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20
119화
먼저 알아서 박자를 맞춰라, 진입하고 호흡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라 따위의 장황한 브리핑들은 눈속임이나 마찬가지.
태호는 그 모든 말들이 다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박자는 알아서 맞추라는 듯이 말하긴 했지만, 내가 톡톡톡 발 굴러 주고, 입으로 하나 둘 셋 넷 숫자까지 다 세 줬잖아? 그러니까 내가 주는 박자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 박자 때문에 연주가 어긋날 일은 또 없어.”
“어라?”
생각해 보니 또 그랬다.
“그러고 보니…….”
한 사람 한 사람 곡에 진입할 때마다 발도 구르고, 손뼉도 치고, 입으로 숫자를 세어 박자를 맞춰 주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와서 보면 모든 연주자들이 한 박자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라는 듯 신경을 흩트려 놓고, 자신이 준 박자 위에서만 놀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연주 순서. 이거는 또 밖에서 계산을 세우고 들어온 건데…….”
또한 그것과는 달리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오히려 치밀한 계산이 필요했다는 연주 진입 순서.
일반적인 잼이나 즉흥 연주와는 정반대로 멜로디 기타부터 시작되는 이 연주 순서는 밖에서 우리의 연주를 듣고 문제점을 파악한 결과물이었다.
“일단 리드 기타, 이세명 기타리스트는 딱히 모난 곳 없이 괜찮은 연주자야. 칼같이 정확한 노트, 딱 적당한 볼륨. 그런데 문제는 백하은 기타리스트지.”
“하은 형?”
“응. 꽤 잘하는 리드 기타가 다소 소극적인 리듬 기타에 자기 사운드를 맞춰 주려고 하더라고.”
“확실히.”
밖에서 듣고 맞춘 태호와 마찬가지로 나도 내심 그 둘의 연주에서 생기는 괴리감을 발견했었다.
“딴에는 배려라면 배려인데, 밴드 전체로 보면 밸런스가 확 꺾여 버려. 그러면 안 돼.”
“그렇지…….”
태호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리듬도 무엇도 없는 무음의 공간에 멜로디 기타를 앞세워 먼저 연주를 하게 함으로, 세명 형이 딱 처음 연주의 스타트를 끊었을 때의 존재감을 늘이지도 줄이지도 못하게 해 유지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저기 잘생긴 베이스 양반.”
“주영 형.”
“응. 저분은 너무 딱딱해. 아마 합주 경험이 많이 없을 거야.”
“아. 데뷔조 확정이 조금 늦어서 다 같이 하는 합주에는 익숙하지 않다고 하시긴 했어.”
“뭐, 팀에는 나중에 합류했을 수도 있고, 합주보다는 다른 데에 집중했을 수도 있고. 아무튼 남과 연주 호흡을 일치시키는 능력이 없더라고.”
“흐음…….”
듣고 보니 태호가 들려주는 추측이 꽤 그럴싸했다.
‘겉도는 느낌? 아니, 그보다는 맞춰 가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긴 했지.’
다소 교과서적인 정박 연주와, 섞여 들어가기보다는 그냥저냥 평행선을 달리며 함께 달리는 듯한 부자연스러움.
합주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 연주자의 모습이기는 했다.
“그래서 아예 정해진 박자 안에서 합이 좋게 나오는 두 사람 뒤에 오게 했지.”
“따라가면서 섞이라고?”
“그렇지. 다만 베이스한테 어울리는 포지션은 아니야. 계속 그렇게 갈 수는 없겠지.”
“당연히.”
잘 맞춰져 있는 합의 뒤에 따라가게 함으로 과도한 교과서 연주로 합을 망치지 않게 하는 한편, 적어도 혼자 따로 노는 경우는 없도록 만드는 것이 태호의 의도였다.
그리고 주영 형이 최소한 연주 안에 섞여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성공함으로써 그 의도는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그럼 옥선이는?”
“그분은 누가 봐도 알겠지, 뭐.”
“너무 시끄럽지.”
“그래. 드럼이 앞서 나가려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아예 판을 흔들어 버려.”
옥선이는 주영 형 이상으로 마이페이스가 강한 연주자였다.
드럼을 부순다는 입버릇처럼 마구 때려 대며 자기 과시를 하는데, 이게 어느 선까지는 화려한 연주라고 할 수 있어도, 일정 이상 텐션이 올라가면 합주의 합을 맞추지 못함은 물론, 완전히 판을 엎는 모양이 나와 버린다.
