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58
57화 – 팀플레이
샤커는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검은 탄환이 된 샤커는 볼링핀을 쓰러트리는 볼링공처럼 오크 군대를 덮쳤다. 수십의 오크 전사들이 허공을 날았다. 완벽한 스트라이크였다.
오크 궁수들의 활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냈다. 수십 개의 화살이 그의 몸을 때리는 순간, 그의 몸에서 시커먼 어둠이 뭉클 솟아났다.
파바박. 어둠은 마치 탄력 있는 젤리처럼 화살들을 받아들였다가 도로 토해냈다.
샤커가 양손에 들린 오크 전사들을 집어 던졌다. 그들은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 오크 궁수들을 헤집어 놓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샤커가 바닥을 박찼다.
쾅! 미사일처럼 솟구친 샤커의 몸이 단숨에 수십 미터를 날아 오크 궁수들의 한가운데로 떨어져 내렸다.
학살이 벌어졌다. 샤커는 닥치는 대로 손발을 휘두르며 오크들을 죽였다.
그의 커다란 손에 잡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박살이 났고, 그의 육중한 발길질에 걸리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오크들은 샤커의 손에 붙잡혀 터져 죽었고, 그가 휘두르는 주먹에 맞아 죽었고, 아무렇게나 내지른 발에 걸려 터져 죽었다.
용훈은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크의 바다 한가운데서 태풍이 되어 휘몰아치는 존재가 자신과 같은 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든든했다.
투둥. 투둥. 투두둥. 멸절의 여섯 날개가 불을 뿜었다. 마법도 필요 없었다. 적들의 신경은 모조리 샤커에게 쏠려 있었기에 그는 그들의 뒤통수만 노리는 걸로 족했다.
“크허엉!”
파바박,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늑대가 용훈을 향해 뛰어올랐다. 놈의 등 위에는 양손에 글레이브를 든 오크가 앉아있었다.
용훈은 허공에 높이 뜬 오크 라이더를 향해 멸절의 여섯 날개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다. 아니, 그럴 기회가 없었다.
어느새 수십 미터를 날아온 샤커가 공중에서 오크 라이더를 낚아챘다. 쿵! 굉음을 울리며 바닥에 내려선 샤커는 거대한 늑대의 꼬리를 양손으로 쥐고 놈의 몸을 바닥에 연신 내려쳤다.
꽝! 꽝! 꽝! 꽝! 무시무시한 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너덜너덜해진 늑대의 시신이 엄청난 양의 피를 뿌렸다.
“크와아아아아악!”
늑대의 피를 뒤집어쓴 채 샤커가 괴성을 질렀다. 그 흉흉한 기세에 오크 군대가 겁에 질려 주춤주춤 물러섰다.
용훈은 문득 어렸을 때 읽었던 삼국지를 떠올렸다. 장판파를 막아섰던 장비가 이랬을까?
아니, 아무리 장비 익덕이 맹장(猛將)으로 유명하다 하더라도 지금의 샤커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장비가 일기당천(一騎當千)이라면 샤커는 말 그대로 일인당천하(一人當天下)였으니까.
샤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겁을 먹을 대로 먹은 오크 군대는 그를 막지 못했다.
그때였다.
“가서 물어라! 스피릿 울프!”
탁하고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거대한 덩치의 늑대 세 마리가 튀어나왔다. 놈들은 마치 허상처럼 반대편이 흐릿하게 들여다보이는 반투명한 몸을 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속도는 기가 막히게 빨랐다. 흐릿한 회색 선처럼 질주하던 세 마리의 늑대가 샤커를 향해 뛰어올랐다.
샤커는 정면으로 달려드는 늑대의 주둥이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놈의 힘도 엄청났지만 샤커는 더 강했다.
샤커는 자신보다도 한참이나 더 큰 늑대를 거꾸로 들어 바닥에 내려찍었다.
꽈앙!
“캐갱!”
주둥이가 뭉개지고 목뼈가 꺾인 스피릿 울프가 비명을 질렀다. 축 늘어진 놈의 몸이 점점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두 마리가 샤커를 좌우에서 물어뜯었다.
