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64
63화 – 변화의 시작
완전히 일어선 카포무스의 키는 거의 10m에 달했다. 게다가 그의 몸은 피처럼 붉은 암석으로 꽉 차 있었다. 웬만한 힘으로는 흠집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쿵쿵쿵! 카포무스가 지축을 울리며 달려들었다. 용훈은 다시 멸절의 여섯 날개를 들어 올려 광휘의 창을 쏘아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빠르게 옆으로 몸을 날렸다. 아무래도 그 많은 광휘의 창을 완벽하게 막아낸 것에는 무슨 비밀이 있을 것만 같았다.
예상대로였다. 광휘의 창은 카포무스의 몸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에게서 약 1m 전방에서 저 혼자 폭발한 것이었다.
‘뭐지? 보호막이라도 사용하는 건가?’
용훈은 빠르게 주변을 돌며 폭발 화살과 차원 화살을 섞어 쏘았다. 카포무스를 보호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영리하게도 카포무스는 불필요한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차원 화살은 그냥 몸으로 버텨냈고 속도가 느린 폭발 화살은 파리를 쫓듯 손등을 휘둘러 쳐냈다.
용훈이 계속해서 주변을 돌며 쿼렐을 날려대자 카포무스가 답답했는지 괴성을 터트렸다.
– 언제까지 앵앵거릴 셈이냐!
그의 거대한 주먹이 바닥을 내려쳤다. 쿠아앙! 격렬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순간 용훈은 급작스런 위기감을 느끼며 바닥을 박찼다. 솟구치는 그의 몸을 따라 날카로운 석순들이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연달아 솟구치는 석순들을 피해 용훈이 디멘션 슬라이드를 사용했다. 한순간 그의 몸이 훅 사라지는가 싶더니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후웅! 갑자기 그의 눈앞으로 거대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놀랍게도 카포무스는 용훈의 착지점을 눈치채고 미리 이동한 것이었다.
이를 악물며 용훈이 몸을 비틀었다. 동시에 그의 발이 복잡한 보법을 밟으며 카포무스의 공격 범위 밖으로 움직였다.
거대한 주먹이 스쳐 지나가며 용훈의 몸을 긁었다. 단숨에 만변자의 피부가 찢겨나가며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용훈은 훌쩍 거리를 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들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만변자의 피부는 여전히 유용하며 강력한 아이템이었지만, 지금처럼 진정한 강자를 상대할 때면 보통의 의복이나 마찬가지였다. 단 한방의 공격도 막아내지 못하는 것이 무슨 방어구란 말인가.
‘여기 공략이 끝나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만변자의 피부부터 업그레이드를 시켜야겠어.’
몇 달 동안 열심히 던전을 털며 대단한 아이템들을 모아두었다. 샤커와 용훈 모두 아이템이 필요 없는 강자였기에 그것들은 모조리 소모품이 될 운명이었다.
데우스 등급의 만변자의 피부를 상상하자 벌써부터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그전에 이놈부터 빨리 정리해야지.’
용훈은 폭발 화살을 난사하며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이제 슬슬 접근전으로 들어가 데미지를 줄 차례였다.
붉은빛의 폭발 화살이 비처럼 날아들자 카포무스는 일일이 쳐내는 대신 예의 그 보호막을 불러냈다.
용훈은 좌측으로 빙 돌아 카포무스의 뒤를 잡으며 보호막을 살폈다. 터져 나오는 화염 덕에 그는 보호막의 대략적인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 2미터 가량의 투명한 반구형을 띠고 있었다. 밥그릇처럼 깊은 것이 아니라 콘택트렌즈처럼 넓고 얕은 반구형.
형태를 확인했다면 남은 것은 빈틈을 공략하는 것. 용훈은 눈을 빛내며 카포무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훌쩍 뛰어오른 그가 황금빛 섬광을 쏘아냈다. 놀란 카포무스가 몸을 돌리며 예의 보호막을 펼쳤다. 광휘의 창은 카포무스의 보호막을 흔들며 황금빛 폭발을 일으켰다.
