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08
107화
“얘, 얘들아?”
“오, 왔어? 시험은?”
“헤헤……. 괜찮게 치른 것 같아.”
“하이.”
“재우도 어서 오고.”
라희와 함께 잠깐 기다리고 있자 수현이와 재우가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시험은 나쁘지 않게 본 듯, 표정이 밝았다.
“요약본에서 본 내용들이 많이 나와서 푸는 게 어렵지 않았어.”
“다행이네. 태호한테 부탁해서 필기 노트 베껴다 준 보람이 있어.”
“아? 그게 태호 거였어?”
“그렇지.”
“나중에 고맙다고 말해야겠네…….”
애들이 시험을 잘 봤다고 하니 내 노력의 대가를 받는 기분이다.
며칠 동안 동분서주하며 프린트 챙기고, 노트 베낀 보람이 있었다.
“재우! 수현! 빨리 와! 빨리, 빨리!”
담소를 나누는 사이 제 장비를 모두 챙겨 든 라희가 애들에게 소리쳤다.
그 잠시를 못 참겠다는 듯,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어허. 조금 기다려. 얘네도 숨은 좀 돌려야지.”
“니은. 바로 시작해도 됨.”
“헤헤……. 사실 나도 당장 합주부터 하고 싶은데…….”
그런 라희를 말리려는데, 재우와 수현이가 손을 내젓는다.
두 녀석도 이미 합주를 할 생각에 들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래…….”
음악에 미친 놈들.
하지만 그저 평범한 럭키데이의 일상 그 자체였다.
“가자, 가.”
“야호!”
“헤헤. 합주다…….”
“연습할 곡 있음?”
애들은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쁜지 폴짝폴짝 잘도 뛰어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딱히 연습하고 싶거나 당장 익혀야 할 건 없는데. 잼이라도 할까?”
“잼 좋지!”
“손 풀 겸. 기역기역.”
처음부터 너무 급하게 가면 빨리 지친다.
나는 연습의 템포를 조절하기 위해서 잼을 하며 시작하기를 권했고, 멤버들도 모두 동의했다.
“누구부터?”
“라희.”
“나!”
“오케이. 고.”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라희는 킥을 쿵쿵 밟아 대며 리듬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기계처럼 정확한 박자.
거기에 수현이가 눈치를 보다가 먼저 달려들어 코드를 얹었다.
둥둥둥둥, 두두둥둥, 둥둥둥둥, 두두둥두둥.
수현이가 깔아 둔 코드로 진행이 결정되었다.
앞으로 연주가 어떻게 흐르든 그녀가 먼저 알려 준 코드에서 뛰어놀게 될 것이다.
‘도미솔라, 솔시레미에서 파라도레……. Am7 Em7 Dm7이군. 세븐 코드로 시작이야? 대충 각은 나오네.’
집중해서 수현이가 던지는 음표를 체크한다.
개방현을 많이 끼워 넣는 식으로 어렵게 가자는 의도가 다분한 소리를 세심히 살펴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감을 잡았다.
지이잉!
슬라이딩을 한 번 당겨 주고 하이 코드 리듬을 만들며 연주에 끼어든다.
딩, 디잉, 딩딩딩, 끼익! 디리링, 디링!
이에 다소 거친 마찰음을 섞어 대며 재우가 멜로디를 만든다.
평소 같았으면 이대로 쭉 진행하며 손기술을 점검했겠지만, 오늘은 처음 수현이의 장난을 시작으로 다채로운 변주의 장이 될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얍!”
두둥, 채채챙! 챙! 두두둥, 챙! 두두둥! 챙챙챙!
멜로디가 바뀌기도 전에 라희가 선빵을 날렸다.
“크……. 엇박 봐라.”
살짝이라도 정신줄을 놓는다면 반 박자 이상 밀릴 것이 분명한 엇박자 연주.
다만 그녀의 의도와 달리 우리 중 그 누구도 박자를 놓치는 일은 없었다.
오랜만의 합주여서인지 모두의 집중력이 최고조였기 때문이다.
“힘듦?”
“그럴 리가.”
재우가 옆에서 눈짓하며 도발을 날려온다.
이럴 수가.
이 밴드의 리더이자 프론트맨인 내가 이런 무시를 당하다니.
가만히 두고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지이이이잉!
마디가 넘어가는 순간 슬라이딩을 당겨 아이들의 집중력을 모으고, 내 나름의 장난을 가미했다.
퉁, 두둥, 짜아악! 둥둥, 두룽, 짝! 둥둥, 두둥, 짜악!