콰드득! 놀랍게도 스피릿 울프의 반투명한 이빨은 샤커의 어둠을 찢고 그의 새카만 육체에 흠집을 냈다. 쭉 찢어진 상처 사이로 한층 더 검은 어둠이 피처럼 흘러내렸다.
“크와악!”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분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샤커는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괴성을 터트렸다.
“일어서라! 맹공의 오벨리스크!”
콰드드득! 예의 그 목소리가 소리치자 전장 한가운데에서 뾰족한 사각뿔이 솟아올랐다.
[주인님, 맹공의 오벨리스크는 군중 보조 계열의 주술입니다. 저것이 존재하는 한 이 영역 내의 적은 영속적으로 능력치가 향상됩니다.]용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맹공의 오벨리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안개처럼, 그것은 넓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오크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공포가 사라졌다. 그다음으로는 도핑한 운동선수처럼 놈들의 근육이 팽팽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겨우 두 개의 주술로 전황이 뒤집혔다. 샤커가 스피릿 울프에게 발이 묶인 사이, 오크들은 공포를 털고 일어나 맹렬히 반격에 나섰다.
용훈은 날아드는 화살들을 피하며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르세인! 상대를 바꾼다! 늑대들은 내가 맡을 테니 너는 오벨리스크를 파괴해! 알았나!”
용훈은 샤커가 아닌 르세인을 불렀다. 그리고 샤커의 내면에서 눈을 뜬 르세인은 용훈의 뜻을 알아들었다.
“크와아악!”
샤커가 괴성과 함께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그의 오른팔을 물고 있던 스피릿 울프 채로 반대편의 스피릿 울프를 내려쳤다.
꽈광!
“깨갱!”
강렬한 충격에 두 마리의 늑대가 바닥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선수가 교체됐다.
쾅! 샤커가 바닥을 박차며 오벨리스크를 향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가자 두 마리의 늑대 역시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어딜!”
어느새 날아온 용훈이 가장 앞에서 몸을 날리던 늑대의 콧잔등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의 손에는 파랗게 빛나는 손쇠뇌가 들려있었다.
용훈은 붕산각포의 기운을 두른 발로 발밑의 늑대를 박차며 두 번째 늑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묵직한 기운에 짓눌린 첫 번째 늑대가 수직으로 떨어지며 바닥을 부수고 처박혔다.
두 번째 늑대는 거대한 아가리와 날카로운 이빨로 용훈을 압박해왔다. 용훈은 암석 육체를 두른 팔과 다리로 놈의 주둥이를 받쳤다.
콰드득! 암석 육체가 부서지며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동시에 위아래에서 묵직한 힘이 그를 짜부라트리려 하고 있었다.
“꽤 하네, 늑대 새끼가.”
용훈은 찌푸린 얼굴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둥! 세 가닥의 푸른 섬광이 스피릿 울프의 머리를 꿰뚫고 솟구쳤다. 놈의 몸이 점차 흐릿해지자 용훈은 위아래에서 그를 압박하던 힘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디멘션 슬라이드를 사용해 그가 몸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그의 아래에서는 늑대가 막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용훈은 디멘션 슬라이드의 가속에 암석 육체와 붕산각포를 더해 만든 힘으로 놈의 머리를 짓밟았다.
꽝! 굉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산산이 부서진 스피릿 울프의 잔해가 천천히 사라져 갔다.
늑대를 정리한 용훈이 고개를 돌렸다. 샤커는 전보다 훨씬 강해진 저항에도 불구하고 폭주기관차처럼 일직선으로 오벨리스크를 향하고 있었다.
“르세인! 놈들은 내가 막을 테니 오벨리스크를 부숴! 그 후에는 나머지 다 무시하고 주술사한테 붙어라!”
“크와악!”
용훈은 지시하고 샤커는 괴성으로 대답하는, 참으로 괴상하고도 그들다운 커뮤니케이션이 이어졌다.
투두두둥! 붉은 문양을 띈 멸절의 여섯 날개가 미친 듯이 불을 뿜었다. 퍼버버벙! 한꺼번에 날아든 수십 개의 폭발 화살이 일제히 폭염을 터트렸다.
