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1
10화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등이……. 잘 안 펴져…….”
정신을 차려 보니 시간은 한참이나 지나 있었고, 스마트폰에는 부재중 전화 열한 통이 들어와 있더라.
심부름을 보내 놨더니 연락도 없는 아들을 걱정한 어머니는 그 마음을 불꽃을 담은 손바닥으로 표현하셨다.
그 뜨거운 사랑이 얼마나 거대한지, 다음 날인 지금까지도 등이 화닥거려 쭉 펴고 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쯧쯧쯧……. 그니까 촬영이고 녹음이고 하루쯤 미뤄도 되는 걸 굳이…….”
몸을 웅크려 의자 위에 올라탄 나를 보며 태호가 혀를 찼다.
쉬는 시간에는 얌전히 쉬고 싶은데 굳이 옆으로 찾아와 말을 거는 친구가 있다니, 난 정말 복 받은 놈이다.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아, 음악이 있는 곳에 내가 있어야지, 그럼 어떡하냐?”
“어떡하긴. 약속 잡고 얌전히 돌아가서 빵이나 뜯어 먹었어야지.”
“막상 눈앞에 최고급 스튜디오가 보이게 되면 말이 달라질걸?”
“그렇게 좋디?”
“장난 아니야. 거의 프로 수준 환경이었어.”
나는 전날 어머니의 진노를 급조한 변명으로 겨우 잠재우고 방에 들어와서 태호에게 금방 겪었던 일들을 공유했다.
녀석 역시 기타에 관심이 많고 음악에 목숨을 건 학생이다 보니, 같은 학생인데도 이미 좋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는 재우에 대해 관심이 동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같이 밴드 한다고?”
“일단은. 둘이 합의하기로는 베이스랑 드럼 모집까지 성공하면 밴드, 실패하면 그냥 서로 음악 활동하는 거 조금씩 도와주는 정도로 끝내는 걸로.”
“에이, 뭐가 그렇게 물렁물렁해? 하려면 손 꽉 붙들고 안 놔 줘야지.”
넓은 인재풀에 비해 한정된 실력자들 수. 때문에 여러 밴드를 겸업하는 사람들도 많은 만큼 실력이 보장된 멤버와 함께 밴드를 꾸린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 맞았다.
어쩌면 태호의 말처럼 내가 재우에게 조금 더 매달려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표현이 다소 이상해 나는 손을 저었다.
“우욱. 손을 왜 붙들어.”
“너는 노래만 해서 연주자 귀한 줄을 몰라. 네 말 듣고 채널 훑어보니까 장난 아니더만.”
“나라고 모르진 않지. 탈고딩 급 기타리스트가 같이 음악 하자고 한 게 얼마나 복 받은 건지. 근데 상황이 좀 그렇잖아.”
“쩝……. 그것도 그렇네.”
끝내주는 합주를 만들었다지만 어제 처음 만난 사이.
분명 이 녀석과는 음악 면에서 쿵짝이 잘 맞을 것 같지만 아직은 미지수다.
거기다가 나는 집 안에서는 착한 성악도를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니 밴드 활동에 올인하기도 힘든 환경.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보다 전공 수업 시간표는 다 만들었냐?”
그때 태호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내게 물어 왔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있었다.
“아. 맞다.”
“빨리 짜야 할걸? 사흘 뒤에 수강 신청이다.”
“알아, 알아.”
수업 시수의 자율화가 꽤 잘 되어 있는 태양고등학교는 대학교 수업 수강 내지는 미국 고등학교와 유사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입학 직후 공통 교과만으로 이루어진 시간표대로 일주일을 수강한 후, 중복되던 수업들의 자리를 몇 비우고 그곳을 전공 수업으로 채워 넣는 구조.
자동으로 듣도록 박혀 있는 역사나 공통 음악 교양 따위의 필수 수업들이 있고, 하루 7교시를 모두 빽빽하게 채워야 한다는 점을 빼면 개개인의 역량 향상을 위한 자기 주도적 학습 지향이 눈에 띄었다.
‘전공 실기 담당은 이미 결정했는데 다른 수업을 뭐로 채울지가 문제네.’
발성 기초부터 실기 고사까지 지도해 주는 담당 교사는 권인찬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가 실용음악 강사로서 훌륭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프로듀싱과 작곡 경력이 있다는 것이 담당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은 주된 이유였다.
인정받는 가수였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었고 말이다.
‘당장 하나하나 배워서 쌓아 갈 요량이 아니라면, 훌륭한 가수이자 프로듀서였던 권 선생님의 경력에서 뽑아 먹을 것을 찾는 편이 좋을 거야.’
사실 발성 이론이나 실용음악 기초의 경우 당장 나보다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어찌 됐건 나는 보컬 트레이너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미래 경험이 있으니까.
