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10
109화
“그으으…….”
“재미없어…….”
“아니, 재밌긴 한데. 객관적으로.”
“연습이 더 재밌음.”
“아, 그건 맞지.”
이렇게 질색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받은 일은 단지 곡을 만들고 그것을 불러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것만이 아닌, 예능 촬영.
그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니까.
‘평소처럼 음악만 열심히 한다고 잘 풀릴 일이 아니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경연을 할 때는 괜찮았다.
멋지게 연주를 선보이면 우리의 음악이 준 감동을 기억한 시청자들과 관객들은 우리에게 지지와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 냄으로 보답했으니까.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싱 앤 톡 때는 루치가 알아서 다 해 줘서 편했는데…….”
그나마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인 싱 앤 톡은 기본적으로 토크 쇼의 포맷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음악 프로그램의 속성을 짙게 가지고 있어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말주변이 뛰어나지 않은 재우와 수현이는 연주를 통해 멋진 모습을 보여 주면 되고, 소란스럽게 떠들어야 할 때는 나와 라희가 앞으로 나서면 됐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물론 그것은 아이들이 마땅히 져야 할 짐을 내가 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이번에 출연할 버라이어티는 스튜디오에 앉아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되는 토크쇼와는 다르다.
“전체적인 그림을 찍는 거라서 너희가 숨어 있을 수만은 없어. 어떻게든 카메라에 나와야 해.”
“이응…….”
우리가 뭘 하든 카메라가 돌아간다.
행동 하나하나가 카메라에 담기고, 그중 쓸 만한 장면들이 선별되어 편집 이후 방송으로 나간다.
만약 제작진의 시선에서 쓸 만하다고 판단되는 장면이 많이 없을 경우, 분량이 극도로 줄어드는 것은 당연할 테고, 심한 경우 임팩트 있는 장면은 뽑아내지도 못한 채 방송이 끝날 수도 있다.
그러면 오히려 방송 출연이 손해인 상황.
‘괜히 노잼 이미지라도 씌워지면 앞길만 막히지.’
어떻게든 첫 버라이어티 출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했다.
“힘내자, 힘.”
늘어지려는 멤버들에게 힘을 불어넣은 후, 계속해서 시청을 이어 나갔다.
“너희 캐릭터가 워낙 좋아서 그림이야 잘 뽑히겠지만서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소스 자체는 참 좋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헛소리를 내뱉어 대는 재우, 우월한 피지컬과 하이 텐션으로 떠들썩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라희, 그리고 소심한 듯 보여도 할 말은 은근히 다 하는 수현이까지.
조금만 대비를 해서 카메라에 멋진 모습을 비추고, 사운드도 빈틈없이 채울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촬영이 될 것도 같았다.
‘어……. 이거…….’
그렇게 생각하니 또 어째서인지 나 빼고는 전부 캐릭터가 확고해서 방송 분량 채우기 딱 좋은 듯하다.
나만 빼고.
나만 빼고.
응.
‘아, 아니야. 밴드 리더든, 덩치 캐릭터든,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요소는 많아.’
순간 애들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나는 쏙 빠지거나 하는 불안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고개를 젓고 화면에 집중한다.
‘애들이 뜨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내 존재감이 아예 사라지면 안 돼…….’
사실 가수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원하는 관심 종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내 캐릭터가 다른 애들에 비해 약하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는 없었다.
정작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나만 묻히고, 친구들만 뜨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렇게 되도록 둘 수도 없고 말이다.
“질 수는 없어…….”
“응? 뭐가?”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분량이 박살 나지 않게 열심히 준비해서 촬영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력을 총동원해 분석에 임했다.
* * *
“뮤지션!”
“플러스 챌린저!”
방송의 타이틀이자 공식 구호가 세트에 울려 퍼진다.
태양이 쨍하게 하늘 높게 오른 한낮.
케이뮤직넷 방송국 앞뜰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안방을 뜨겁게 달구고 계신 전국의 우리 시청자 여러분,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 뮤지션 플러스 챌린저! 7회차에도 여전히 짤리지 않고 살아남아 여러분을 뵙게 된 MC 송승기입니다.”
프로그램의 메인 MC인 송승기가 진행을 시작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와……. 거의 가수 톤인데? 호흡량도 좋고.’
