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16
115화
“그게 말이 돼요? 연락은요?”
“연락을 받을 리가. 사실 연락이 됐으면 그게 더 무섭지. 일방적으로 사람을 그렇게 등신 만들어 놓고 전화로 시시덕거릴 정신이 있다는 뜻이니까.”
“하……. 그것도 그런데…….”
프로젝트 그룹에 대한 제안을 받은 날로부터 며칠 뒤.
나는 정말 오랜만에 회사에 와서 기타리스트 이세명과 대화를 나누었다.
인디 밴드 퍼그노스의 리드 기타, 정확히는 리드 기타였던 인물이자 앞으로 나와 프로젝트 그룹을 꾸려 나가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나랑 하은이는 밴드의 미래를 생각하는 쪽이었어. 기획사 계약 제안에 대해서 제일 반가워했던 것도 우리였고.”
“아. 하은 님이셨구나.”
“뭐야, 아직 통성명 안 했어?”
“네. 말씀을 안 하셔서…….”
“하은아, 이리 와 봐.”
회사에서 내어준 공간에 모인 지 거의 30분 가까이 되어서야 나는 그 하은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바들바들바들바들…….
‘아니, 잠깐. 저 사람 지금 떠는 거야?’
이세명 기타리스트가 나보다 세 살 형이고, 저 하은이라는 사람은 그의 친구라고 했으니 나보다 형일 텐데,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는 모습이다.
무슨 치와와를 보는 기분.
키도 작고 마른 사람이 눈앞에서 덜덜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죄인이 되는 기분이다.
“어……. 저, 제가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아. 신경 쓰지 마. 원래 이래.”
“아…….”
“이쪽은 백하은. 아까 말했듯이 내 친구고 빠른 94년생. 일단은 세컨드 기타인데, 연주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분류한 건 아니고 그냥 역할 구분이야.”
“나……. 클……. 밴…….”
“맞다. 클래식 기타 전공이었어. 지금은 밴드에만 집중하는 중이고.”
“반……. 럭…….”
“반갑대. 럭키데이 음악은 아주 잘 들었대.”
“아. 감사합니다…….”
백하은 기타리스트는 마치 대리인을 내세우는 것처럼 이세명 기타리스트의 뒤에 숨어 자기 말을 전달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소심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아무래도 친해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인디 활동에 조금 회의를 느끼고 있었어. 공연이라도 자주 다녀서 돈벌이라도 됐으면 모르겠는데, 얘네가 앨범 병에 제대로 걸려서 하나만 제대로 터뜨리자는 소리만 하고 있었거든.”
“아하. 그런 사람들 꽤 있죠.”
“응. 돈은 모자라고, 배는 고프고. 그래서 메이저로 가자는 말에 덜컥 떡밥을 문 거야. 그런데 아뿔싸? 이 미친놈들이 우리만 버리고 도망쳤네? 하하. 말도 안 되지?”
이세명, 백하은 두 기타리스트는 밴드의 미래를 위해 기획사와 계약해서 활동을 이어 가길 원했다고 한다.
당장 인디에서의 활동이 대개 돈이 잘 벌리지 않는 앨범 제작뿐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을 올리고, 수익을 얻기 위함이었다.
당장 배가 고파 죽겠는데, 연습실 유지비는 고사하고 밥벌이도 제대로 안 되는 생활을 끝까지 이어 나갈 수는 없었으니까.
그들은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음악에 자본과의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나? 미친놈들. 멀쩡히 잘 살던 하은이 데려다가 밴드 하자고 꼬셔 놓고 그게 할 말이야?”
클래식 기타를 전공하며 나름 성공 가도를 걷고 있던 백하은이다.
그런 그를 밴드의 보컬이 꼬드겨 영입했고, 락 음악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러니 대성공을 거둬 지폐와 금괴 속에서 헤엄치게 만들지는 못해도, 하다못해 먹고살 걱정은 없게 만들어 주는 것이 도리 아닌가?
그러나 드러머와 보컬, 베이스는 생각이 달랐다고.