‘잠깐. 미래랑 경험이 같은 문장에서 앞뒤로 붙을 수 있는 단어들인가? 음……. 뭐, 사실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 곡을 표현할 때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프로듀서의 안목이 외려 발성 교습이나 이론 수업보다 내게는 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담당 교사와의 발성 수업 및 그 외 기타 전공 실기 수업 외의 자리를 무슨 과목으로 채우냐는 것인데…….
“일단 합주 수업을 개설해 달라고 말해야겠는데.”
“합주?”
나는 우선 내 학업과 진로 성취를 위해 새 과목을 개설해 달라고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설을 해 주냐? 없는 수업인데?”
“원래 있던 과목은 말하면 새로 열어 준다더라. 전공이랑 관련 없는 것만 아니면 새 수업도 건의 가능하고.”
“오호…….”
라이브로 노래를 이끌어 가는 감각을 몸에 익히는 것이 첫 번째, 같이 밴드를 꾸릴 멤버를 찾는 것이 두 번째 목표.
지금 당장의 두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합주라는 새 과목의 개설은 아주 딱 맞았다.
“아마 수강생이 많이 몰리면 마음에 맞는 사람만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수업이 되지는 않겠지만, 같이 밴드 만들기로 하면 비공식 동아리로 만들어서 CA 시간에 따로 모일 수 있을 거야. 연습실 확보하기에도 좋고.”
거기다가 합주 수업을 통해 밴드를 모집한 후 소규모 동아리로 등록하면 연습실 예약 범위가 이틀에서 사흘까지 늘어나니 자리싸움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
생각처럼 구인에 성공한다면 말이지만.
“괜찮네. 개설되면 나도 신청해야지.”
“좋지. 아마 신청자 모자라면 폐강될걸? 혹시 부족하겠다 싶으면 내가 사람 모아야 돼.”
“어, 그러면 나도 수업 만들어 달라고 할까?”
“필요한 거 있냐?”
“음……. 음악 감상?”
“되겠냐.”
“그치?”
전공자이기 전에 음악 덕후 기질이 출중한 녀석답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수업이라는 핑계로 시간표에 꽂아 넣고 싶어 하는 욕심을 보였지만, 전공 실기와 관계없는 것을 개설해 주지는 않을 테니 헛된 망상일 뿐이었다.
“교무실 올라갔다 온다.”
“뭐야, 벌써 뭐 다 뽑아 오고 준비 많이 했네?”
“까먹은 건 등짝이 아파서 그런 거고, 그저께부터 학교 홈페이지 수업 시수 관련 학칙이랑 자료들 준비하고 있었지.”
“올. 다녀온나.”
나는 위층의 교무실로 가서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가졌다.
“개설 신청? 가만있어 봐……. 개설 신청이…….”
윤 선생님이 나이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정체불명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랍 속 서류 더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가 무언가를 꺼내 내게 넘겼다.
“자. 여기에 강의명, 수업 내용, 기타 등등 작성해서 방과 후에 가지고 오면 된다. 담당 선생님은 미리 맡아 달라 부탁드린 분 없으면 공란으로 두고.”
“넵.”
“자료 뭐 따로 챙겨 온 거 많은 것 같은데, 적당히 뒤에 붙여 오면 돼. 마감일이 내일까지니까 빠르게 목록 꾸며서 올리려면 오늘 안에 가져오는 게 좋다. 그래야 다른 애들도 이런 수업이 있구나 하면서 신청하지.”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1학년 1학기에 강의 개설 신청을 넣는 학생은 처음이라 말했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다른 애들이랑 똑같은 속도로 가기엔 시간이 모자라니까.’
보통은 학교에 어떤 주문이 가능한지, 자신이 뭘 어디서 구해야 할지도 제대로 모를 시기이지만, 나는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해야 한다는 사정이 있으니 열심히 뛰면서도 옆으로 이리저리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이 뭐 대단한 재능도 아니고 그저 연륜에서 나오는 잔머리일 뿐인 것 같아 딱히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어떻게 됐냐?”
“어떻게 되긴. 필요한 서류 받아서 내려왔지.”
“오오오오. 합주 수업 진짜 되나 보네?”
“합주?”
“루치가 합주 수업 개설 요청했대.”
“오? 밴드 음악이야?”
“대박. 나도 신청해야지.”
“나도!”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태호가 내게 상담 결과를 물어 왔는데, 그것이 꽤 크게 들린 듯 같은 반 아이들이 몰려들어 기대감 섞인 말을 쏟아 내었다.
“신청자 모자라서 폐강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오히려 수강 신청 어려울 걸 걱정해야겠는데?”
실용음악 전공이니 악기도, 보컬도 당연히 많았기에 합주라는 수업은 나오기만 하면 매진되는 인기 상품 같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광클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았다.
* * *
“윤 쌤! 방금 덩치 큰 학생은 뭐예요?”
