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12
111화
“와, 진짜 깔끔하다.”
“이게 어떻게 이렇게 한두 번 만에 딱딱 떨어지지?”
“그러게.”
과연, 못하면 안 되는 군인들이라 그런지 별도의 연습 없이 모든 구성이 금방금방 맞아떨어진다.
걸음 하나하나가 절도 있고, 자세 역시 깨끗하다.
‘하긴 이것만 죽어라 연습할 텐데, 당연한가?’
아마 피땀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저들이 모두 저렇게 제식에 숙련되기까지 얼마나 개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준비되셨죠?”
“넵!”
그리고 얼마 후, 시작된 뮤직비디오 본 촬영.
“리허설했던 걸 기억하시면서 부담 없이 가겠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갑시다!”
“넵!”
모두가 긴장감 속에서 준비를 마쳤다.
“스탠바이!”
촬영 감독님의 콜과 함께 주변이 조용해졌다.
곡에 담긴 메시지를 생각하니 꼭 잘해야 한다는 긴장이 샘솟는데, 그 순간 스물이 넘는 군악대 합창단과 악기 연주자들이 무대 앞에 선 것이 보인다.
든든한 군악대 장병들. 그들과 함께하니 서서히 떨림도 잦아드는 듯했다.
곧 음악이 시작되었다.
빰 빰빠바밤……. 빰빠 바바바밤…….
높은음의 트럼펫 소리가 부드럽게, 동시에 어딘가 외롭게 흐른다.
마치 진혼나팔의 소리처럼.
뿌우움……. 뿌움, 뿌붐…….
한 마디가 천천히 흐르고, 그 뒤로 두 대의 나팔이 화음을 맞춰 따라붙는다.
뿌우우움…….
이윽고 네 마디의 전주를 채운 트럼펫 소리가 천천히 흐려지고…….
딩딩디딩 디딩, 딩딩디딩 디리링…….
깔끔한 클린톤의 리프로 곡이 도입부로 향했다.
그 위에 아주 살짝, 절제된 톤으로 내 목소리를 얹었다.
“강물이 흘러가네요. 물을 따라 당신도 흐르네요…….”
덤덤하게.
씁쓸하고 아련한 전주의 나팔과는 다르게, 그저 있는 사실을 나열하듯 건조한 맛으로 가사를 내뱉는다.
“떨어지는 꽃잎이 보이네요…….”
딩딩디딩 디딩, 딩딩디딩 디리링……. 부우웅……. 챙, 챙, 챙, 챙…….
두 소절이 지나가고 재우의 기타 소리 곁에 수현이의 부드러운 베이스 소리와 간격을 좁혀 소리를 줄인 라희의 드럼이 다가와 자리한다.
“비가 쏟아지듯 흩날리네요. 왜 그래야 했을까요. 살며시 눈가를 가리네요. 꽃잎도 슬픈가 봐요……. 떨어지는 꽃잎이 보이네요…….”
담담한 내 목소리와 함께 짧은 1절이 끝나 버렸다.
울컥 샘솟는 감정을 누르고 깔끔한 표현에 집중하다 보니 너무나 빠르게 흘러 버린 시간.
낙화처럼, 피었던 흔적 없이 보컬과 드럼, 베이스가 사라지고 다시 기타의 청량한 소리만 그 자리에 남는다.
딩딩디딩 디딩, 딩딩디딩 디리링. 딩딩디딩 디딩, 딩딩디딩 디리링…….
그리고 공허해졌던 그 자리를 다시 돌아온 소리들이 꽉 채우기 시작한다.
쿵쿵 칫 쿵 쿵치칫! 채앵!
드럼과 베이스가 합류하자 살짝 울려 주듯 흐르던 반주의 분위기가 더 묵직하고 걸걸한 소리로 바뀐다.
지이잉! 징 지징 지징! 지이이잉! 징 지징 지징!
클린톤으로 맑게 울던 기타의 소리가 뭉개지고 깨지며 드라이브톤으로 변모한다.
리프는 분명 그대로인데 아예 다른 노래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부드럽고 우울했던 노래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나도 금방과는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 나갔다.
“손에 담을 수 없는 이 순간. 그저 흘려보내야만 하는 거죠. 떨어지는 꽃잎이 보이네요…….”
같은 멜로디를 더욱 격정적인 톤으로 표현해 낸다.