순간 용훈은 황금빛 폭발의 파편에 몸을 숨기며 디멘션 슬라이드로 몸을 내리눌렀다. 소리 없이 내려선 그가 단숨에 굉뢰포를 쏘아냈다.
굉뢰포의 막강한 힘의 격류가 바닥을 스치며 카포무스의 하체를 쓸어갔다. 용훈은 이번에야말로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꽈앙! 하지만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무언가에 부딪힌 듯 폭발하는 굉뢰포를 보며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 하찮은 잔재주로 날 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폭발의 잔해 사이로 카포무스가 거대한 주먹을 찔러넣었다. 용훈은 뒤쪽으로 디멘션 슬라이드를 사용해 그의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순간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분명 카포무스의 주먹보다 빠른 속도로 물러섰다. 그의 주먹이 고무줄처럼 늘어나지 않는 한 그것에 맞을 일은 없었다.
그래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짧은 감각이 스쳐 지나간 직후 거대한 힘이 용훈을 덮쳤다.
“끄아아악!”
열차에 받힌 승용차처럼 용훈은 무지막지한 기세로 바닥을 부수며 날아갔다. 총알처럼 날아든 그가 붉은 암벽에 부딪히자 엄청난 충격파가 터지며 벽 전체가 움푹 패여버렸다.
“커헉!”
바닥에 떨어진 용훈이 한 움큼 피를 토했다. 극심한 충격에 몸이 덜덜 떨렸다.
쿵쿵쿵! 굉음을 울리며 카포무스가 달려왔다. 용훈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추스르며 힘겹게 일어섰다.
카포무스가 발을 구르자 수십 개의 석순이 창처럼 용훈을 향해 날아들었다.
“질풍!”
피를 튀기며 용훈이 질풍을 불러들였다. 연기처럼 피어오른 짙은 회색의 기류가 그의 몸을 휘돌았다.
석순의 창이 순간 멈춘 듯 느려졌다. 용훈은 악귀처럼 인상을 구기며 석순의 창을 타 넘었다.
카포무스 역시 정지한 것처럼 서 있었다. 용훈은 허공을 훨훨 날아 그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붕산각포의 힘이 담긴 묵직한 뒤축이 그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순간 용훈은 느려진 시간 속에서 홀로 빠르게 움직이는 무언가를 느꼈다.
허공이 스스로 움직인다 싶던 그것이 어느새 엉겨 붙으며 반구형의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쩌엉! 강렬한 반탄력에 용훈이 물러섰다. 그런 그의 코앞으로 카포무스의 거대한 주먹이 다가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시간의 축이 다르다고 생각될 정도로 속도의 차이가 역력했는데, 어떻게 카포무스는 움직이는 용훈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는 것일까.
기겁한 용훈이 디멘션 슬라이드를 사용해 그것을 피해냈다. 멀찍이 거리를 벌린 용훈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좀 전에 제대로 얻어맞았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감각을 끌어올리며 주변을 살피자 역시나 무언가가 느껴졌다. 보호막을 만들어내던 은밀한 힘의 흐름이 빠르게 그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용훈은 지체하지 않고 장미 군주의 손가락을 휘둘러 몸을 뽑아 올렸다. 단숨에 거대한 홀의 반대편까지 이동한 용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카포무스를 돌아보았다.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설마 정신계 능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냐?”
용훈은 그동안 겪었던 일을 돌아보았다.
카포무스는 귀신처럼 용훈의 움직임을 읽어냈고 그에 맞춰 치명적인 공격들을 가해왔다. 이것은 완벽한 전투 예측. 정신계 능력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다.
보호막은 또 어떤가. 보통 때는 반구형을 유지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보호막. 그런 것은 염동력으로 만들어낸 보호막뿐이다. 그리고 염동력 역시 정신계 능력자의 가장 큰 무기였다.
그러고 보니 누카시온은 발성 기관 없이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이 기본적인 정신계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텔레파시를 쓴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한 번쯤 의심했어야 했어. 쳇.”
용훈은 아직까지 저릿한 몸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다행히 그동안 성장한 덕에 만변자의 피부도 해제되지 않았다.
