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
잔뜩 긴장해 불안감을 온몸으로 티 내는 수현이가 걱정스러웠지만, 꼭 해야만 했다.
우선 밑밥은 잘 깔아 놨다.
무조건 나만 따라오라는 주문.
“기술에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울리기만 하면 돼.”
“응…….”
진수영 동생, 후배 베이시스트, 카피캣.
그녀가 만들어 낸 그녀를 짓누르는 모든 타이틀을 떼어 내고, 럭키데이의 멤버 진수현으로서 관객들에게 비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일단은 나름 머리를 굴려 만들어 낸 판이기는 한데…….
‘이게 잘 먹힐지는 모르겠네…….’
통할지 아닐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확신이 없더라도 일단 해 봐야만 했다.
앞으로 럭키데이가 할 활동을 위해서.
진수현이라는 천재 베이시스트의 성장을 위해서.
“준비됐어?”
“넵!”
기타를 잡은 선우 형이 우리에게 묻고, 내가 큰 소리로 답했다.
“오케이. 코드는 우리가 줄 테니까, 디테일은 너희가 채우면 돼. 가자!”
이윽고 이벤트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경력만 따지자면 음악 선배인 내가 나름의 가르침을 전수하기 위한 무대가.
* * *
‘기술에 신경 쓰지 말고 따라오기만 하라니…….’
수현은 연주 시작 직전 쏟아진 루치의 말이 다소 당황스러웠다.
애드리브를 하든, 실수를 하든, 갑자기 베이스의 신이 몸에 강림해 1초에 20회의 스트로크를 갈기며 신들린 속주를 하든, 그것은 나중 얘기이니 일단 자신에게 맞추는 것에 집중하란다.
의아하기는 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편하기도 하고…….’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무대에 올라왔으니 연주를 하긴 해야 했다.
다행히도 근음을 잡아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기본적인 롤을 맡아 그저 맞춰 주며 묻어 가는 연주를 해도 된다니 천천히 긴장을 풀고 할 생각이었다.
짝! 짝! 짝! 짝!
두 명의 드러머 중 라희가 첫 박자의 시작을 끊는다.
‘라희는 오빠들보다 박자가 정확하니까…….’
절대 박자의 살아 있는 메트로놈이 있는데 굳이 인간들끼리 박자를 맞출 이유가 없다.
오빠들이나 루치, 재우처럼 숙련된 뮤지션들도 그 재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연주는 실력자들에 비해 손색이 있다지만, 가파른 성장세를 보면 그 피지컬과 박자 감각이라는 재능에 더해 더욱 훌륭한 연주자가 될 것이 분명한 라희였다.
‘멋지네……. 라희…….’
수현은 이렇듯 제 능력으로 인정받는 라희가 살짝 부러웠다.
하지만 상념도 잠시.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그녀는 드럼 박자에 맞춰 일정한 리듬으로 현을 두드렸다.
기교도 없고 통통 튀는 박자도 없는 짧은 노트의 반복.
그런데 간단한 역할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틀리면 어떡하지…….’
그저 정해진 리듬대로 피크만 튕기면 되는 일이지만 심적인 부담감이 너무나 컸다.
혹시나 자신의 연주를 누가 듣고 전부 따라 하는 것뿐이라며 욕하는 것은 아닐지, 이토록 화려하고 멋진 합주에서 자신 혼자 질이 낮다며 미움을 사지는 않을지.
온갖 부정적인 상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정하고 천천히. 일정하게…….’
수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고 손가락을 놀렸다.
평소처럼 리듬감을 살린다거나 연주에 포인트를 주는 것 없이 근음 셔틀 노릇만 하는데도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며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때.
지지징, 챡! 징, 지지징, 챡!
연주를 하던 도중, 세컨드 기타인 루치가 갑자기 스트로크 패턴을 바꾸었다.
‘커팅?’
스트로크를 하다가 손 옆면으로 기타 줄을 때려 주는 오른손 커팅.
