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22
121화
‘어……. 왜?’
일렉 기타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자신은 클래식 기타를 들고, 클래식 기타 전공자였던 하은 형에게 일렉 기타를 넘기는 그 저의가 궁금했다.
럭키데이로 함께 활동하던 시절에도 저 음악에만 미친 녀석이 벌였던 기행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 이렇게…….”
“이응. 위가 세면 찢어지고 아래가 세면 뭉개진다고 보시면 됨요.”
“아…….”
다행히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는지 두 사람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이펙터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그냥 연주 한 판 때리고 끝내려는 건가?’
도대체 무얼 하려는 건지 궁금해 지켜보던 찰나.
디잉……. 디리리링!
재우가 갑자기 연주를 시작했다.
‘어? 잘하네?’
팽팽하고 화려한 소리가 울린다.
진행이 복잡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탄현 덕에 더욱 쉽게 들린다.
중간중간 브리지 앞의 기타 통을 두드려 퍼커션 느낌의 소리를 섞어 주기도 하며 연주를 잇는데, 정확히 무슨 기술인지는 모르겠지만 리듬감이 살아 너무 좋았다.
형재우라는 기타리스트 특유의 스킬이 잘 살아 있는 듣기 좋은 연주.
디링! 디리링. 디리리링, 디리링!
그리고 그 소리에 하은 형이 만드는 멜로디가 살짝 섞여든다.
디리링, 지징! 디리링. 디리리링, 지지지징!
“호오오…….”
내 입에서 저절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멜로디도 되게 잘 엮으시네.’
평소의 역할군은 재우가 멜로디 기타, 하은 형이 리듬 기타이다.
그런데 지금은 재우가 클래식 기타를 들어 리듬 역할을 하고 있고, 하은 형이 일렉 기타로 멜로디를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연주는 위화감 없이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 정도는 해야 기타리스트가 아니겠냐는 재우의 오만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디링, 둥! 디리링, 둥! 둥! 둥! 둥!
그때 재우의 소리가 살짝 변하기 시작했다.
아주 자연스러운 주법의 전환.
코드는 그대로 두고 둥둥거리는 퍼커션 소리를 섞으면서 아까와는 다른 스타일로 곡이 전개된다.
그러자 하은 형도 거기에 맞춰 멜로디 라인에 변화를 주었다.
디리링 디링. 디리링 디리리링, 디디딩, 디디디딩.
그의 손가락이 위의 세 현에서 춤을 추듯 열심히 움직인다.
리버브만 살짝 먹은 깔끔한 톤.
톡톡톡 때리듯이 피킹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부드럽게 멜로디 라인이 형성되다니, 나는 그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둥! 징! 둥! 징! 둥! 징! 둥! 징! 둥! 징! 둥! 징!
재우의 리듬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자기가 드러머도 아니고…….’
열심히 통을 두드려 타악기 소리를 내는 게, 템포가 딱 고정되며 전체적인 선이 타이트해져서 마치 자동차를 바로 앞서 나가며 포장도로를 깔듯 여기로만 지나가라고 도발하는 듯했다.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이 합주는 그냥 합주가 아니라 배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아, 이거 그때 그거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했던 짓이니까.
‘내가 수현이를 이끌어 줄 때처럼 할 작정인가?’
꽤 된 일이다.
럭키데이를 결성하고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수현이가 자기 오빠인 수영 형의 연주를 보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보다 딱 한 발자국 앞서 연주를 주도하며 따라오게 만들어 무뎌진 밸런스와 합주 감각을 강제로 끌어올리도록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위험한 짓이었다.
‘슬럼프가 목전인 애를 데리고 극약 처방을 내렸으니, 완전히 감을 놓치지 않은 게 천운이지.’
혹시 그 순간 각성해서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그냥 뒀으니만 못한 긴 슬럼프에 빠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니 추억이 새록새록 솟는 한편 재우의 의도가 잘 들어맞을까 걱정도 들었다.
‘혹시나 잘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반, 이것을 계기로 하은 형이 각성을 해 버리면 좋겠다는 기대 반의 심정으로 둘의 합주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곧 하은 형의 연주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파악!
