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18
117화
유성 형은 가벼운 경고에 이어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개괄을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세 단계의 미션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이 중 앨범 발매는 추가적인 설명 없이 그 내용을 알 수 있겠지. 여덟 곡 이상의 풀 패키지 앨범 한 장을 제작한다.”
풀 패키지 앨범 제작.
외부 곡 수배 없이 그룹 멤버들의 곡으로 여덟 곡 이상의 트랙 리스트를 구성해 앨범을 제작한다.
곡의 종류나 개수는 우리가 직접 정하고 어떤 간섭도 없을 테지만, 퀄리티에 대한 심사와 일관적인 밴드 컬러에 대해서는 프로듀서의 가이드가 있을 예정이다.
“두 번째는 예능 제작인데, 아직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회사에서는 웹 예능을 염두에 두고 있어. 데뷔 전의 연습이나 회의, 앨범 제작 과정과 초회 공연 같은 걸 카메라에 담게 될 거야.”
예능 제작.
리얼리티 예능처럼 우리의 앨범 제작 과정과 연습 따위를 화면에 담는다.
완성된 예능을 방영할 방송사는 수배 중에 있는데, 웹 예능으로 공개할 것을 고려 중인 만큼 제작진을 따로 구해 촬영에 들어갈 것 역시 생각하고 있다고.
‘인터넷으로 풀리는 쪽이 어떤 의미로는 더 나을지도.’
아무래도 우리가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밴드이다 보니 주류 장르에 관심이 깊은 대중들의 시선을 쉽게 모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방영 시간대가 정해져 있는 TV 편성보다 홍보에 따라 오히려 접근성이 좋고 시청자들과 더욱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는 웹 예능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괜찮은 구상이다.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 투어.”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미션.
이것은 유성 형이 직전에 말한 대로 앞선 둘의 결과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는 미션이었다.
“이 투어 공연은 이번 프로젝트 그룹이 중반까지 얼만큼의 성과를 거뒀느냐에 따라 그 규모가 달라질 예정이야.”
그의 말은 이랬다.
프로젝트 그룹, 가칭 밴드 X의 여정은 앨범 제작과 예능 방영을 거쳐 마지막으로 피날레 투어 공연을 하며 마무리된다.
이 피날레 투어는 앞선 두 행사의 성과에 비례해 그 규모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기대치 이하의 성과를 얻게 되면 연속 소극장 라이브를 통해 친근함을 가져가고, 딱 기대한 만큼의 인지도와 성과를 얻으면 락 페스티벌 등의 행사 TO를 포함한 대형 공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기대하지 않은 초대박을 치게 되면…….
“전국 투어. 그것도 꽤 큰 규모로.”
“꽤 큰 규모라고 하심은…….”
“아마 본격적인 단독 콘서트 규모로 지역별 공연장을 대관해서 꽤 긴 기간 동안 진행될 거야. 자세한 사항은 이후에 결정될 테고. 물론 공연 수익의 분배는 기존 아티스트들과 동일하게 설정될 거고.”
겨우 1집을 완성한 그룹이 엄두도 못 낼 규모의 공연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프로젝트 그룹에 대해 구미가 당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오…….”
“마음만 같아서는 몇 달 내내 돌아다니면서 공연만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테니 아마 팔도 투어가 되지 않을까 싶네.”
“그것도 감지덕지죠.”
말이 거창해서 회사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프로젝트 그룹이지, 사실상 여기저기서 멤버들을 데려와 짜기운 오합지졸 신인 밴드나 마찬가지.
그런 신인들이 가는 곳마다 대형 공연장을 빌려 가며 투어 행사를 한다?
비록 앨범의 대박과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이라는 미끼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침이 흐를 법한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판매량이 나오면 그에 비례해 피날레 공연의 크기가 결정된다. 크……. 괜찮네요.”
“그치?”
“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됐어요.”
“그럼 할 거야? 응?”
