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02
101화
연주를 이어 나가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하다.’
수현이의 손이 묘하게 꼬인다.
‘자꾸 반응이 늦어. 멈칫거리는 느낌이야.’
전환 타이밍에 따라붙는 게 느려진다거나, 제대로 박자를 주도하지 못하는 등.
수현이는 명백하게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었다.
평소 특유의 통통 튀는 그루브감을 살리기 위해 미세한 엇박과 애드립을 주도하는 수현이이기에 합주 전체의 분위기에도 영향이 있었다.
끄덕.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옆에 선 재우에게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고, 재우는 살짝 뒤를 보며 턱짓을 해 라희에게 신호를 보냈다.
두두둥, 채애앵!
라희의 드럼 소리가 조금 더 딱딱하고 정박에 가깝게 조절되었다.
박자를 자신에게 맞추라는 뜻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수현이에게 말했다.
“수현아, 근음만 부탁해.”
“으, 응…….”
화려한 워크는 다 빼서 없애고 기본적인 근음만 잡게 만들어 그녀가 흔들리고 있음을 티 내지 않도록 하고, 박자 리딩을 드럼에게 넘겨 부담을 줄였다.
덕분에 흔들리던 박자는 딱딱 떨어지는 정박으로 맞아떨어지게 되었고, 연주 전체의 밸런스가 돌아왔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마 일반인 관객들은 아예 알아채지도 못하게 커버가 됐을 것이지만, 불안한 마음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오늘 마니아들 많이 온 것 같던데…….’
음악 듣는 귀가 좋은 사람이라면 평소와 다른 베이스 소리를 눈치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평소의 화려한 베이스 라인이 확 죽어 버렸으니 전체적인 볼륨이 확실히 조금 밋밋해지기는 했고, 조금만 집중한다면 그것을 알아채기도 쉬울 터였다.
밴드 음악 마니아들 중에는 베이스에 귀를 기울이는 리스너들이 적잖이 있으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어떻게든 수습하는 수밖에.’
우리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전체적인 연주의 틀 자체를 작은 규모로 조절했고, 결국 흔들리던 연계를 뭉개 버리고 정상적으로 들리게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또한 오히려 우리의 튀는 면모를 줄임으로 데드록커스와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매우 잘 해냈으니 듣기에도 꽤 나쁘지 않은 연주였다.
“후우…….”
“빡세다.”
재우와 라희의 분투로 리듬이 어긋나지 않게 조율할 수 있었고, 연주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와아아아!”
“역시 럭키데이야. 잘해.”
“멋지다아아!”
다행히도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휴……. 다행이다.”
지금까지 섰던 무대 중 다섯 손가락에 들 만큼 힘든 공연이었다.
“네, 지금까지 럭키데이였습니다. 준비된 상품 받아 가시고, 다시 관객 모드로 전환해 주세요.”
“흐흐흐. 감사합니다.”
우리는 작은 봉투를 받은 후 다시 관객석으로 내려왔다.
매너 좋은 관객들은 가는 길 발이라도 걸릴까 슬쩍 옆으로 비켜 길을 내주었고, 우리는 무사히 돌아와 착석할 수 있었다.
짜악!
지나오는 길에 뻗어지는 손에 하이 파이브를 하면서.
“고생했어.”
“이응.”
“오늘은 그냥 구경만 하러 온 건데 무대에 설 줄은 몰랐네.”
“그러게. 흐흐.”
적당히 앉아 탈력감을 느끼던 우리는 문득 금방 받은 선물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근데 아까 스코프 오빠들이 준 건 상자 아니었어?”
“그러게. 우리는 봉투네.”
“열어 보셈.”
“그럴까?”
혹시 돈이나 상품권 같은 것이면 액수 맞춰서 분배를 해야 할 것이다.
아직 데드록커스의 다음 연주는 시작되지 않았으니, 시간 남는 김에 미리 확인해 보기로 했다.
