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06
105화
사각사각…….
시간은 빠르게 지나 기말고사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사각사각사각…….
가창, 청음 같은 전공 시험과 공통 교과인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시험을 전날과 전전날에 모두 해치우고 남은 시험은 둘.
지금 보는 교양 음악과, 내가 직접 개설 요청을 넣었던 전공 실기 과목 밴드 합주였다.
‘각 화음 기호의 연결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감3화음 – º, 전위 화음 – 세로열 아라비아 숫자, 반감 7화음…….’
화성학 기초와 대략적인 음악사 등.
달달 외우지 않고는 다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괜찮다.
‘미리 다 외우길 잘했지, 시험 기간 들어와서 급하게 공부 시작했으면 절반도 못 풀었겠네.’
교양 음악은 평소 관심 있던 과목인지라 수업 끝날 때마다 복습을 꾸준히 했기 때문.
아아. 대류. 복습이 최고다.
“자……. 종료 5분 전이니 마킹부터 끝내세요. 종 치면 바로 걷어 갈 겁니다.”
시험 감독 선생님이 시계를 보고 경고를 날린다.
이제 끝이 다가온다는 알림이다.
‘마킹 해야지.’
진즉 다 풀고 문제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던 나는 컴퓨터용 사인펜을 꺼내 마킹을 시작했다.
‘딱히 틀린 건 없는 것 같고…….’
거침없이 OMR 카드를 채워 나가면서도 한 번씩 실수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며 신중하게 펜을 놀렸다.
딩동댕동.
마킹을 모두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 울렸다.
“팬들 내려놓고. 맨 뒷자리 학생이 쭉 걷어 오세요.”
감독 선생님의 공지와 함께 시험이 종료되고, OMR 카드가 내 품을 떠나간다.
“으아아아아아.”
“망했어. 망해 버렸어.”
“혼돈, 파괴, 망각…….”
“정신 차려. 아직 시험 세 개나 남았잖아.”
“넌 몇 개 남았냐?”
“야, 음악사 문제 다 풀었어? 나 시험지 좀 보여 줘 봐.”
아이들이 각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친구를 찾아가 떠들어 댄다.
시험을 망치고 한탄하는 녀석, 남은 시험이 몇 개인지 확인하는 녀석, 방금 푼 시험에 대한 불안감을 남의 답지를 보며 해소하고 싶은 녀석 등등.
‘아니 근데 그게 남의 시험지 본다고 답이 나오나?’
각자 긴 시험 시간 동안 꾹 눌려 있던 자아를 풀어 주고자 나름 기지개를 켜는 방식이다.
“끝……. 드디어 필기 끝…….”
“너무 힘들었음.”
“고, 고생 많았어, 얘들아.”
그리고 긴 시간 고생한 것은 우리 멤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 수고들 했어.”
직접 연주하고 즐기는 것에만 몰두하던 녀석들이 가만히 앉아서 펜대만 굴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만 해도 대견했다.
‘물론 내가.’
이 실기 몰빵 괴물 놈들을 책상 앞에 앉혀 조금이라도 공부라는 것을 하게 만든 내가 너무나 대견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나.
“나랑 루치는 이제 합주 실기만 하면 끝이야.”
“재, 재우랑 나는 엔지니어링 수업 필기 하나 더 남아 있어.”
“아하. 그 믹싱 배우는 수업인가?”
“응. 믹싱이랑 마스터링이랑 레코딩이랑…….”
“음. 그럼 실기 끝나고 스튜디오 먼저 가서 기다릴게. 괜찮지?”
“응.”
나와 라희는 합주 실기만 보면 끝, 재우와 수현이는 실기 직후 필기시험 하나가 더 남은 상황이다.
실기 퍼포먼스는 배정받은 연습실에서 감독 선생님과 함께 장비에 대고 지정곡 하나, 자유곡 하나를 녹화하면 끝이기에 진행에 있어 시간을 그리 오래 잡아먹지 않는다.
‘의외로 배려가 있는 스케줄이란 말이야.’