대한민국 최고의 MC를 뽑으라고 하면 인성도 좋고 진행도 잘하는 개그맨 이종혁이 최고라는 사람과 에너지 넘치고 정열적인 운동선수 출신의 진행자 동봉현이 최고라는 사람이 나뉘고는 한다.
하지만 그 밑으로 A급 MC들 중 1위는 아닌데 제일 편안한 진행자를 뽑으라면 누구든 송승기를 고를 것이라는 말이 있다.
‘안정적인 맛이야. 부드럽고. 음.’
반짝반짝 빛나는 최고의 스타들 사이 안정적인 진행으로 자기 입지를 다지며 가장 뛰어난 이인자의 위치를 고수한 엔터테이너가 송승기이다.
아직 햇병아리 수준이지만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입장으로서 그가 얼마나 피를 깎는 노력을 해서 저렇듯 멋진 진행을 하게 되었을지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었다.
그는 과연 그 명성에 걸맞은 훌륭한 진행으로 인사를 이어 나갔다.
“오늘 뮤지션 플러스 챌린저는 백백백과 베일리에 이어 최고의 게스트를 모시고 여러분과 함께할 예정입니다. 과연 어떤 게스트와 함께 얼마나 의미 깊은 활동을 하게 될지! 채널 고정하시고 저희의 여정을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근데 형. 초장부터 분위기 이렇게 띄워 놔도 되는 거예요? 나중에 분량 안 나오면 우리 완전 쫄딱 망할 텐데…….”
“있어 봐.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옆에서 감초 역할의 배민수가 툭툭 농담을 던져 주고, 그것을 받는 식으로 잠깐 힘을 뺀 인트로를 만든다. 그리고 곧 게스트 소개가 MC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래서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합니다. 떠오르는 스타. 젊음의 패기로 가득한 천재들. 락 밴드 럭키데이입니다.”
“지금 나가시면 돼요.”
“넵.”
“가자.”
송승기 진행자의 멘트와 스태프의 신호에 맞춰 우리는 카메라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야, 럭키데이! 더 밴드 코리아 우승 팀!”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반가워요!”
한 줄로 총총총 입장하는 우리에게 배민수 진행자의 소란스러운 환영이 쏟아졌다.
우리는 밝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럭키데이입니다.”
“와아아아!”
그저 평범한 인사인데 잔뜩 텐션을 올리며 받아 주는 배민수 덕에 분위기가 살았다.
“우리 럭키데이는 TV 출연이 꽤 오랜만이죠?”
“앗, 네. 지금 촬영 시점에서는 굉장히 오랜만이죠.”
“촬영 시점? 그러면 방송 나갈 때쯤엔 많이 나오겠다는 뜻인가요?”
조금은 의례적인 질문에 대한 내 답변에 송승기 진행자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시청자들에게 할 말을 유도하는 스킬이 굉장하구나 싶었다.
“네. 저희가 앨범을 열심히 준비 중에 있어서 외부 활동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 제작이 거의 다 완료되었고……. 무엇보다 학교 방학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활동을 조금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고, 학교…….”
그 말에 MC는 우리가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기억했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왜 끄덕끄덕도, 그렇구나도 아니고 탄식이 나왔는가?
“학교라니……. 이제 언제 나왔는지 기억도 안 나네. 크…….”
“젊다, 젊어.”
두 명의 고정 진행자들이 이미 학교라는 단어와는 몇 광년은 멀리 떨어진 30대, 40대였기 때문이다.
“하하. 아직 파릇파릇하죠.”
“아니 나는 곡이 없어서 활동을 못 한다, 섭외가 안 들어와서 못 나온다, 하다못해 단가를 안 맞춰 줘서 못 하겠다 소리는 들어 봤는데, 학교는 생각도 못 했네.”
“얼마 전에 기말고사가 끝났어요.”
“으악! 기말고사래!”
씩 웃으며 농담처럼 던진 내 말에 배민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높은 텐션의 시끄러운 리액션이 분량 하나는 제대로 뽑아 주겠다는 믿음을 주는 듯했다.
그 이후로도 몇 분 동안 가벼운 토크가 진행되었다.
“거 기타리스트 친구, 재우 씨는 뭐 할 말 없어요? 인트로에 넣을 거.”
“저희 밥은 언제 먹어요?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는데.”
