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25
124화
“둠, 둠, 둠, 둠! 이렇게! 이렇게!”
고개를 앞뒤로 까딱이고, 발을 바닥에 쿵쿵거리며 요란스럽게 베이스를 연주하는 아저씨.
“이, 이렇게인가요?”
“아니지, 아니지! 둠, 둠, 둠, 둠! 이렇게! 팍팍!”
도대체 저 사람의 설명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서 고전 중인 꽃미남.
“거기선 이렇게 파아악! 하고 쫘악! 땡겨! 무슨 느낌인지 알지?”
“아……. 아아…….”
“그렇게 쭈욱 늘어지는 느낌에서! 응? 톡! 하고, 너무 세게 말고, 그냥 톡! 튕겨서 잡아 주면…….”
“아…….”
‘개판이군.’
나는 이것을 과연 레슨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하여 고민을 시작했다.
‘저건 레슨이 아니라 마치…….’
“이렇게! 이렇게!”
두우웅……. 두! 둥둥! 두! 둥둥! 둠둠둠둠…….
“보이지? 이게 싹 밀리는 느낌!”
“아…….”
‘차력쇼…….’
카리스마 있는 국내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베이시스트는 사실 레슨 허접이었습니다?
나는 저 설명이라면 전 세계의 그 어떤 천재 연주자가 찾아와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저 아저씨를 주영 형의 자신감 회복과 문제점 해결을 위한 적격의 인사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욕해야만 했다.
“에잇! 잠깐 연주 멈추고 봐 봐!”
“네…….”
두루루두루루, 따앙! 뚜루루, 따앙! 두비두 디비디 따란 두우웅!
급기야는 레슨 수강생인 주영 형의 연주를 멈추고 멋들어진 솔로를 연주하는 창희 형님.
“와아아…….”
이제 잘 보고 배울 생각은 이미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그저 끝내주는 베이스 솔로에 감탄하는 주영 형이다.
‘망했네.’
그렇게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베이시스트와의 만남은 그저 그의 실력에 대한 감탄만 남긴 채 끝나고 말았다.
* * *
베이스걸 : ㅎㅎㅎㅎㅎㅎ 그래서 문제 해결은 안 되고 그냥 온 거야?
나 : ㅇㅇ.
나 : 보면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귀가 후, 나는 걱정이 되어 먼저 연락을 준 수현이와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눴다.
베이스걸 : 아쉽네……. 나 나름대로 열심히 논문 뒤지면서 만든 자료였는데 ㅠㅠㅠㅠ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나 : 아니야, 아니야. 충분히 도움 됐어.
수현이의 지적과 자료 공유가 아예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의 자료는 주영 형이 스스로의 단점과 문제를 면밀히 파악하고 인식할 수 있게 도왔고, 그걸 고칠 길을 제시해 주었다.
다만 그 방도라는 것을 체화하지 못했을 뿐, 충분히 도움이 되기는 했다.
나 : 사실 주영이 형이 너무 아카데믹한 면이 있어.
베이스걸 : 아카데믹?
나 : 응. 연주가 아니라 사람이 조금 그래. 조금 전형적이고 습관적인 느낌.
주영 형의 그런 성향의 원인을 알기 위해, 나는 그의 과거를 들은 바가 있다.
그는 원래 미술을 전공하다가 미대 입시에 성공해 대학에 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밴드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베이스걸 : ??? 그러면 연주는 언제부터 시작한 거야??
나 : 스무 살.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바로 시작했대.
수능과 실기 등이 모두 끝나고 미뤄 뒀던 유흥을 즐기던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락과 밴드.
시끄럽고 요란스럽고 화려한 그 음악이 예술을 꿈꾸던 소년의 가슴을 들쑤셔 불을 지폈다.
나 : 인디 음악 같은 건 딱히 관심 없었고, 메이저 밴드들 노래 들으면서 입문했다더라.
나 : 디밴드, 스프라우트, 우리 럭키데이 같은 밴드들.
찾아 듣기도 힘든 마이너 장르나 인디 음악 같은 건 접할 기회도 없었지만, 우연하게도 들려온 메이저 밴드들의 소리가 그를 황홀경에 빠뜨렸다.