이펙터 페달을 힘껏 밟은 후,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키이이잉! 지지징, 지잉, 지지지징…….
기타 소리에 디스토션이 들어가고, 특유의 부드러운 연음이 가득 섞인 속주가 이어졌다.
“크……. 안 밀리네.”
갑작스럽게 거친 이펙트를 입혔음에도 특별히 거슬리는 부분도 없었고, 자연스러운 연음과 정확한 피킹, 그리고 간간이 섞이는 피킹 하모닉스는 멜로디를 너무나 부드럽게 자아내 귀에 꽂았다.
‘이게 일렉 기타가 맞는 건 맞는 건가? 맞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순간 얼이 빠질 정도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연주다.
변주와 변주의 연속 속에서 끊임이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움.
그런데도 투 기타의 하모니는 또 끝도 모르게 화려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하은 형이 크게 기죽어서 작게 작게 가는 것도 아니야.’
무엇보다 평소의 소심한 모습과 달리 하은 형이 악을 쓰고 따라붙어 서로 존재감을 부딪치고 있으니,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둘이 맞붙는 소리의 싸움을 즐길 여지가 충분했다.
그리고 잠시 후.
뚝.
서로 눈을 맞춰 타이밍을 계산하고, 한순간 연주가 멎었다.
긴 연주에 달아올랐는지 둘 다 이마에서 목까지 땀을 뻘뻘 흘리는 상태였다.
“휴. 장난 아니네.”
딱히 할 일도 없어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내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게.”
“아잇, 깜짝이야.”
어느새 다가왔는지 옆에 서서 지켜보던 세명 형도 감탄사를 쏟아 냈다.
“형재우, 형재우, 말만 들었지 저 정도로 잘하는 줄은 몰랐네. 원래 너희 퍼스트지?”
“그렇죠. 제가 서브고 재우가 메인 기타.”
“그런데도 저렇게 잘 이끌어 준다고? 세상은 참 불공평해.”
천재를 목도한 그 경이감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나는 껄껄 웃으며 그 말에 동의했다.
“허허. 천재가 달리 천재가 아니더라고요. 저는 전문 연주자도 아닌데 애들 연주에 맞추느라 고생 많이 했어요.”
“네가 다른 천재들 욕할 처지는 아닐 텐데.”
“잉? 저는 다르죠. 노력파라고요.”
나는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는 듯 손사래를 쳤다.
‘노래만 몇 년을 불렀는데, 그 정도도 못 하면 쓰나요.’
오히려 과거 회귀라는 치트를 쓰고도 아직 이 정도인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라, 천재라는 치켜세움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세명 형의 눈빛은 전혀 믿지 않는다는 듯 매우 따가웠다.
“네, 그러십니까?”
“이걸 안 믿네.”
비교적 어린 나이인 고등학교 때에 너무 큰 성과를 얻어서인지 노력보다는 재능의 영역에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진짜배기 천재인 재우, 수현, 라희에 비하면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고 있기에 언제나 부끄러웠다.
어쩌면 그런 남들의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 평생 더더욱 노력을 해야 할 팔자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잠시 투닥거리고 있자니 합주의 탈을 쓴 기타 배틀을 마치고 잠깐 대화에 들어갔던 재우와 하은 형이 다시 움직였다.
“어? 뭐 다시 하려나 봐요.”
“음? 또 합주 가나?”
우리는 대화를 멈춘 채 그들이 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그……. 그럼…….”
“편하실 때 신호 주시면 됨요.”
“지금.”
그리고 서로 어떤 합의를 나눈 것인지 신호를 주고받더니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시작은 아까처럼 재우가 먼저 끊었다.
티잉!
현을 크게 한 번 뜯어 소리를 울리더니.
쟝! 쟈쟝! 쟉, 쟈쟈쟝! 쟝! 쟈쟝! 쟉, 쟈쟈쟝!
딱딱 떨어지는 경쾌한 리듬이 이어졌다.