“근데 그러면 제일 마지막에 섞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아예 다 덮어 버릴 수도 있잖아.”
“그렇지.”
태호는 내 의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차라리 드럼이 그렇게 신나기 전에 다른 멤버들의 흥을 미친 듯이 돋워 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거든.”
“아하.”
답은 간단했다.
드럼이 과도하게 신나서 남들의 소리를 다 묻어 버릴 듯 제 존재감을 키우기 전에, 다른 연주자들의 볼륨과 텐션을 미리 높여 드럼이 끼어들어 까불 여지를 없애는 것.
“그리고 의외로 잘 먹혔지.”
결국 옥선이는 태호가 만들어 둔 길 안에서 정해진 대로만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야……. 너…….”
“흐흐흐. 어때?”
태호는 내게 웃으며 물었다.
“괜찮았지?”
자신이 의도한 대로 전혀 맞지 않던 합을 강제로 봉합해 버린 후, 그 결과물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것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근데 레코딩, 공연, 투어, 합주 연습 등등. 모든 연주 시간에 네가 우리랑 같이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
타당한 의문이다.
“앞으로 함께 연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때마다 지금처럼 순서 맞추고 박자 맞춰서 조율해 가며 연주할 수는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말이지.”
“알아.”
그러자 태호는 자신도 알고 있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서 트레이닝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거지.”
“흠…….”
“한 번으로 끝나는 트레이닝 봤냐? 적어도 두드리고 구기고 펴면서 각은 잡아야 할 것 아니야.”
맞는 말이다.
단 한 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을 테니, 꽤 공을 들여 연습을 이어 나가야만 이런 속임수 없이도 멤버들 간의 합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한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역할이 중요하지.”
“내 역할?”
내 역할이라니.
트레이너는 자신이면서 내게 책임을 지우려는 그 연유가 궁금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멤버들의 문제점은 앞으로 계속 나올 거야. 아마 오늘 연습에서 파악한 것보다 더 자세하고, 더 많은 문제점들이. 그걸 네가 해결해야겠지.”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해? 나 살기도 바쁜데 서로 프로들끼리 모여서 합주하다가 단점, 문제점 파악해서 고치라 마라 하라고?”
“그래.”
“왜?”
되묻는 내게 그는 아까의 설명에 살을 붙여 나를 이해시켰다.
“연주 진입 순서를 뒤집고 합주에서 널 뺀 이유.”
“뭐?”
“다섯 사람 중에서 다른 연주자를 배려해서 밸런스를 맞추려 노력한 사람이 너뿐이었거든.”
조금은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지만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추가적인 설명을 기다렸다.
곧 태호의 입이 열렸다.
“리듬 기타의 볼륨이 줄어들 때, 베이스가 유동적으로 리듬과 멜로디의 간극을 조율하지 않을 때, 드럼이 과하게 신나서 다른 악기들을 누르려고 할 때. 너는 네 목소리를 키우고 줄이거나, 박자를 늘여서 최대한 밸런스를 맞추려고 했지.”
확실히 내가 그러기는 했지만, 남의 입으로 듣자니 조금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한 게 어떻게 내가 저들의 문제를 고쳐 줘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건 굉장히 밴드의 리더다운 일이었어.”
“어……. 뭐?”
“배려지. 리더십이고.”
조금은 어이없는 말이다.
세상 어느 보컬이 지금 부르고 있는 노래가 망가지도록 그대로 둔단 말인가?
난 그저 오랜만에 하는 라이브가 수습도 못 할 정도로 무너지길 원치 않았을 뿐, 뭔가 대단한 책임감 같은 걸 가졌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태호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저 사람들을 한 밴드에 모아서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너야. 트레이너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야, 야, 야. 애초에 지금 당장 프로젝트 밴드를 할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에…….”
“너 아니면 저 사람들 좀 힘들걸?”
“뭐?”
태호는 슬쩍 뒤에 선 이들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아마 자기랑 합 맞는 팀메이트 찾기 어려울 거야. 저 사람들. 각기 색이 뚜렷하기도 하고, 회사와 계약으로 묶여 있는 판에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부딪치며 찾을 수도 없어.”
“그게 나랑…….”
