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21
120화
우리는 회사 연습실에 모여 자주 합주도 하고, 앨범 트랙 리스트를 꾸리기 위한 준비도 했다.
“와……. 너 진짜 작곡 잘하는구나?”
“밴드 활동 쉬는 동안에 작곡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니까요. 애초에 럭키데이 앨범도 절반 이상을 저랑 수현이가 만든 노래들로 채웠고…….”
“역시, 전업 작곡가는 뭐가 달라도 달라.”
“아뇨. 가수인데요.”
작곡을 해 두었던 노래들을 잔뜩 꺼내어 모두와 감상하고, 그중 사용하고 싶은 노래들을 골랐다.
쟁여 둔 노래라고 하기에는 꽤 괜찮은 곡들이 몇몇 있어서 멤버들이 감탄하고는 했다.
“킹콩이라는 트랙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오! 나도 그 노래는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저……. 괜…….”
“너도? 나도.”
은근히 취향이 겹치는 구석이 있어서 건져 올릴 것들을 빠르게 고를 수도 있었고, 제작 준비는 꽤나 순조로웠다.
앨범에 수록할 트랙 리스트를 정리하고, 편곡에 들어가고…….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여전히 밸런스가 안 잡혀. 완벽까지는 바라지도 않아도, 최소한 듣기에 무리는 없어야 하는데…….’
이전에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서로의 재능이 서로를 불태우며 더욱 큰불을 만들어 가던 럭키데이와 달리, 우리의 프로젝트 그룹 ‘삵’은 서로의 단점과 단점이 맞물리며 더 큰 대환장 파티를 일으키는 기묘한 시너지가 있었다.
‘정말 급한 건 트랙 리스트 확보가 아니라 이 밸런스 해결인 것 같다.’
우선 앨범 제작에 신경을 기울이기보다는 밴드의 사운드부터 건드려야 할 것 같았다.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적어도 수준 이하의 밴드라는 소리는 안 들을 듯싶었다.
“잠깐만 쉬는 시간 좀 가졌다가 다시 모이죠.”
“오케이. 한 30분?”
“넵.”
나는 잠깐 멤버들과 떨어져 그간 태호와 함께 작성했던 노트를 꺼내 들었다.
긴 분석과 관찰의 결과물.
하지만 멤버들에게 직접 보여 주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 자료.
‘지금까지 파악된 문제점들이…….’
멤버들 개개인의 문제점과 단점, 지적 사항들이 담긴 노트였다.
‘따로 한 명씩 만나면서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직접 나서서 각각 개인에게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고쳐 보고자, 멤버들이 어떤 단점과 약점,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태호와 함께 분석해 두었다.
예를 들어 세명 형은 크게 단점이 없고 칼같이 정확한 연주가 특기이지만, 가끔 하은 형에게 과한 배려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만 그런 문제는 문제도 아니었다.
‘하은 형. 과도한 소심증. 매우 부드러운 연주 성향. 편곡 상의 시 아무런 의견 없음. 톤 맞추기 힘듦. 주영 형.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어느 정도 할 줄 앎. 코러스 가능. 과하게 아카데믹한 연주로 밸런스 붕괴의 주범. 옥선. 관종 성향 심함. 볼륨 조절 미숙. 하…….’
개개인의 능력치는 볼품없다고 할 수 없지만, 뭉쳐 놓고 보니 삵이다.
어떻게 가닥이 잡히려고만 하면 난폭해지고 서로 물고 뜯는 연주가 딱 삵이다.
그래서 우리 밴드의 이름을 삵으로 정하는 것에 찬성했다.
‘토속적이고 정감도 가고 나름 힙한 이름이지. 밴드 속성에도 이렇게 잘 맞고 말이야. 어휴.’
앞으로 영원히 사람 손 안 탄 야생 삵처럼 징그럽게도 말 안 듣는 합으로 내 정신을 갉아먹을지, 아니면 와일드하고 도도한 멋을 풍기는 멋진 밴드가 될지는 봐야 알 테지만.
아무튼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밴드의 이름이 아닌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가 되겠다.
‘기록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겠지?’
나는 노트에 기록한 멤버들의 단점과 약점들을 해결, 보완하는 것에서 밴드의 정상화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목표는 바로.
