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07
106화
두둥! 채재재쟁! 둥! 두두둥! 둥! 두두둥!
단단한 바닥이 되어 깔리는 드럼 리듬.
지잉, 지지지징! 디리링, 지지지징!
그 위에 차곡차곡 얹히는 기타와 베이스의 연주.
“아아,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부드럽게 섞여드는 가성의 코러스.
“햐……. 잘한다…….”
경쾌한 드럼, 화려하고 리드미컬한 퍼스트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제대로 틀을 잡고 선 나의 리듬 기타와 보컬 코러스.
재능 있는 프로듀서인 태호가 설계한 대로, 화려하면서도 깨끗하게 쭉쭉 달렸다.
연주를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선생님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평가할 때 제일 마지막에 봐야겠네. 이런 연주를 먼저 보면 다른 애들은 어쩌라고…….”
극찬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잔뜩 고조된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고 조심조심 소리를 줄였다.
두우웅!
라희의 마지막 킥 신호와 동시에.
다라라란…….
부드러운 하모니와 함께 연주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연주가 끝난 환희에 젖어 있을 때.
“브라보! 브라보!”
시험 감독에서 관객이 되어 버린 김하선 선생님이 환호성을 질러 댔다.
피식.
순간 웃음이 터진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럭키데이였습니다.”
“흐하핫!”
마치 공연을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듯 고개 숙여 인사하자, 선생님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이건 시험 평가 이후에도 개인 소장해야지.”
“아니, 잠깐. 선생님?”
그런데 뒤따르는 말이 이상하다.
‘어……. 시험 자료는 대외비 아닌가? 저래도 돼?’
내 농담에 터진 줄 알았더니 진짜 관객 모드로 들어가 어두운 웃음을 흘리는 김하선 선생님.
“히힛, 히히히힛…….”
“서, 선생님?”
보다 못한 내가 소리 내어 부르자 선생님이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츄르릅! 응? 아. 응! 고생 많았어. 여기 사인하고 나가면 돼.”
“어……. 넵…….”
뭔가 이상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인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겠지 싶어 그대로 놔두고, 하선 샘이 내미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시험을 정상적으로 진행했는지 확인하는 확인서 겸 출석부였다.
“오, 친필 사인.”
“항상 행복하세요 같은 문구라도 쓸까?”
“오바 니은.”
“오케잉…….”
우리는 각자 이름 옆에 체크하고 서명을 넣었다.
그 옆에 있는 감독 확인란에 하선 선생님이 따라서 서명하고 인사를 건넸다.
“너희는 처음부터 잘했지만, 학기 초에 비해서 실력이 훨씬 늘어난 게 눈에 보이네.”
“헤헤. 감사합니다.”
“준비 열심히 했으니까요.”
“그래. 고생 많았어.”
이제 프로페셔널로서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지만, 스승의 칭찬은 너무나 달콤했다.
이건 아무래도 내가 더 경력이 쌓이고 언젠가 호호할배가 되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 맛에 음악을 못 끊는다.
“선생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선생님께 고개를 푹 숙여 보이며 감사를 표했다.
“오냐. 다음 주에 보자.”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슴당!”
“응. 시험 끝났으면 푹 쉬고!”
“넵!”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우리는 1층 교실로 내려왔다.
“으아아! 드디어 끝!”
문을 닫고 들어오자마자 라희가 환호성을 지르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재우와 수현이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아직 하나 남았음.”
“부럽다…….”
“으히히히! 부럽지? 부럽지?”
“응…….”
라희는 아직 필기시험이 하나 남은 재우와 수현이를 최선을 다해 놀렸다.
오래간만에 놀림을 당하는 입장에 처한 둘은 부러운 눈빛을 보낼 뿐, 어떻게 대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잠깐 그것을 흐뭇하게 감상하다가 둘에게 물었다.
“너희는 이제 교실에 있다가 시험 보는 교실로 가는 거지?”
“니은.”
“자, 잠깐만 쉬다가 미리 가서 요약 노트를 조금 보려고…….”