“자, 그럼 액수 확인 들어가겠습니다잉? 짜라란, 짜라란, 짜라란, 짠짠. 쿵작작, 쿵작작……. 따라리라란…….”
—
관 람 권
스코프X데드록커스 pt.2!
—
“공연 티켓이네?”
“공연표여?”
에라이.
“내일도 나오라는 뜻이구먼.”
기대했던 현금은 아니었고, 내일 있을 공연의 티켓 네 장이 들어 있었다.
“뭐, 딱히 바쁜 일도 없고. 괜찮겠지.”
“공연 구성도 다르다고 했으니까, 난 내일도 보는 거 좋음.”
“나도.”
“그래. 일 없으면 또 오자고.”
각기 티켓을 한 장씩 분배하고, 우리는 다시 공연에 집중했다.
“우리는 이 도로를 걸어! 그냥 입맞춤이나 날려 줘!”
데드록커스의 무대는 끝까지 거칠고 파워풀해서 진 빠질 때까지 놀기에 딱 좋았다.
쭉쭉 뻗는 고음의 보컬이 소름 돋게 울리면 곧바로 시끄러운 기타 소리가 뒤를 메우는 좋은 연계가 계속되었다.
질릴 만도 한데, 일관적으로 신나는 무대가 이어진다.
그만큼 이 팀의 개성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리라.
‘그런데…….’
남은 공연을 모두 감상하는 동안, 나는 수현이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얘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은 우리의 베이스 나리.
잠깐 사이 어떤 심적인 고통이 쌓였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작은 흔들림이 오래 지속된다면 슬럼프가 되어 버리는 수가 있다.
당장 앨범 발매와 본격적인 활동이 머지않은 지금.
썩 좋지 않은 징조였다.
‘아무래도 공연 끝나고 물어보는 쪽이 좋겠지?’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 더 답답하다.
나는 공연 관람을 모두 마치고 수현이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지옥에서도 모셔 온다는 귀하디귀한 베이스 나으리께서 힘들어하는 걸 지켜만 볼 수는 없으니.
* * *
“나가시는 길에 앨범 판매 부스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구매 하나하나가 모두 저희의 일용할 양식이 되오니, 여유 되시는 분들은 구매 부탁드려요!”
“하하하! 두 장 살게요!”
“저는 세 장요!”
“감사합니다!”
공연이 종료되고, 슬슬 자리를 옮길 때가 됐다.
“나가자.”
“인사는?”
“어차피 내일도 볼 건데, 뭐. 대신 내일은 공연 쫑파티에 나와 달라고 하시더라.”
“오케잉.”
우리도 슬쩍 잘 보이지 않는 쪽으로 이동해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원래 같았으면 스코프와 데드록커스에게 간단히 인사라도 하고, 마주치는 팬들에게 사인도 해 주고 사진도 찍어 준 후에나 귀가를 했을 텐데,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수현아.”
나는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가 벌어졌다 싶어졌을 때, 수현이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무슨 일 있어?”
“으, 응?”
수현이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더니 고개를 슬슬 저으며 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흐음……. 근데…….”
그녀의 나직한 답변에 더 캐물으려던 찰나, 재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가 아무것도 아님? 연주에서 티 남.”
“여, 연주?”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슬쩍 빼지 말라는 압박이다.
그러자 라희도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응. 평소보다 박자감도 떨어지고, 음표 튕기는 게 특기인 친구가 음 옮기는 걸 망설이고 있으니 확 느껴지긴 하더라.”
“아……. 음…….”
아무래도 둘 역시 수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하긴, 하루가 멀다 하고 쉬는 날도 없이 같이 모여 합주를 하는 사이이니, 평소와는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면 바보일 것이다.
애초에 연주 중간에 신호를 주고받아 수현이의 자잘한 실수들을 덮어 주기까지 했고 말이다.
