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19
118화
“솔로 연주만 해 본 사람들도 아니고…….”
럭키데이가 서로의 재능과 재능의 충돌이 반복되며 한없이 높은 시너지를 이룩해 더 큰 폭발력을 보여 주는 밴드였다면, 이 프로젝트 밴드는 정반대의 영역에 있었다.
나는 각각의 연주자들이 가진 단점과 단점이 맞물려 음악이 대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깊은 심연의 연주를 맛볼 수 있었다.
새삼 우리 럭키데이의 멤버들이 얼마나 대단한 녀석들인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세명 형이 내게 말했다.
“어……. 사실 이 중 둘은 솔로가 더 익숙한 사람이기는 하지.”
“네?”
궁금해하는 내게 그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설명했다.
“하은이는 클래식 기타였고, 저기 드러머 친구는 너튜버잖아. 혼자 연주하는 게 습관이 된.”
“아?”
그의 말에 이어 주영 형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사실 저도 제대로 된 합주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 데뷔조가 확정된 것이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라서…….”
“아아…….”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절반 이상.
클래식 연주자였던 하은 형은 부드러운 연음 전개나 비브라토가 손에 익어 거친 반주에 자신을 맞추지 못했다.
솔로 연주와 커버만 해 온 옥선이는 자기 소리를 죽일 줄을 몰랐다.
아이돌 연습생 베이스인 주영 형은 리듬 악기와 멜로디 악기의 사이에서 선을 탈 줄 몰랐다.
“총체적 난국이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을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그때 나를 보며 유성 형이 말했다.
“흐흐. 잘 안 맞지?”
웃음 섞인 그 목소리에 나는 살짝 까칠한 말투로 답했다.
“하……. 안 되겠는데요, 이거.”
이렇게 맛없는 연주를 하면 내 기분도 나빠진다.
욕구는 풀리지 않지, 제대로 된 노래를 하지 못해 자괴감은 들지, 이 멤버로 앨범을 만들라니 막막하기까지 하다.
마음속에서 거절이라는 한 단어가 무럭무럭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그럴 줄 알고 또 준비했지.”
그런데 그때.
“들어와.”
유성 형이 준비한 비장의 한 수가 연습실로 들어왔다.
“하이?”
“엥?”
동글동글 선하게 생긴 인상.
몇 년 전에 비해 꽤나 커진 키.
이 상황이 너무나 즐겁다는 듯 빙글빙글 웃고 있는 눈이 얄미운 친구.
“태호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 온 내 친구 김태호.
그야말로 ‘네가 왜 거기서 나와?’였다.
“왜 나오긴. 계약 이행하러 왔지.”
“계약?”
“응. 신인 밴드 데뷔조에게 팀워크 단련 및 앨범 제작 협력 프로듀서 계약.”
“허?”
내 동창이자, 절친이자, 모교 음악 선생님이신 권인찬 선생님 밑에서 계속해서 일을 배우고 있는 프로듀서, 태호.
“퍼플 포그였나? 원래 그쪽 계약이었는데, 새 프로젝트 쪽으로 돌릴 수도 있다더라고. 그래서 들렀지.”
“아하.”
그는 회사에서 원래 데뷔를 시킬 예정이었던 퍼플 포그의 협력 프로듀서이자 팀워크 트레이너로 고용된 상태였다.
그렇다. 이 프로젝트 밴드의 베이스를 맡은 신주영 형의 그 퍼플 포그다.
퍼플 포그의 데뷔 앨범 제작 협력과 밴드 팀워크 트레이닝을 위해 고용된 그는 원래였다면 신인인 그들이 레코딩 환경과 무대 공연에 적응하는 것을 돕고, 앨범 제작에 한 손을 보탤 예정이었다.
“거기 망했잖아? 한 명만 남아서.”
“루치 님…….”
“앗, 죄송해요.”
신주영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회사와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데뷔조 자체가 완전히 해체되어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래, 그렇지. 그래서 여기로 왔잖아.”
“응?”
“아마 밴드 X 프로젝트? 어쨌든 이번 앨범 제작에서 직전 계약과 동일한 롤을 수행하게 될 거야.”
“허어?”