“오, 슬랩.”
“스, 슬랩?”
보통 베이스 기타에서 많이 사용하는 주법이다.
손가락으로 줄을 뜯는 플럭, 엄지로 줄을 때리는 썸 주법으로 만드는 경쾌한 소리.
강하게 때려 주는 그 소리는 단순히 악기 연주가 아니라 수현이에 대한 도발이나 마찬가지였다.
“으으…….”
수현이는 짐짓 화가 난 척 소리를 내더니, 곧장 그 도발을 받아 주었다.
디리리리리리링, 디리리리리리링!
“와, 미쳤다.”
순간 내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디디디디딩, 디디디디디디딩!
잠시 피크를 입에 물고 손가락을 이용해 줄을 두드리듯 눌러 대는 수현이.
거의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빠르고 부드러운 태핑 속주가 터져 나왔다.
보통은 기타리스트가 많이 사용하는 기술인 태핑을 굳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대표적인 베이스 주법인 슬랩을 선보인 내 도발에 대한 응답인 듯했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평범한 베이스 연주만 생각했다가 지금 수현이의 연주를 듣는다면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며 감탄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 정도로 깨끗한 기술이었다.
위이이잉! 지지지징, 위이이이잉!
그에 질 수 없다는 듯 재우가 옆에서 트레몰로 암을 흔들어 과한 비브라토를 넣어 댔다.
간간이 터지는 피킹 하모닉스와 아밍의 조합은, 비명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신비한 뉘앙스가 진해서 소름이 확 돋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다른 멤버들의 장난질 사이에서 잠시 사라질 뻔했던 기타의 존재감이 확 살아났다.
“푸흐흐!”
수현이가 웃음을 터뜨린다.
“흐흐.”
“힛!”
재우와 라희도.
‘그렇게 좋나?’
그 며칠 연습을 막고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했더니 오랜만에 하는 합주의 맛이 참 각별했던 모양이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이잉! 위잉, 위잉, 위이이잉!
적당히 연주가 불타오르고, 어느 순간 재우가 이펙터를 꾹 밟아 템포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삼아 라희가 패턴을 급격하게 바꿔 소리의 간격을 짧게 가져가기 시작했다.
퉁! 두둥! 투웅! 두두둥! 두두두두!
탐탐 소리가 많이 섞여 딱딱 끊어지는 소리.
이에 맞춰 모두가 연주를 멈추고, 곧 라희의 솔로가 시작되었다.
투둥! 투둥! 투두둥 투둥! 퉁퉁! 채앵! 투두두두두…….
팡팡 때려 주는 드럼 비트가 귀에 박힌다.
두둥, 탕탕탕탕! 채애애앵! 두두두두!
그리고 그녀의 솔로 여덟 마디가 끝남과 즉시 수현이의 독주가 이어졌다.
부우웅. 디리리링, 지이잉! 디리리링, 디리리리링.
솔로임에도 속주 없이 여유로운 피킹으로 시작해 마디 전체를 흔들어 그루브를 만드는 수현이.
음 하나하나 허투루 찍히지 않고 정확한 표현이 화려한 속주보다 더욱 기분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
‘확실히 잘한단 말이야.’
하려면 속주도 할 수 있고, 슬랩도 칠 수 있었을 텐데, 묵직하면서도 유연한 연주로 듣는 사람을 안달 나게 만드는 것을 보면, 그녀는 이미 언제 어디에 어떤 소리를 넣어야 좋을지를 잘 알고 있는 연주자다.
부웅! 부웅! 부웅! 부우우웅!
밀듯 당겨 주는 베이스 솔로가 지나고.
지지이잉! 지리리링, 디링, 디리리링, 위이이이잉!
화려함만 따지자면 그 누구에게도 질 수 없는 우리의 퍼스트 기타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지지징, 지지지지징, 디리리리리리링!
아까 전 수현이가 선보였던 태핑을 포함, 해머링, 트릴, 레가토 따위의 온갖 기술이 그의 손에서 선보인다.
화려한 속주와 속주의 연속.
마치 주인공은 나라며 소리치는 듯, 그의 솔로잉은 네 사람의 조합 안에서 꽃을 피웠다.
‘루치, 너는?’
‘난 안 해.’
재우와 수현이가 옆에서 내게 눈길을 주지만, 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리듬 기타인 내게 굳이 솔로 타임을 줄 필요는 없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들의 화려한 연주 뒤에 자리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러자 곧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정돈되며 연주가 막바지를 암시했다.
지잉, 지잉, 지이잉…….
몇 마디를 돌아 코드가 끝나고 연주는 종료.