“아하.”
시험이 끝나기만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름 잘 볼 생각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좋은 선택이야. 응.”
“먼저 스튜디오로 가 있으셈. 곧 감.”
자신도 딱 한 교시만 더 고생하면 된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부러움은 모두 떨쳐 버렸는지, 재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시험 잘 보고 와. 먼저 갈게.”
“이응.”
“가, 가자. 재우야.”
“이응.”
수현이와 재우가 먼저 가방을 챙겨 시험을 볼 교실로 떠나고,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잘 보고 와야 할 텐데.’
워낙 벼락치기로 공부를 때웠기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엔지니어링 과목은 녀석들이 그나마 집중해서 배우던 과목이니 마음을 놓기로 했다.
잠시 후, 나와 라희도 천천히 짐을 챙겼다.
“우리도 갈까?”
“가자, 가자!”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문을 나섰다.
“끄으으으으! 이제! 드디어! 마침내! 끝이다!”
라희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길 한복판에서 기지개를 켜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좋냐?”
“당연하지! 어울리지도 않는 공부만 하느라 드럼 근육이 다 녹아 없어진 느낌이라고.”
내 물음에 라희는 껄껄 웃으며 답했다.
‘근육이 녹긴…….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얼마나 앉아 있었다고.’
잔뜩 엄살을 부리는 모습이 얄미웠다.
“얼씨구. 시험 며칠 더 했으면 아주 뼈만 남았겠네.”
“헉! 너무 무섭고!”
“무섭긴. 지금 당장이라도 드럼 다 때려 부술 것 같은데.”
“흐흐흐. 오늘 다 죽었어. 나 힘들어 쓰러질 때까지 아무도 집에 못 가.”
“오우. 연습에 대한 열정. 아주 좋아.”
우리는 시험이 끝났다는 기쁨에 겨운 헛소리를 뱉어 대며 스튜디오를 향해 걸었다.
“크……. 햇살 좋고.”
딱 점심 직전의 햇볕이 코끝에 부딪히고, 적당히 쨍해 좋은 날씨라 기분이 좋았다.
라희가 내게 말했다.
“루치야. 날도 좋은데 조금 걷다 들어갈까?”
따뜻한 기온이 좋아서인지 라희는 산책 삼아 조금 돌아서 갈 것을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응? 그래, 뭐. 먼저 가 봤자 세팅이나 할 테고, 딱히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니니까.”
“저쪽 공원으로 돌아서 가자.”
우리는 딱 좋은 날씨를 즐길 겸 공원 방향으로 진로를 돌렸다.
“벌써 한 학기가 거의 다 끝났네.”
“그러게.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시간 참 빨라.”
기말고사가 끝났으니 1학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났음에 감탄했다.
물론 달리 생각해 보면 얼마 되지 않는 그 몇 개월 남짓의 한 학기 동안 밴드를 결성하고, 앨범을 만들고, TV에 출연하게 되었으니, 빠른 건 시간이 아니라 이 녀석들의 성장 속도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괴물 같은 놈들.’
만약 재우, 수현, 라희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밴드를 결성했으면 어땠을까?
나는 그랬다면 절대 지금과 같은 성과는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앞으로 뭐 할 거야?”
“앞으로?”
“학기 끝나면.”
“흠…….”
라희가 내게 물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
깊게 생각하면 난해하지만, 당금의 구체적인 계획을 묻는다면 정해 둔 것은 있었다.
“글쎄……. 우선 바쁘게 활동해야겠지.”
아닌 게 아니라 앨범 작업도 거의 막바지겠다, 출시일도 임박이겠다, 정말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규모가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했음에도 몇 주나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공백을 메우고 이름을 알리려면 꽤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방송 출연도 해야 할 거고……. 미뤄 뒀던 행사도 돌아다녀야겠지. 그나마 싱 앤 톡에 나가기도 했고, 공연도 몇 군데 돌아다녔으니 브레이크가 확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래도 얼마 후면 촬영했던 예능 프로그램도 방영할 테고, 앨범도 발매될 예정이니 부스터가 달릴 것이다.