“그런데 또 재능만큼은 확실해. 너도 알잖아? 단점들이 부각되는 연주를 보여 주긴 했지만, 확실히 반짝이는 뭔가가 있다고.”
맞는 말이었다.
모두들 각자의 개성이 너무 확실해 함께 어울릴 팀메이트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말도, 다소 삐걱거리고 있지만 분명 훌륭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책임감과 욕심이 동시에 자극되는, 맞는 말이었다.
“이대로 놓칠 거야? 저 사람들이, 아니, 너를 포함한 여기 모인 연주자들이 제대로 뭉치면 어떤 음악을 만들어 낼지 궁금하지 않아?”
“참나…….”
꼬시는 것이다.
분명 내 신경을 긁기도 하고, 책임감을 자극하기도 하고, 욕심에 부채질을 하기도 하면서 내가 이 밴드를 하도록 꼬시고 있는 것이다.
친한 친구라는 놈들은 이래서 문제다.
‘내가 어떤 말에 반응할지 너무 잘 알아.’
어떻게 해야 날 흔들 수 있을지, 어떤 말에 자극을 받을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또 이게 자신만의 이득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내 흥미를 제대로 돋우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기서 프로젝트 그룹이 성사되지 않으면 JH에 묶인 채로 새 팀을 구해야 할 사람이 셋.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긴 하지. 원래 함께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통수를 후리고 나간 상태니…….’
계획하던 일들이 어그러져 갈 곳을 잃은 몇몇에 대한 안쓰러움.
동시에 재능은 있는 사람들이 빛을 발하기도 전에 상황에 휩쓸려 낭패를 보기 직전인 상황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그들이 보여 줄 수 있는,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했을 때 만들어 낼 수 있는 결과물들에 대한 기대감.
오만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잠시 고민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말했다.
“나랑 같이하던 애들. 재우, 수현이, 라희. 다 천재들인 거 알지? 끝내주는 음악들을 방귀 뀌는 것보다 쉽게 뽑아내던.”
“저분들도 네 마음에 쏙 들걸? 뭐……. 스타일이야 맞춰 가야겠지만.”
“하……. 제대로 도와야 한다.”
“딜?”
“딜.”
그리고 유성 형에게 다가가, 나는 말했다.
“일단 저는 할게요. 프로젝트 그룹.”
본격적으로 임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든든한 지원군도 있겠다, 함께할 사람들도 나름 마음에 들겠다.
처음에는 강제로 얻게 된 공백기에 시간이나 죽일 수 있을까 생각했던 프로젝트 밴드 활동에 관심이 생겨 버렸다.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 보죠.”
나는 밴드 X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하은이랑 저도 들어가고 싶어요. 사실 선택지가 없기도 하지만, 우리가 언제라고 루치 같은 애들이랑 같은 밴드에서 연주할 기회가 있겠어요?”
“저도 하겠습니다. 데뷔가 무산되고 다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검증된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너튜브는 조금 쉬죠, 뭐!”
“앗……. 읏……. 잘…….”
“예? 잘 안 들립니다!”
“힉!”
저 개성 넘치는 사람들을 제대로 된 한 팀으로 묶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케이! 그럼 쉬는 시간 동안 계약서부터 쓸까?”
“넵!”
“네.”
낙장불입.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 * *
“이거 괜히 했나.”
그리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날.
나는 깊게 후회하고 있었다.
“하하하. 힘내, 힘.”
“어떻게 이렇게 안 맞지?”
처음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태호의 지도를 따라 트레이닝을 시작할 때까지는 괜찮았다.
점점 괜찮아지는 합, 꾸역꾸역 맞아 들어가는 박자, 의외로 겹치는 취향 덕에 빠르게 좁혀지는 앨범의 테마.
그러나 모든 일이 막힘없이 잘 풀리고 있다면, 분명 내가 문제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던가?
“왜……. 왜……. 대체 왜…….”
태호가 수작을 부려 억지로 호흡을 맞추게 만들 때는 한 번씩 괜찮아졌다가, 본격적으로 반복 연습에 들어가면 꼭 어긋남이 생긴다.
마치 한 번도 맞춰 본 적 없는 팀처럼, 언밸런스와 삐걱거림의 극치를 달리는 사운드.
“합이 안 맞는 거야…….”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가수 경력 최악의 경험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