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17
116화
‘뭐지?’
나는 이 사람이 뭘 하려는 건가 싶어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들었다.
종이 한 장과 펜.
그리고 그가 말했다.
“사인 좀…….”
“엥.”
눈이 마주치는 걸 피하고, 살짝 주눅 든 말투로 부탁을 뱉는 신주영.
뭔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했는데, 이제 보니 그냥 좋아하는 가수 앞에서 굳은 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앗. 네. 당연하죠.”
나는 그것을 받아서 그의 이름과 덕담, 사인을 정성 들여 그려서 넘겨주었다.
‘연습생이 팬이라니.’
그간 가수로 활동하며 인기도 나름 얻었고, 내 팬이라고 다가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일 리가 없다.
그런데 그게 같은 회사에서 데뷔 준비를 하던 연습생, 그것도 첫 만남에 와 겁나 잘생겼네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꽃미남 연습생이니 뭔가 신기한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내 사인을 손에 넣은 신주영은 꾸벅 인사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딱딱했던 표정에 아주 살짝 미소가 피어오른 것을 보니 꽤 기쁜 모양이었다.
‘잘생겼네.’
다만 그것보다는 그 아주 살짝 웃는 모습이 너무나 잘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연주는 얼마나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연습생이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는 하겠지? 완전 비주얼 멤버였을 수도 있긴 한데……. 아니었으면 좋겠네.’
저만큼이나 생겼으면 연주 따위 제대로 하지 못해도 비주얼 멤버랍시고 끼워 넣었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든다.
사실 베이스라는 파트는 극단적으로 비중을 줄여 근음 셔틀로만 써도 어느 정도 역할 수행은 가능한지라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적당히 박자만 맞추고 근음을 두드려 중심만 받아 주면 합주 자체는 성립되기도 하고,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폭주, 예컨대 드럼이나 기타가 한껏 달리는 곡에서 베이스가 너무 튀어 버리면 곡이 무너져 버리는 케이스도 부지기수.
때문에 절제한 연주인 척, 기본에 충실한 척, 초보적인 연주를 합이 잘 맞는 연주로 속여 넘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니아들 귀에는 다 들리지만.’
밴드 음악에 열광해 거기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는 베이스의 비중이 너무 낮다는 사실이 정확하게 포착될 테고, 실력에 대한 의심도 제기될 것이다.
다만 락에 환장해서 그런 음악만 찾아 듣는 사람들이 아닌 대중들이라면 딱히 신경 쓰지도 않을 테고, 필요하다면 음반 녹음 때는 세션을 불러 연주를 시킬 수도 있으니 상관없다.
당연히 JH 뮤직에서 그럴 것이라는 말은 아니고, 그런 방법도 있다는 뜻이다.
애초에 다른 세션을 불러 녹음시키고 제 것이라며 이름을 올리는 건 사기에 가까운 행동이기도 하고, 누구보다 음악에 진심인 오타쿠들이 모인 JH에서 그런 짓을 할 리는 없다.
“후우우우…….”
그리고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현을 튕기듯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보니 꽤나 연습에 빠져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 실력을 짐작하기에는 정보가 적지만, 적어도 음악의 음 자도 몰라 짐짝이 되는 문외한은 아닌 듯했다.
힐끗. 힐끗힐끗.
그것도 그렇고, 다소 소심하게 한 번씩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도 그렇고, 나와의 팀워크 문제는 없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기다리다가.
“자아아, 이제 다들 모였구나.”
유성 형이 다시 들어왔다.
“여어, 루치!”
“옥선이 어서 오고.”
프로젝트 그룹이 기획대로 만들어진다면 드러머 역할을 맡을 친구와 함께.
“누구?”
가만히 앉아 있던 이세명 기타리스트가 새 얼굴을 보며 묻자, 그가 과장된 차렷 자세를 취하며 답했다.
