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띠릭! 삑! 삑! 삑! 삑! 디리링! 철컥!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당장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경찰을 부르고 책상 아래 들어가서 덜덜 떨어야 할 상황은 아니다.
“어휴. 환기 좀 해라.”
“형 오셨어요?”
“오냐.”
내 작업실에 저렇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올 사람은 유성 형밖에 없으니까.
“끄으으으으……. 형 온 김에 잠깐 쉬어야겠네요.”
“일은 끝냈어?”
“일단 3차 수정본이긴 한데, 완성해서 보내 놓긴 했어요. 또 수정해 달라고 하면 그냥 잠수라도 탈지도 몰라요.”
“흐흐흐. 그 감독님이 조금 까다롭긴 하다더라.”
형이 껄껄 웃으며 작업실 주변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수를 내 옆에 내려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너도 애들 없으니 풀어지긴 하는구나. 정리 좀 해라. 이 난장판에서 원하는 물건 찾을 수는 있겠냐?”
확실히 그의 지적대로 주변이 조금 지저분하긴 하다.
조금.
물론 이 지저분한 모양새가 나의 편의에 방해되지는 않아 그의 말처럼 찾으려는 물건을 못 찾는 경우는 없었지만, 보기에 조금 그렇긴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에헤이. 그때는 너무 바쁘게 산 거고, 지금이 정상이죠.”
작업실을 쓰는 사람은 나 혼자이니까.
“그건 그렇지. 너는 그 애들을 어떻게 혼자 통제했니…….”
애들이 없으니 내가 정리에도 소홀하고 조금 풀어진 것 같다는 말로 시작했다가, 결국 아이들의 천방지축 스타일을 한탄함으로 마무리되는 대화.
내가 혼자 있고, 멤버들이 없음을 논하는 이 맥락을 보면 대충 상황을 알 수 있다.
“덕분에 군대에서도 매일매일 럭키데이 같음을 느낄 수 있었죠.”
“하하하! 그 정도야?”
“더 심할 때도 있었어요. 군인들은 말이나 잘 듣지…….”
우리의 밴드 럭키데이는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하……. 지금이 다들 모여 있으면 딱 좋은 시기인데…….”
“어쩔 수 없죠, 뭐. 일이 그렇게 된걸.”
“너희는 어떻게 이렇게 타이밍이 안 맞냐.”
“하하. 그러게요.”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들어갔다.
수작으로 평가받는 두 장의 앨범.
때가 되면 생각난다며 차트 위로 빈번히 역주행을 해 대는 몇몇 히트곡.
꽤 괜찮은 성과물들을 만들어 내고 말이다.
“어차피 2년 날려 먹어야 하는 건 예정되어 있으니, 이왕이면 빠르게 해결해서 공백기를 최소화하고 싶었는데…….”
“사람들 기억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성과물을 내놓고 말이지?”
“그렇죠. 근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됐네요.”
우리가 이룩한 성과에 비견될 만한 사람은 같은 세대에는 솔로 아이돌로 커리어를 시작해 성인이 되어서는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게 된 가수 나유리 정도가 전부.
그렇기에 2년 정도 자리를 비우더라도 후에 군 전역을 하고 복귀하기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나와 재우가 군대에 간 사이 비는 시간 동안 라희와 수현이는 여러 공부를 하며 스스로를 발전시킬 시간도 모색할 수 있을 테고.
그러나 일이 조금 꼬여 버렸다.
“재우가 떨어질 줄은 몰랐지…….”
원래는 졸업 직후 재우와 함께 군악대 시험을 봐 입대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터졌다.
“버스에서 내리다가 발을 삐끗해 넘어졌는데 디스크가 터져서 재검이라고? 아니, 걔는 축복을 받은 거야, 저주를 받은 거야?”
“하하하. 덕분에 군대 안 갔으니 축복이죠, 뭐.”
재우가 선발을 위해 실기 시험을 보러 가던 도중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부상을 입었고, 그 통증 탓에 당일 시험에 참석하지 못하더니 결국 신체검사 4급을 받아 버렸다.
때문에 내가 한 방에 입대에 성공해 현역으로 복무하는 동안 재우는 재검을 받고 사회복무를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신의 아이, 공익이 되었기 때문에 복무 기간이 더 길어 예정보다 공백기가 길어질 판이었다.
“수현이는 미국에, 라희는 대학에. 어휴……. 너희 복귀는 언제 한다냐…….”
그 와중에 수현이와 라희는 계획대로 실력 증진을 위한 학업에 돌입했다.
재우 탓에 휴식기가 조금 더 길어질 것을 확인한 수현이는 이 기회에 부족한 공부를 조금 더 채우겠다며 해외에 단기 유학을 가서 다시 한국에 올 때까지 몇 달은 더 남았다.