다소 긍정적인 말 때문인지 유성 형이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아마 이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누구보다 성공을 바라고 있는 사람이 그이기 때문에 더욱 내 반응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일단 합이나 좀 맞춰 보고요.”
“합?”
“만약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 같은 밴드로 활동하게 될 텐데, 합이 맞는지 안 맞는지 정도는 보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몇 달짜리 시한부 팀이라지만 팀워크가 맞을지 안 맞을지, 서로 연주를 섞으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 정도는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멤버들이 어느 정도 연주를 소화할 실력은 되는지도 알아야 하고 말이다.
그런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다른 사람들도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미 증명된 보컬도 있고, 겁나 잘생긴 베이스도 있고, 좀……, 특이한 드러머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합이 맞느냐이지. 말 잘했네.”
“저도 좋습니다. 합주.”
“오오오오! 연주! 좋다! 드럼 다 부순다!”
“읏……. 나……. 합…….”
“하은이도 괜찮대.”
우리의 말을 들은 유성 형은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어휴……. 뭔가 그럴 것 같긴 했는데……. 그래, 뭐. 결정에 도움이 된다면. 연습실 하나 빌리면 되지?”
“부탁드릴게요.”
“있어 봐.”
우리는 각기 다른 멤버들을 가늠해 보는 것에 동의하고 자리를 옮겼다.
회사 연습실 하나를 빌려 합주를 해 보고,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세팅할 시간들은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오래 안 걸릴 것 같은데? 이거 쓰던 장비라.”
“저도 연습실 장비는 익숙해서 괜찮습니다.”
“난 소리만 잠깐 점검할게. 딱히 닦고 조이고 기름칠 건 없고, 튜닝만 되어 있으면 돼.”
“오케이. 다 되면 말씀들 부탁드려요.”
“예압.”
세명과 하은, 주영이 톤을 만지고 볼륨을 조절한다.
옥선은 탐탐의 소리를 하나씩 들어 보더니, 드럼 키라고 불리는 도구를 꺼내 북 모서리에 있는 부품을 돌리기 시작했다.
둥. 둥둥. 퉁퉁퉁!
그렇게 몇 차례를 반복하니 탐탐의 음정이 조금씩 높아졌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네, 드럼 조율은.’
텐션 볼트를 조여 일정한 음정을 조율하는데, 드럼 스틱이 닿는 부분, 그러니까 외피에 해당하는 부분의 텐션을 맞추는 과정이다.
얼마나 짱짱하게 텐션이 유지되느냐에 따라 음정이 달라지고, 드러머는 각기 다른 탐탐들을 조율해 3도, 혹은 4도의 음역으로 튜닝한다.
퉁퉁, 투두두두둥! 채애앵!
그러면 이렇게 정갈한 소리의 북소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예압! 난 끝!”
먼저 옥선이 튜닝을 마치고, 다른 사람들도 차례차례 원하는 볼륨을 찾아 세팅을 갖췄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합의에 따라 우리가 연주할 곡은 럭키데이의 Burn it all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잼이라도 하면서 손을 풀고 싶었는데, 그러면 기타가 셋이 되어 버리니 내가 부담스러워 곡을 하나 하기로 했다.
다행히 앨범 타이틀이 아니었는데도 나름 차트에 오래 머물렀던 곡이고, 메이저와 마이너를 막론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 노래였기에 모두 악보를 숙지하고 있어 분석 없이 한 번에 합을 맞춰 볼 수 있었다.
“레디, 레디.”
“가시죠.”
모두들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리고, 곧 신호와 함께 연주가 시작되었다.
짝! 짝! 짝! 짝!
옥선이가 드럼 스틱을 맞부딪혀 신호를 주자, 세컨드 기타인 하은 형이 반주를 개시했다.
지징징징 징지징, 지징징징 징지징징. 지징징징 징지징, 지징징징 징지징징.
