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15
114화
“프로젝트 앨범요? 저랑 새로 영입한 밴드랑요?”
나는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놀라 되물었다.
“정확히는 새로 영입한 인디 밴드 퍼그노스에서 기타리스트 둘, 아이돌 밴드로 데뷔하려던 우리 연습생 하나, 그리고 럭키데이에서 너랑 라희. 이렇게 세 밴드에서 다섯이 모이는 거지.”
“흐으음…….”
“여러 팀에서 장점만 가져다가 앨범 하나 기깔나게 만들자는 게 모토긴 한데……. 조금 얄팍하긴 하지?”
“다른 이유가 있죠?”
“응. 어떻게 된 일이냐면…….”
유성 형은 내게 회사의 사정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곧바로 메이저로 띄우려던 인디 밴드가 뜬금없이 계약 진행 도중에 조각이 나 버렸다.
데뷔조로 애지중지 어화둥둥 키우던 연습생들이 대체 왜인지 모르게 하나만 남기고 다 나가 버렸다.
돈 주고 데려온 계륵과, 열심히 먹여 키운 옥동자가 붕 떠 버리기 일보 직전이란 이야기다.
“아니 이게 말이 돼요?”
“세상엔 드라마보다 더 막장 냄새 짙은 일이 일어나고는 하지. 너도 잘 알잖아?”
“하……. 그건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뭐 하는 놈들이야?’
아마 회사 사람들도 하고 있을 생각을 똑같이 하면서, 초대형 기획사까지는 아니라도 업계에서 방귀 좀 뀌는 회사에 눈 밖에 나면서까지 그런 짓을 벌인 놈들의 의도를 궁금해했다.
계약 자리까지 와서 멤버 둘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그 셋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프로젝트 그룹이라…….”
동시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급조한 밴드로 활동을 한다?
그것도 멤버 문제로 조각조각 찢어진 밴드들을 누더기처럼 기워서?
야생의 인디 밴드, 온실에서 키워진 아이돌 밴드, 그리고 처음부터 대범한 발자국으로 오디션에 얼굴을 비치고 메이저에서 시작한 우리 밴드가 서로 합을 맞출 수는 있을까?
‘활동이 이뤄질 수는 있을지 모르겠는데.’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천천히 속에서부터 풀어 보았다.
화합 문제. 성향 문제. 실력 문제 등.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먼저 탐색하고, 혹여 순탄히 풀지 못할 난제라면 그것을 감내할 만큼 활동의 과실이 클지를 짐작했다.
또한 내가 그 프로젝트 앨범이라는 것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 역시 고민에 있어 중요한 사항이었다.
‘사실 요즘 남는 시간도 많고, 밴드 활동을 하고 싶긴 했는데…….’
성공 가능성의 영역을 떠나 생각해 보면 나에게 있어 나쁘지만은 않은 제안이다.
최근 밴드 활동에 대한 목마름이 꽤 크기도 했고, 멤버들의 재집결을 기다리며 쌓아 두던 곡들 중 퀄리티는 괜찮은데 럭키데이와 어울리지 않아 묵혀 둘 예정인 노래들이 꽤 있었다.
그것들이 빛도 못 보고 묻히는 것보다는 다른 그룹을 결성해 제작한 프로젝트 앨범을 통해서라도 세상에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낫기는 하니, 작곡가 김루치의 입장에서도 괜찮았다.
“안 그래도 네가 밴드 활동을 하고 싶다고 지속적으로 말하는 게 조금 신경 쓰여서……. 멤버들 비는 와중에 작품은 계속 쌓여만 가고. 해소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팀원을 모아서 함께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흠…….”
참고로 고려 사항에 우리 멤버들을 버리고 다른 밴드에서 활동을 해도 되겠냐는 고민 같은 것은 없었다.
‘두 집 살림이라…….’
흔히 두 집 살림 등으로 불리는 밴드 겸업, 복수 밴드 소속이 그리 흔치 않은 일은 아니었다.
인디계의 절대강자 스노우 플라워의 이영근 보컬은 같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엄승호와 함께 와일드 플러워라는 별도의 밴드를 이끌고 있기도 했고, 인디 밴드를 하고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솔로 가수의 전담 세션 밴드 생활을 병행하기도 한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돈이 필요해 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겸업 밴드맨은 흔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있는 게 기타 둘에 베이스 하나라고요?”
