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69
68화 – 출정식
용훈의 말에 UHRS 코리아 측 인사들의 얼굴이 변했다. 그것은 아직 극비리에 부쳐진 정보였다.
“언제까지 쉬쉬할 거야? 빨리 알려야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거 아냐. 안 그래?”
모여든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UHRS 코리아의 헌터들은 고개를 숙인 채였다.
용훈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모두에게 알리세요. 지금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위험합니다. 언제 던전이 깨져나갈지 몰라요. 게다가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곧 더 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게 진짜 문젭니다.”
또 다른 폭탄선언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던전의 이상 현상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던전이 우리의 현실과 융합되는 일까지 벌어질 겁니다. 게이트 내부의 세상이 현실에 구현된단 말입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몬스터들까지 모조리 다.”
던전과 현실의 융합. 그 충격적인 사실은 용훈의 생각보다 임팩트가 없었다. 모여든 헌터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게 무슨 문제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답답한 사람들. 이해가 안 가요? 던전 내부의 환경이 현실에 덮어써진단 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엄청난 파괴와 혼란에 휩싸일 겁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계셨겠지만, 던전 내부의 몬스터들은 그 안에서 보여준 실력보다 훨씬 더 강해요. 그동안은 던전의 등급과 퀘스트 등급에 의해 힘의 절대량이 억제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놈들이 던전 밖으로 나온다면? 그놈들을 현실에 풀어놓는 순간 그들의 힘을 억제하던 구속력은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몇 달 전에 있었던 워싱턴 DC의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헌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벌어졌던 사건은 그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갑자기 현실에 등장한 레어 던전의 몬스터들. 그러나 놈들은 레어 던전의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강했다. 때문에 그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수의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었다.
“그런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질 겁니다. 그것도 저번처럼 몇 마리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던전이 통째로 떨어진단 말입니다.”
그제야 충격이 찾아왔다. 모여든 헌터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그중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은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겁니까? 호, 혹시라도 당신이···.”
그는 말하는 도중에 말끝을 흐렸다. 그런 그를 향해 용훈이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당신이 뭐? 계속해봐.”
“아, 아닙니다···.”
“아니긴. 내가 할까? 날 어떻게 믿느냐고 묻고 싶은 거잖아. 아니야? 그럼 혹시 내가 그 모든 일을 저지른 건 아니냐고 묻고 싶은 거였어?”
용훈의 말이 이어질수록 남자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갔다.
용훈은 그 남자의 옆을 지나치며 어깨를 짚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주위를 둘러싼 수백의 헌터들을 향해 있었다.
“확실히 하지. 증명할 방법은 없어. 하지만 난 아니야. 너희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는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자꾸 유리벽에 대가리 박고 죽어 나가는 꼴이 보기 안타까워서 그래. 그러니 날 의심할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살려놔. 나중에는 그놈 한 명분의 힘이라도 절실할 날이 올 테니까.”
용훈의 나직한 목소리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헌터들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저마다의 생각에 잠긴 듯 사람들이 입을 다물자 용훈이 몸을 돌렸다.
“난 할 얘기 다 했어.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너희 각자가 결정할 일이지. 하지만 두고 보라고. 얼마 후 첫 던전 융합이 발생하면 모두들 깨닫게 될 거야. 이제 길드의 세상은 갔다는 걸. 인간은 모두 한편이 되어야 해. 모두가 똘똘 뭉쳐서 대항한다 해도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인데, 밥그릇 싸움이나 하겠다면 말리지 않겠어. 다만 그 때문에 다른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면 그 꼴은 못 봐. 그런 놈들은 내가 지하실 바닥의 타일 하나까지 가루로 만들어준다. 못 믿겠으면 한번 해 보던가.”
말을 마친 용훈이 바닥을 박찼다. 승룡포의 수법을 응용한 추진력으로 몸을 쏘아 올리자 엄청난 굉음이 터지며 그의 몸이 미사일처럼 솟구쳤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용훈은 측면을 향해 다시 한 번 추진력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디멘션 슬라이드를 섞으며 윙슈트를 전개했다.
사람들은 차원이 다른 용훈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유성처럼 하늘을 가로지르며 사라지는 용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로 며칠이 흘렀다. 여전히 뉴스에서는 은빛 돌풍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뉴스는 없었다.
용훈의 말을 듣고도 UHRS 코리아나 길드들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며 화를 낼 법도 한데도, 용훈은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는 자비스를 통해 한국의 길드들이 더이상 던전을 공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UHRS를 통해 세계 각국으로도 연락이 갔는지, 던전 공략 빈도는 세계적으로 급감하고 있었다.
일단은 이것이면 족했다. 다가올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병력이 필요하다.
자비스는 메인 시스템이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만약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면, 가디언 프로토콜을 설계할 당시부터 문제의 소지를 남기지 않았을 테니까.
만약 이 사태가 길어진다면 용훈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던전에 들어가고 퀘스트를 수행하는 따위의 쓸데없는 일들을 전부 패스하고 오로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폭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버티느냐 하는 것이었다. 용훈이 자신만의 욕심을 챙기는 사이 세상이 망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일단은 한시름 놨다. 길드들이 던전의 공략을 멈췄다는 것은 그만큼 병력을 세이브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아마 모르긴 해도 모두들 음으로 양으로 길드의 힘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이미 자비스로부터 세계 무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용훈은 이제 그쪽은 더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대신 그는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메인 시스템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포악해지는 던전 프로세스의 폭주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용훈이 여의도에 모습을 드러낸 지 정확히 2주가 지난 어느 날, 최초의 던전 융합이 현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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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주목.”
