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2
11화
“이름이……. 그래, 루치아노!”
“루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루치! 담당 교사는 누굴 배정받길 원한다고 썼지?”
“공란으로 뒀는데요…….”
“노우!”
나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그러다가 랜덤으로 배정 떨궜는데 밴드 합주에는 관심도 없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려는, 물론 그런 선생님들은 우리 학교 없겠지만, 어쨌든 그런 분이 담당이 되면 너희 앞길에도…….”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던 옆 반 담임 선생님에게 붙잡혀, 몇 분이나 자신이 합주 수업의 담당 교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맡든 상관없는데…….’
내 마음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문제가 한없이 늘어지는 것은 다름 아닌 눈앞의 인물 김하선 선생님 탓이었다.
나는 딱히 거절의 의사를 비친 적도 없는데, 자기 혼자 불이 붙어서는 연신 내 어깨를 잡아 짤짤 흔드는 것이 빈 주머니라도 뒤져 있는 동전 없는 동전 꺼내 드려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체계적인 커리큘럼은 만들어 주지 못할망정 그대로 방치하는 꼴은…….”
“잠깐, 잠깐만요.”
이쯤 들어 줬으면 끊어도 되겠다 싶어 나는 어깨에 오른 선생님의 두 손을 가볍게 치우고 말을 꺼냈다.
“선생님이 합주 수업을 맡으시려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이렇게까지 붙들고 늘어지니 궁금할 만도 했다.
이분은 왜 이렇게 합주 수업 담당에 집착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나를 굉장히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내 손으로 킹, 레드 제펄린, 섹시 피스톨즈, 로제스 앤 건즈를 가르치고 싶거든!”
김하선 선생님은 미친 사람이었다.
* * *
“그래서 우리 담임 쌤 이름을 썼다는 거임?”
“응. 개멋있잖아.”
“님도 좀 또라이인 듯.”
뭐, 인정하는 바다.
고작 그 정신 나간 소리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주체하지 못해 냉큼 빈칸을 선생님의 이름으로 채워 버린 나도 얼빠진 놈이 맞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제정신이면 클래식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집에서 밴드 한다고 고집부리지도 않지.”
뭔가에 제대로 미친 사람들이야말로 최고의 성취를 손에 거머쥐게 되는 법.
김하선 선생님의 그 열정은 그녀의 말마따나 최소한 시간이나 때우려는 허접한 수업 대신 제대로 된 합주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이다.
할 의욕도 없는 사람보다는 다소 나사가 빠져 있어도 의지로 가득 찬 사람이 훨씬 낫다.
“그리고 혹시나 밴드 구성에 도움을 주실 수도 있고.”
거기다가 킹, 로제스 앤 건즈 등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밴드들을 언급하며 직접 길러 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으로 보면 합주 멤버 구성에도 꽤나 신경을 써 주시지 않을까 싶었다.
당장 기타와 보컬뿐인 나와 재우의 밴드에 새 동료를 받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됐으니까 합주 고?”
“그래. 하자, 해.”
입이 오리주둥이처럼 잔뜩 튀어나온 재우의 보챔을 이기지 못해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얘는 뭐 앞으로 한 학기 진행할 수업 얘기에 이렇게 관심이 없어?’
관심이라고는 기타 두드리는 것밖에 없다는 듯 다른 주제에는 전혀 흥미를 보이질 않으니 이건 뭐 벽에다 얘기하는 기분.
하여튼 특이한 녀석이다.
“카메라 제대로 설치한 거 맞지?”
“이응. 너 없을 때 찍어서 돌려 봄.”
“또 재촬영한다고 하지 말고.”
“그럴 일 없음.”
“오케이. 가 보자.”
지난번 재우와 함께 촬영했던 stair to heaven 영상은 반응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알 수 없는 너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기에 조회 수는 기존에 올리던 레이어즈 채널의 기타 연주 영상들과 비등에서 조금 높게 나왔지만, 조회 수 대비 좋아요 비율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라 버렸다고.
채널 성장에 있어 가장 유의미한 지표는 역시 조회 수와 구독자겠지만, 댓글이나 좋아요처럼 직접적인 참여와 의견 표현이 늘어난 것은 채널의 퀄리티가 더욱 성장했다는 의미.
