간 뒤.
손해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이 시나리오를 선택하길 잘했습니다. 퇴고를 안 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퇴고를 하며 다소 정신 사나운 부분들만 손본다면 완벽할 것 같습니다.”
“네. 저도 그 부분들을 고려하고서 퇴고를 할 생각이에요. 혹시 타이틀과 관련된 아이디어는 없나요?”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생각나는 대로 몽땅 말해 주세요.”
손해수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타이틀과 관련해서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이내 박의준 감독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스쳤다.
“저랑 진모 씨가 이야기한 것과 겹치네요.”
“네. 저도 말하면서 왠지 겹칠 것 같아서요. 이거다 싶은 타이틀들은 아니었으니까요.”
잠시 후.
김진모와 손해수와 박의준 감독의 시선이 시나리오를 보고 있는 안시현에게로 향했다. 과연 안시현의 입에서는 어떤 아이디어가 나올지 내심 궁금했다.
시나리오를 본 소감을 짤막하게 말한 뒤.
안시현이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서 타이틀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제 생각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