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84
83화 – 아칸젤 썬더퓨리
용훈은 박태훈을 콜로라도 주의 임시 대책 본부로 모셨다.
그를 침대에 눕힌 후 용훈은 본부에 남은 베루스 데우스의 길드원들에게 최선을 다해 박태훈을 돌볼 것을 명령했다.
박태훈을 맡긴 후 용훈은 다시 공간을 넘었다. ICBM이 신의 탑에 어느 정도나 데미지를 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신의 탑이 작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나타났다.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자 멀리서 구름을 뚫고 떨어지는 미사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에서 내려꽂히는 수십 발의 미사일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마치 유성우와도 같은 모습.
이것만으로 신의 탑이 완파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상당한 충격은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그의 생각과 사뭇 달랐다. 신의 탑 꼭대기 층에 모습을 드러낸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바람을 쐬러 나오듯 나선계단을 천천히 올라선 그는 널찍한 원형의 공간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의 머리 위로 수십 발의 미사일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가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용훈은 그의 양손 손아귀 안쪽에서 번쩍이는 검붉은 번개를 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번개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절대로 번개의 형상을 띤 물건이 아니었다. 살아 꿈틀거리는 진짜 번개였다.
그의 양손이 머리 위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절대로 소리가 들릴 리 없는 거리였지만, 용훈은 왠지 그 동작에서 짝,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의 두 손이 만나 가벼운 손뼉이 된 순간, 용훈은 눈을 태울 듯이 들이닥치는 강렬한 섬광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신의 탑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늘을 향해 거꾸로 솟아오르는 수십, 수백 줄기의 검붉은 번개를.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잘라먹으며 날아간 검붉은 번개들이 불꽃 꼬리를 길게 늘어트리며 떨어지던 미사일들을 때렸다.
쿠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었다. 하늘의 구름이 모조리 찢겨나갈 정도로.
폭발의 잔해가 비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용훈은 잔해 사이로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상대의 눈길은 무심했다.
좋게 말하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평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은 눈.
[신의 탑의 보스라고 알려진 아칸젤 썬더퓨리입니다. 실제로 출현했다는 보고가 없어서 정확한 등급은 알 수 없습니다. 추정등급은 최소 레전드 C. 증오의 번개를 다루는 자연계 능력자라고 합니다.]용훈은 아칸젤의 눈길 속에서 한줄기 이채가 비치는 것을 보았다.
용훈 역시 상대를 보며 피식 웃어주었다.
“허깨비 새끼가 세긴 졸라 세네. 너무 세서 그동안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한 모양이지? 그래, 기다려라. 내가 한판 끈적하게 놀아줄 테니까.”
용훈은 미소를 지우며 다시 공간을 타넘었다. 이번에 그가 향한 곳은 신의 탑을 향해 날고 있는 비행기 안이었다.
“마스터?”
그를 알아본 이준수가 용훈을 불렀다.
“잠깐 모여봐.”
용훈의 말에 베루스 데우스 소속의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그의 존재가 이상할 법도 한데도 아무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헌터들도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아직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을 거다. 방금 미국, 중국, 러시아의 3국이 발사한 여든네 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모조리 격추당했다.”
충격적인 그의 말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보스인 아칸젤 썬더퓨리가 옥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증오의 번개라고 불리는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사용한다고 한다. 추정 등급은 최소 레전드 C 이상. 자세한 인상착의를 전송할 테니 절대로 이놈과 부딪히지 마라. 여든네 발의 미사일을 모조리 해치운 것도 이놈 개인의 실력이었다.”
꿀꺽. 누군가의 목구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진동한다.
“걱정하지 마라. 이놈은 나와 샤커가 잡는다. 설마 너희 중에서 내 힘을 의심하는 자는 없으리라 믿는다.”
용훈의 말에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준수.”
“네, 마스터.”
“넌 지금부터 UHRS와 연락을 취해서 돌입 시점을 조율해라. 최대한 낮은 고도를 유지하고 헌터들은 저고도에서 수면으로 낙하시켜. 고고도에서 패러슈트를 펼쳤다가는 아칸젤의 번개에 곧바로 먼지가 될 테니까. 돌입 시점은 내가 신호할 테니 그때 돌입하면 돼. 알았나.”
“알겠습니다.”
“르세인. 너는 나와 함께 가자. 할 일이 있다.”
용훈의 말에 르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다.”
용훈은 샤커의 어깨를 짚고 공간을 넘었다.
#
이만여 명의 헌터를 태운 팔백여 대의 수송기는 동서 양방향에서 신의 탑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들은 UHRS의 연락을 받자마자 급격히 고도를 낮췄다. ICBM이 격추된 소식과 함께 이준수가 용훈의 지시를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용훈은 신의 탑을 내려다보며 그들이 충분히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신의 탑 꼭대기 층은 텅 비어있었다. 어디에서도 아칸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볼일 다 봤다는 거냐? 우리가 참도 우습게 보였나 보군. 르세인, 준비해라. 너는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진입해야 해. 먼저 들어가서 최대한 깽판을 쳐라. 놈들의 신경이 진입하는 헌터들에게 쏠리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용훈은 침착하게 신의 탑을 내려다보며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 수송기들이 충분히 가까워지자 그가 눈을 빛냈다.
“지금이야. 르세인, 변신해.”
용훈의 말에 르세인의 덩치가 쑥쑥 자라났다. 용훈은 그를 지탱하고 있는 팔에 걸리는 묵직한 무게감을 느꼈다.
