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26
125화
“한 노래에서 청자가 포착할 수 있는 그 리듬이라는 건 결국 반복적인 패턴이잖아.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근데 같은 박자에서 굳이 같은 패턴으로만 연주가 이어질 필요는 없어. 질려 버린다고.”
수영 형은 가끔은 설명을 이어 나가고, 가끔은 되물어 생각의 여지를 주는 한편 집중력을 유지시키기도 하면서 그루브에 대한 해석을 진행했다.
“그 물리는 느낌을 해소하는 게 바로 그루브야. 자, 그럼 이 그루브라는 건 어떻게 살리는 걸까?”
“정해진 패턴이 아닌 새 패턴을 보여 주면 된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비슷해. 정확히는 패턴의 변조. 좀 더 자세히는 악센트를 통한 변조와 템포 분할을 통한 변조에서 그 그루브라는 것을 창출할 수 있다는 말이야. 들려줄게.”
그는 대강의 이해를 주영 형에게 주입하고는 예시를 보여 주었다.
둠둠 두루룸, 둠둠둠둠. 둠둠 두루룸, 둠둠둠둠. 둠, 두우 둠, 두두둠, 둠둠. 둠, 두두둠, 둠 두둠 둠둠.
일정한 패턴으로 연주하다가 일정 분량에 강조를 넣어 패턴의 변화를 확인하기 쉬운 예시였다.
진행 코드는 같은데 연주가 한 마디에 바뀌고 다시 반 마디 후에 바뀌어 변화를 만드니, 확실히 한 패턴에 몰입해 지루함을 느끼기 힘들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만 했는데, 어떻게 감이 좀 오니?”
“네.”
“오케이. 일단 대충 이런 식이야. 지금부터 이 느낌이라는 걸 어떻게 살리는지, 정확히는 어떻게 이 패턴의 구조를 분석해 변조를 줄 부분을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는지를 알려 줄게.”
“네!”
간단명료한 설명과 정확한 예시를 듣고 소위 뻑이 간 상태가 되어 버린 주영 형은 정자세를 잡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선생 짬이 있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한참 달라.’
직전 몇 차례의 시도에 비해 훨씬 반응이 좋아, 이번에는 성공적인 결과물을 받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반 마디를 네 박으로 나눌 거야. 그리고 네 박 중 딱 한 박을 넣는 걸 패턴 A라고 할게. 이 패턴 A는 또 네 개로 나눌 건데, 네 박 중 첫 번째에만 악센트를 주는 걸 A 다시 1이라고…….”
수영 형은 종이에 표를 그려 넣고는, 한 박으로 시작해 네 박자에 욱여넣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조합해 패턴을 만들어 알려 주었다.
땃땃땃둠, 땃땃둠땃, 둠땃둠땃, 땃둠땃둠.
중등교육을 모두 이수한 사람이라면 수학 시간에 한 번쯤 봤을 법한 쉬운 경우의 수였기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이해하기가 쉬워 좋았다.
물론 이런 기초적인 강의가 전부는 아니었다.
“자, 그런데 딱 이 열다섯 패턴만 있을 리가 없겠지? 그러면 너무 쉽잖아?”
“네.”
“심지어 일반적으로 베이스 기초를 배우기 시작하면 초중반에 보게 되는 이론이기도 해. 그러면 이제 이걸 조합해 볼 거야. 이렇게.”
뚱 따랑, 뚱 따랑, 뚱 두둥, 뚱 따랑!
그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패턴의 조합을 설명했다.
표에 있는 여러 가지의 박자 패턴을 조합하고 그에 걸맞은 주법에 입혀 보여 주는 그 연주는, 그저 기초 패턴 변주 예시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콘서트의 베이스 솔로 연주를 보는 것처럼 몰입감이 있었다.
“아아아…….”
확실히 예시와 설명의 적절한 비율과 정확하고 알아듣기 쉬운 연주 예시 덕에 주영 형도 이해가 쉬웠던 모양이다.
그는 제대로 빠져들어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금은 패턴이 뭐였어?”
“JJMJ에서 JJOJ로 바뀌었습니다.”
“그렇지. 그거야. 이제 직접 한번 해 볼 거야. 그런데 일단 이 조합을 어떻게 가져가느냐를 머리에 단단히 새기고 시작해야 해. 일단 이 패턴 조합을 패턴의 변화가 아니라 어느 박자를 비울 것이냐로 출발할 건데…….”
때로는 직접 보여 주고 되물어 이해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또 때로는 예시를 보여 준 후 직접 하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수영 형은 주영이 형의 리듬감을 천천히 깨웠다.
아니, 정확히는 리듬감이 있는 연주자로 보이기 위한 기술들을 몸에 새겨 넣는 듯했다.
“이런 다양한 패턴의 조화가 어떤 상황에 쓰였을 때 어떤 느낌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감을 잡고 있어야 해. 완전히 머리로 이해하고 달달 외워도 좋고, 연습을 통해 본능적으로 잡아챌 정도로 숙달해도 좋아.”
“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거야. 직접 음악을 들어 보면서 적용해 보는 게 가장 중요해.”
“네!”
수영 형은 수강생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한편, 레슨 이후에도 습득과 체화를 위해 연습에 힘쓸 수 있도록 겁을 주고 다독이며 장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꽤 오랜 시간 트레이너 생활을 했던 내가 보기에도 괜찮은 교육이었고, 수시간에 걸친 레슨 과정 동안 주영 형이 집중력을 잃는 일은 없었다.
“좋아. 그럼 레슨은 여기까지 하고, 마지막으로 평생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 줄게.”
“네.”