디스토션을 먹어 거칠게 찢어지는 기타 소리.
딱 두 마디의 리프가 반복되고, 멜로디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디링, 둠둠둠둠, 두두둠둠, 둠둠둠둠……. 챙! 챙! 챙! 챙! 챙! 챙! 챙! 챙!
‘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합 더럽게 안 맞네, 이거.’
소리가 전혀 섞이지 않는다.
두두둥! 채애앵!
하지만 이미 연주는 시작되었고, 여기서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드럼의 진입 신호에 맞춰 샤우팅을 내질렀다.
“Let’s burn it all down!(다 태워 버리자!)”
타오르는 내 보컬의 뒤로 정신없는 연주가 따라붙는 것이 들린다.
둥둥! 두두둥. 둠. 채애앵! 둥둥! 둠. 둥둥! 두두둥, 둠둠. 채애앵!
이에 맞춰 1절 가사를 내뱉는다.
“The power of the sun in the palm of my hand suddenly vanished…….(손에 거머쥐었던 태양의 힘은 갑자기 사라지고…….)”
하지만 제대로 불이 붙지 않는다.
‘아, 이거 안 좋아.’
Burn it all이라는 노래가 원래 화끈하게, 미친 듯이 달리는 곡이라 반주가 정신없이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정신없음의 개념이 뭔가 달랐다.
‘세컨드는 너무 부드럽고, 멜로디는 리프에만 맞춰서 소리가 죽고, 베이스는 정박 고집의 원 패턴, 드럼은 소리가 너무 커.’
도대체 이게 노래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를 악기들의 정신없는 자기 자랑.
이건 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1절을 다 소화하기도 전에 연주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천천히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다른 악기들에게 잘 섞이도록 소리를 조절해 가사를 뱉었다.
“Let’s burn it all down……. Let’s burn it all down…….(다 태워 버리자……. 다 태워 버리자…….)”
후렴 직전에 다다르도록 각자가 내는 소리가 조화되도록 어떻게든 맞추려 했으나.
지징……. 지지지징……. 디링……. 둥둥, 채애앵! 둠, 둠, 둠, 둠.
여전히 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Let’s burn it all down……. Let’s burn it all down!(다 태워 버리자……. 다 태워 버리자!)”
그리고 대망의 후렴구가 찾아오고 난 볼 수 있었다.
“I burned it all down! I’m gonna shout out! I know there’s no real happiness here around!(내가 다 태워 버렸어! 나는 소리쳤지! 여기엔 진정한 행복이 없단 걸 안다고!)”
둠. 지지잉, 지지징. 디링. 둠. 디리리링. 둠. 둥둥, 채애앵! 둠. 채애애앵! 두두둠. 지지지징……. 둠.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대환장 파티를.
“I burned it all down! I’m gonna shout out! Not me who should be hit by a rock, it’s those clowns!(내가 다 태워 버렸어! 나는 소리쳤지! 돌에 맞아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저 광대들이야!)”
샤우팅과 함께 간결하게 후렴을 끝내고 간주 리프가 돌아왔다.
지징, 지지징, 징징……. 징징, 지지징, 징징…….
그리고 나는 손을 들어 모두의 연주를 멈췄다.
“스톱, 스톱.”
“1절 매너야?”
“아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단언컨대 나는 이런 환경에서 노래를 해 본 적이 없다.
이건 지금까지 밴드를 해 온 내 경력에 대한 모독, 아니, 밴드 음악에 대한 모독이다.
전생의 인디 시절에는 자는 시간까지 줄여 가며 합주 연습을 하며 서로와 합을 맞추었고, 럭키데이는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손발이 착착 맞았다.
그러나 이 멤버들과는 그런 게 아예 없었다.
이 밴드 X 프로젝트라는 것을 살릴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이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이걸 어떻게 한다…….’
나는 이 지옥에서 건진 폐기물 같은 연주를 수습할 방법이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