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
prologue
“크흠. 음, 으으음.”
목을 한 차례 가다듬고 소리를 내 본다.
“아아! 아아아아아!”
성대결절이라는 병이 있다.
목소리를 자주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흔히 앓는 병으로 유명한데, 교사나 성우, 나 같은 가수들에게는 특히나 치명적인 질환이다.
이런 병명 따위는 일상 속에서 참 자주 듣지만, 막상 닥치면 얼떨떨하고 생소한 느낌을 자아낸다.
나 역시 직접 의사와 대면하기 전까지는 그랬고 말이다.
“흠! 흐음……. 조금 괜찮나?”
이게 참 그렇다.
평생 음악만 해 왔기에 돈을 벌 수단이라고는 음악뿐인지라 어떤 행사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 노래를 불렀다.
사장의 먹튀로 회사가 생사의 기로에 섰기 때문에, 그 위기를 이겨 낼 방법은 비어 버린 통장을 메우는 것밖에 없었다.
‘그 새끼만 아니었다면…….’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눈앞에 김 사장이 나타난다면 코 뼈를 뭉개 줄 의향이 충분했다.
그래도 열심히 살면서 얼마 전에는 빚도 다 갚았고 성대결절의 여파도 거의 다 극복해 냈으니, 이제 압박하는 일은 없어 다행이다.
‘빚은 다 갚았는데……. 이제 학원 보증금 빼면 진짜 개털이네.’
지금이라도 고개 숙이고 들어가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간신히 손에 넣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오로지 내가 이뤄 낸 것들로 부모님의 인정을 받겠다는 목표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에휴…….”
이렇게 웅장했던 꿈과 대비하면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실패한 가수다.
그것도 보통 실패한 가수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회사 식구들, 그러니까 밴드 동료들이나 매니저 형까지 일을 그만둬야 했을 정도로 쫄딱 망한 가수다.
사장 놈이 행사비만 받아 챙기고 제대로 된 스케줄을 만들어 주지 않은 데다가, 그놈이 도망친 이후 총원 열 명 남짓 되는 동료들의 생계를 챙기려다 목이 터져 버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나는 성공하지 못한 가수가 분명했다.
앨범 한 장 달랑 내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가수.
꽤 자주 보이는 케이스다.
“왔슴다!”
“오야.”
반면 가수가 아닌 보컬 트레이너, 학원 강사로서는 A급 취급을 받으니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루치 쌤, 어제 우리 회사에 누구 왔는지 알아요? 장대로, 장대로! 머박머박! 우리 회사로 완전히 오나 봐요!”
“장대로라…….”
지금 내 앞에서 A급 가수가 자기네 회사로 온다며 호들갑을 떠는 소녀는 국내 최대의 기획사로 손꼽히는 굿니스 뮤직의 연습생이다.
대형 회사 연습생이 일개 학원 강사인 나한테 직접 찾아와서 돈을 내고 노래를 배우니, 참 황공할 따름이다.
그만큼 인정받는 트레이너라는 말이지.
“대로 좋지. 앨범 낼 때마다 빵빵 터뜨리고.”
심드렁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배가 슬슬 아파지기 시작한다.
학생이 말하고 있는 그 A급 가수라는 녀석이 내 옛 친구이기 때문이다.
‘대로 많이 컸다. 소녀팬 눈도 반짝이게 만들고.’
밴드 생활을 할 때 나보다 못 나가던 친구가 억대 계약금을 받으며 회사로 들어간다는데 축하보다는 질투의 감정이 더 든다.
사람이라는 게 원래 남 잘나가는 꼴을 보면 배가 아픈 법이지만, 딱 하루 차이로 운명이 갈려 버린 나와 대로의 상황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날 공연 날짜를 안 바꿔 줬으면 조금 달랐을까?’
가수의 성공과 실패가 어디에 달려 있는가 묻는다면 나는 노래 실력이나 외모 등을 미뤄 두고 운이라고 답할 것이다.
마침 잡혀 있던 공연 전날 대로가 배탈이 났고, 나는 어차피 하루 때우고 공연비도 받고 은혜도 얹어 준다는 생각으로 날짜를 바꿔 줬고, 하필 내가 바꿔 준 날 음원의 절대강자 장택준 작곡가가 구경을 왔고, 결국은…….
‘부럽다.’
그는 5집 앨범 초대박 가수가 되었고, 나는 다른 일로 벌어 먹고사는 실패자가 되었다.
‘인디 때는 내가 더 잘나갔는데. 허허.’
실력만으로 따지면 자신감 버프 조금 얹어서 대로보다 내가 낫다.
이건 팩트다.
당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만들었던 앨범은 명반까지는 아니라도 수작 소리는 종종 들었고, 공연할 때의 인기 역시 대로보다 우리 밴드가 훨씬 뜨거웠으니까.
다만 나는 운이 너무 없었고, 녀석은 운이 정말 좋았다.
공연 날짜 하루 바꿔 준 것으로 나는 사기꾼 기획사 사장을 만났고, 녀석은 가요계를 쥐락펴락하는 특급 작곡가를 만났으니까.
‘대로가 김상승을 만나고 내가 장택준을 만났다면……. 별 의미 없는 가정인가.’
아니, 여러 차례 찾아왔던 기회가 전부 함정이었긴 해도, 그것을 이겨 낼 방도가 아예 없지는 않았을 테니 결국 내 능력 문제라고 보는 쪽이 옳을지도 몰랐다.
이때 이랬다면, 그때 그랬다면 하는 것은 어차피 결과론이다.
‘운칠기삼이라지만 인정은 해야지. 나는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강하지 못한 사람이었어.’
물론 내 남은 인생이 길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다.
얽매이기엔 내 열정이 너무 뜨겁고, 후회만 하기엔 내 실력이 너무 아깝다.
“목 좀 풀고 준비해 온 노래부터 들어 볼까? 평가 날 쓸 거 미리 연습했지?”
“넵!”
무너지지 말고, 자만하지도 말고 가자.
내 식대로, 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안 좋았던 목 상태도 잘 올라오고 있고, 앨범 준비도 좋은 작곡가와 세션을 만나 함께 준비 중이다.
참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제대로 된 기회가 찾아오리라.
비록 이 나이 먹도록 인디 시절 앨범 한 장을 빼고는 제대로 된 작품 하나 못 만든 나지만, 앞으로도 퇴물로 죽어 있을 수는 없다.
다시 한번 가수로서 일어날 것이다.
“반주 들어가는 거 의식하면서, 하나, 둘, 셋, 넷…….”
나는 쓸데없는 과거 생각을 멈추고 레슨에 집중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기회가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차근차근…….
* * *
“기회가 이런 식으로 올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변성기가 지나 어른스럽게 굵직하긴 하지만 아직 마모되지 않은 목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다.
서른 넘도록 계속해서 혹사시킨 탓에 성대도 망가지고 상당히 거칠어졌던 음색인데 이렇게 맑은 소리가 나다니.
슬며시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 보니 주름도 없고 뽀송한 것이 기분이 묘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트럭에 치여 과거로 돌아왔다고? 이게 말이 돼?’
나는 회귀해 버렸다.
열일곱 예비 고1 시절, 그때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