“행사? 축제 같은 거?”
“그렇지. 통장에 돈 들어오다 보면 아, 우리가 가수는 맞구나 하면서 실감이 좀 날 거다. 흐흐.”
“푸하핫! 그러게. 상금이나 그런 거 빼면 눈에 딱 보이는 수익이 없기는 했지.”
여러모로 바빠서 미뤄 뒀던 활동들이 꽤 많이 있다.
방송 출연 섭외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축제며 지역 행사 섭외 같은 것도 꽤 많이 있었는데 학교다 앨범 준비다 해서 많이 소화를 못 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은 여유로워지는 방학을 기회로 삼아 얼굴도장을 제대로 찍어야 했다.
아마 이렇게 활동을 하다 보면 계약금 이외에는 제대로 없었던 수익이 한 번에 쭉 들어올 것이다.
“방학 기간 동안에 바짝 당겨야 해. 응.”
“푸하하핫! 웃겨. 무슨 애가 말을…….”
다소 낡고 속물처럼 들리는 내 말에 라희가 웃음을 터뜨린다.
웃으라고 한 얘기에 잘 웃어 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맞다. 전에 재우가 말해 준 건데, 우리 학교 축제 있잖아…….”
“오? 진짜? 그럼 우리는…….”
“그것도 있고, 학생회 쪽에 물어보면…….”
우리는 스튜디오로 가면서 앞으로의 계획, 우리가 찾아서 할 수 있는 가벼운 활동들, 학기 종료를 앞둔 지금의 심정 등.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거의 매일 붙어 지내고 있는데도 할 말이 어쩌면 그렇게 많은지, 스튜디오에 도착할 때까지 입과 귀가 쉴 틈이 없었다.
“크어어. 좋다.”
햇살을 즐기며 산책을 하다가 스튜디오에 들어온 후, 라희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이내 거의 드러눕듯 편한 자세를 취했다.
몸을 던지듯 소파에 달려드는 바람에 가방에서 드럼 스틱이 떨어질 뻔했다.
“아저씨도 아니고 소리가 무슨……. 어어, 드럼 스틱. 스틱. 잡아.”
“앗, 땡큐.”
무슨 동네 아저씨처럼 깊은 소리가 뱃속부터 우러나오는데, 당장이라도 소주에 마른오징어를 대접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그래도 시험이 끝난 기쁨을 저렇게 표현하는 것이니, 오늘은 다소 소란스러워도 이해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애들을 너무 쥐어짜기는 했지.’
시험 성적을 핑계로 저 음악 좋아하는 녀석들을 책상 앞에 앉혀 공부만 시켰으니, 소리로 가득 찬 스튜디오가 그리울 만도 했다.
그래도 학생 밴드라는 신분을 무기로 삼던 우리가 엄밀히 말하자면 외부 활동인 밴드에만 집중하고, 학생의 본분인 학교생활은 망쳐 버린다면 따가운 시선이 날아왔을 터.
내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애들을 다그쳐야 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엔 소소하지만, 보상으로 오늘 하루 정도는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게 둘 예정이다.
“애들 금방 오려나?”
편한 자세로 잠시 다리를 휘적이던 라희는 시계를 보고는 내게 물었다.
빨리 합주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시험 끝날 시간은 됐는데. 정리하고 학교에서 여기로 오려면 대강 20분 정도는 걸리겠지.”
“으으으. 애들 오기 전에 먼저 좀 두드리고 있을래.”
“그래. 몸 좀 풀어 두는 게 좋지.”
“흐흐흐. 드럼찡! 내가 돌아왔어! 훅, 훅, 후훅!”
요 며칠 드럼을 못 치게 했더니 좀이 쑤셨는지, 지나치게 반가워하며 드럼에 달라붙는다.
‘역시 중간중간 좀 풀어 줄 걸 그랬나?’
애가 완전히 미쳐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