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93
92화 – 첫 조우
“크윽!”
반신의 징표는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지녔다. 거대한 신력으로 강화된 신의 알이 깨질 뻔 했을 만큼.
용훈은 새카만 우주 공간을 빠르게 지나쳤다. 어느새 칼리오스의 모함이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자비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일단은 괜찮아. 헌터들은 어떻게 됐어. 다 복귀 했어?’
[네, 전원 복귀했습니다. 중경상을 입은 인원이 23명 있습니다만 사망자는 없습니다.]‘좋아, 그 정도면 성공이네. 1팀 작전은 실패했지?’
[아쉽지만 그렇습니다.]‘아쉬워하지 마. 내가 부수고 갈 테니까.’
[네? 주인님 혼자서 말입니까? 너무 위험합니다!]‘걱정 마. 위험하면 곧바로 도망칠 거야.’
용훈은 몸을 비틀어 자세를 바로 하곤 고속 비행을 발동해 멀어지던 속도를 늦췄다.
정신을 집중해 봤지만 모함 내부의 공간 좌표는 감지되지 않았다. 아마 좌표 교란 장치를 다시 가동한 모양이었다.
‘뭐 이 정도로 가까우면 별 상관없지.’
용훈은 데드를 사용해 공간을 넘었다. 칼리오스의 모함 내부가 아닌, 그 표면으로.
이계의 금속을 밟는 순간 용훈의 몸이 바짝 낮춰졌다. 그러자 그의 몸이 흐릿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요즘은 잘나가지만, 사실은 도둑 출신이라 이거야. 도둑의 싸움법을 보여주마.’
용훈은 그 상태로 한가지 능력을 더 추가했다. 바로 신의 알의 완전 변신 능력이었다.
한순간에 용훈의 모습이 일반적인 칼리오스 병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용훈은 그 상태로 빠르게 모함 위를 달렸다. 한참 달리다 보니 반신의 징표에 의해 완파된 웨펀 블럭이 눈에 들어왔다.
배틀 슈트를 걸친 병사들이 나와 부서진 구멍을 막느라 바빴다.
용훈은 그들 사이로 휙 몸을 날렸다. 그런 그를 알아보는 자는 없었다.
용훈은 빠르게 모함 내를 달렸다. 그동안 칼리오스의 병사들이 그를 지나쳤지만 용훈은 무인지경인 듯 빠르게 움직였다.
한참 달리다 보니 1팀과 칼리오스 측이 전투를 벌인 지점이 보였다.
헌터들의 사망자가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전투가 치열하지 않았다는 것.
주변 시설이 망가져 있었지만 핏자국은 없었다. 당연히 칼리오스 측의 사상자 또한 보이지 않았다.
‘자비스. 이 길 맞아?’
[맞습니다. 길따라 쭉 올라가시면 됩니다.]‘방어 병력은?’
[꽤 많아지긴 했지만 주인님의 은신을 알아볼 만한 적은 없습니다.]‘퇴로는 확보되겠어?’
[엔진실을 파괴하신 후 아래쪽으로 방향을 잡으십시오. 엔진실은 모함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어느 쪽으로도 후퇴가 쉽진 않을 겁니다. 그중에서는 그래도 아래쪽이 가장 무난할 것 같습니다.]‘일단 알겠어. 자세한 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자.’
한참을 더 달리자 거대한 격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엔진실로 진입하는 입구를 막아놓은 것 같았다.
‘어쩌지? 부술까?’
[잠시 기다리십시오. 누군가 격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격벽을 열고 밖으로 나올지도 모르니 그때 몰래 들어가시는 게 좋겠습니다.]‘알았어.’
용훈은 벽에 몸을 밀착시키며 어둠 속에 숨어들었다.
잠시 후, 푸쉭, 하는 소리와 함께 격벽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옵니다. 준비하시지요.]‘… 자비스, 넌 안 느껴져?’