학생들도 개인 레슨 같은 스케줄이 있고, 다른 시험 탓에 피로가 많이 쌓였을 것을 배려해 다 같이 모여 실기 평가를 행하는 방식에서 이렇게 녹음, 녹화를 이용한 평가로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최근 꽤 큰 예산을 들여 녹음, 녹화 장비들을 학교에 많이 들여놓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당신의 예산, 여기에 잘 써먹었습니다, 하면서 구색을 맞추기에는 시험만 한 것이 없을 테니까.
‘쏠쏠히 잘 써먹는다는 티를 또 내 줘야 나중에 장비들 지를 때 지원도 더 받고 할 테니까.’
아무튼 결과적으론 바람직한 변화였다.
“지정곡 하나, 자유곡 하나 전부 합쳐서 10분 걸리는데, 남는 시간에 우리 시험까지 기다려 주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여럿이 모여서 보는 시험이라면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 오래 걸릴 텐데, 개개의 조별로 따로 진행하니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결국 시험 보는 시간 대략 10분을 제외한 한 교시가 전부 쉬는 시간인데, 이후 교시에 있을 재우와 수현이의 시험까지 기다리려면 꽤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 먼저 가서 연습하고 있을게.”
“아, 부럽.”
때문에 나와 라희는 실기를 마치고 스튜디오로 먼저 이동해 손이나 조금 풀고 있기로 했다.
그 짧은 시간 먼저 해방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부러운지, 재우가 나를 쏘아보았다.
“부럽지? 부럽지?”
“크윽…….”
녀석들을 놀릴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재우와 수현이를 양껏 약 올려 주었다.
“자, 올라가자.”
“고우 고우!”
우리는 장비를 챙겨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연습실.
“1조 럭키데이! 어서 오렴.”
1반의 담임이자 밴드 합주 실습 수업 담당, 김하선 선생님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자기 수업에서 팀을 결성해 데뷔까지 하게 된 제자들이 예뻐 죽겠다는 듯,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엇? 선생님이 우리 감독이에요?”
“응. 너희 말고도 절반 정도는 쌤이 직접 감독하지. 평가도 내가 전부 해야 해…….”
선생님은 힘들어 죽겠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하하. 안녕하세요.”
“시험 감독하시느라 고생 많으시겠어요, 쌤.”
“어휴. 말도 마. 수업은 좋아 죽겠는데, 시험은 왜 이렇게 힘들다니? 잘 배우고 잘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애들 성적을 나눠야 해? 이래서 어른들이란…….”
시험 보기 싫은 학생들이나 할 법한 말을 주절주절 떠드는 선생님.
왜인지 낯선 선생님에게서 익숙한 멤버들의 향기가 느껴진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실기 사랑으로 가득 찬 피지컬 타입이라고 해야 할지, 필기 척화론자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선생님도 이론파는 아니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었다.
선생님이면서.
선생님이면서!
“준비는 열심히 해 왔니?”
“넵!”
“만점 각!”
“무조건 만점!”
“시험 보기도 전에 이미 이김!”
“후후후. 지켜보겠어.”
우리는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연습실로 입장했다.
앰프, 믹서, 녹화와 녹음 장비, 그리고 선생님이 앉아서 감독할 의자와 책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지? 지정곡 하나, 자유곡 하나. 세팅은 알아서들. 오케이?”
“넵!”
“준비되면 말해 줘. 바로 녹화 시작할게.”
“네넵!”
우리는 자리를 잡고 서서 조율과 톤 메이킹에 들어갔다.
딩, 디잉…….
“소리 큰가?”
“아니, 적당해. 위아래 좀 만져 봐. 너무 깎인다.”
“아, 너무 돌렸네.”
이미 시험을 준비하면서 미리 맞춰 놓은 것이 있었기에 준비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 됐습니다.”
“오케이. 좋아. 편할 때 바로 시작하면 돼.”
“넵.”
내가 대표로 말하니 선생님이 곧바로 녹화 장비를 돌리기 시작했다.
끄덕.
끄덕.
이제는 루틴처럼 된 눈 맞추기.
서로 준비가 되었음을 확인한 우리는.