“드러머 공옥선! 예명은 뷁드럼! 리듬에 살고 리듬에 죽는 리듬의 사나이! 반갑습니다!”
Break the Drum이라고 쓰고 뷁드럼이라고 읽는 관종 드러머, 공옥선.
“여기 루치와는 같은 MCN에 소속되어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동료 사이입니다!”
그는 드럼 연주를 올리는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너튜버이자.
“참고로 공옥순 아니고 공옥선입니다! 유념하지 않을 시 공포의 쓴맛을 보여 드립니다!”
“뭔가 옥철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옥선입니다!”
“어, 그래…….”
미친놈이다.
“하아아……. 저런 애를 같은 밴드로 들여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이봐, 친구! 인상 펴! 내가 왔잖아!”
“그래서 문제야. 응.”
나와는 동갑인 친구 사이고, 같은 회사에 소속된 너튜버이기도 하다.
주로 드럼 커버와 연주를 올리고 있고, 내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재석이 형의 MCN, 채널링에 소속되어 있다.
메탈 스타일, 하드 스타일이 강조되는 락 드럼을 꽤 멋있게 구사하는데, 문제는 그 커버 곡들의 종류에 있다.
“요즘도 동요에 드럼 입히고 노냐?”
“이번에 조회 수 백만 찍은 영상도 나왔지!”
“하……. 미치겠네.”
동요,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OST, 그리고 아주 가끔 자작 드럼 솔로 연주나 평범한 커버를 올린다.
세상 멀쩡하게 생긴 놈이 동요에 메탈 연주에 입히고, 애들 보는 애니메이션 OST에 쿵쾅대는 비트를 넣는 기묘한 영상들을 올려 대니, 그 모습이 나름 신선해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친 드러머, 드럼 부수는 사람, 동심 파괴자 등. 수많은 별명을 얻으면서 말이다.
“구독자는?”
“20만에서 정체 중!”
다소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이 녀석은 타고난 관종 성향 탓에 너튜버로서 빠르게 성장했고, 곧 채널링에 영입되었다.
“그래…….”
“프로젝트 그룹을 통해 어떻게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 중이지! 열심히 드럼을 부수고 다른 팬들의 유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 그래…….”
그리고 프로젝트 합류를 거절한 라희 대신 내가 주도적으로 영입한 드러머이기도 하다.
“야, 루치…….”
“네? 아…….”
옆에서 이세명 기타리스트가 나를 툭툭 건드리더니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만나자마자 공옥선이 만만치 않은 미친놈이라는 것을 알고 내게 이래도 괜찮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괜찮을 거예요. 저래 보여도 실력은 있는 놈이기도 하고…….”
“너튜……. 드럼……. 연…….”
“네?”
“하은?”
내가 옥선이에 대해 이세명에게 설명하려던 순간, 드러머를 기다리던 시간 내내 입을 다물고 숨어 있던 백하은 기타리스트의 입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드……. 연주……. 괜…….”
“들어 봤다고? 너튜브? 네가 어떻게 알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는 저 작은 목소리를 어떻게 저리 잘 해석하는 것인지, 이세명 기타리스트도 새삼 정상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뷰……. 너튜…….”
“알고리즘? 자동으로 뜨는 거? 나도 나중에 보여 줘.”
“응…….”
백하은은 이세명의 뒤에 몸을 숨기고 남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이야기했다.
마치 들으라는 듯 반복해 되묻는 이세명의 말을 통해 나는 백하은이 옥선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너튜브 봤구나.’
여전히 몸을 바들바들 떨며 경계를 죽이지 않고는 있지만, 적어도 대화의 의지는 있어 보여 다행이었다.
그러나.
“오! 제 너튜브 채널을 보셨군요! 반갑습니다! 팬이시면 사인이라도 해 드릴…….”
“히이익!”
그 모습을 본 옥선이가 그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자, 백하은은 혼비백산하며 이세명의 옷을 잡아당겨 그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가리게 만들었다.