[네? 뭐가 말입니까?]어느새 격벽이 반쯤 올라갔다. 그러자 격벽 너머에 서 있던 자의 모습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역시 칼리오스 특유의 배틀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하반신의 모습이 조금 달랐다.
일단 색부터 달랐다. 지금까지 만났던 칼리오스는 대부분 은색을, 일부만이 금색을 입었었다.
그런데 이자는 칠흑같이 검은색의 슈트를 입고 있었다.
‘젠장.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주인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이놈은 단순한 병사가 아니야. 아니, 이 정도의 기운이라니···. 이놈은 칼리오스의 왕이 분명해.’
그래. 만약 이놈이 최고가 아니라면···. 자신에게 승산은 없다. 이런 자가 셋만 되더라도 자신은 반드시 진다.
용훈은 몸을 쭉 펴 은신을 풀며 징벌의 손길을 전개했다.
치이익. 김 빠지는 소리와 함께 격벽이 완전히 올라갔다.
새카만 배틀 슈트를 걸친 자는 오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가 통로를 막은 탓에 그를 지나치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설 수 없었다.
용훈은 말없이 그를 살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너는 이곳의 존재인가.”
‘음? 우리 말을 할 줄 알아?’
[아닙니다. 의지를 언어로 바꾸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날 앞에 두고 누구와 대화를 하는 거냐.”
우웅! 상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의 몸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쏟아진다.
용훈은 꼿꼿하게 서서 그 기세를 받아넘겼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나는 칼리오스의 지배자 폰테오르 칸 뷔네스다. 내 이름을 밝혔으니 네 이름을 듣고 싶은데.”
“난 이곳의 신인 조용훈이라고 한다.”
“신? 푸하하하하!”
뷔네스가 껄껄 웃음을 터트리자 용훈이 얼굴을 구겼다.
‘이 새끼는 뭐가 웃기다고 처웃고 지랄이야?’
“니가 이곳의 신이라고? 정말 재미있는 농담이구나.”
“농담으로 들리나? 몸으로 느껴봐야 깨닫는 멍청이냐, 너?”
“아둔한 놈.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 뭐?”
그러고 보니 그랬다. 정찰대가 깔끔하게 완파된 상황에서 뭘 믿고 전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 걸까?
“설마···. 크샤키온이 널 부른 거냐?”
“크샤키온? 이곳 차원의 주인이 크샤키온인가? 멍청한 놈들, 그런 벌레 한 마리한테 속부터 파먹히다니. 네놈들의 수준이 보이는구나.”
“뭐?”
“그나저나 애써 찾은 차원이 크샥스에 오염됐다니. 이곳도 오래 머물 수는 없겠군. 챙길 것만 다 챙기면 떠나야겠어.”
“이 새끼가 진짜!”
화가 치민 용훈이 오른팔을 들어 징벌의 손길로 뷔네스를 겨눴다. 그가 멸절의 광선을 쏘기 위해 신력을 모으는 순간.
거의 보이지도 않을 만한 속도로 다가온 뷔네스가 손을 휘둘렀다.
서걱. 그의 손끝에서 튀어나온 반투명한 에너지의 칼날이 용훈의 팔뚝을 깔끔하게 베고 지나갔다.
“크윽!”
당황한 와중에도 용훈은 통각을 죽이며 빠르게 물러섰다. 떨어진 그의 팔뚝 위로 세 쌍의 붉은 날개가 힘없이 처져 있었다.
“질풍!”
용훈은 질풍을 불러들여 의식을 가속했다. 그제야 뷔네스의 움직임이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은데 뷔네스의 칼날은 미묘하게 피하기 어려운 각도로 날아들었다.
용훈은 신력을 펼쳐 몸을 보호하며 계속해서 물러섰다.
뷔네스가 문득 공격을 멈추고 말했다.
“디멘션 포스를 사용할 줄 아는군. 신이란 말도 완전히 허풍은 아니었던 건가. 허나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면서도 겨우 이 정도 수준이라면 매우 실망스러운데.”
뷔네스는 용훈을 비웃고 있었다.
