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0
9화
푹 눌러쓴 모자.
헐렁헐렁한 트레이닝복에 대충 손에 잡히는 걸 골라 산 듯한 후드 집업.
무슨 바람만 불면 날다람쥐처럼 날아갈 것처럼 입은 왜소한 소년이 제 몸만큼이나 커다란 바게트 빵 한 덩이와 모닝빵 봉지를 달랑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어……. 이 근처 살아?”
“니은. 스튜디오가 근처.”
아까 학교에서 나와 환상적인 합주를 펼쳤던 재우라는 녀석이었다.
“아하. 빵 사러 왔냐?”
“이응. 저녁. 님도?”
“이응. 심부름. 나는. 모닝빵. 그거. 마지막. 아쉽.”
나는 묘하게 중독성 있는 재우의 말투를 따라 해 답했다.
그러자 그가 코를 한 차례 찡그리더니 모닝빵을 내게 넘기며 말했다.
“너 사셈. 난 식빵 사면 됨.”
“오? 땡큐!”
다행히 이 친구도 일말의 인정이라는 것이 살아 있었나 보다.
모닝빵 사러 시장까지 다시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 잘된 일이다.
“아. 아까 찍은 거.”
그때, 재우가 갑자기 생각난 듯 어깨를 흔들며 춤추는 내게 말했다.
“응? 엥? 왜? 벌써 올렸어?”
“잡음이 많이 섞여서 업로드 안 될 듯.”
“잡음? 얼마나 섞였는데?”
“보셈.”
갑작스러운 비보.
그 환상적인 노래를 남들에게 들려줄 수 없다니.
이건 전 인류적인 손실이다.
“줘, 줘.”
나는 재우가 넘겨준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 이어폰까지 끼어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다라라란 딴.
처음에는 괜찮았다.
깔끔한 전주가 시작되고, 좁은 연습실에서 울리는 소리도 나름 들을 만했다.
노래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지지직! 끼이이이이잉!
“윽!”
무슨 스피커 찢어지는 잡음이 크게 울려 도저히 계속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모름. 마이크 연결할 때 잘못 만졌나 봄.”
“그럼 그렇지…….”
화면 구석에 있는 로그인 버튼도 찾는 데 한참 걸리던 녀석이 혼자 카메라를 설치하고 녹화 녹음을 다 했다는데 의구심을 품지 않은 내가 멍청이였다.
나도 전문가는 아닌지라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앞부분을 제외한 모든 분량이 이런 식이라면 절대 채널 업로드는 불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모닝빵을 구했다는 기쁨보다 이 환상적이었던 무대를 남들에게 보여 줄 수 없다는 슬픔이 더욱 컸다.
“그러면 못 올리는 거지? 아쉽네…….”
“이거 재촬영하면 되긴 함.”
“응? 재촬영?”
순간 실망해 아쉬움을 토하는 내게 재우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근처가 스튜디온데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장비도 훨씬 좋고, 녹화 도와주는 형도 있음. 앞에 멀쩡한 부분만 오늘 잘라서 티저로 올리고, 재촬영본은 내일이나 모레 새로 편집해서 올리면 됨.”
‘재촬영이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좋은 노래를 뽑아 놨으니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기도 하고,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아 가야 하기도 하니 너튜브 채널이라는 플랫폼은 지금 당장 얼굴을 비출 자리로도 딱이다.
겨우 고등학생 1학년이 같이 음악을 하는 밴드도 없이 홍대나 신촌 공연장으로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좋아. 언제?”
“지금.”
“응?”
상당한 추진력이었다.
나는 재우의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하다가 금방 답했다.
“좋지. 가자.”
원래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법이다.
마침 재우의 스튜디오도 이 근처이겠다, 오늘 불렀던 그 감각이 아직 남아 있겠다, 내친김에 재촬영을 후딱 끝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들어오셈. 신발은 안 벗어도 됨.”
스튜디오는 빵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대로에서 조금 걸어간 골목, 작은 개인 카페 건물 위층 꽤 넓은 곳.
의외로 환경이 꽤나 쾌적해 놀라웠다.
“복도도 다 방음이야?”
“이응. 부스 설치해도 소리 새는 거 같아서 방음재 붙임.”
“재우 왔냐?”
스튜디오에 입장해 현관 앞에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는데, 안쪽의 부스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키는 170 남짓의 평균 신장쯤, 안경을 쓰긴 했지만 나른한 표정에 작은 체구. 어쩐지 본 듯한 인상이다.
딱 봐도 감이 잡혔다.
“안녕하세요.”
“어, 앗. 반갑습니다. 레이어즈 기타 운영자 겸 편집자 형재석입니다. 재우 사촌 형이에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드래그 긁어서 위로 쭉 늘리면 재우에서 여기 재석 형이 될 것 같을 정도로 붕어빵이었으니까.
“김루치아노입니다. 루치라고 불러 주세요. 말씀도 편히 하시고요. 재우랑 같은 학교 친구거든요.”
“아, 그럴까?”
재석 형은 다행히도 재우와 달리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뜬금없이 기타를 치며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들지도 않았고, 노래를 해 달라고 조르지도 않는.