수현이는 처음엔 부정하려 했으나 이어지는 재우와 라희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댔다.
“그……. 으…….”
그러다 입을 열었다.
“뭔가……. 오빠 무대를 보다 보니까……. 난 뭔가 싶어서…….”
“응?”
조금은 짧은 말에 의문을 품고 되묻자, 그녀는 조금 길게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나보다 연주도 잘하고……. 나보다 먼저 하기도 했고……. 나한테 베이스를 알려 주기도 했고……. 내가 그저 오빠를 따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 보다 보니까 뭔가 힘들어서…….”
수영 형의 연주가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형제이자 선배이자 스승인 오빠를 보고 자신의 연주에 대한 의문이 든 것이다.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고……. 현타라고 해야 하나, 이걸.’
능력 있는 혈육의 약진.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심정이 들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었다.
“흠…….”
나 역시 너무나 뛰어난 부모님과 형제들을 두고 내가 하는 음악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길을 잃었던 적도 있고, 그들에게서 얻었던 지식과 정보들을 통해 이룬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느껴진 적도 있다.
아마 수현이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보다 더할지도.’
내 경우엔 장르라도 달랐지, 수현이는 똑같이 락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다루고 있다 보니 그 비교의 대상이 어떤 인물인지 코앞에서 보이는 느낌일 것이다.
더군다나 베이스 연주의 기초를 자기 오빠한테서 배웠다지 않는가?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 내가 얻어 낸 수많은 결과물들이 내게 연주를 가르쳐 주었던 오빠는 진작 밟아 왔던 과거의 일이다.
지금껏 노력해 얻었던 성과들이 전부 부질없고 하찮게 느껴지면서 큰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큰일이네…….”
이거 잘못하면 생각보다 일이 안 좋게 풀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잠깐 흔들려서 평소처럼 멋진 연주를 못 했다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까의 무대가 그나마 나았다 싶을 정도로 그 고민에 깊게 매몰될 수도 있어. 어떡하지?’
자칫하면 슬럼프에 빠져 꽤 긴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비단 수현이에게만 힘든 일이 되는 것은 아닌데, 기본적으로 팀 게임인 밴드 생활에 있어 동료의 컨디션이란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컨디션이 완전히 무너져 당연히 되어야 할 연계가 되지 않고, 점점 연주의 퀄리티가 망가지는데 자신이 직접 손을 쓸 수는 없고.
그렇게 되다 보니 결국 다른 멤버들의 컨디션도 덩달아 떨어지고, 길고 긴 슬럼프 기간이 찾아올 수도 있다.
팀 멤버가 힘들어하는 것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덤이고 말이다.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이거 무슨 수를 쓰긴 해야겠는데.’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럴 땐 머리 비우고 합주나 하는 게 좋음.”
고민하던 찰나, 재우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응?”
“합주.”
그저 평소처럼, 합주를 하자는 말이었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니야. 틀린 말은.”
태클을 걸려는 라희와 달리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저 자기가 연주를 하고 싶어 던진 말인 것 같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고민을 털어 낼 수 있으면 그것도 좋겠지.”
가끔 머릿속을 꽉 채운 고민들을 털어 내는 데에는 정신없이 연습을 하는 것만 한 게 또 없으니까.
“그럼 스튜디오로 갈까?”
“뭐, 너희가 그러자면 나는 찬성.”
“이응.”
“내, 내 대답은?”
수현이가 소심하게 반발했지만, 그딴 것은 우리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
“당사자의 동의 따위는 필요 없다!”
“아아. 이것은 민주주의의 꽃,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의견 없이 그냥 데려가는 건데 민주주의 맞음?”
“쉿. 북한도 나라 이름에는 민주주의가 들어간다고.”
그렇게 우리는 귀가하던 발걸음을 돌려 재우의 스튜디오로 향했다.
이 정도로 수현이의 슬럼프를 막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함께.
하지만 아쉽게도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