“학생한테 뭐냐니.”
“아, 뭐 하러 왔냐고요. 뭔가 오래 떠들더구먼.”
루치가 교실로 내려간 후, 헤집어 놨던 서류 더미를 정리하는 담임 윤영현에게 옆자리의 후배 교사가 다가왔다.
1학년 1반 담임 김하선이다.
“수업 개설 하나 해 달라고 하더라고.”
“개설? 1학년이?”
“그래.”
“와. 사전 조사 진짜 많이 했나 보네. 보통은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던데. 똘똘하네. 쟤 이름이 뭔데요?”
“김루치아노.”
“루치아노? 루치아노……. 아! 우리 반 재우랑 같이 영상 찍은 그 친구구나.”
“영상?”
김하선은 막 입학한 신입생이 학교의 제도를 나름 제 입맛대로 써먹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듯 윤영현에게 이름을 묻더니, 루치아노라는 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 선생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설명을 요구했고, 김하선이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 하나를 틀어 그에게 건넸다.
“오…….”
화면 안에는 작은 체구의 기타리스트 형재우와 누가 보면 레슬링 선수라고 오해할 법한 덩치의 루치가 기타를 들고 함께 stair to heaven을 부르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이야……. 이거…….”
꽤 오랜 기간 예체능 학생들을 마주하며 수업을 해 온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장난 아니네?”
저 둘은 지금까지 보아 왔던 어떤 학생들과도 차원이 다른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8분 남짓의 짧은 영상이 끝날 때까지 윤 선생은 혹시나 숨소리에 노래가 묻힐까 조심스럽게 천천히 호흡을 해야만 했다.
“개설 신청한다는 거 무슨 수업인데요?”
“합주. 아마 개설 허가 나오면 밴드 합주나 합주로 열리겠지.”
“담당은?”
“아직.”
“오호, 아직…….”
김하선이 눈빛을 반짝이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들이 합주 탓에 실기 평가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지적으로 합주 과목이 없어진 후, 아이들이 함께 모여 만드는 노래에 잔뜩 굶주린 상태.
루치처럼 재능 있는 학생의 손으로 다시 만들어진다면 꽤 재미있는 한 학기가 될 것도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윤영현이 말했다.
“왜. 맡아 보려고?”
“네. 괜찮지 않아요? 나 어차피 하기 싫은 수업으로 시수 꽉 채웠는데 미술 전공 애들 교양 음악 들어가는 거 장 쌤한테 떠넘기고 이거 맡으면 되겠다. 잘됐네.”
“야, 야…….”
“합주 개설되면 신청할 애들 누구누구 있지? 우리 반 재우랑, 희수랑, 라희랑…….”
김하선은 손가락으로 합주 수업이 열리면 찾아올 학생들을 꼽으며 생각에 빠졌다.
윤영현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했다.
‘이거 병 도졌다, 또.’
태양고 음악 교사 김하선.
“잠깐만. 그럼 커리큘럼을 어떻게 짜야 하지? 매번 단발 합주만 시킬 수는 없으니 기간을 짧게 두고 탐색하게 해야 하나? 그러면 따로 모여서 밴드로 뭉치기도 좋겠지? 오, 좋다.”
그녀는 심각한 수준의 밴드 마니아였다.
“진정 좀 해라.”
“흐흐, 흐흐흣…….”
윤 선생은 눈이 뒤집혀서는 연신 음침한 웃음을 흘리는 그녀가 무서울 따름이었다.
* * *
다 썼다.
“강의명, 배치 교시, 담당 교사는 공란……. 오케이, 끝.”
“다 끝남?”
“끝남!”
“합주 고?”
“고!”
연습실에서 연습은 못 하고 온종일 신청서만 작성했더니 목이 간질거리는 느낌이다.
혼자 기타를 만지고 놀면서 나를 기다리던 재우도 반갑게 궁둥이를 들썩였다.
“아, 잠깐만.”
“뭐임. 끝났다며.”
“나 이거 제출만 하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
“빨리 오셈.”
시침은 숫자 6을 지나기 전.
아직 선생님이 퇴근을 하지 않았을 시간이다.
나는 내친김에 신청서 뒤에 자료를 붙일 스테이플러도 얻어 쓸 겸 오늘 신청서를 제출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도착한 교무실.
“아, 그러면 애들 쓸 앰프랑 보면대랑 이것저것 비품 사 달라고 올려야 되나? 흐히힛!”
“알았으니까 네 자리로 가라고, 좀! 그리고 비품은 있는 거 쓰면 돼!”
“내 자리로 가면 안 되죠! 혹시 오늘 신청서 가지고 오면 담당 교사란에 내 이름 쓰라고 해야 하는데!”
“이따 오면 말하라고! 나도 일 좀 하자!”
뭔가 이상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