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
티잉!
“앗.”
티딩, 뚝!
“아아……. 미안…….”
합주가 계속해서 뚝뚝 끊긴다.
수현이가 몇 번이고 실수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하면 되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응?”
“으, 응…….”
어떻게든 다독이면서 연습을 계속 진행했지만 잘 풀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긴장과 불안을 떨쳐 내기 힘든 듯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럼. 그냥 텅 비우고 연주만 하면 됨. 로봇처럼.”
“그, 그래도…….”
재우가 옆에서 조언을 던지긴 하지만 의미 없는 수준이다.
지금 당장 수현이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내용이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저게 쉽게 되냔 말이지.’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그걸 체화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특히나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조언한들 그게 제대로 실행이 될 리가 없었다.
“일단 계속해 보자. 하다 보면 조금 나아지겠지.”
“응…….”
천천히 수현이의 기를 죽이지 않고 연습을 계속해서 진행했다.
하지만 그녀의 감은 시간이 지나도 올라올 줄을 몰랐다.
“하……. 어쩔 수 없나.”
“미, 미안…….”
“아니, 뭐 굳이 미안할 것까지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
“응…….”
결국 우리는 수현이의 컨디션을 올리지 못한 채 연습을 종료해야 했다.
“조심히 가.”
“이응.”
“빠잉!”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가는 길.
나는 머리도 정리하고 바람도 쐴 겸 집까지 걸어가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그냥 넘기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이지…….’
슬럼프야 언제든 올 수 있고, 갑작스럽게 멘탈이 흔들려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은 흔한 것이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대로 넘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다고 해야 할지, 걱정이 너무 크게 든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팀 동료의 고통이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다녀왔습니다.”
“누우려면 씻고 누워라.”
“넵.”
집에 들어와서 대충 옷과 가방을 구석에 던져 두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컴퓨터를 켠 후, 메신저를 확인했다.
‘있네.’
수현이가 접속 중이었다.
타다다닥.
나는 대화창을 켜고 채팅을 보냈다.
나 : 안 자냐?
베이스걸 : ㅎㅎ……. 잠이 안 오네.
다행히 답장은 돌아온다.
침울해 있기에 연락도 무시하고 잠수라도 타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그 우울한 감정 이상으로 책임감이 깊은 녀석이다.
그나마 채팅 메신저를 통해서 말할 때는 길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녀석이기에, 나는 이대로 못다 한 대화를 마저 하기로 했다.
나 : 잠 올 때까지 얘기나 하든가.
베이스걸 : ㅎㅎㅎㅎ
당장 해결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의 기분 정도는 풀어 주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 : 오늘 공연 보면서 수영 형이 어릴 때 너 베이스 가르쳐 주던 게 생각났다고?
베이스걸 : 이제 벌써 오늘 아니고 어제네 ㅎㅎㅎㅎ.
나 : 아무튼.
베이스걸 : 아무튼. 나 어릴 때 생각해 보면 오빠가 침대에서 베이스 치는 장면만 떠올라. 오빠는 그 정도로 일찍 시작했어.
생각을 천천히 정리하고 있는 모양인지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리다.
하지만 여유롭게 기다려 주었다.
툭 터놓고 말하기 쉬운 주제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곧 메시지가 이어졌다.
베이스걸 :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게 재밌어 보여서 가르쳐 달라고 했고
베이스걸 : 오빠가 나한테 베이스 치는 법을 가르쳐 줬어.
베이스걸 :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구사하는 기술은 다 오빠의 연주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고…….
베이스걸 : 무엇보다 연주든 공연이든 오빠가 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따라 하게 되지 않나 생각이 들더라고.
그녀는 천천히 자신이 했던 생각을 뱉어 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글자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 그런지 꽤 정돈된 생각이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아마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해가 떨어지고도 시간이 꽤 지난 깊은 밤은 우리 편곡 담당들의 숨은 무대였으니까.
베이스걸 : 그러다가 이번 공연에서 느낀 건데
베이스걸 : 내 연주에 내가 있기는 한 걸까
베이스걸 : 정확히는 내가 하는 연주가 과연 내 연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베이스걸 : 전부 흉내였던 건 아닐까. 내가 아니라도 럭키데이의 베이스로서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텐데.
베이스걸 : 그런 생각이 드니까…….
베이스걸 : 연주를 제대로 못 하겠더라.
깊게 고민한 자신의 연주에 대한 생각이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자신의 연주에 대한 고민. 나아가 자기 스스로에 대한 고민.
‘하루 이틀 고민했던 일은 아니었구나.’
이건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연주자 진수현이 해 온 것들. 그리고 언젠가 하게 될 것들이 누구의 색을 띠고 있을지에 대한 소고.
자기 손끝으로 피워 냈던 음악이 자신 고유의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
대충 그녀가 품은 문제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강의 해결 방법 역시.
나 : 대충 넌 대단한 연주자야. 너는 제2의 진수영이 아니라 제1의 진수현이야. 같은 소리나 하면 콧구멍으로도 안 듣겠지?
베이스걸 : ㅎㅎㅎㅎㅎㅎ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나 : 그러면 이렇게 하자.
우선 필요한 것은 그녀의 위대한 스승이자 가장 큰 벽인 진수영의 연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연주를 선보임으로써 실력에 대한 확신을 되찾는 것.
나 : 내일 공연 보러 갈 거지?
베이스걸 : 응응
그리고.
나 : 무대 한 번 더 서야겠다.
베이스걸 : ???
그럼으로써 베이시스트 진수영을 완전히 뛰어넘어 버리는 것.