대부분의 지식 전수가 끝나고, 수영 형이 레슨을 마무리하기 위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저런 천재들이 가진 빛나는 영감 따위는 없어.”
그는 나를 턱 끝으로 가리켰고, 홱 돌아온 주영 형의 시선에 흠칫 놀란 나는 멋쩍게 고개를 돌렸다.
‘거, 천재 아니라니까.’
조금 부끄러웠다.
“선천적인 그루브감? 칼같이 정확한 박자? 유연한 창의력? 다 버려.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는 손에 쥘 수 없는 물건들이야.”
수영 형은 단언하듯, 또는 겁을 주듯 말했고, 그렇게 말하는 그를 주영 형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제대로 연구하고 기억하는 거야.”
둠, 둠 두루루, 두비두 두루루룸…….
지금까지의 레슨에서 수없이 들려주었던 패턴 연주를 한번 가볍게 튕겨 주고는, 그는 말을 이었다.
“수학적인 패턴 조합. 이걸 전부 기억해서 어떤 상황이 오든 침착하게 써먹어야 해. 그러면 저런 천재들처럼 될 수는 없을지언정, 그들만큼 뛰어난 연주자 소리는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씩 웃었다.
“기술로 감성을 속이는 거야.”
나를 보면서.
“얘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피식.
자연스럽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 말에 담긴 뜻을 읽었기 때문이다.
‘아오, 이 아저씨 진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언제나 감성은 기술의 영역이라 주장하며 노래할 때 기술 구사와 표현 방식 선정에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감성적인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그런 나와 함께 밴드를 꾸리게 된 이 신주영이라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의 교육과 접촉으로 감을 다진, 소위 천재나 엘리트 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러나 수학적인 분석과 끊임없는 노력만 있다면, 적어도 기술로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는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드는 동안 훌륭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때문에 믿고 함께하면 결과가 있을 테니 정진하라는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기술에 대한 조언을 받으러 와서 밴드의 결합력까지 신경을 쓴 명강의를 받게 되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렇죠. 감정 표현도 기술의 영역이니까. 타고난 그루브 감각이라고 제대로 된 계산과 기술 구사로 따라잡지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따라잡는 건 아니야. 이게 계산 없이 나오는 건지, 예전에 계산한 대로 보여 주는 건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지.”
“아무튼요.”
수영 형을 찾아온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감사는 뭐.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도록 해.”
뭔가 사고 친 연예인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를 끝으로 레슨은 종료되었다.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주영 형은 절도 있게 대답하며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는 이 레슨을 계기로 자신의 문제점을 타파할 기회를 얻는 한편, 잃어버릴 뻔했던 자신감을 회복하였고, 동시에 밴드에 대한 소속감, 특히나 리더 롤을 맡고 있는 나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진짜 아낌없이 다 주셨네.’
수영 형이 정말로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 준 덕이었다.
이제 한시름 놓고 주영이 형의 성장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듯했다.
* * *
“루치 님. 혹시 지금까지 나온 편곡 자료를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넵! 당연하죠. 혹시 가상 악기 MR도 필요하세요?”
“네. 그러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영 형의 레슨 이후 며칠.
주영이 형은 다시 연습에 빠지지 않고 나오게 되었다.
“연습은 잘되고 있죠?”
“물론입니다. 합주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서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다른 사람을 태도는 딱딱했지만, 개인 연습도 꾸준히 하고 있고, 수영 형의 조언대로 여러 패턴을 직접 실험하고 남의 음악을 들으며 익히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잘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말은 언제쯤 놓으실…….”
“나중에 편해지면 놓겠습니다.”
“만난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존대와 깍듯한 태도는 여전해서 살짝 불편하긴 했지만, 여러 면모에서 나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니 이제 걱정은 놓아도 될 듯했다.
“악보와 MR을 통해 편곡된 곡을 살펴보고 귀로 들어 보면서 나름의 패턴 분석을 해 보려고 합니다. 이후 추가 편곡을 부탁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야 좋죠. 언제든 환영이에요.”
그는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고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며 앨범 제작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부터 직접 만져 오던 베이스 톤 메이킹에 더해 본인의 파트를 다시 한번 살피며 내게 작곡 의도를 물어 오는 빈도가 늘어났다.
또한 연습 합주를 통해 밴드 전체의 사운드를 살피고 기교가 필요한 부분을 골라 나름 변주도 시도하고, 다시 녹음된 자료를 들어가며 그것이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매일매일 확인했다.
‘사람이 참 차가운데 또 음악에는 되게 열정적이야.’
사람 대하는 태도는 어색할지언정 합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참된 밴드맨 그 자체였다.
어느덧 초보자 티는 완전히 벗어 낸 듯, 그는 자연스럽게 팀에 녹아들었다.
“좋아, 아주 좋아.”
천천히 한 발자국씩 어디를 디뎌야 하는지 계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니, 그는 앞으로도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천천히 자신만의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시급했던 문제들 중 둘이나 해결되었고, 남은 것은 한 가지.
“우호오오! 드럼 다 부순다!”
쿵쿵쿵! 채채채채채채채챙! 쿠구구궁! 둥둥, 두두두두두두둥. 채애애앵!
문제 참 많은 우리 관종 드러머.
공옥선 씨이다.
“하아아…….”
나는 오늘도 열심히 드럼을 부술 듯 두드리는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쟤를 어디부터 만져야 할까.’
그간 문제가 있는 멤버들에게 멘토 역할을 할 사람을 수소문해 붙여 주며 해결해 왔지만, 저 녀석만큼은 어떻게 고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우호오오오! 공포의 쓴맛!”
쾅쾅콰오!
열심히 연습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
흥이 잔뜩 오른 옥선이의 드럼 소리가 따갑게 귀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