라희의 경우 고등학교 1학년 때 연이 생겼던 한국예술대학교 교수, 황보문 드러머에게서 연주와 음악을 배우고 있다.
수현이야 바다 건너 멀리로 나갔으니 어쩔 수 없고, 라희의 경우 그나마 국내에 있어 만날 수도 있고 원한다면 같이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럭키데이 완전체가 아니기에 별 의미는 없는 말이다.
“나비효과 끝내주네, 진짜.”
재우가 버스에서 발 한번 삐끗한 일의 나비효과로 내가 세운 계획이 완전히 무너지고 멤버들이 반으로 갈라져 버렸으니, 세상일이란 역시 생각한 대로만 풀리지는 않는 법이다.
“아, 밴드 하고 싶다!”
졸지에 혼자 남게 된 나는 결국 혼자 작업실을 구해 작곡 외주를 받으면서 지내고 있다.
군대에 다녀오기 전 예능 출연을 하면서 작곡 능력을 보여 준 적도 있고, 앨범의 곡들 중 다수를 직접 만들기도 했기 때문에 경험을 살려 일할 수 있었다.
페이도 나쁘지 않고 내 진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분야이기에 나름 나쁘지는 않다지만, 역시 밴드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애들 없는 사이 솔로 앨범이라도 하나 하자니까? 괜찮잖아? 곡도 많이 쌓였고, 너 활동하는 동안 애들 기다리고.”
그런 내게 유성 형이 솔로 활동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밴드가 좋아요.”
전생에는 몇 차례 밴드 생활을 했다가 결국 솔로로 전향해 음악 활동을 이어 갔던 나지만, 이번 생에는 밴드맨으로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비추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개인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커버곡을 올리는 등, 혼자서 활동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밴드가 아닌 김루치아노로서 락스타가 될 수 있느냐면 또 확신이 들지를 않는다.
“아니, 락 보컬이 솔로로 나오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요.”
“허, 참…….”
내 부정적인 반응에 결국 유성 형이 백기를 들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몇 번이고 거절한 제안이었기에 더욱 밀어붙일 힘이 없는 모양이었다.
‘사실 멍청한 짓이긴 하지.’
냉정히 생각해 보면 유성 형의 말이 백번 맞았다.
멤버들이 모두 모이길 기다리며 만들어 둔 곡들도 꽤 있었고, 그중 럭키데이라는 틀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 몇몇을 골라 솔로로 써먹어도 괜찮을 것이다.
내 활동이 곧 럭키데이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거름이 될 수도 있고, 김루치아노라는 뮤지션의 앞길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수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망할지 아닐지를 가늠할 수 없다지만, 일단 하는 게 이득일 것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다.
그만큼 럭키데이의 김루치로 활동하는 것이 즐거웠고, 우리가 함께 이룩한 성과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세션이 한데 뭉쳐 한 밴드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욕심을 접을 수 없었다.
누가 보면 아주 멍청한 생각이라고 욕에 욕을 할 테지만 말이다.
“아, 밴드 하고 싶다.”
“큰 소리로 말하지 마, 멍청아.”
“요 며칠 OST 작업만 해서 그래요. 욕구 불만이야, 거의.”
“허허. 미친놈. 내 보기엔 너도 네 친구들이랑 똑같은 놈이야.”
“흐흐흐.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걔네랑 팀을 했겠어요?”
“진즉 알아봤지.”
일의 맥이 끊긴 김에 유성 형과 노가리를 까며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김 감독님, 그 아저씨는 왜 이렇게 까탈이래요? 뭔 자기가 모차르트야, 베토벤이야? 종갓집 어머님도 아니고, 이 맛이 아니야! 하면서 빠꾸에 빠꾸를 먹이는데……. 어휴…….”
“약간 그쪽 타입이더라. 사람은 쪼면 쫄수록 더 좋은 결과물을 뱉어 낸다는 마인드.”
“으으. 이번에 또 빠꾸 돌리면 때려치운다고 전해 주세요.”
“하하. 알았어.”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이번 작곡 외주를 준 고객님, 김 감독이라는 사람이다.
노래 듣는 귀도 까다롭고, 요구 사항을 전부 반영해서 넘겨주면 뭔가 또 마음이 바뀌어 지적을 해 대고 빠꾸를 시키는데, 이거 참 못 할 노릇이다.
“작곡가 일이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너는 가수니까.”
“그러게요. 나는 가순데.”
다른 일을 하며 지내다 보니 본업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살아난다.
귀찮은 일도 많고, 원래 내가 겪을 일이 아닌데 싶은 일들이 일어나니 묘한 기분이다.
어서 빨리 멤버들이 돌아왔으면 싶기도 하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라님 부르는 길 회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친구를 불러들일 수도 없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애들 올 때까지 너튜브에 커버 영상 올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뭐……. 방법을 찾아보마.”
“글쎄요……. 감사하긴 한데, 방법이 있을지는 잘.”