그것만으로도 재우의 채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재석 형은 매우 감격한 듯한 모습이었다.
‘능력자한테 좋은 인상 심어 두면 나도 좋지.’
채널 운영부터 편집까지 모든 것을 맡아 거뜬하게 처리하고 있는 재석 형은 틀림없이 인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다.
같은 밴드에서 동고동락할 재우의 사촌 형이기도 하니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오케이. 그러면 인트로부터 가볍게 맞춰 보…….”
범범범버! 뻠범범버!
“응?”
“뭐임?”
“잠깐만. 전화 좀.”
어쩐 일로 이 카메라 기능 있는 알람 시계가 베토벤의 운명을 부르고 있다.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하니 역시나 태호.
‘하긴. 얘 말고 연락할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나는 이 친구가 왜 전화를 걸었는지 궁금해하며 간곡한 수신 요청을 받았다.
“여보세…….”
“미친놈아! 어디야!”
“아니 왜 갑자기 시비…….”
나는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시비를 거는 태호에게 뭐라 말하려 했지만, 이번은 내 잘못이 맞았다.
“오늘 멘토링이잖아! 신청서만 내고 바로 온다며!”
“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캘린더 앱에 뭔가 쓰여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러면 말을 해 줬어야지!”
나는 괜히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려 준 태호에게 성질을 부렸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아까 분명 수업 다 끝나고 신청서 작성 마무리해서 제출한다고 태호와 대화까지 했는데, 그때 알려 줬으면 참 좋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친구의 반응은 놀라웠다.
“말해 줬잖아! 대답도 했잖아! 고개 까딱까딱 끄덕이면서!”
“엥? 내가?”
“와, 이거 진짜……. 와…….”
그는 마치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지만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나 참. 그런 걸 막 거짓말로 우기고 그러냐. 코 길어진다.”
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렷다!
“이거 미친놈인가, 진짜……. 아, 닥치고 빨리 오기나 해!”
아니면 말고.
“아, 알았어, 알았다고.”
제1계 적반하장의 계책은 먹히지 않았으니, 제2계 굽실굽실의 계책을 펼쳐 간신히 통화를 종료하고는 나는 재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야, 합주는 내일 해야겠다.”
“아, 뭐임. 계속 기다렸는데.”
갑작스러운 말에 재우가 징징거리기를 시작했다.
합주 파투는 내가 낸 것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한참이나 달래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약속한 합주를 취소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자, 그는 시끄럽게 구는 축음기에서 무거운 짐 덩이로 변해 버렸다.
“그럼 나도 감.”
“집에?”
“니은. 멘토링.”
“아니, 거길 왜…….”
재우는 내가 갈 곳이 동네 음악쟁이들이 모여 서로 실력을 보여 주고 코칭도 받고 조언도 수집하는 곳이라고 인식한 직후, 따라가겠다며 달라붙었다.
“나도 멘토링.”
“네가 멘토링은 무슨 멘토링이야! 어지간한 프로만큼 치는 놈이!”
“너도 가잖음. 고고.”
어느새 녀석은 자기 짐을 모두 챙겨 들고 일어서서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하…….”
이걸 떨어뜨려 둘 수가 없을 것 같아, 나는 태호에게 문자 한 통을 보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 야, 짐 덩어리 하나 더 참여 가능?
태호 : ?
태호 : ㄱㄷ
태호 : ㅇㅇ 된대
나 : ㅇㅋ 곧 감
태호 : 곶감 맛있지.
나 : ㅉ..
“가자.”
“이응.”
나는 불청객과 함께 하늘 같은 선배님들이 계신 연습실로 향했다.
* * *
“루치 어서 오고.”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나 더 있어요. 원 플 원!”
“신입도 어서 오고.”
꾸벅.
“일단 저기 앉아 있어. 안에서 하던 게 있어서 좀 걸리겠다. 오늘은 너희 둘만 보는 날이니 쉬엄쉬엄하자고.”
“넵.”
꾸벅.
나와 재우는 태호가 먼저 와 있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나는 재우가 보여 주는 의외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야, 왜 이렇게 수줍어해? 나한테는 쨍알쨍알 말도 잘하잖아.”
“처음 봤잖음.”