“하은 님. 혹시 여기 있던 악보…….”
“히이익!”
“……못 보셨습니까?”
“모……. 못…….”
우리의 소심쟁이 기타리스트, 하은 형이다.
***
“…….”
“…….”
“…….”
“…….”
큰일이다.
“저……. 형?”
“힉! 으……. 응? 응…….”
“하아…….”
이야기가 진행되질 않는다.
“혹시 불편하시면 다음에…….”
“아…… 아니……. 괜……. 찮…….”
아무래도 내가 잘못 판단한 것 같다.
‘이거 내가 해결할 게 아니라 정신과나 상담소에 모시고 갔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과도하게 소심해서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못하는 백하은.
그것은 비단 연주에서의 작은 존재감뿐만 아니라, 행사 전후의 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개진하지 못한다든지, 각자의 파트를 편곡할 때 선호하는 뉘앙스를 전한다든지 할 때도 불편한 일이다.
그냥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맞춤 편곡이 불가능하면 밴드의 색을 드러낼 수가 없어.’
자기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어떤 소리를 내는지, 어떤 주법을 자주 사용하는지쯤은 눈썰미로 맞출 수 있겠지만, 어떤 음악을 선호하는지, 어떤 패턴 안에서 연주해야 마음이 편한지는 오직 자기 자신만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은 형이 자기 이야기를 속 시원히 해 주지 않고 있음은, 여러 사람이 수 분 동안 하나로 묶이는 이 노래라는 것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못하는 사람은 가르치면 되는 거고, 안 하는 사람은 괴롭혀서 시키면 되는 거야. 근데 하은이 형은 아예 얘기가 진행되질 않아.’
다만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말이 통하고, 정상적인 상호 작용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
지금 당장 대화를 할 수가 없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는지를 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큰일이다.’
프로젝트 밴드 삵에 산재한 문제들 중 가장 급한 것이 하은 형의 이 소심한 태도라고 생각했기에 첫 번째 과제로 삼은 것인데, 이렇게까지 안 풀릴 줄은 몰랐다.
“형 혹시 다른 의견은…….”
“아…….”
“…….”
“…….”
“없으신 건가요?”
끄덕.
“하……. 일단 알겠습니다. 잠시 쉬다가 연습 재개할게요. 괜찮으시죠?”
끄덕끄덕.
결국 대화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고, 나는 뒤로 물러나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세명 형에게 듣기로는 무대에 서면 그래도 제 역할은 할 줄 아는 사람이고, 내가 듣기에도 연주 실력 자체는 괜찮은 편인데, 저 성격이 문제다.
그 성격을 고치려고 해도 성격 탓에 그게 불가능하다.
이 무슨 가불기인가.
‘어떡하지…….’
하은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지고도 나는 자리에 앉아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자기 의견을 낼 수 있을까?
그때.
뻠범범버! 범범범버!
벨 소리가 울렸다.
“뚜와잇! 깜짝이야.”
익숙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쿵덕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님 어디.”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잉? 재우?”
우리 밴드 럭키데이의 기타리스트이자 현재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이 나라 지하철의 안전과 쾌적한 환경을 지키고 있는 재우였다.
“어디.”
“응? 나 지금 회사 연습실이지. 갑자기 전화는 왜?”
“합주 기역.”
“오늘 출근 안 했어?”
“휴가. 합주 기역.”
그는 합주를 하자고 자기 할 말만 다다다 뱉어 대며 위치를 물었다.
지금 당장은 곤란하다고 말하려 했으나.
“아니, 나 오늘 프로젝트 밴드 정기 연습 날인데…….”
“일단 감.”
“아니, 아니. 여보세…….”
뚝.
“끊었네.”
그리고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린 그는.
“히읗이응.”
“어……. 그래…….”
곧장 회사 연습실로 찾아와 버렸다.
‘잠깐 쉬는 시간을 연장해야 하려나.’
고된 노동 시간을 뒤로하고 시간을 빼서 놀러 온 건데, 내 할 일만 하겠다고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잠깐 숨을 돌리고 있던 삵의 다른 멤버들에게 조금 더 쉬다가 연습을 시작하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의 자리에서 휴식을 취했다.