‘아니 무슨 햄스터도 아니고…….’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저렇게 사람을 무서워해서야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할지 또다시 불안감이 차올랐다.
“저, 세명 님?”
“응? 그냥 형이라고 해.”
“네, 세명이 형. 저 하은 님 괜찮으신 건가요?”
“하은이? 아하.”
나는 조심스럽게 소리를 죽여 세명 형에게 백하은 기타리스트가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 상태가 괜찮냐는 뜻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밴드로서 활동을 할 수나 있겠냐고 묻는 것이기도 했다.
“얘가 이렇기는 해도 무대에서는 제대로 할 줄 아는 놈이야. 오히려 무대 밖에서 이러니 그게 더 걱정이긴 한데, 밴드 멤버로서 딱히 하자는 없어.”
“그렇다면 다행이긴 하지만…….”
“실력 자체는 출중하니까 믿어도 된다.”
그는 내게 백하은의 실력과 밴드맨으로서의 능력을 보장했지만, 아까부터 친구를 제 몸으로 감추고 싸고도는 모습을 보아 왔던지라 쉽사리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나는 백하은과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걸어 봤다.
“저…….”
“읏!”
역시나 금방처럼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린다.
그래도 연주를 하고 함께 활동하려면 최소한의 소통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을 붙였다.
“혹시 제가 형이라도 불러도 될까요?”
“…….”
지진이라도 난 듯 그의 동공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잠시 말없이 바들바들 떨던 그는 곧 말이 아니라 제스처로 내게 답했다.
끄덕끄덕.
다행히 아예 친해지기 싫다거나, 나와 소통할 생각이 없다거나 한 것은 아닌 듯했다.
‘소심증도 정도가 있긴 한데……. 어떻게든 되려나?’
어떻게든 될 수준인가 싶기는 하지만, 적어도 팀워크를 박살 내려고 의도해 하는 행동은 아니니 감안할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다들 안면도 익힌 것 같은데, 잠깐 앉아서 일 얘기를 좀 해 봐도 괜찮을까?”
“네.”
유성 형의 주도하에 어색하디 어색한 멤버들 간의 첫 대면이 잠시 접히고, 마침내 프로젝트 그룹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너희는 우리 JH 뮤직에서 벌일 프로젝트를 위해 모이게 됐다. 일단 기획명은 밴드 X. 럭키데이의 루치, 퍼그노스의 세명, 하은, 퍼플 포그의 주영, 그리고…….”
“너튜브의 공옥선입니다!”
“그래, 옥선이. 이렇게 다섯 사람이 한 밴드를 구성하는 프로젝트야.”
유성 형이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으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소개는 방금까지의 일로 충분했다.
나는 그에게 본론을 요구했다.
“그래서 프로젝트 그룹의 본격적인 목표와 규모는 어떻게 될까요?”
수익 분배, 계약 기간 같은 논의 사항이 곧 나오겠지만, 일단 궁금한 점부터 짚기로 했다.
그냥 앨범 한 장 내고 끝이라든지, 단기적인 추가 목표, 예를 들어 앨범을 내고 활동의 마무리로 큰 공연을 하며 피날레를 맞이한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목적을 알고 싶었다.
유성 형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후, 스크린을 내려 화면에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띄웠다.
“좋은 질문이야. 화면 보면서 들어 줘.”
—
밴드 X
—
“일단 우리의 목표는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어. 이 미션들을 수행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야.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일반인이라도 사비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일들이지.”
첫 번째는 앨범 발매.
두 번째는 데뷔와 앨범 제작 과정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 제작.
세 번째는 투어 공연.
“그런데 이 세 가지 미션을 그냥 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유성 형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
“세 번째 미션인 투어 공연이 앞선 미션들의 성취에 비례한 규모로 진행될 거거든.”
그는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제대로 된 피날레를 얻으려면 앨범 제작과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통해 큰 성과물을 보여 줘야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