나 : 네가 더 쩌는 베이스인 이유를 알려 줄게.
깨우칠 필요가 있었다.
그녀 자신이 이견의 여지가 없는 진짜 천재라는 사실을.
* * *
아침.
스코프의 선우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벤트? 하기는 하는데…….”
나는 그에게 어제 했던 이벤트를 오늘도 진행하냐고 물어본 후, 그렇다는 답변이 들려오자 가능하면 조작이라도 해서 럭키데이를 무대로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어……. 갑자기?”
“저희한테는 나름 중요한 일이라서요. 어떻게 안 될까요?”
“뭐, 되긴 하는데…….”
다행히도 그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멍석은 깔렸다.’
일단 무대는 만들었다.
진수현이라는 베이시스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연주자인지를 알려 주기 위한 무대.
이 무대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으니, 부담감은 잠시 접어 두고 집중해야 한다.
“가자, 가자…….”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는 어제 한번 찾아가 봤던 공연장으로 향했다.
오늘 이벤트를 통해 무대에 서게 될 것이란 사실은 애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완벽해질 테니까.’
말하지 않아야 의미가 생기는 일들도 있는 법이다.
“루치 왔냐?”
“안녕하세요.”
진즉 공연장에 들어와 준비에 한창인 스코프와 데드록커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곧 사운드를 점검하던 선우 형이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너희 표 번호 좀 알려 줄래?”
“번호요? 일단 제가 17번이네요. 애들은 잘 모르겠는데…….”
“17번 오케이. 그거면 될 것 같다. 이따가 이벤트 참가자 뽑을 때 네 번호를 뽑을 테니까 애들 데리고 나오면 돼.”
“감사합니다, 정말로.”
“이런 것 가지고 뭘.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화이팅이야.”
“넵!”
이벤트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대충 계획을 그려 보았다.
‘조작 추첨일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선발되어 무대에 올라가면 애들을 이끌고 연주에 돌입하면 된다. 제일 중요한 점은 역시 수현이…….’
다만 이틀 연속으로 럭키데이가 추첨에 딱 꼽혀 무대에 선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는 불안 요소가 있기는 했는데, 딱히 상관은 없었다.
‘무대만 잘 만들면 뭔들.’
어차피 좋은 무대를 보여 주면 대다수는 자신이 직접 올라가는 것보다 좋아할 것이니까.
그것이 마니아들의 속성이기도 하고 말이다.
“루치쓰!”
“라희 어서 오고. 재우도.”
“히읗이응.”
공연 시간이 천천히 다가오고, 데드록커스와 수다나 조금 떨고 있으니 곧 아이들이 공연장에 도착했다.
먼저 라희와 재우가 들어오고, 조금 늦게 수현이가 입장했다.
“아, 안녕.”
“어서 와.”
여전히 의기소침한 분위기의 수현이.
“그냥 정신줄 놓고 공연이나 즐기자, 오늘은. 오케이?”
“응…….”
나는 마치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공연만 볼 거라는 양 말했고, 수현이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서 어쩌나…….’
오늘 빡세게 굴러야 할 텐데, 속이는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 너를 위한 행동이란다…….’
수현이 본인을 위해 하는 행동이니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 믿으며, 우리는 관람에 들어갔다.
공연이 시작되고, 어제처럼 높은 퀄리티의 무대들이 이어졌다.
어제와 달리 데드록커스의 무대가 먼저, 그리고 스코프의 무대가 2부를 꾸민다.
내내 생각했던 것이지만 밴드의 에너지 수준을 넘어 참 공연 잘하는 사람들이다.
‘체력이 무한한 건가?’
지치지도 않고 뛰어노는 그 모습에 나까지 힘이 솟는 느낌이다.
슬쩍 살펴보니 수현이의 표정 역시 한결 편안해 보였다.
최대한 안심시키는 데에 집중하고, 연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게 함으로 부담을 덜어 준 덕분이었다.
“오케이. 그럼 이제 저희도 이벤트 무대를 만들 때가 됐죠?”
스코프의 2부 무대 중간.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왔다.
“데드록커스는 또 비행기 던졌죠? 저희도 어제처럼 번호로 추첨을 해서 해당 번호의 티켓을 가진 분들을 무대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선우 형이 위에 구멍이 뚫린 상자에 손을 넣고 휘적이더니 공을 하나 뽑아 들었다.
당연하게도 그 번호는.
“17번! 17번 계신가요?”
내 티켓에 쓰인 번호, 17번이었다.
“아, 저기 있군요. 덩치 크고 노래 잘할 것 같이 생긴 관객분!”
관객들이 제각각 자기 표를 살피며 번호를 확인하고 있던 그때 내가 손을 번쩍 들었고, 선우 형이 나를 가리켰다.
“뭐야? 누구야?”
“럭키데이네?”
“또 당첨이야? 하하하!”
내 얼굴을 알아본 몇몇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 그러면 우리 럭키데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무대에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
관객들이 우리에게 환호를 보낸다.
“가자.”
“뭐야? 준비된 무대야?”
“뭐 어떰. 연주만 하면 됨.”
라희가 내게 묻고, 재우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무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루, 루치야…….”
“괜찮아. 올라가자.”
“으…….”
기대했던 상황이 아니었기에 수현이는 울먹였지만, 곧 나를 따라 무대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혼자 남아서 뭐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멤버들 모두 무대에 있는데 관객석에 덩그러니 앉아 구경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미약하게 손을 떨고 있는 수현이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히 말했다.
“무조건 나만 따라와. 알겠지?”
“으, 응…….”
이 한마디가 진수현 슬럼프 극복 계획의 키포인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