멀쩡한 사람.
대화라는 것이 정상적으로 이어지는 게 꽤나 반가웠다.
“지금은 회사 다니면서 부업 겸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채널 성장하는 거 보니 곧 건당 편집 비용을 받고 내가 전업으로 맡아도 될 것 같더라고.”
“오호……. 그럼 지금은 법인으로…….”
재석 형 덕분에 재우 녀석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도 제대로 못 다루는 애가 너튜브 채널은 어떻게 운영하나 했는데, 역시 운영을 맡아 주신 분이 따로 계시는군요.”
“허허허. 그래도 이제 컴퓨터는 곧잘 만져. 안 되는 영어로 떠듬떠듬 외국인 시청자랑 키보드 배틀도 뜨고, 한국인 시청자랑 대화도 하고. 집에서 기타만 후리고 있을 때보다는 말수도 많아졌다니까.”
“노노. 아임 굿 잉글리시.”
“그건 또 뭔……. 네가 좋은 영국인이냐?”
“뭔 솔.”
“어휴, 말을 말자.”
재우가 둘이 나누는 대화에 깜빡이도 없이 끼어들며 자기 의견을 개진하려 했지만, 뭔가 근본부터가 틀려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저 녀석 말투나 행동 패턴은 그 탓인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지만, 가끔 한곳에만 몰두하다가 다른 것을 놓치는 일이 있다.
재우의 경우 기타를 좋아하고 열심히 즐기다 못해 거기에 모든 신경을 쏟은 탓에 그 외의 것에 익숙하지 않고, 특히나 다른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도 몰라 너튜브 댓글 창에서 떠들고 놀던 버릇이 입에도 남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노래 안 함? 나 집에 감?”
“아, 해야지. 해.”
한참 앞담을 나누고 있자니 그 꼴이 보기 싫었는지 재우가 재촉을 해 왔다.
분명 오늘 만난 사이이건만 타격감이 훌륭해서인지 족히 몇 년은 된 친구 같다.
‘이쯤 놀렸으면 많이 놀렸고, 재석 형 표정이 그때 노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감이 안 오는 느낌이니까, 후딱 끝내고 가자.’
나는 재석 형의 안내를 받아 촬영용 부스로 들어갔다.
의자, 마이크, 보면대, 그리고 길게 늘어진 연결선과 커다란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와……. 무슨 믹서가……. 이거 얼마야?”
“잘 모름. 아빠가 사 줌.”
정말 전문적인 녹음실이나 공연장에서나 쓸 법한 장비의 위용에 나는 벌어진 턱을 다물 수가 없었다.
거기다 설치된 마이크와 카메라도 딱 보기에 가격이 어마어마해 보였으니, 분명 아까보다 좋은 퀄리티의 영상이 나올 것 같았다.
“믹싱은 네가 하고?”
“이응. 형이 해 줄 때도 있는데 내가 하는 게 더 좋음. 소리 차이가 심함.”
“오케이……. 그러면…….”
나는 당당하게 부스 한복판에 서서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섰다.
“목 좀 풀자. 뿌르르르르! 뿌르르!”
“아까도 했잖음?”
“뿌르! 야, 목 관리는 아무리 과해도 모자라. 뿌르르르!”
내가 생각해도 합주하는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속도기는 했지만, 나는 심혈을 기울여 목을 풀었다.
‘이번 생에는 절대 성대 결절 따위는 없다.’
있다 없으면 더 허전하고, 잃어 봐야 중요성을 깨닫는단다.
이미 잔뜩 잃어 본 나는 고등학생 김루치의 이 환상적인 피지컬을 다시는 잃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공들인 예열을 마친 후, 드디어 준비가 되었다고 재우에게 신호를 보냈다.
“흠, 흐흠! 오케이. 하자.”
“고?”
“고…….”
그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아니, 잠깐만.”
“아, 또 뭐임.”
“기타 남는 거 있으면 하나 빌리자.”
굳이 기타를 아주 맡겨 놓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리프?”
“엉. 내가 코드 깔고, 넌 멜로디 리드에 더 집중하면 좋을 것 같아서.”
“흠……. 오키.”
재우는 내가 어느 정도나 기타를 칠 수 있는지 몰라 잠깐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여 기타를 꺼내 왔다.
“오, 풀 카본?”
“이응. 이펙트도 잘 먹고 소리도 재밌음.”
카본 섬유로 만들어져 새까만 색의 바디와 헤드가 상당히 섹시한 기타였다.
제조사는 맥맨.
모델은 잘은 모르겠지만 조율기부터 넥과 같은 부품의 재질을 보니 가격대가 상당할 것 같았다.
‘얘네 집 엄청 잘사는 것 같은데?’
너튜브 채널을 위해 준비된 스튜디오, 꺼내도 꺼내도 나오는 좋은 장비들.
부모님이 누구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디리리링…….
기타를 넘겨받아 가볍게 긁어 보니 일반적인 통기타와는 사뭇 다른 소리가 울렸다.
바디가 작은데도 음량 증폭이 꽤나 만족스러웠고, 마치 위아래 주파수 대역을 깎아 낸 듯한 꽉 찬 음색이 마음에 들었다.