딴단단단 딴……, 딴 딴 다라란…….
곧장 연주에 돌입했다.
“There’s a girl who is sure all that glitter is gold…….(한 소녀가 있네,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 금인 줄로만 아는…….)”
우리가 준비한 첫 곡은 실기 지정곡 중 하나인 Red Zeppelin의 Stair to heaven.
재우와의 첫 만남에서 불렀던, 그리고 그의 너튜브 채널을 통해 처음으로 대중과 마주했던 나름 짧은 추억이 담긴 노래다.
“If there’s a bustle in your hedgerow, don’t be surprised now. Just a spring clean for May queen.(바람이 울타리를 어지럽혀도 놀라지 말라네. 메이퀸을 위해 봄 청소를 하는 것뿐이니.)”
다만 연주의 퀄리티는 그때와 사뭇 달랐다.
둥, 두둥, 둥, 두두둥. 채애앵!
멜로디 기타를 제외하고는 MR을 틀어야 했던 전과 달리, 지금은 든든하게 뒤를 받쳐 주는 베이스와 드럼이 있다.
‘아, 너무 좋아.’
소리가 공간에 꽉 차는 것이 그때와 비교가 되어 그런지, 부르는 내가 신이 나서 주체할 수가 없다.
“When we wind on down the road!(우리가 인생의 길을 달려갈 때!)”
지르는 맛이 시원하게 살아야 하는 챕터 3의 보컬 파트에 와서는 심장이 벌렁거리는 와중에 호흡량을 조절하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너무 통쾌한 기분에 소리가 과하게 커지면 기타와 베이스를 잡아먹을 수 있으니까.
물론 전문적인 마스터링 없이 그대로 녹화하는 장비에 그런 디테일이 다 잡히지는 않겠지만, 현장에 관객이 있지 않은가?
“크으으…….”
김하선 선생님이 마이크에 잡히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감탄하는 것을 보며,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Our shadows taller than our soul!(우리의 그림자는 우리 영혼보다 더 크다네!)”.
완벽하게 맞는 호흡의 반주가 헤비메탈 뉘앙스의 시원함을 더더욱 살려 주었다.
노래가 흐르면 흐를수록 일치되어 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좋아 미칠 것 같았다.
“And the girl’s buying the stair to heaven…….(소녀는 비로소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구하게 될 것이라네…….)”
다라라란…….
아련하게 흩어지는 마지막 스트로크와 함께 첫 곡이 마무리되었다.
“휴우! 오케이. 바로 자유곡.”
“넵.”
지정곡을 깔끔하게 끝낸 우리는 곧바로 자유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툭, 툭, 툭, 툭.
라희가 드럼 옆면을 살짝 두드려 BPM을 잡아 주고.
둥둥, 착! 둥둥, 차작!
수현이의 베이스가 묵직하게 서막을 열었다.
“아하. 돈키호테.”
우리가 고른 자유곡은 태호에게 받아 더 밴드 코리아의 결승 무대에서 선보였던 연주곡, 돈키호테.
두둥, 둥, 두둥! 두두두둥, 두우웅!
직전의 곡 Stair to heaven은 잔잔하게 끝을 흐려 그간 뱉어 온 모든 서사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챕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끊어지듯 깨끗한 박자로 시작해 계속해서 박자를 쪼개 주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가 후속으로 오기에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으로 고른 자유곡이다.
확 죽어서 완전히 정리된 분위기를 천천히 끌어올려 열광을 향해 달리는 곡이니까.
“호오오…….”
지켜보던 김하선 선생님의 표정이 확 진지해진다.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군.’
그동안 실습 수업을 진행하면서 봐 왔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것은 좋은 신호였다.
김하선 선생님은 집중도가 올라갈 때 내용물을 분석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음악을 감상하고는 했다.
그 말은 곧…….
‘점수 좀 기대해도 되겠는데?’
실기 시험 점수는 기대를 좀 해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뜻이었다.
두두두둥, 두두두둥, 채앵! 두두두둥, 두두두둥.
우리는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힘을 붙여 연주를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