금방 만나고 온 국민밴드 디밴드, 비주얼 밴드의 탈을 쓴 실력파 락 밴드 스프라우트,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인상 깊은 활약을 한 우리 럭키데이까지.
공부와 미술 실기에만 빠져 살았던 그에게는 충격적이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 : 그때 막연하게 이 길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거지.
그는 그런 뮤지션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도 무대에 오르는 것을 꿈꾸게 되었고, 대학 입학을 포기한 후 실용음악 학원에 등록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 또한 미래를 계산했을 때 가장 경쟁력이 있는 파트인 베이스를 선택해 배우기 시작했다.
다만 원래 성격이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탓인지, 연주에 부드러움과 여유 같은 것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으로 악보를 숙지하고 숙달해 소리를 재현하는 것만큼은 수준급이지만, 음악을 늦게 접한 것 때문인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음악에 담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나 : 썩 좋은 일은 아니지. 요즘엔 클래식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전공자들도 어릴 때부터 엘리트로 키우는 시대잖아.
베이스걸 : 그렇긴 해…….
결국 꾸역꾸역 올라와서 기획사 연습생까지 되긴 했으나 냉정하게 봤을 때 그의 실력은 녹음실 세션맨 수준. 결코 실력 있는 밴드맨이라고 불릴 수는 없을 정도였다.
베이스걸 : 안타깝네…….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인데 얼마나 더 잘하고 싶을까…….
나 : 몸에 익혀서 차근차근 발전시켜온 재능이 없는 만큼, 저 정도로 하는 것도 엄청난 성장이라고 봐, 나는.
나 : 그래도 같은 팀의 동료로서는……. 아무래도 아쉽지.
베이스걸 : 그렇지…….
수현이는 마치 자신의 일인 듯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음악이 좋아서 자기 음악을 시작한 사람이 벽에 막혔다는 이야기가 남의 사정 같지만은 않았던 탓이다.
베이스걸 : 아 맞다.
그러던 그때, 그녀가 한 가지 제안을 내게 던졌다.
베이스걸 : 루치야 우리 오빠한테는 가 봤어???
나 : 오빠? 수영이 형?
베이스걸 : 응응
수현이네 오빠라면 수영이 형을 말하는 것이다.
진씨 성을 쓰는 베이시스트 남매로 아는 사람들에겐 잘 알려져 있고, 현재 숨은 명곡들이 발굴되며 인디에서 강제로 머리채 잡혀 수면 위로 끌려 올라가는 중인 스코프의 베이시스트.
나와도 수현이나 멘토링 스승이었던 스코프의 리더 선우 형 등, 다리 건너 인연이 있어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선배이기도 했다.
베이스걸 : 나 베이스 가르쳐준 사람이 오빠잖아. 우리 오빠가 남 가르치는 건 진짜 잘하거든.
생각해 보니 딱 좋은 사람이 또 있었다.
가르침을 전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권위 있는 선배 베이시스트이자, 실력 있는 밴드의 멤버. 그리고 현직 실용음악 학원에서 강사를 하며 돈벌이도 하고 있는 사람.
나 : 어? 그러게?
뜻밖의 힌트를 얻었다.
나는 주영 형을 데리고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 * *
“저……. 루치 님…….”
“네?”
주영 형은 락 밴드 스코프의 연습실 앞에 도착한 직후,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완전히 자신감을 잃은 듯한 목소리였다.
‘흠……. 안 좋은데…….’
그럴 만도 하긴 했다.
본인이 그토록 좋아했고 롤 모델로 삼았던 박창희, 진수현 등에게 나름 가르침을 받는다고 받았는데도 지적받은 문제가 전혀 나아질 줄을 모르니, 모두 자신의 탓인 것만 같을 것이다.
실패와 실패의 연속이란 그만큼 큰 타격임을 내가 어떻게 모를까?
나 역시도 모두 겪어 본 상황이다.
특히나 그런 그를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직접 끌고 다니며 노력하는 내가 눈앞에 보임에야 그 심정이 오죽할까.