“응. 기본 구성으로 치면 드러머랑 보컬만 없지. 혹시 원한다면 다른 세션을 더 모집할 수도 있겠고.”
“아직은 고민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생각해 보고 연락 줘.”
“네.”
나는 유성 형의 전화를 끊은 후,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생각했다.
보컬 멤버로 나를, 드러머 멤버로 라희를 쓰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연주자 셋을 추가해 밴드를 구성한다.
“프로젝트 그룹 나쁘진 않아. 나쁘진 않은데……. 이걸 시간 죽이기……, 라고 생각하면 멤버들한테 실례 아닐까?”
아직 할지 말지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서 임해야 하리라.
그것이 아직 모이지 못한 우리 럭키데이에게도, 새로 작품을 꾸려 나가게 될 프로젝트 밴드에게도 예의일 테니.
‘일단 들어나 볼까?’
그렇지 않아도 밴드를 하고 싶다는 욕망은 한껏 차오르는데 현실은 그럴 수 없어 고통받던 요즘, 반가운 제안이 들어왔다.
다만 멤버들의 얼굴도 안 보고 덜컥 결정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우리의 귀하디귀한 드러머 라희 님의 의사도 들어 봐야 한다.
나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으니까.
따르르릉!
나는 끊었던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라희야. 집이야?”
오랜만에 멤버의 의견을 구해 향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는 절차를 밟아 보고자 한다.
“밥 먹자. 나와.”
주린 배도 좀 채우고.
* * *
“프로젝트, 프로젝트……. 회사에서 꼭 해야 한다고 한 건 아니지?”
“응. 우리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어.”
“당연히 그렇겠지.”
“평소처럼 말이야.”
“으흐흐흐.”
나와 라희는 고기 한 판을 배부르게 먹고 작업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군대도 다 끝내고 돌아왔는데 너희가 없어 활동을 못 함에 대한 아쉬움, 의외로 귀찮고 피곤한 작곡가의 일상에 대한 투정, 학교 다닌다고 바빠 작업실엔 놀러 오지도 않는 라희에 대한 타박.
라희는 내 말을 귀 기울여 잘 들어 주고, 계속 웃어 가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하하하! 자주 놀러 갈게. 미안해.”
애들이 칭얼거리면 내가 받아 주고 들어 주던 옛날과는 정반대의 상황.
묘한 기분이었다.
‘뭐……. 이런 것도 전부 모이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 버리겠지만. 나쁘진 않네.’
이야기를 들어 주고 투정을 받아 주는 역할은 여유 있게 모든 상황을 살펴야 하는 사람의 몫.
지금이야 어깨에 실린 짐이 없어 내가 풀어진 채 칭얼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다시 한 그룹으로 뭉치면 행보를 결정하고 의견을 취합하는 동안 들어 주고 받아 주고 업어 주고 다 해야 한다.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 하는 법.
“그래. 너희는 나한테 정말 잘해야 한다고. 응? 내가 너희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아이고, 알아, 알아. 응.”
그간 당했던 만큼 열심히 속을 풀어 냈다.
살짝 짓고 있던 라희의 미소에 실금이 갈 때까지.
“후우우……. 아무튼 이제 본론을 좀 말해야겠는데…….”
뒤바뀐 입장에 적응해 열심히 놀려 대는 것도 잠시.
이제 의견을 구할 차례였다.
“더 해도 되는데.”
“이쯤 놀았으면 됐어. 일 얘긴데…….”
나는 회사에서 던진 주문에 대해 라희에게 설명했다.
나도 프로젝트를 함께 꾸리게 될 멤버들의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정보는 듬성듬성이었지만, 대강의 그림을 보여 줄 정도는 되었다.
요는 빈자리가 생겨 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린 세 팀의 사람들이 모여 작품 하나를 만들어 보자는 것.
라희는 내 말을 모두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안 할래.”
“엇?”
의외의 거절이었다.
“왜? 너라면 무조건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헤헤. 럭키데이가 아닌 밴드로는 조금…….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하나? 고향 집이 편하다고 해야 하나…….”