배알이 꼴렸지만, 용훈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자비스, 징벌의 손길이 떨어져 나갔어. 다시 수거해야 하나?’
[아닙니다. 신력을 소모해 신체를 회복하십시오. 신력이 끊긴 신체부위는 자동적으로 소멸됩니다. 또한 징벌의 손길은 주인님의 신격에 부여된 아이템입니다. 신체를 수복하시면 곧바로 돌아올 것입니다.]‘알았어. 자비스, 단 한방으로 엔진실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공격 루트를 뽑아봐.’
용훈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뷔네스와 무리하게 대결을 하기보다는 목표를 완수하고 빠르게 후퇴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쥐새끼처럼 뭘 속닥거리는 거냐!”
다시 뷔네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그는 함선 내부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행동이 용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함선 내벽에 겨우 5㎜ 간격까지 뻗어오는 에너지의 칼날은 벽에 기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덜미를 향해 날아드는 칼날에 신력을 씌운 팔뚝을 갖다 대자 촥, 하고 피가 튀어 오른다.
‘역시 저놈이 부리는 힘도 신력이 확실해. 그걸 저놈들은 디멘션 포스라고 부르나. 어쨌든 신력으로도 완벽하게 막아낼 수 없으니 조심해야겠어.’
용훈은 더이상 방어를 하지 않고 물러섰다. 그런 그의 눈에 뷔네스의 옆에 뚫린 작은 간격이 보였다.
순간 용훈은 질풍의 가속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며 준비한 것들을 단번에 몰아쳤다.
제일 먼저 그의 잘린 오른팔이 쑥 자라났다. 그것은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신력을 담은 폭발 화살을 마구잡이로 쏘아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의 발 밑에서 거대한 파문이 생겨났다. 승룡포의 수법에 신력의 폭발력을 섞은 그것을 용훈은 眞(진)승룡포라고 불렀다.
진 승룡포가 터지자 칼리오스 함선의 복도가 무참히 터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용훈의 몸이 음속의 수십 배를 넘는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뷔네스는 비처럼 날아드는 폭발 화살을 빠르게 쳐내면서 스쳐가는 용훈을 보았다. 그의 검이 한순간 날카로운 호선을 그려냈다.
추화악! 호선에 걸린 용훈의 귓불이 날카롭게 잘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목덜미에서 옆구리까지 길게 핏길이 돋아났다.
용훈은 피를 안개처럼 뿌리면서도 뷔네스를 무시하며 안으로 몸을 날렸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에는 멸절의 광선이 걸려 있었다.
“하아아압!”
번쩍-
쿠콰콰콰쾅! 눈이 타버릴 듯한 섬광과 함께 대파괴가 벌어졌다.
멸절의 광선은 엔진실의 코어 블럭을 정확히 관통하고도 모자라 그 외벽까지 일직선으로 길을 만들어냈다.
[좌표 교란이 끊깁니다!]자비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용훈이 몸을 돌렸다. 그의 눈앞에는 악귀 같은 표정을 지은 뷔네스가 달려들고 있었다.
용훈은 그에게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엿이나 먹어, 개새끼야.”
훅. 용훈이 데드를 조작해 공간을 뛰어넘었다.
그 빈자리를 거대한 호선이 가르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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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칼리오스의 병사들이 엔진실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뷔네스 님!”
“뷔네스 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알 거 없다. 당장 상륙함들을 준비시켜. 내가 직접 내려간다.”
“아, 알겠습니다!”
뷔네스의 지시에 칼리오스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뷔네스는 완파된 모함의 엔진을 보며 이를 갈았다. 칼리오스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모함이 이런 정도의 타격을 입은 경우는 드물었다.
뷔네스는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이 이끄는 칼리오스가 겨우 크샥스 따위에 파먹히는 존재에게 당하다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PAI런처가 망가졌지만 ‘파멸의 별’에는 다른 무기도 있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한다면 지구 정도의 별은 먼지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엔진이 이렇게 됐으니···.
“귀찮게 됐군.”
짜증이 난다는 듯 뷔네스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