– 눈치가 빠르구나, 쥐새끼! 그래도 네놈이 여기서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카포무스가 또다시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하지만 용훈은 편안한 표정으로 가볍게 몸을 풀 뿐이었다.
“어이, 덩치. 너 그거 알아? 자비스가 이렇게 말했거든. 나는 너의 완벽한 천적이라고.”
– 웃기지 마라! 누카시온의 군주에게 천적 따윈 없다!
“재밌지? 자비스는 네게 정신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몰랐단 말이야. 그런데도 어떻게 내가 니 천적이라는 걸 알았을까? 그냥 운이 좋았던 건가?”
– 뭐라고 떠드는 거냐!
아직 거리가 상당히 멀었는데도 카포무스는 상관없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순간 거대한 염동력의 충격파가 해일처럼 용훈을 덮쳐왔다.
피식. 용훈은 시야를 온통 뒤덮는 염동력의 파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기대해라. 절망을 보게 될 테니까.”
용훈의 눈이 감겼다. 그 모습이 마치 수레를 막아선 사마귀처럼 무모해 보였다.
순간 용훈의 미간에서 흰빛이 반짝였다. LED 전구를 켠 듯 그것은 작고 위태롭게 빛을 발했다.
흰빛은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주위를 밝혀나갔다. 마치 물감 한 방울이 캔버스에 번지듯 흰빛은 거대한 홀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었다.
그 미약한 흰빛에 카포무스의 거대한 염동력이 맞부딪쳤다. 카포무스는 당연히 자신의 힘이 단숨에 용훈을 짓이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미약한 흰빛을 쐬자 그의 염동력은 설탕이 물에 녹듯 스르르 녹아버리는 것이었다.
흰빛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허물어지는 염동력을 타고 점점 더 빨라진 그것이 마침내 카포무스을 덮쳤다. 카포무스는 자신의 능력의 근간이 되는 정신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 크아아악! 도대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카포무스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가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다.
용훈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미간은 여전히 미약한 흰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별거 아니야. 일종의 전파방해라고 할까? 정신계 능력은 그 기반을 능력자의 뇌파에 두고 있거든. 나는 거기에 살짝 잡음을 섞어줄 뿐인 거지. 우습게도 정신계 능력은 겨우 이 정도 잡음에도 무너지더라고. 유용하고 강력하지만, 꽤나 델리케이트한 능력이지.”
– 크… 치지직… 으아… 치지지직…
용훈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카포무스의 텔레파시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카포무스의 얼굴에 서서히 공포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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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계 능력을 잃은 카포무스는 그저 조금 단단한 샌드백에 불과했다. 정신계 능력자가 뇌파를 침범당한다는 것은 단순히 능력을 쓰고 못쓰고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일반인으로 치면 오감을 거세당하는듯한 충격이었다. 한순간에 눈이 멀고 귀가 먹고 손발이 잘려나간 것 같은 충격.
용훈은 머리를 감싸 쥔 채 휘청이는 카포무스를 신명나게 두들겨 팼다.
카포무스는 그 명성대로 정말 엄청나게 단단했다. 마나를 세 번이나 바닥내면서 광휘의 창을 꽂아넣었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결국, 뒤통수에 칠연굉뢰포를 때려 박고서야 그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용훈은 사방으로 흩어진 핏빛 돌조각을 바라보며 자비스를 불렀다.
“여긴 끝났어, 자비스. 거긴 어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직 잘 버티고 있긴 하지만 누적된 데미지가 너무 큽니다.]“알았어. 먼저 돌아가라고 해. 난 성역에 들렀다가 돌아갈게.”
[알겠습니다.]자비스와의 연결이 끊겼다. 아무리 상처를 입었다 해도 샤커는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요란한 게 문제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용훈만큼이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놈이었으니까.
용훈은 성역을 찾기 위해 몸을 돌렸다. 성역은 거대한 홀의 정중앙, 누카시온의 왕좌에 있었다.
용훈은 성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반도 못 가서 멈춰 서고 말았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뭐야, 성역이···. 사라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