우리의 밴드 럭키데이에 대한 애정이 큰 나머지 양다리를 걸치고 싶지 않단다.
애정이 깊은, 혹은 의리가 있는 행동이지만 나는 혹여 그녀가 여러 밴드에서 겸업을 하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봐, 밴드맨들의 두 집 살림은 꽤 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변하지 않았다.
“어……. 럭키데이가 아닌 밴드에서 하면 애들이 서운해할 것 같다, 그런 게 아니야. 딱히 다른 그룹을 결성해서 활동했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서.”
“얻을 수 있는 거?”
“응. 럭키데이에서 다 같이 연주를 했을 때 느꼈던 즐거움, 하나하나 처음 발을 내딛는 기쁨, 함께 뭔가를 만드는 즐거움. 짧은 프로젝트 밴드에서 그걸 느낄 수 있을까?”
대개 마음가짐 혹은 감정의 문제였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상당히 기분파 기질이 있는 예술가였고, 심적인 부담이 커지거나, 일에 있어 행복감이 배제된 상태가 된다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즐거운 일을 찾아 하기도 벅찬데, 왜 마음이 맞을지 아닐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날려야 하냐는 식이다.
“흠……. 일리가 있어.”
“아, 그리고…….”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말했다.
“앞으로 몇 달 정도는 나도 조금 바쁠 것 같아. 우리 선생님이 말이야…….”
라희는 그녀의 스승인 황보문의 투어 행사에 따라다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황보문 교수는 자신의 투어 행사에 학교 제자들 중 유망한 이들을 동행시키고는 하는데, 공연 중간중간 일정 시간을 빼서 그들에게 연주 기회를 주고는 했다.
큰 무대의 경험도 쌓고, 자신을 뽐내는 노하우를 익히기 위해서란다.
“조금조금도 아니고 드럼 솔로에 10분은 무조건 보장해 주신다잖아. 와, 아저씨 진짜 통 커. 드럼만 잘 치시는 줄 알았더니…….”
올해에는 라희가 그 게스트 중 하나로 동행하게 되었고, 솔로 타임도 꽤 많이 부여받았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꽤 괜찮은 기회였고, 때문에 앞으로 몇 개월 정도는 황보문 교수를 따라다니며 공연을 배우고 또 하느라 바쁠 예정이라고.
“끄으응……. 어쩔 수 없지.”
할 의지도 없고, 흥미도 없고, 할 상황도 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굳이 설득해서 같이 가자고 조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좋아서 하는 음악이지만, 이번 건은 비즈니스의 영역에 조금 더 가까우니까.
“같이 못 해서 미안…….”
“응? 아냐.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아무래도 나를 혼자 버려두는 것 같은 기분이라도 들었는지, 라희가 내게 사과를 건네온다.
나는 됐다고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미안해하지 말고 자주 놀러 오기나 해. 나 심심해.”
“허? 아니, 얘 진짜?”
나는 애가 너무 부담을 갖는 것 같아 농담처럼 말했다.
그런데 장난스럽게 던진 그 투정에 라희의 미소가 완전히 깨져 버렸다.
“너 진짜 아까부터…….”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한테 쏘아붙였다.
“먼저 연락은 안 하지, 가끔 찾아가려고 연락 주면 잔다고 안 받지. 오늘도 먼저 연락해서 밥 먹자고 해서 기대하고 왔더니 결국 열심히 먹고 나서 일 얘기만 하고!”
“어……. 어?”
“가끔 메시지 받아서 보면 우리 곡 차트에 다시 올라갔더라, 정산금 받았냐, 새 곡 좀 들어 줘라……. 야! 너보다 해외에 있는 수현이가 더 자주 연락해!”
“어어…….”
라희는 뭐가 그렇게 쌓인 게 많았는지 방방 뛰며 열불을 터뜨렸다.
마치 뭔가 참다 참다 못하겠기에 속마음을 토해 내는 사람처럼, 그녀의 분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너는 대체 사람이……. 나는 얘를 대체……. 어우……. 어우우우! 내가 이상한 거야? 나만 바보 등신이야?”
“라, 라희야. 진정하고…….”
“진정! 진저어엉!”
천장이라도 무너뜨릴 듯 화를 내는 그녀를 나는 한참 동안이나 말려야 했다.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영문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