퓩! 화염을 뚫고 샤커의 커다란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는 곧장 맹공의 오벨리스크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저놈을 막아라! 흘러넘치는 번개!”
어디선가 격렬하게 요동치는 번개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마치 폭우 뒤의 계곡처럼 격렬한 흐름으로 샤커의 몸을 지져댔다.
“크와아아아아!”
번개의 맹렬한 공격에 샤커의 몸을 두른 어둠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고통이 상당한지 샤커가 이를 악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고통보다도, 상처보다도 그는 용훈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크아아압!”
맹렬하게 쏘아지던 샤커가 빙글 몸을 돌리며 번개 같은 돌려차기를 날렸다.
그의 철탑 같은 다리가 오벨리스크의 밑둥을 후려쳤다. 꽈광! 폭음이 터지며 오벨리스크의 밑둥이 폭발했다.
뿌리를 잃은 오벨리스크가 쓰러지며 근처의 오크들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오크 군대의 몸이 바람이 빠지듯 쪼그라들었다. 마취가 풀리자 전보다 몇 배의 공포가 그들의 정신을 엄습했다.
샤커는 걸리적거리는 오크들을 짓밟으며 멀찍이 서있던 오크 주술사를 향해 달려나갔다.
“막아! 막으란 말이다! 스피릿 울프!”
다시 큼지막한 주술이 펼쳐지며 거대한 늑대 세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난감은 치워!”
투두두둥! 빛살처럼 날아든 차원 화살들이 두 마리의 늑대를 벌집처럼 꿰뚫었다. 다른 한 마리의 늑대는 샤커에게 붙잡혀 위아래로 찢겨 버렸다.
늑대들이 치워지자 드디어 가즈낙 어스퓨리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오크치고는 왜소한 체구에 허리까지 굽은 노인이었다.
“이놈들이 감히 철혈을 성채를 노려! 내게 오라! 질풍!”
순간 그의 몸 위로 짙은 회색의 기류가 모여들었다. 맹렬히 회전하는 회색 기류를 감은 그가 허리를 쭉 펴고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 속도가 눈부시게 빨랐다. 샤커가 한순간 그를 놓칠 정도였다.
“어? 야, 자비스, 저거 혹시 내 질풍이랑 같은 거냐?”
[비슷한 계열의 가속 능력인 것 같습니다. 다만 효율 면에서는 주인님의 능력보다 조금 떨어지는군요.]질풍으로 가속된 가즈낙은 두 자루의 칼을 꺼내 휘두르고 있었다. 그가 바람처럼 주변을 돌며 칼을 휘두르자 샤커는 어둠을 둘러 방어를 굳힌 채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흠.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나 한번 볼까?”
용훈은 오크 군대의 잔당들을 정리하며 가즈낙과 샤커의 싸움을 힐끔거렸다.
둘의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즈낙의 칼은 샤커의 어둠을 뚫지 못했고 샤커는 바람 같은 가즈낙을 따라잡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결판은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빠르고 간단한 방법으로.
꽝! 철혈의 성채 전체가 들썩일 정도의 충격파가 터졌다. 샤커가 전력을 다해 바닥을 내려친 것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충격에 가즈낙의 몸이 일시적으로 허공에 떠 버렸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상체를 돌리면 어깨가 닿을 정도로 좁은 간격 사이로 내딛는 반보(半步). 동시에 직선으로 내뻗어지는 짧은 주먹.
쾅! 동작은 작았으되 충격마저 작진 않았다. 그 간결한 주먹은 가즈낙의 육체를 산산이 폭파시켜 버렸다.
[형의권(形意拳)의 붕권(崩拳)이군요. 완벽합니다.]자비스가 순수하게 감탄을 터트렸다. 용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격에 가즈낙을 분쇄한 샤커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사이 남아있던 오크 군대는 용훈에게 모두 쓰러진 상태였다.
샤커와 용훈의 눈이 마주쳤다. 용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샤커의 눈이 굳게 닫힌 서문을 향했다.
잠시 후 샤커가 검은 탄환이 되어 문을 후려치자 박살 난 서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퀘스트 클리어. 철혈의 성채의 서문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