낮은음이지만 공명이 확 줄이고 비강을 살짝 긁어 쏟아 내니 소리를 내는 것이 버거운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먹먹한 심정이 연상되도록.
떠날 줄은 몰랐던 사람이 떠남을 알고 슬픈 사람이 눈에 보이도록 노래 불렀다.
“당신이 아름답기에 저 비가 내게서 앗아 간 거죠. 흠뻑 젖어 눈물을 참아 봐요. 떨어지는 꽃잎이 보이네요…….”
떠나간 이에겐 애도를, 떠나보낸 사람에겐 위로를 주기 위한 노래.
낙화.
우, 우우우, 우우우우, 우우우……. 우, 우우우, 우우우우, 우우우…….
군악대 여러분의 코러스가 잔잔하게 울린다.
강인하고 굳센 군인이 내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게 여린 소리다.
꽃잎 흩어지듯 옅게 깔려야 한다는 내 주문을 잘 받아 준 것이다.
‘무겁네…….’
그런 잔잔한 소리와 어울리지 않게도 내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혹여 잘못 표현해 곡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어쩌나. 어설픈 위로가 호국영령들과 유족이라는 이 메시지의 전달 대상에게 기분 나쁜 소리가 되면 어쩌나.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그렇기에.
“언제나 아름답게 있을 수는 없었던 거겠죠!”
터져 나오는 내 소리는 먹먹하고 침울하면서 아름답게 울릴 수 있었다.
“오오, 저 강물에 떠가는 당신의 모습! 저 물길 선택한 당신은 이제 자유로운가요…….”
최고음은 2옥타브 솔.
그리 높은 음이 아닌데도 숨이 잔뜩 들어간다.
거칠고 씁쓸하게, 우는 것처럼 가사를 뱉기 위해서였다.
너무나 큰 뜻을 품었기에 떠나가야만 했던 이들을 기리고, 그들을 보내며 눈물을 흘렸던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계속해서 숨을 뱉었다.
“꽃잎이 보이네요……. 떨어지는 꽃잎이 보이네요…….”
지이이잉……. 딩딩디딩 디딩, 딩딩디딩 디리링…….
그리고 순간 이펙트가 풀리며 다시 한번 반복되는 재우의 클린톤 리프와 함께 무대가 종료되었다.
“후우우…….”
숨을 깊게 내쉬어 남아 있던 이산화탄소를 모두 빼내고 허리를 바로 세운다.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속으로 5초를 센다.
그리고 일어나 말한다.
“고생하셨습니다.”
“오케이, 컷! 고생하셨습니다!”
단 한 번의 무대로 마무리였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긴장한 채 촬영 장비를 다루던 어떤 사람은 후련하다는 듯 소리치고, 마찬가지로 긴장한 채 무대를 꾸몄던 어떤 장병은 힘이 다 빠진 듯 조용히 중얼거린다.
고생스러운 촬영이 종료되었다.
“이제 끝. 하아아…….”
“수, 수고했어. 긴장 많이 한 것 같던데.”
“아, 보였어?”
“이응. 평소보다 굳어 있었음.”
“하하…….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너도 조금 떨던데.”
“니은. 난 안 떨었음.”
카메라가 꺼진 뒤, 우리는 무대 위를 정리하고 밑으로 내려왔다.
내가 평소보다 다소 긴장감을 크게 느낀 것이 티가 났는지 재우가 놀리려 들었으나, 그 역시 꽤 긴장하고 있던 것을 확인했기에 쉽게 맞받아칠 수 있었다.
그때 군악대의 장병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런 무대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하하…….”
그들에게도 의미가 깊은 촬영이었는지, 우리에게 감사를 표한다.
지루하고 짜증만 나는 군 생활에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 준 것 같아 조금은 뿌듯했다.
“이제 끝이지?”
“거의.”
“뒤, 뒤에 추가 촬영이 있긴 해.”
이제 큼직한 일들은 모두 끝났다.
영상의 편집이 끝나면 악기 사운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한 후 재녹음을 할 이유가 없으면 빠르게 보컬의 사후 녹음을 넣고 뮤직비디오를 완성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챌린지는 완료된다.
결말부 추가 촬영이 있겠지만 에피소드의 마무리가 되는 부분이라 그저 정리하는 느낌으로 찍는 것이고, 긴장 없이 여유롭게 임해도 될 터였다.