“후우우……. 그래서, 그냥 놀러 온 거야?”
“이응. 휴가 쓴 지도 오래됐고 금요일이기도 하고, 합주하고 싶어서 나옴.”
“어휴. 미리 연락이라도 줬으면…….”
“시간 많지 않음?”
“나 프로젝트 밴드 때문에 바빠졌다고 했잖아.”
“아.”
분명 며칠 전 통화를 하며 내 상황과 고충에 대해 털어놓았을 텐데 모르는 척이다.
당장 합주라도 몇 번 하고 돌려보내려 했는데,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보게 되니 신세 한탄이 절로 나왔다.
“힘들어 죽겠다. 이렇게 안 풀릴 줄은 몰랐어. 저기 하은이 형이라고 우리 리듬 기타인데 원래 클래식을 하던 분이라더라고. 근데 그 형이…….”
“흠…….”
전향한 사람인데도 깨끗하고 자연스러운 연주, 상당히 부드러운 진행 덕에 듣는 사람의 귀가 편해지는 스타일, 그리고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그 소통 능력.
고통을 겪고 있는 내 현실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재우는 내 하소연을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그분 만나 봐도 됨?”
“네가?”
갑작스럽게 하은 형을 자기가 만나 봐도 되냐고 묻는 재우.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갑자기 왜?”
“그냥.”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생각했다.
‘도움이라도 주려고 그러나?’
생각했던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음이 반, 기타리스트의 마음은 같은 기타리스트가 더 잘 알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나는 도박이라도 걸듯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명 형과 함께 있는 하은 형에게 향했다.
“저, 하은 형.”
“으, 응…….”
멀리서 내가 걸어오는 것을 봤는지 또 힉 하면서 놀랐다. 구르진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그에게 살짝 권유했다.
“저랑 같이 밴드 하던 기타 친구가 왔거든요? 근데 형을 한번 보고 싶어 해서……. 혹시 괜찮으실까요?”
“같은 밴드 기타? 형재우 기타리스트?”
그러자 하은 형이 아니라 세명 형에게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네, 재우요. 아시는구나.”
“알지, 그럼. 유명 밴드 연주자인데.”
“으, 응……. 형재우 기타리스트…….”
같은 포지션의 연주자이기 때문인지 둘은 재우를 알고 있었다.
물론 얼굴을 마주했다는 뜻은 아니고, 이름을 알고 연주를 들어 봤다는 말이다.
“근데 그런 형재우 기타리스트가 하은이는 왜?”
“하하……. 밴드 얘기를 하다 보니 관심이 생겼나 봐요.”
“엥? 그럼 나는?”
“어……. 글쎄요. 일단은 하은 형만…….”
세명 형은 하은 형을 보고자 한다는 말에 왜 자신은 부르지 않냐며 궁금해했다.
나도 자세한 이유 따위는 알지 못하기에 대답할 말이 궁했다.
‘내가 하은이 형 때문에 답답하다고 하소연 좀 했더니 보고 싶다는 걸 어떻게 말해 줄 수도 없고…….’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하은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잠깐…….”
“오. 큰 용기 냈네. 모르는 사람도 보고.”
“유명한……. 기타리스트니까…….”
그런 하은 형을 보며 세명 형이 감탄사를 흘렸다.
안면 없는 사람이 부르는데 군말 없이 간다는 하은 형이 신기하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유명한 기타리스트니까, 라……. 좋은 일인가?’
아무래도 재우의 연주자로서의 명성이 있어서인 듯, 따라오는 말에 그 뜻이 명확했다.
“그럼 가시죠.”
“응…….”
나는 하은 형을 재우에게 데려갔다.
이 기타 미치광이가 우리보다 나이도 많은 형에게 무슨 짓을 할까 조금 불안한 마음과 혹시나 하은 형의 소심증을 고쳐 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동시에 품고서.
“혀, 형재우 기타리스트……. 아, 안녕…….”
끄덕.
평소처럼 작은 목소리로 나오는 하은 형의 인사를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재우는 고개를 끄덕여 그를 반겼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일렉 기타를 오른손으로 그에게 넘기며 말했다.
“듀오?”
왼손에는 클래식 기타 한 대를 든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