카본 재질 때문인지, 기타 위쪽에 사운드 홀이 뚫린 특이한 구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싸했다.
“좋다.”
“괜찮? 다른 것도 있는데.”
“아냐. 이거 마음에 든다.”
“굿. 줘 보셈.”
만족스러워 웃음을 짓고 있자 재우가 따라 웃더니 기타를 가져가 조율을 한 후, 손수 앰프에 연결까지 해서 내게 다시 넘겨주었다.
“어차피 기본 반주만 넣는 거면 내가 다 커버 됨. 적당히 치셈. 박자만 맞추고.”
“걱정 마. 어지간하면 안 틀려. 혹시 뭉개질 것 같으면 너 따라갈게.”
“오키. 악보 여기. 이 부분 리프를…….”
나와 재우는 잠시 동안 악보를 보고 반주 파트를 분배한 후, 연주에 돌입했다.
집에서 눈치를 보느라 며칠 정도 기타를 못 친 데다가, 아까와 달리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관중 재석 형도 있으니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편안하네.’
연주와 노래를 이어 나가는 것이 너무나 편했다.
마치 옆에서 함께 음악을 꾸려 나가는 재우와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어, 잠깐. 한 몸이 된 것 같다고 하니까 뭔가 어감이 이상한데.’
그래, 마음이 실시간으로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Ooh……, makes me wonder…….(우우, 그게 날 궁금하게 만드네…….)”
나는 리프를 자아내면서 노래를 부르고 재우는 멜로디를 깔끔하고 화려하게 꾸며 내며 더욱 완벽한 합주를 만들어 냈다.
기타 한 대를 추가해 리드와 세컨을 나눈 것만으로 소리가 훨씬 풍성해졌다.
역시 마음 맞는 연주자와 함께 무대를 꾸리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구나 싶었다.
“Ah ah ah ah!”
자연스럽게 소리에 굳은 심지가 들어가고, 날카로우면서도 처절한 색감의 브릿지를 지나 힘찬 소리를 뿜어 마지막 챕터에 입장했다.
비록 실패한 경력이지만 다년간 가수로서 살아온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표현에 크게 심력을 소모할 것도 없이, 박자에 정확히 맞춰 속을 긁어 주는 이 기타 소리를 그대로 타고 넘어가면 된다는 것을.
“When all are one and one is all! To be a rock and not to roll!(모두가 하나이고 하나가 모두일 때! 흔들림 없는 반석이 될 때!)”
가사를 꾹꾹 눌러 뱉음과 동시에 다시금 전율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지르기 위해 올렸던 공명을 줄이고 아웃트로를 부드럽게 마무리 지었다.
달아오르는 쾌감 탓에 목소리가 다소 떨렸지만 그것도 나름의 맛이 있어 괜찮았다.
“And the girl’s buying the stair to heaven…….(소녀는 비로소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구하게 될 것이라네…….)”
그리고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반주.
긴 감상평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담백한 마무리다.
“후……. 아까보다 더 잘한 것 같은데?”
8분에 가까운 노래가 그냥 눈 깜빡하는 사이 끝난 것처럼만 느껴졌다.
다행히 그런 감정을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와……. 나는 천재라는 건 내 동생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노래가 끝나자 부스에 들어와 촬영과 녹음을 중단한 재석 형이 해 온 말이다.
“네? 앗, 하하하.”
괜히 쑥스러워지는 칭찬이었다.
태어나서 노래 부르며 천재 소리는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이게 참 그렇다.
그렇다고 사실 나 십몇 년 후 미래에서 돌아온 전직 가수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그래도 내가 만들어 낸 무대에 누군가 큰 감명을 받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니 그 쾌감은 남달랐다.
“쩔었음.”
“흐흐흐. 인정!”
재우 역시 만족스러워하며 콧잔등의 땀을 훔쳤다.
무엇보다 아까보다 더욱 밀도 있고 아름다운 합주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 우리를 더 기쁘게 만들었다.
얼마냐 기쁘냐면…….
“시간 되면 자주 합주하고 놀자.”
“이미 한 몸이 된 거 아니었음?”
“어우, 그건 표현이 좀…….”
옆에 있는 이 이상한 녀석과 같이 음악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뭐야, 재우 밴드 하려고? 솔로 기타리스트 된다며?”
“괜찮. 밴드 하면서도 개인 앨범은 낼 수 있음.”
“호오오……. 루치한테 제대로 홀렸군. 초등학교 때부터 솔로, 솔로, 노래하던 네가…….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다. 방금 들어 보니 이건 기본 100만 조회 수 감이거든.”
대충 눈치를 굴려 보니 재우도 솔로 기타리스트가 되겠다며 밴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가 나와의 합주에서 뭔가 욕심이 생긴 듯했다.
물론 밴드라는 것이 기타 하나 보컬 하나 있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서로 음악의 완성을 도와주는 전속 세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나중에 동료를 더 영입해 완전체 밴드를 꾸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당장은 먼 이야기임이 분명했다.
거기다가 그런 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나 심부름 가던 중이었는데…….’
내가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여기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