태호는 빙글빙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협력 프로듀서이자 트레이너 역할을 그대로 이행하는데, 그 대상이 우리라는 말인가?’
아마 내 생각이 맞는 듯했다.
회사는 아마 새 아티스트들의 데뷔에 있어 만전을 기했을 터.
데뷔조로 모아 둔 퍼플 포그는 물론, 외부 영입 아티스트인 퍼그노스 역시 마찬가지다.
“낭비는 안 한다, 그런 의도인가?”
“짬처리 같아?”
“조금 그렇지.”
두 팀의 성공을 위해 준비된 인프라.
퍼플 포그와 퍼그노스 모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지만, 그 인프라 구축에 들인 비용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궁여지책으로 그것을 유지하는 한편, 이미 들인 비용을 보전하려는 것.
회사의 의도가 이제야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그게 그렇게도 되나? 계약서는 그쪽 그룹으로 적었을 거 아니야.”
내가 계약 사항에 대해 의문을 표하자, 태호는 웃으며 답했다.
“그거야 수정하면 그만이고. 원래 데뷔하려던 분도 이쪽으로 넘어올 거고, 너도 있다고 해서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잘 안 풀리나 봐? 흐흐흐.”
“웃지 마.”
상황을 모두 지켜본 듯 실실거리는 것이, 내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이미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허. 트레이너님께 태도가 불량하다!”
“허?”
“그래서야 데뷔할 수 있겠나!”
“얼씨구?”
어느새 트레이너 역할에 심취한 듯, 군기를 잡는 행세하는 놈을 가리키며 유성 형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유성 형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태호가 준비한 트레이닝 메뉴를 한번 시식해 보고 결정하는 게 어떨까?”
“트레이닝 메뉴요?”
“새 출발을 하는 밴드를 위한 팀워크 트레이닝이 준비되어 있지!”
“흠…….”
유성 형은 태호가 퍼플 포그의 데뷔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트레이닝을 우리가 한번 받아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팀워크 트레이닝이라…….’
생각해 보면 나쁠 것 없는 이야기였다.
각자 개성을 자랑하느라 무너지는 합 때문에 의욕이 쭉쭉 떨어지는 지금 상황에, 팀워크 증진을 위한 트레이닝이 있다면 그나마 이 프로젝트를 살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한번 해 보기나 하죠, 뭐.”
“탁월한 선택.”
유성 형의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태호 녀석이 엄지를 척 들어 올리더니 곧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자, 금방 대화에서 다들 알아채셨겠지만, 저는 여러분의 팀워크 트레이너이자 앨범 협력 프로듀서 김태호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팀워크 트레이닝을 시작할 건데…….”
그는 천천히 앞으로 진행할 팀워크 트레이닝에 대해 설명했다.
금방처럼 앞뒤 맞추지 않은 합주는 잠깐 스톱.
천천히 서로의 호흡을 읽기 위한 가벼운 연주를 시작한다.
또 깔린 MR 없이 합주를 진행할 것, 메트로놈이나 다른 박자 보조 없이 연주할 것, 서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 눈치를 잘 살필 것 등. 여러 주문이 있었다.
잠깐의 설명 이후 태호는 본격적인 합주를 시작하고자 시동을 걸었다.
“우선, 연주의 스타트는 멜로디 기타가 끊습니다.”
“엥?”
“멜로디 기타의 연주를 시작으로 리듬 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보컬이 차곡차곡 소리를 쌓는 식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다들 이해되셨나요?”
“이해는 됐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왜 멜로디부터?’
리드 기타의 연주는 곡 전체의 멜로디 라인을 유효하게 들려주는 역할. 리듬 기타의 배킹, 베이스의 근음과 리듬, 드럼의 박자 리딩에 맞춰 시작되는 게 일반적이다.
박자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무음 위에 멜로디부터 얹으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도인지 몰라 다소 의문이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첫 번째 연주는 일단 보컬에 들어가기 전에 끊겠습니다.”
“어……. 박자 없이 시작하나요?”
“네. 체내의 메트로놈을 믿으십시오.”
“허허. 뭐, 해 봅시다.”
세명 형이 그저 허허 웃으며 존대로 태호에게 답하고는 연주에 돌입했다.