“아, 배고프구나……. 밥은 조금 이따가 챙겨 줄 거예요.”
“하하하! 베이스 진수현 씨는 배 안 고파요?”
“네, 네? 배, 배는 안 고픈데 속이 조금 울렁거려요……. 카메라가 너무 많아서…….”
“푸하하하학!”
정돈되지 않은 멘트들이 우리 멤버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우리 애들이 미친놈들이라서 죄송합니다.”
나는 기회는 이때다, 재우와 수현이의 옷 소매를 붙잡아 살짝 당기고, 허리 숙여 인사하면서 오디오를 채웠다.
이리저리 날뛰는 날것 같은 우리 애들을 말리고 통제하는 정상인 롤.
그게 내가 가져갈 콘셉트였다.
“루치 씨가 고생이 많겠네…….”
“아이고, 괜찮아요. 죄송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고생은 우리 편집 PD가 할 거거든.”
“아하. 그러면 오늘은 얘네 좀 풀어 놔도 괜찮을까요? 이게 계속 붙잡고 말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아, 그럼. 날뛰게 둬, 둬.”
물론 방송적인 재미가 섞인 멘트는 덤이었고, 두 진행자는 내 말을 잘 받아 주었다.
사실 평범하디 평범한 토크였지만 진행자 두 사람의 톤과 리액션 강도, 표정 같은 세세한 것들이 이야기의 재미를 살려 주는 역할을 했다.
프로는 프로인 이유가 있다고, 예능 방송을 전문적으로 하는 방송인들은 뭐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오케이, 여러분. 이제 우리 럭키데이 여러분과 함께 챌린지를 기획하고 완성할 파트너를 소개해야겠죠?”
“와아아아!”
“기대, 기대!”
적당히 전반부의 토크가 진행되고, 송승기 진행자가 주의를 돌렸다.
이제 우리의 파트너 역할로 함께 도전을 수행할 두 번째 게스트가 등장할 차례다.
“호국보훈처 소통팀, 최윤식 팀장님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대한민국의 호국보훈 업무를 수행하는 호국보훈처 소통팀 최윤식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야, 저희가 이 방송을 진행하면 좋은 점이요, 나랏일 하시는 높으신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요.”
“하하하. 방송 보니까 공무원 동료분들이 여럿 나오시더군요.”
“예. 지난번에는 방통위와 함께 챌린지를 진행한 적도 있었는데, 그 에피소드가 유난히 심의가 부드러웠다는 소문이…….”
“하하하하!”
우리 밴드와 두 진행자에게만 몰려 있던 시선이 보훈처의 최 팀장의 등장과 함께 분산되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팀장님께서 호국보훈처가 무슨 일을 하는 기관인지 설명을…….”
“아, 그럼요. 저희 호국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분들을 대상으로 한 보훈 업무와, 제대군인의 보상, 보호…….”
송승기 진행자는 최 팀장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도록 토크를 유도했고, 최 팀장은 보훈처가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 왜 그런 업무가 존재해야 하는지 따위를 설명했다.
아마 나랏일 하는 사람이 이 방송가까지 걸음을 옮긴 이유가 그것이리라.
‘홍보 진하게 하고 가시겠네.’
썩 재밌는 얘기는 없었지만, 진행자의 능력이란 그런 데에서 빛을 발하는 법.
“하긴 그래. 이렇게 챙겨 주는 기관이라도 없으면 응? 막말로 누가 나라사랑 이웃사랑 실천하면서 헌신하겠냐고. 안 그래요? 그렇잖아.”
“그치. 물론 그 위국헌신이라는 게 이런 보훈으로 다 빛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접은 할 수 있으니까.”
오버가 필요할 때는 과잉된 행동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때는 정돈된 분위기로 휙휙 바뀌는 두 사람이다.
둘은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눠 분량을 채우고는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진행을 시작했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의 챌린지를 소개해도 괜찮을까요?”
“최 팀장님께서 도전이라고 쓰고 의뢰라고 읽어도 마땅한 오늘의 챌린지, 소개해 주시죠!”
“예. 저희 호국보훈처에서 장래가 유망한 우리 럭키데이와 함께하고 싶었던 이유. 오늘의 챌린지는 바로…….”
살짝 뜸을 들이던 그의 입이 열리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한다.
“호국보훈 UCC 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