루치가 사용하는 악기가 하이브리드 기타이기 때문에 줄이 때려지며 경쾌한 소리가 마치 타악기처럼 울렸다.
수현은 당황했다.
‘이, 이대로 하면 안 돼!’
하던 대로 근음을 잡고 툭툭툭 때리기만 하면 루치가 만들어 낸 리듬감이 끊길 것이다.
잘 진행되고 있는 연주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둥, 두둥, 툭. 둥, 두두둥, 둥, 툭.
그녀는 곧장 줄을 강하게 누르던 왼손에서 힘을 살짝씩 풀어 주며 피킹 중간중간 뮤트를 넣어 주었다.
급한 조치였지만 소리가 적당히 어울리기 시작했다.
‘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는 연주를 이어 나갔다.
다행히 급한 와중에도 튀지 않게, 최소한의 변화만 주며 합주의 맥을 끊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투두둥, 투둥, 두두둥, 디리리링!
‘태, 태핑? 갑자기?’
급격하게 터지는 태핑.
루치가 왼손과 오른손 모두를 사용해 프랫을 때리듯이 눌러 대며 음을 짧게 짧게 끊어 현란한 주법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 바꿔야 해!’
기본적인 하이 코드 리듬 연주만 하며 합주의 큰 틀을 잡아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루치가 평소에 사용할 일이 없는 기술이 튀어나오니, 수현은 순간 크게 당황했다.
수현은 급하게 자신의 주법을 바꿔 루치의 소리에 맞추려 했다.
처음처럼 근음을 튕기는 피킹으로.
티잉!
하지만 아뿔싸.
‘아, 안 돼!’
당황한 마음에 급하게 손을 움직이다가 음이 튀어 버렸다.
연주 실수는 더 큰 당황을 만들었고, 그녀는 순간 얼어붙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 나 때문에 연주가…….’
밸런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함께 연주를 만들어 가고 있는 그녀의 오빠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멀쩡하게 소리를 이끄는 중이다.
‘오빠였다면 이런 실수 같은 건…….’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피어오른다.
이것은 럭키데이의 소리가 아니다.
‘나 때문에.’
언제나 재기발랄하고 아름다운 그 소리가 자신의 실수 탓에 망가지고 있다.
죄책감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차오른다.
그런데 그때.
“괜찮아. 계속해. 내 소리에만 집중하고.”
꽤 빠른 템포의 연주를 지속하고 있는데도 수현의 소리에 신경을 쓰며 말을 걸어오는 루치.
“……응.”
그의 말을 들은 수현은 천천히 속도를 회복하며 연주에 재합류했다.
다행히 다시 섞여 들어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금방 만들었던 실수가 신경 쓰였지만, 그것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손을 놀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티이잉!
그 후 다시 주법이 바뀌고, 수현은 어김없이 실수를 만들었다.
“아…….”
손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손에 힘이 없는 것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랬다.
‘차라리 올라오지 말걸…….’
그럼에도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 친구들의 뒤를 따라 무대에 올라왔고, 아니나 다를까 실수를 연발하고 말았다.
부끄럽고 죄스러워 눈물이 울컥 솟을 것 같았다.
차라리 무대에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실수를 남들에게 보일 일도 없지 않았을까 싶어 후회마저 들었다.
그런데.
“괜찮아. 네 연주를 해. 하지만 신경 쓸 건 우리 연주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루치가 자책할 시간도 주지 않고 옆에서 다시 말을 걸었다.
“음…….”
“악기가 전부 모여서 밴드 사운드가 만들어지는 거잖아. 네가 앞장서서 리딩을 할 수도 있고, 녹아들어서 빈틈을 메울 수도 있어.”
수현은 연주 도중에 어떻게 저렇게 길게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손도 안 꼬이나?’
어쩌면 항상 기타를 치면서 노래까지 부르는 역할을 맡아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것이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의 말을 듣다 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손가락의 감각이 돌아온다.
“우리 연주에 집중해. 네 소리가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관객들? 네 오빠?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응…….”