“결국은 계약 전날까지 논쟁하다가 의견이 모아졌어. 난 거기서 된 줄 알았지. 조금 삐걱대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길로 같이 갈 수는 있겠구나 하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더라고.”
논쟁과 분란을 거듭하던 밴드 퍼그노스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의견을 모았다.
계약을 하기로.
퍼그노스의 색깔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JH 뮤직의 손을 잡고 메이저로 나아가 그나마 자신들의 음악을 선보일 기회를 잡기로.
그리고 계약 당일.
그들은 기타리스트 두 사람을 회사에 두고 조용히 사라졌다.
“끝까지 부딪치다가…….”
“이 사달이 난 거지.”
나는 그 모든 전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열불을 터뜨렸다.
“아니, 팀워크는요? 책임감은요? 같은 밴드 식구끼리 그래도 됩니까?”
“그런 게 있었으면 이런 꼴이 나지도 않았지.”
내 물음 아닌 물음에 이세명 기타리스트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평소부터 가치관 차이 탓에 많은 마찰이 있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급격하게 관계가 무너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는 그다.
아마 투덜거리듯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심적인 충격이 상당할 것이었다.
“결국엔 축소하고 축소해서 합의한 게 계약 기간을 줄이는 거였고, 회사에 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랑 끝까지 갈 것처럼 말했어.”
“근데 일이 이렇게 됐다고요?”
“그래. 진짜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린 거야. 허. 누가 예상이나 했겠냐?”
그는 치가 떨린다는 듯 분노를 굳이 감추지 않고 퍼그노스의 전 멤버들을 욕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데요?”
“몰라. 듣기로는 음악 쪽에는 아예 터치를 안 하는 다른 회사를 찾겠다고 하던데,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연락도 안 돼. 이 얘기도 건너서 들은 거야.”
“흠……. 이해가 안 되네. 음악에 터치 안 하기로는 JH 만한 곳이 없을 텐데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혼자 중얼거렸고, 이세명 기타리스트가 내게 물었다.
“여기가 그 정도야?”
다소 의외라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그가 그렇게 묻는다는 것이 더 의외였기에 놀라며 답했다.
“알고 들어오신 거 아니었어요? 계약 전에도 다 말씀해 주실 건데.”
“듣기는 했는데……. 그 부분의 칭찬이라는 게 원래 걸러 듣는 거잖아. 야, 대부분 자기 회사 자랑할 때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끌어오는 거 알 거 아니야.”
아무래도 업계 사정에 전반적으로 밝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JH의 그 자율성과 아티스트 친화적인 성격이 과장처럼만 들렸던 모양이다.
사실 아티스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그들의 예술 정신을 존중하기로는 내가 소속된 JH 뮤직이 업계 최고 수준이다.
“그건 그렇긴 한데, JH는 원래 유명하잖아요. 뷰마스터, 유레나, 저희 럭키데이까지 전부 직접 발로 뛰면서 제작하기도 했고, 이게 필요하다 저게 필요하다 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도 잘해 주고요.”
“바깥사람들한테는 믿기 어려운 말이지. 몇몇 사람들은 너희들 예능 프로그램 그거 뭐지? 재능러의 하루였나? 거기 나와서 작곡하는 거 보여 주기 전까지는 앨범에 있는 네 자작곡이 진짜 네 작품이라는 말도 잘 못 믿더라.”
“하하. 활동하면서 직접 경험해 보시면 놀랄걸요?”
그들이 이 연예 기획 쪽 소식 전반에 대한 조금 무지했던 것도 있지만, 워낙 연예 기획사라는 것이 돈 좀 벌고 덩치 좀 크면 너무 꽉 조여서 앞길을 설계하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아티스트들을 굴리는 이미지가 있기도 했다.
과도한 통제 혹은 체계가 잡히지 않은 비도덕적 경영.
‘선입견이긴 하지만, 그런 곳이 아직 많기도 하지.’
업계 전반에 깔린 어두운 면모가 새로이 이 길에 발을 내딛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반면 JH는 기본적으로 아티스트의 자율적인 창의성에서 제대로 된 성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회사였다.