“찾아보면 나오겠지.”
“그러면 좋고요.”
내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밴드 멤버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는지, 유성 형은 내게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
원래라면 다른 팀을 맡아 바쁘게 움직여도 될 때인데, 굳이 집에서 작곡 프로그램만 만지는 나를 며칠마다 한 번씩 찾아 주니 고마운 일이었다.
“하여튼 쉬엄쉬엄하고, 김 감독님께는 내가 잘 말해 둘게.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잠도 잘 챙기고, 밥도 먹고 해.”
“넵.”
잠깐 상태를 보러만 들른 것인지 유성 형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가고 없는 방.
“으으으……. 일이나 해야지.”
꽤 쓸쓸한 느낌이 감도는 작업실에서 나는 다시 작곡 프로그램을 만졌다.
‘뭐 재밌는 일 없으려나.’
먼 미래를 생각해 보면 생활은 안정적이고 편안하긴 한데, 일상이 너무 평안하다.
뭔가 지금의 지루함을 타파할 사건 같은 것, 그렇다고 생명의 위협이 있거나, 내 커리어를 망가뜨리거나, 앞으로의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릴 스케일은 아니고, 딱 적당한 사건 같은 것 하나 안 터지나 생각했다.
* * *
“아니, 어떻게 다섯 명을 데리고 왔는데 계약서는 두 명밖에 안 쓰냐고! 이게 말이 된다고 봐?”
“그……. 사무실까지 들어왔는데, 멤버 둘이 도장을 찍는 동안 세 놈이 도망쳤다고 합니다…….”
“아니, 아니……. 아니!”
연예 기획사 JH 뮤직의 매니지먼트 파트 장혁우 실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밴드 보고 데려왔더니, 멤버 둘만 회사에 유기해 놓고 도망간 그 세 놈은 뭐 하는 놈들이고, 그 꼴을 보고 수습도 못 하는 너희는 또 뭐 하는 놈들이냐고!”
뷰마스터, 유레나 같은 솔로 가수들의 포텐이 터지고, 럭키데이라는 희대의 천재들이 연이어 대박을 때려 준 덕분에 JH 뮤직은 쭉쭉 성장해 나름 덩치 큰 회사가 되었다.
이에 힘입어 연습생도 모집하고, 럭키데이 같은 음악성 있는 밴드도 영입해 사업에 박차를 가하려던 순간, 문제가 터졌다.
실력이 있다고 데려오려던 인디 밴드의 멤버 중 세 명이 계약 도중에 밴드를 탈퇴해 다른 회사로 날아가 버리고, 두 명의 기타리스트만 남아 JH와 계약을 해 버린 것이다.
“허, 허허허. 환장하겠네.”
“저……. 실장님…….”
“아니야, 아니야. 실장님이라고 부르지 마. 그냥 형이라고 해. 오늘부로 회사 때려치울 거거든.”
“시, 실장님!”
환장할 노릇이다.
계약서 찍는 대로 앨범을 준비해 메이저 데뷔를 시키려던 밴드가 갑자기 반 토막이 나서 회사에 들어왔으니, 이건 뭐 무슨 일을 벌일 수가 없다.
연습생으로 돌리자니 기존에 회사에서 키우던 뮤지션들과는 거리가 먼 인디 밴드인데다가, 경력 있는 그들이 가만히 그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데뷔를 시킬 수도 없는 게, 뭔 사람이 있어야 앨범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든 말든 하겠는데, 기타리스트 꼴랑 둘이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기타 연주 앨범이라도 만들어? 국내 최초로 방송 3사에 연주자들만 나오는 무대를 올리는 거지. 락이 죽은 시대에 럭키데이도 떴는데, 연주자가 보컬들처럼 못 뜰 이유는 없지 않나? 아니, 미친. 말이 되는 생각을 해라…….’
김주헌 대표도 다른 쪽에서 터진 문제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황.
장 실장은 이 사태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 싸매고 고민했으나, 답이 나오지 않음에 절망했다.
그때, 좌절한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저, 실장님?”
“아, 왜! 뭐!”
짜증이 확 솟아 앞을 바라본 그의 눈에 의외의 인물이 들어왔다.
“그……. 멤버 문제가 있으면 해결 방안이 있을 것 같긴 한데요.”
회사의 보물이자 골칫거리인 럭키데이의 전담 매니지를 하고 있는 조유성이었다.
“지금 대표님도 저쪽 퍼플 포그 애들이 베이스 한 명 빼고는 다 계약 해지를 해 달라고 하고 있어서 해결하러 가신 거라던데……. 이렇게 해 보시죠. 이쪽 애들이랑…….”
“호오……. 그래서?”
“그러면 저쪽이랑 반년 정도 기한을 잡고…….”
“오호…….”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장 실장의 낯빛이 확 밝아졌다.
“조 매니저, 루치한테 전화 걸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