“이제부터 내가 널 던질 거야. 전력을 다할 테니 꽤 빠르겠지만, 너라면 잘 버티겠지. 내가 한 말 잊지 마라. 가서 무조건 다 때려 부숴. 니 힘을 보여주란 말이야.”
“크워억!”
용훈은 샤커의 허리춤을 잡은 팔에 힘을 집중했다. 암석 육체의 거친 질감이 피부를 덮었다.
용훈은 신력을 쑥 끌어 올리며 허리를 비틀었다. 그리고는 맹렬하게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전력을 다해 샤커를 집어던졌다.
콰아아-! 단숨에 음속을 돌파한 샤커가 검은 총탄처럼 무서운 속도로 신의 탑을 향해 날아갔다.
“이준수! 지금부터 30초다! 30초 후 헌터들을 낙하시키고 수송기는 곧바로 선회해서 전장을 이탈한다! 이상!”
– 알겠습니다!
교신을 끊은 직후 용훈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신의 탑을 겨눴다.
그러자 그의 손등 위에서 여섯 장의 날개 문신이 빛을 내뿜었다.
다음 순간 좌우 세 쌍의 불꽃 날개를 일렁이며 징벌의 손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용훈은 여전히 맹렬한 속도로 허공을 가르는 샤커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신의 탑 옆면에 난 수천 개의 문이 일제히 열리며 은빛 갑주를 차려입은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커다란 활에 화살을 메긴 채 샤커를 노리고 있었다.
“어딜!”
콰우우! 용훈은 승룡포의 수법을 응용해 엄청난 가속력으로 허공을 갈랐다.
음속을 몇 배나 뛰어넘는 속도로 신의 탑 주변을 돌며 용훈은 징벌의 손길을 겨눠 폭발 화살을 난사했다. 바로 신력을 사용한 폭발 화살이었다.
새빨갛게 빛나는 빛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샤커를 겨누던 적들이 화살 비에 놀라 허겁지겁 문을 닫았다.
쿠과과과광! 폭발 화살이 비처럼 내려꽂히자 신의 탑이 부러질 듯 흔들리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용훈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샤커가 돌입할 부분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부분에 골고루 폭발 화살을 꽂아주고 있었다.
쩌저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아래쪽에서 검붉은 번개가 날아들었다.
용훈은 디멘션 슬라이드로 얼른 몸을 피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신의 탑 꼭대기 한가운데에 아칸젤 썬더퓨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지금 그는 불쾌한 듯 잔뜩 인상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좀 해볼 만한 마음이 들었나? 그런데 어쩌지? 난 지금 너랑 놀아줄 시간이 없거든!”
용훈은 길길이 날뛰며 번개를 던져대는 아칸젤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만한 속도로 탑 주위를 돌며 연신 폭발 화살을 날려댔다.
용훈의 이러한 테러 행위에 신의 탑은 이렇다 할 방어 체제를 구축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수송기들은 이만여 명의 헌터들을 일제히 바다에 뿌려 내고 있었다.
“광휘의 창!”
신력을 머금은 광휘의 창이 눈부신 속도로 신의 탑 꼭대기를 향해 날아갔다.
마나가 아닌 신력을 소모한 광휘의 창은, 마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직접 던진 거대한 창 같았다.
그 엄청난 크기와 속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거력을 느낀 아칸젤이 황급히 몸을 날렸다.
쿠과광! 아칸젤을 놓친 광휘의 창이 꼭대기 층 바닥을 깨부수며 틀어박히자 굉음과 함께 바닥 한쪽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그때 탑 중간쯤에서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그리고 굉음 이후 들려온 괴성.
“크와아아아아악!”
신의 탑 전체를 떨쳐 울리는 끔찍한 괴성을 들으며 용훈은 차갑게 웃었다. 그 소리는 샤커가 탑 내부에 돌입했다는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래를 살펴보니 이만여 명의 헌터들도 순조롭게 신의 탑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미 삼사십 명의 헌터들은 신의 탑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섬을 밟고서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용훈은 차갑게 웃으며 아칸젤을 바라보았다.
“1라운드는 내 승리인 모양이군. 어떻게 생각하나?”
용훈은 아칸젤을 비웃듯 중얼거렸다. 딱히 그가 알아들을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답이 돌아왔다.
“건방진 인간. 겨우 이 정도로 이겼다고? 내가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지!”
“응? 말을 할 줄 알잖아?”
용훈이 인상을 찌푸리는데 아칸젤이 기묘한 수인(手印)을 만들어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용훈은 아칸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바닥에 새겨둔 문양들을 보았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검붉은 빛을 내뿜었기 때문이었다.
“쳇, 벌써 늦은 것 같다!”
용훈은 다급하게 광휘의 창을 쏘아냈지만, 그것은 어느새 완성된 역장에 걸려 궤적이 틀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역장이 완성되자 망가진 꼭대기층과 샤커가 뚫어낸 옆구리의 구멍이 스멀스멀 복구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용훈은 황급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역장은 최하층까지 보호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헤엄쳐 다가간 헌터들은 빠르게 뭍으로 올라 탑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어딜 들어오려 하느냐, 인간들아! 그 더러운 존재를 내가 당장 지워주마!”
용훈은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무지막지한 힘에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까마득한 상공에서 만들어지는 광포한 번개 폭풍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