“아니, 너튜브 채널도 운영하는 놈이?”
“쉽지 않음.”
처음 안 사실.
재우는 의외로 낯선 이에게 소극적이다.
‘나한테는 처음부터 막고라 걸었으면서…….’
어쩌면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선우 형이 성인이라 더 어색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동갑이니까.
“왔냐. 쟤가 걔야?”
“엉. 1반 형재우. 여기는 나랑 같은 반 김태호.”
“하이.”
“하이.”
그리고 둘은 아무 말도 없었다.
“태호는 왜 어색해하는데?”
“쉽지 않음.”
“대체 뭐가…….”
이상한 일이다.
‘나이 문제가 아닌가?’
마찬가지로 동갑인 태호에게도 거리를 두는 것을 보면 나이 탓에 생기는 거리감 같은 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럼 왜 나한테는 처음부터 달라붙은 것일까?
이 조그만 녀석이 나한테만 친근하게 구는 꼴이 이해가 되지 않던 찰나, 누군가가 스코프 연습실로 들어왔고 재우가 벌떡 일어나 쪼르르 달려갔다.
“하이.”
“……안녕.”
앞머리가 눈을 덮은 여학생.
교복을 보아하니 우리 학교다.
‘뭐야. 아주 그런 건 아니었잖아?’
누구에게나 소극적이고 말을 아끼는 것인가 했더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러면 더 신경 쓰이는데…….’
나는 쓸데없는 의문에 종종 깊게 빠지는 버릇이 있다.
이번 경우에는 저 녀석이 친근감을 표출하는 조건 정도가 되겠다.
“아, 수현이 왔구나? 네 오빠 보러 왔어?”
“네…….”
“수영이 잠깐 나갔는데. 기다릴래?”
“네…….”
그때 방 한쪽에서 뭔가 뚝딱거리며 만지고 있던 선우 형이 나와서 금방 들어온 여학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영이 형 동생인가? 안 닮았네.’
수영이 형은 살짝 날라리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부터 피어싱에 문신까지.
태닝만 한다면 딱…….
‘아니지, 아니야. 응. 그런 생각 금지 금지.’
반면, 이 수현이라는 친구는 너무 조용해 보인다.
앞머리가 눈을 덮어 뭔가 음침해 보이기까지 하고, 등에 짊어진 기타 케이스만 빼면 도서관에 박혀 책만 보는 학생이 아닐까 싶은 타입이다.
굳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함께 자란 남매가 이렇게까지 다른 분위기이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속으로 비교하게 되었다.
‘하긴. 나랑 호세도 많이 다른 편이니까.’
나는 열심히 전문 성악가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내 동생과 성악이 최고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무시한 채 락 밴드를 꾸리려는 내 모습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님 합주 수업 열린다는 거 들었음?”
“응…….”
“할 거?”
“모르겠어…….”
“신청하셈. 기타랑 보컬만 잔뜩 들어오면 합주 힘듦.”
“응…….”
재우가 어느새 수현이라는 친구 옆에 붙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니, 저걸 대화라고 볼 수 있나?’
정확히는 재우가 떠들고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아무튼 같은 반인 것인지, 전에 안면이 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과 제대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이니 조금 안심이었다.
조금은 걱정이 됐는데 그래도 멀쩡히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니.
“끄어어어……. 후아! 오케이. 끝. 준비들 됐나?”
“넵!”
“네.”
잠시 후, 무언가를 하고 있던 선우 형이 허리를 쭉 펴며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하던 일이 마무리된 모양이었다.
“좋아. 시작해 보자고. 누구부터 할래?”
멘토링이 시작되었고, 준비했던 노래를 선보일 시간이 되었다.
번쩍!
“응?”
그때 재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한 손에는 시뻘건 기타를 쥔 채, 다른 손을 하늘 높이.
그것을 보고 선우 형이 활짝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오, 루치 친구. 아주 좋아. 이름이 뭐라고 했지?”
웅얼웅얼.
“응? 뭐라고?”
웅얼웅얼.
“야, 금방까지 잘만 말해 놓고 갑자기 왜 그래? 크게 좀 말해.”
“쉽지 않음.”
“어휴…….”
첫 타자는 부끄러운 내 동료 기타리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