“지금 무대에 있는 건 진수영에게 베이스를 배운 그 동생 진수현이 아니라 럭키데이의 베이시스트 진수현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여러 악기 소리가 모여 밴드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만고불변의 진리이기도 하다.
‘나 하나 실수한다고 전부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묘하게 든든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사로운 조언이 뭔가 깊게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떨리지 않아.’
분명 자신의 실수 때문에 기분이 나빴을 순간이 몇 번이고 있었는데도, 동료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덮어 주며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음이 새삼 느껴졌다.
당연하다.
그게 밴드 사운드니까.
자신이 언제나 만들고 싶었고, 친구들과 함께 즐겨 온 음악이니까.
그리고.
“응……!”
그의 말에 긍정하고 손에 힘을 넣는 순간, 그녀의 연주에 힘을 실어 주던 모두와 공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울컥 솟아오른 감정이 우울과 불안이 아니라 동료들에 대한 감사와 자신이 사랑했던 음악에 대한 열망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
앞장서서 아이들을 이끈다.
녹아들어 빈틈을 메운다.
자연스럽게 섞인다.
루치가 던졌던 단서들이, 별것 아닌 그 몇 마디의 말이 한 덩이로 꾸덕꾸덕 뭉치더니 그녀의 눈에 보이는 온 세상에 꽉 들어차기 시작한다.
두웅…….
고음에서 저음으로 슬라이딩을 한 번 주고, 귀에 신경을 집중한다.
지이잉! 지지지징!
평소처럼 손가락이 이끄는 대로 마구잡이로 뛰어나가는 재우의 기타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두면 안 된다.
재우의 연주는 절제되어 그 날카로움을 뽐낼 때 가장 멋지니까.
둥, 디리리링, 두둥, 둥, 둥…….
천천히 기타가 만드는 음표의 앞뒤로 장애물을 세운다.
가볍게 훌쩍 뛰어넘을 수는 없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지는 않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금 신경을 써서 박자를 맞춰야 하는 장애물.
간단하지만 세심하게 박자를 밀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동료의 연주를 훨씬 멋지게 살려 냈다.
두둥, 칫, 채앵! 치치칫! 두두둥. 둥, 칫…….
한편 라희의 소리는 언제나처럼 단단하고 정확하다.
지금 당장 박자를 건드릴 필요는 없지만, 사이사이를 메워 쫀쫀한 맛을 더 살려 준다면 그 경쾌함이 크게 느껴질 것이다.
두둥, 두둥, 두둥, 두두두둥.
짧게 짧게 소리를 쪼개 넣는다.
그것 하나만으로 비어 있던 땅에 갈대가 심어지듯 소리가 빽빽해지고, 라희의 드럼 소리는 울창한 대나무숲이 되어 눈과 귀에 한껏 들어온다.
가득 찼지만 시원한 공간감이 아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징, 지지지징, 지징, 지지지징.
아주 규칙적으로 울리는 세컨드 기타의 스트로킹.
‘건드릴 부분이 없네. 완벽해.’
멤버 전원에게 맞춘, 튀지 않는 소리와 무색무취의 박자.
하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밴드 사운드 전체를 아우르는 편안함.
이것이 배려심 넘치는 김루치아노의 소리였다.
‘편안해.’
연주가 쉽다.
별것 아닌 계기로 만들어졌던 부담감이 정말 별것 아닌 응원과 조언들을 마주하고서는 그대로 사라졌다.
평소에는 하루 종일 들어도 즐거웠던 악기들의 소리가 터지고 찢어져 불안하게만 들렸던 게 방금까지였는데, 어느새 그녀에게 찾아왔던 불안감이란 간데없고 이토록 포근한 느낌만 가득하다.
신기한 일이다.
‘아…….’
그리고 그녀는 새삼 느꼈다.
‘럭키데이의 소리가…….’
모두와 하나가 되어 만드는 소리는…….
‘돌아왔어.’
이토록이나 아름답다는 것을.
두두두두둥, 디이잉, 두둥, 두두두둥!
천재 베이시스트 진수현의 손가락이 힘차게 줄을 두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