‘부담감을 조금 줄이고 들어가면 좋겠는데.’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가 지속된다면 점점 상황이 악화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그를 격려하고자 말을 꺼냈다.
“괜찮아요. 실패와 고난이 쌓이고 쌓여서 계단이 되는데, 그 계단 이름이 경험이래요. 오늘도 실패해도 상관없어요. 하늘 안 무너져요.”
어화둥둥 기를 살려 주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부담스러울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던졌고, 다행히 주영 형은 이 이상 부정적인 말을 뱉지 않았다.
그러나 딱 그 정도.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제발……. 오늘은 성과가 조금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수영 형이 어떻게든 우리 베이스 주영이 형에게 도움이 되길 기도하며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예전의 반지하와 달리 비교적 널따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캐한 담배 냄새도, 퀴퀴한 곰팡이 냄새도 없는 멀쩡한 연습실.
내 요청을 받고 연습실에 남아 있던 수영 형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루치 어서 와라. 차 안 막히지?”
“괜찮던데요? 출퇴근 안 겹치면 교통편은 좋을 것 같아요, 여기.”
“응. 그런 것도 신경 쓰면서 골라 들어온 곳이야. 들어와.”
공연만 돌던 근성의 인디 밴드가 나름의 성공을 손에 쥔 후 생긴 변화, 그 첫 번째가 이 연습실이란다.
“후우우! 야, 아로마 향기 나지 않냐?”
“뭐 가져다 두셨어요?”
“응. 저쪽 창문에 흡연 부스를 따로 만들고, 거실에 아로마 디퓨저를 가져다 놨거든. 생활 환경이 바뀌니까 뭔가 일도 더 잘되는 것 같고 좋다.”
“하하하. 반지하 때도 밖에 나가서 피우고, 관리 잘하면 됐던 거 아니에요?”
“쉿! 조용!”
나와 주영 형은 수영 형의 안내를 받아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가볍게 자기소개와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앉아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갔다.
“그래서, 여기 잘생긴 친구. 주영이랬나?”
“네. 그렇습니다.”
“응. 그루브감이 없고, 멤버들 밀고 당기기에서 균형을 타기가 쉽지 않다. 기본 박자는 잘 맞추는데, 응용과 기교에서 어려움을 보인다. 이렇게 써 놨네?”
“네.”
수영 형은 쓸데없는 대화를 그리 길게 끌어 나가지 않고, 곧바로 수현이의 분석 자료와 내 진술을 토대로 주영이 형의 문제점을 차근차근 짚어 나갔다.
마치 학원 수강생에게 상담을 해 주는 것 같았다.
“우선 중요한 것. 그루브라는 게 무슨 상상 속의 유니콘 같은 게 아니야.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평생 모르는, 그런 감각적인 영역의 신비로운 능력이 아니라는 말이지.”
그는 연주 교정에 필요한 기본적인 이유를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초심자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루브. 이게 뭐냐. 흔히 필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결국엔 리듬이야. 황금 비율 알지? 길고 짧음이 패턴 안에서 대비되는 거지. 우선 자료 들으면서 살펴보자.”
“저……. 그 자료는…….”
“이미 봤지? 알아. 그런데 쉬운 설명과 같이 듣는 거랑 혼자 공부하는 거랑 조금 다르지. 자. 봐 봐.”
둠, 둠, 둠, 둠. 둠, 둠, 둠, 둠.
“간단한 정박 패턴. 들으면 칠 수 있을 만한 쉬운 리듬. 그렇지?”
“네.”
“그러면 여기서 패턴을 이렇게 바꿔 보자고.”
둠 둠, 두움, 둠. 둠 둠, 두움, 둠.
“어때?”
“앞선 두 박의 간격이 줄고, 세 번째 박자가 늘어났습니다.”
“그렇지. 그러면 이번엔 이렇게 바꿔 보자.”
두둠, 둠둠, 두우움, 둠둠, 두둠, 둠둠, 두우움, 둠.
한 마디를 듣고 즉석에서 음표를 찍어 패턴을 바꿔 들려주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간단한 감상과 설명의 시간 속에서 주영 형의 집중력이 끝도 모르고 올라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번엔 혹시?’
나는 그 레슨 장면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