디리링, 디리리링, 디리링 디링, 디리리링!
고음역에서 째지듯 이어지는 멜로디 라인.
메트로놈이나 드럼의 신호 같은 것이 없음에도 의외로 박자가 잘 맞아떨어진다.
순간 태호가 외친다.
“다음! 리듬 기타!”
지징징징 징지징, 지징징징 징지징징. 지징징징 징지징, 지징징징 징지징징.
다소 소리가 죽었지만 역시 거친 소리로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배킹.
더 늦게 들어왔지만 확실하게 멜로디 기타의 뒤에 서서 지지하는 느낌으로 연주가 이어진다.
‘흠……. 아까보단 부드럽게 섞이나?’
아니, 그게 아니다.
하은 형의 연주가 워낙 부드럽기도 하고, 세명 형과 둘이 같은 밴드에서 호흡을 오래 맞춰 봤기에 네 명이 동시에 시작해 부딪치던 것보다는 조금 낫게 들리는 것뿐이다.
“핫, 둘, 셋, 넷, 핫, 둘, 다음! 베이스!”
신이 나서 입으로 박자를 맞춰 주던 태호의 신호와 함께 주영 형의 베이스 연주가 살며시 진입했다.
부우웅! 둠! 둠! 둠! 둠! 둠! 둠! 둠!
그리고 나는 다시 아까와는 다른 소리에 깜짝 놀랐다.
‘어라?’
여전히 딱딱하긴 하지만, 적어도 아까처럼 다른 사람의 소리를 비집고 들어가며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연주는 아니다.
적당히 먹먹하게 소리가 죽어 계단처럼 밟고 올라가라는 듯 리듬을 맞춰 주는, 제 역할을 다하는 베이스 소리였다.
‘어떻게? 왜?’
분명히 고집쟁이 황소들이 우마차를 끌고 서로 좌우로 갈라져 이끌려던 연주가 몇 분 전까지 펼쳐졌는데, 갑자기 조금 밋밋하게나마 합이 맞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드러머의 진입에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낫, 둘, 셋, 넷! 드럼!”
둥둥! 두두둥, 채애앵! 둥둥! 둥둥! 두두두둥, 채애앵!
‘I burned it all down! I’m gonna shout out! I know there’s no real happiness here around!(내가 다 태워 버렸어! 나는 소리쳤지! 여기엔 진정한 행복이 없단 걸 안다고!)’
이 정도 분위기만 나와 준다면, 까짓것 못 할 것도 없다.
시원하게 섞여 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좋아, 좋아! 드럼 조금만 죽여서!”
두둥, 두두두둥, 두두두두두두두두…….
“좋다!”
분명 태호가 무슨 마법을 부리긴 부린 듯했다.
* * *
“그래서, 궁금하겠지? 응?”
그렇게 짧지만 성공적인 합주를 성공한 직후 찾아온 휴식 시간.
“신났다, 아주?”
“신나지. 승승장구, 천재 뮤지션 김루치아노도 못하던 걸 내가 해냈는데!”
“좋댄다.”
“좋아, 아주 좋아.”
나는 그 팀워크 트레이닝이라는 것의 정체를 묻기 위해 태호에게 다가갔고, 녀석은 이미 내가 물어보러 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며 웃으며 놀려 댔다.
“그래서 뭔데. 뭘 했기에 저렇게 호흡이 맞아?”
“아, 이거?”
그는 내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고는 답했다.
“사기야, 사기.”
“엉?”
순간 그 답변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멍청한 소리를 흘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태호가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까 처음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뭐 이것저것 설명했잖아?”
“응. 멜로디 기타부터 간다, 차곡차곡 소리를 쌓는다, 서로의 호흡이 맞도록 뭐 어쩌고.”
“응, 그거. 들어 보면 뭔가 정해진 공식대로 내가 너희 멤버들의 행동을 유도해서 정확한 틀 안에 끼워 넣고 합을 맞게 한 것 같잖아?”
“그렇지.”
“다 눈속임이다, 이거야. 들어 봐.”
그는 천천히 이 팀워크 트레이닝이라는 퍼포먼스의 구조를 내게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