그리고 거기에 여전히 부드러운 하은 형의 연주가 얹어진다.
디디디딩, 디잉, 딩, 딩 디디디딩. 디디디딩, 디잉, 딩, 딩 디디딩디링.
깨끗한 클린톤의 선율이 물 흐르듯 리듬 위에서 흐른다.
쟈쟈쟝, 쟝. 디이잉, 디리리링.
두 기타의 소리가 아름답게 섞여 들기 시작한다.
“와…….”
“잘하네.”
아까의 합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둘 다요.”
“그렇지.”
아까는 서로 어느 부분에서 변주를 넣고 어떻게 따라가는지의 대결이었다면,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하모니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전면에서 치고 나가는데 저렇게 퐁실퐁실한 음색으로, 화려하게, 잘 섞이는 연주를 할 수가 있다니.’
멜로디 기타인 하은 형의 연주가 기존의 내 인식과는 동떨어진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왜. 하은이가 생각보다 너무 잘해?”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세명 형이 내게 슬쩍 물어 왔다.
“재능 넘치는 사람인 건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어요.”
“흐흐. 내세우지 않은 거지 원래 저만큼은 했어. 지금 당장 어느 밴드를 가든 에이스 역할 톡톡히 할 수 있는 놈이야.”
“흐음…….”
나는 그저 클래식 출신의 전향자로 나름 재능은 있지만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하은 형만 봐 왔다.
그런 내게 세명 형은 원래 저 정도는 거뜬한 친구라고 묘하게 자랑스러운 눈치로 말했다.
“퍼그노스 송명……. 아니, 나랑 쟤만 두고 튀어 버린 세 놈. 특히 때 될 때마다 소심한 하은이 붙잡고 깎아내리던 그놈. 분명히 후회할 거다.”
그러면서 직전에 몸담았던 밴드 퍼그노스와의 악연을 회상하는 그.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게요. 속 좀 쓰리겠네.”
저렇게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그냥 떠나다니.
밴드맨으로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낼 기회를 차 버린 참 멍청한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재우가 행한 연주를 통한 각성.
나도 비슷하게 해 본 경험이 있지만 정말 신기할 노릇이다.
도대체 연주를 통해 어떤 교감을 했기에, 또 내가 잠깐 한눈을 팔던 사이 나눈 대화로 서로 무엇을 주고받았기에 그 소심한 하은 형이 그 특유의 부드러운 연주 스킬을 전면에서 화려하게 자랑하고 있을까?
딩, 디딩, 디딩, 디딩, 디디딩. 딩, 디딩, 디딩, 디딩, 디디딩.
턱 끝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피크를 튕기는 하은 형의 모습이 퍽 멋져 보였다.
두 사람의 하모니는 10분을 내리 이어졌다.
보컬 가사 한 줄 없는 연주곡이었지만 지루할 틈이 없는, 꽉 찬 공연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님. 저분 잘하심. 걱정 안 해도 됨.”
재우가 금방까지 죽어라 두드리던 기타를 정리해 챙긴 후,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래?”
“이응.”
나는 앨범 제작 중 너무 소극적이라 의견 제시도 별로 없고, 참여도도 떨어지는 그에 대한 걱정이 컸다.
함께 연주할 음악을 만드는데 단 한 마디의 자기주장 없이 수렴만 한다면 그 또한 팀으로서 움직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작곡은 내가 하지만 완성은 팀으로서 하는 거니까.’
때문에 우리에게 산재한 많은 문제들 중 이것만큼은 무조건 해결하고 싶었고, 혹시나 해결되지 않거나 더욱 악화되기라도 하면 프로젝트 자체를 폐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우의 생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하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말했다.
“진짜 필요한 말은 할 거임. 음악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님.”
“그래?”
재우가 장담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왜?”
나는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답했다.
“크로스 들어가자마자 바로 반응해서 소리 묶기 시작하는 거 봄?”
“응.”
“줏대 없이 묻어 가는 사람이면 절대 그렇게 안 함.”
재우가 나름대로 분석하고 생각해 도출한 그 이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