지이이이잉!
인 줄 알았으나…….
“야 이…….”
“연주 싫으면 노래 하셈.”
재우가 새 곡의 스타트를 끊었다.
지징, 지지징, 징징! 징징, 지지징, 징징!
귀에 착 감기는 거친 기타 리프.
착! 착! 착! 착! 부우웅!
리프가 들리자마자 곧바로 달라붙는 드럼과 베이스의 빠른 템포.
너무나도 익숙한, 익숙하다 못해 귀를 막고도 들릴 것만 같은 반주.
“하아아…….”
박창희 베이시스트에게 받은 우리의 곡, burn it all이다.
‘어쩔 수 없지.’
멍석을 이렇게 깔아 주는데 계속 뺄 수도 없는 노릇.
“Let’s burn it all down!(다 태워 버리자!)”
반주의 열기를 그대로 목에 담아 질러 버렸다.
“그렇지!”
둥둥! 두두둥, 채애앵! 둥둥! 둥둥! 두두둥, 채애앵!
“The power of the sun in the palm of my hand suddenly vanished…….(손에 거머쥐었던 태양의 힘은 갑자기 사라지고…….)”
죽어라 외운 탓에 한국어 가사보다 더욱 입에 붙어 버린 영문 가사를 내뱉는다.
곡 자체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불이 붙듯 호흡이 강해지려고 하는 것을 제어하며, 불태우며 달릴 체력을 비축했다.
“Only the birds that fly in the distance know the forgotten way.(멀리 날아가는 새들만이 잊혀 버린 길을 알고 있지.)”
정신없이 뛰노는 연주의 가장 앞에 내 목소리를 내세운다.
“Let’s burn it all down……. Let’s burn it all down…….(다 태워 버리자……. 다 태워 버리자…….)”
소리가 살짝 죽어 후렴을 위한 빌드업을 하는 순간에도 보컬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관객들이 뛰어노는 와중에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Let’s burn it all down……. Let’s burn it all down!(다 태워 버리자……. 다 태워 버리자!)”
내가 내지를 불타는 후렴에 대한 충격이 너무 크지 않도록.
“I burned it all down! I’m gonna shout out! I know there’s no real happiness here around!(내가 다 태워 버렸어! 나는 소리쳤지! 여기엔 진정한 행복이 없단 걸 안다고!)”
반강제로 시작한 곡이지만 부르는 기분만큼은 끝내줬다.
속이 뻥 뚫리는 곡조에, 염세를 넘어 파괴의 철학과 맞닿은 메시지.
부르면서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I burned it all down! I’m gonna shout out! Not me who should be hit by a rock, it’s those clowns!(내가 다 태워 버렸어! 나는 소리쳤지! 돌에 맞아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저 광대들이야!)”
지징, 지지징, 징징! 징징, 지지징, 징징!
후렴이 깔끔한 샤우팅과 함께 끝나고, 간주 기타 리프로 돌아온다.
나는 돌아서서 목에 손을 몇 번 그었다.
지지직!
끊기는 기계음과 함께 연주도 끊어졌다.
“휴……. 1절 매너는 기본이지.”
“빼더니 잘하네.”
마이크를 내려놓으며 말하는 내게 재우가 말을 툭 던진다.
강제로 노래를 시켜 놓고 칭찬을 하는 것이 참 밉상이다.
“어휴……. 넌 진짜……. 아무튼 잠깐 쉬자. 갑자기 터뜨려서 좀 후들거린다.”
며칠 만에 하는 첫 합주의 스타트는 이렇게 짧게 끊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천천히 달리려고 잼으로 시작했더니…….”
“그래도 재밌잖아. 흐흐.”
“그렇긴 하다만…….”
체력 좀 아끼면서 하려고 쉽게 스타트를 했는데, 다 태워 버리자고 끝없이 달리는 노래로 이어 버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는 일단 수분부터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냉장고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범범범버! 뻠범범버!
벨 소리가 울렸다.
“잉? 유성 형이네? 시험 잘 봤냐고 물으려 전화하신 건가?”
“뭐야? 누구야?”
“매니저 형.”
우리의 매니저, 유성 형이었다.
나는 애들에게 손을 들어 잠깐 시간을 요청한 후, 전화를 받았다.
“오, 루치야. 금방 받네?”
“네, 형. 마침 합주하다가 쉬는 시간 좀 갖느라고요. 무슨 일이에요?”
“응, 다름이 아니고…….”
그는 내 물음에 다른 물음으로 답했다.
“너 김산하 작가님이라고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