단상에 올라선 용훈의 말에 웅성거리던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용훈은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여 명의 헌터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시스템으로 데려온 자도 있었고 아닌 자도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은 그들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헌터라는 것이었다. 또한 용훈을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는 것도 같았다.
“드디어 일이 터질 것 같다. 장소는 용인시 어디쯤으로 추정되고. 해당 던전은 매직 등급이다. 인스턴스 명은 어둠의 세계수. 흔히 등장하는 인스턴스니 다들 한두 번씩은 경험이 있겠지.”
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의 세계수는 그 방대한 면적 덕에 상당히 다양한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인스턴스였다.
때문에 실버 랭커로 올라서는 헌터들 대부분은 어둠의 세계수를 두어 번 이상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중에 어둠의 세계수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을 모르는 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 너…”
[장학우입니다.]용훈이 이름을 몰라 버벅이자 자비스가 얼른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장학우 맞나.”
“그렇습니다.”
먼발치에서 봤을 뿐인데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다니. 장학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장학우. 한 번 묻자. 어둠의 세계수에는 무슨 무슨 몬스터가 등장하냐.”
“네. 가장 흔한 것은 역시 거주 종족인 폴른 엘프입니다. 이들은 순찰자, 추적자, 암살자, 대적자, 파괴자, 이렇게 다섯 가지의 직업을 가지며 직업별로 특색과 힘의 수준에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그 외에는 폴른 엘프가 부리는 엘레멘탈 서번트와 워킹 트리가 있고 간혹 폴른 엘프와 적대하는 드워프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아주 잘 말해줬다. 근데 말이야. 그놈들 수준은 어때?”
“네?”
“그 폴른 엘프라는 놈들 말이야. 헌터들과 비교하자면 어느 정도 수준이지?”
장학우는 잠시동안 ‘뭔 이딴 질문이 다 있지?’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마치 자신은 헌터가 아닌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저 남자는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자였다. 동시에 길드의 최강자들이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자이기도 했다.
그런 자가 설마 저걸 몰라서 물었을까. 아마 전부 다 알면서 자신을 떠보려는 것이리라.
“어둠의 세계수는 주로 매직 등급과 레어 등급에서 출몰합니다. 등장하는 몬스터는 매직 C등급에서 레어 A등급까지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레어 A등급이라면 탑 포지션의 실버 랭커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맞아?’
[정확합니다. 똑똑한 친구군요.]‘그렇게 생겼잖아.’
용훈은 속으로 웃음을 삭이며 짐짓 근엄한 표정을 이어갔다.
“그럼 자네 말대로라면 용인 지역에 곧 모습을 드러낼 몬스터들은 아무리 강해 봐야 레어 A등급 정도라고 봐도 되겠군?”
“보스나 네임드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좋아. 아주 좋은 대답이었어. 하지만 아쉽군. 자네는 틀렸어.”
“네?”
용훈은 대답 대신 모여선 헌터들을 돌아보았다.
“여기 모인 자네들은 우리 길드의 최강자들이지. 아니 아니. 대한민국의, 더 나아가 세계의 최강자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야. 랭킹 따위는 잊어. 쌓아놓은 포인트로만 평가하는 랭킹 같은 건 개나 줘버리라고.”
용훈의 말에 사람들은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곧바로 깨져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다 소용없겠군. 지금 이대로 용인에 갔다가는 대부분이 죽어 자빠질 거거든.”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곳에 모인 자들은 아무리 랭킹이 낮은 자라도 미드 포지션의 골드 랭커였다.
그런데 겨우 레어 던전에 불과한 어둠의 세계수에서 모조리 죽어버릴 거라니? 이것은 모욕에 가까운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입밖에 담지 않았다. 이준수는 길드를 확실하게 단련시켜 두었다. 용훈은 일말의 불만을 아무렇지 않게 억누르며 전의를 불태우는 헌터들을 만족스럽게 돌아보았다.
“기분 나쁘겠지. 하지만 인정하는 게 좋을 거다. 내가 말한 것은 질 낮은 도발도 아니고 너희를 비하하려는 것도 아니야. 문제는 던전을 나온 몬스터들은 그들의 힘을 억제하던 구속력에서 자유롭다는 거지. 만약 그들을 레어 A등급 같은 수치로 따지려 들었다가는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 거야.”
용훈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들었다.
“잘 들어라. 이제부터 용인은 지구가 아니다. 거기는 이계(異界)다. 그리고 우리는 이계를 정복하러 가는 거다. 던전이니 등급이니 하는 것은 전부 잊어라.”
자연스럽게 영웅의 웅변술이 발동되며 용훈의 목소리가 길드원들의 가슴을 울렸다. 모두의 집중력이 최고조를 찍을 때 용훈이 입을 열었다.
“놈들은 강하다. 하지만 우리는 더 강하지. 가서 본때를 보여주는 거다. 함부로 우리 땅에 숟가락 얹는 놈들이 어떤 꼴이 되는지 말이다. 알겠나!”
우오오오오!
길드원들이 일제히 양손을 치켜들며 고함을 쳤다. 길드 베루스 데우스는 그렇게 출정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