우리 럭키데이가 회사에 발휘하는 영향력이 큰 것도 이유라면 이유지만,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자유로운 창작과 제작 환경을 얻어 활동하고 있다.
“그보다 그 사람들이 자율적인 분위기가 좋답시고 어느 회사로 갈지가 더 궁금하네요.”
아마 어디로 가든 이 이상의 자율은 얻기 힘들 것이다.
아니면 말만 그렇게 한 것이고, 계약 직전의 파투는 그냥 남겨 둔 멤버들을 유기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가능성은 충분하지. JH와 접촉하기 전부터 분열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두 사람을 제외한 세 명에 대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을 수도 있고.’
만일 이 두 사람을 두고 떠나간 그들이 우리 회사의 특성을 미리 알고 있던 것이라면, 애초에 밴드 해체 그 자체가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차라리 이렇게 끝내게 된 게 두 사람한테는 이득일지도.’
어쩌면, 그들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두 사람을 누군가의 표현대로 유기하듯 버린 것이라면, 차라리 더 큰 분란 없이 이렇게 깔끔하게 헤어진 것 자체가 이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팀원들에게는 암시도, 언급도 없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자 별개의 사건을 이용해 통수를 때리는 동료라는 건, 동료 혹은 팀원이라는 호칭도 아까운 놈들이니까.
앞으로 얼마 동안의 시간을 함께하든 그런 팀메이트와 함께라면 절대로 밴드로서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으리라.
“그런데 기타 둘에 보컬 하나가 끝이야? 이렇게 셋이서 앨범을 만들 수가 있나?”
내가 그 셋에 관해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이 마음을 진정시킨 이세명 기타리스트가 물어 왔다.
“아뇨. 아이돌 밴드 데뷔를 준비하던 베이스 연습생 하나가 있다더라고요. 우리 회사 소속. 그 사람이랑 외부에서 영입한 드러머 한 명이 더 있어요.”
끼이익!
“이쪽으로 들어오면 돼.”
“양반은 못 되네. 유성 형, 다 모인 거예요?”
아직 자리에 없는 프로젝트 그룹 동료에 대해 얘기하기가 무섭게 유성 형이 누군가를 이끌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와 이세명, 백하은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야…….”
“와…….”
“허.”
우리가 모두 감탄사를 흘리는 이유.
“인사해. 여기 잘생긴 친구는 신주영. 우리 회사 연습생이었고, 얼마 전까지 퍼플 포그라는 이름의 밴드로 데뷔를 준비하던 베이시스트야.”
“안녕하세요.”
진짜, 엄청, 매우, 굉장히.
“겁나 잘생겼네.”
잘생겼다.
“감사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흘러나온 듯한 이세명의 칭찬에 신주영 베이시스트는 딱딱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 그에게 이세명이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이세명이라고 하고, 이쪽은 백하은. 둘 다 기타리스트야.”
아니, 정확히는 자신과 백하은에 대한 소개를 했다.
백하은 기타리스트는 여전히 친구의 등 뒤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안……, 저……. 하은…….”
“하은이가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고, 이쪽은…….”
“김루치아노 님. 팬입니다.”
다소 딱딱하기는 해도 예의를 지켜서 인사하던 신주영은 세명의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내게 악수를 건넸다.
“아, 네. 반가워요. 혹시 마실 거라도…….”
“아뇨, 괜찮습니다.”
“다들 인사 나누면서 잠깐 앉아 있어. 그 드러머 친구도 데리고 와야 하니까.”
“넵.”
“네.”
그를 그대로 두고 프로젝트의 실무자이자 그룹 매니저로 일하게 된 유성 형이 다시 자리를 비웠다.
나는 그사이 옆에 앉은 베이시스트를 살폈다.
“베이시스트라고 했지? 어려 보이는데, 나이는?”
“스물셋입니다. 여기 루치아노 님보다 한 살 많습니다.”
“아하. 나보다 두 살 어리네. 반가워.”
“반갑습니다.”
그는 이세명의 모든 물음에 단답으로 답했다.
예의는 바른 것처럼 보였지만 친화력은 다른 의미에서 옆에 있는 백하은만큼이나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척.
“응?”
신주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