이제야 긴장감이 싹 풀리는 느낌이다.
“진짜 역대급으로 힘든 무대였다.”
하지만 그만큼 영광스러운 일이었기에 뿌듯함을 느꼈다.
우리가 만든 곡이 의도한 그대로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이 곡을 듣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추가 촬영 날.
“그러면 여기서 이번 뮤지션 플러스 챌린저!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 예상대로 이변 없이 평이한 진행이 이뤄졌다.
“호국보훈 UCC 만들기 챌린지의 게스트 럭키데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당!”
“그리고 저희는 송승기!”
“배민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뮤직비디오의 편집과 사후 녹음, 그리고 추가 촬영까지 모두 끝나 촬영 일정이 종료되었다.
이제 완성된 UCC는 촬영 분량이 방송으로 나감과 동시에 공모전 공지와 함께 업로드될 것이다.
우리의 작업물이 큰 영향을 끼치길 바라며 우리는 제작진과 진행자들, 호국보훈처 직원들에게 인사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 럭키데이. 고생했어요. 최선을 다해 도전에 임하시는 모습이 멋졌어요.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방송을 빌어 떠넘긴 부담스러운 작업이었는데…….”
보훈처의 최 팀장은 내게 악수를 건네며 칭찬의 말을 쏟아 냈다.
지난 며칠 함께 만들어 낸 결과물에 굉장히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영광이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저희가 언제 이렇게 뜻깊은 작업을 해 볼까 싶기도 하고요.”
“하하. 그랬다면 고맙고요. 호국보훈의 정신이 아름답습니다. 나중에 비슷한 작업이 요구될 때 연락드리고 싶군요. 그때는 방송국 페이가 아니라 나랏돈으로 모셔야죠.”
“언제든 불러만 주세요.”
이내 고평가와 함께 언젠가 다시 한번 함께 일을 해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최 팀장이 떠나갔다.
그간 함께한 파트너와 헤어지는 것은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느낌이었다.
이후에도 PD, 진행자들, 김산하 작가님 등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유성 형이 기다리는 차로 돌아왔다.
“크……. 벌써 촬영도 끝이네.”
“이로써 우리의 1학기도 끝이고 말이야.”
“대박. 벌써 방학이라니.”
예능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의 1학기도 끝이 났다.
내일 방학식을 마지막으로 방학이 시작될 예정이다.
“더 바빠진다고 했지?”
“그치. 오늘처럼 바쁜 날이 많을 거야.”
후련한 마음을 앞세워 재잘대는 아이들에게 웃으며 답했다.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고 일감 하나를 잘 마무리 지었지만, 이건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나는 유성 형에게 말을 걸었다.
“형, 저희 섭외 더 들어온 거 있어요?”
“섭외? 꽤 있지. 그런데 일단은 음방에 집중해야 하니까 예능 출연보다는 그쪽부터 가야 해.”
“음방만 나가요?”
“더 받기엔 너희가 너무 힘들걸? 아마 시간 남는다 싶으면 회사에서 알아서 잡아 줄 테니 너무 걱정은 말고. 음방 스케줄 없을 때나, 앨범 활동에 도움이 많이 되는 섭외 같은 건 너희한테 먼저 보여 줄게.”
이제 곧 앨범이 발매될 예정이고, 앞으로 그 앨범을 들고 활동을 이어 나가야 한다.
음악 방송에 나가 노래를 불러야 할 테고, 홍보의 기회로 가득한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온다면 득달같이 달려가 물어야 할 것이다.
“흐흐. 많이는 아니고 딱 이 정도로만 계속 바빴으면 좋겠네요.”
“그게 딱 좋지.”
우리는 차를 타고 돌아가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앨범 출시와 음악 방송 출연.
오늘과 같이 의미 있는 프로그램 섭외나 행사.
그리고 활동이 끝나면 만들고 싶은 새 앨범에 대한 상상 등.
기대되는 것들이 많았다.
“피곤하면 잠깐 자. 도착해서 깨워 줄게.”
“고마워요.”
유성 형에게 감사를 표하고 가만히 창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았다.
‘계속 이랬으면 좋겠네.’
꽃이 다 지고 푸른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제 곧 본격적인 여름이 오면 더욱 더더욱 바쁘게 활동해야겠지.
나는 언제나 오늘과 같이 열심히 작업하고 그 성취감을 느끼는 하루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