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둥, 둥두둥, 둥둥, 둥…. 둥, 둥두둥, 둥둥, 둥….
천천히, 조금 끈적끈적할 정도로 박자를 늘여 튕기는 베이스.
징, 징지징, 지지직, 징징! 징! 지지지지지지지지…. 징, 징지징, 지지직, 징징! 징! 지지지지지지지지….
딱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베이스 리듬의 중간에 생기는 빈틈을 메우면서 리듬감을 한껏 강조하는 리듬 기타의 배킹.
‘연습을 오랜 기간 해서인가? 이제 손에 확실히 익긴 했어.’
연주하고 있는 곡의 제목은 평화.
밴드 삵의 이름으로 발매할 프로젝트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다.
디리린, 디리리린!
깔끔하게 이어지는 하은 형의 멜로디를 따라 입을 벌려 첫 소절을 뱉었다.
“아침이 밝아 오네. 저 멀리 새가 지저귀네. 아팠던 장대비도 이제, 어딘가로 떠나갔네.”
약간 느린 재즈 펑크의 향취.
묵직하고 끈적하게 섹시하게 소리를 꽉 채우지만, 밴드 사운드에서 나오는 그 신나는 분위기는 살려야 하는 까다로운 곡이다.
동시에.
둥둥, 칫칫, 딱딱! 둥둥. 둥둥, 칫, 땃땃땃따! 두두두둥!
오늘의 문제아 옥선이가 항상 그 흥이라는 걸 이기지 못해 밸런스를 망가뜨리고는 하는 곡이기도 하다.
“안개는 깔리는데, 친구들은 어디에. 그대들 발자취에 나까지 떠나고 싶게….”
천천히, 통통 튀는 리듬과 달리 발라드를 부르듯 부드럽게 목소리를 흘렸다.
다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내 보컬이 아닌 다른 소리.
둥둥, 치지징! 둥둥, 따다다당! 둥둥….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옥선이의 드럼 소리가 혼자 튀려고 들지는 않는지 감시해야 했다.
어쩌면 나름 프로 연주자인데 팀원이 그 소리를 듣고 감시하는 것이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연주자의 기분이 아니라 소리의 융화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별빛 내린 밤을 따라 기다리던 평화가 왔네.”
둥둥 땅! 둥둥 땅!
가사와 가사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며, 옥선이의 드럼 소리가 규칙적인 박자를 만들어 낸다.
딱딱 잘 찍어 대는 그 소리와 타이밍 자체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당장은 안정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피어오른 적막 속에 눈물까지 섞어 보내게, 오오….”
두우웅….
“평화가 왔네…. 저 멀리 새가 나네. 아팠던 장대비도, 어딘가로 떠났네….”
첫 절과 후렴이 끝난 시점.
하은 형의 솔로 연주가 부드럽게 나타나 존재감을 흩뿌렸다.
딩, 디리링 딩…. 디디딩, 딩딩, 디이이잉….
‘크….’
음표 자체는 하나하나 정확하게 찍어서 정박에 입히는 느낌으로 귀에 쏙 들어오는데, 어떻게 저렇게 부드러운 감성이 잘 살아나는지 모르겠다.
‘나도 클래식 기타를 좀 배워 볼까?’
프로젝트 밴드 삵에서는 전문 보컬로서 일하고 있지만, 친정집인 럭키데이에서는 나름 리듬 기타도 치고 있는 나다.
재우와 수현이처럼 끝도 없이 화려해질 수 있는 연주자들에게 맞춰 주는 건 꽤 능숙해졌지만 여전히 내 연주는 투박한 편.
하은 형처럼 정확하게 연주를 하면서도 부드럽고 화려하고도 끈적하게 섹시한 뉘앙스를 소리에 입힐 수 있다면 꽤 괜찮은 반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들겠지만, 나중에 부탁드려 보자.’
물론 하루 이틀 배워서 저렇게 칠 수 있게 되지는 않겠지만, 뭐든 배우면 남는 것이니까.
그런데 잠깐 하은 형의 솔로 연주에 정신을 팔던 그때.
둥둥, 채재쟁!
폭주할 기미가 느껴지는 드럼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런.’
나는 그것을 느낀 순간 살짝 고개를 돌려 옥선이를 바라봤다.
둥 칫 땃, 치지징!
살짝 웃음기를 보이며 팔에 힘을 실어 드럼을 내려치는 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과몰입에 들어서는 전조 증상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응?”
샤사사삭! 샤샥!
한쪽 손을 좌우로 왕복해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내 손짓을 그가 인식하고 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앗.”
둠칫땃칫, 둠칫땃칫….
아차 하는 표정과 함께 옥선이가 급히 소리를 줄였다.
‘오. 효과 좋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강제로 볼륨을 고정하는 해결책이 아닌, 순간순간 과몰입해서 빠져드는 것을 방지해 주는 해결책이었던 듯싶다.
아무래도 인이어를 통해 사운드를 직접 체크할 수 있으니, 한 번씩 정신만 일깨워 주면 금방 조절이 가능했다.
디잉, 디링 디리리링, 딘, 딘, 딘, 디이이잉…. 디리리리링….
섬세한 하은 형의 솔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역시 포지션 변경은 신의 한 수였다 싶었다.
한 번 주의를 주니 드럼 소리가 갑자기 튀어서 다른 소리를 덮는 경우는 없다.
그 와중에 또 옥선이가 꽤 괜찮은 연주자인 것이, 볼륨을 급하게 줄여 맞춘 것임에도 과하게 작은 소리로 존재감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듣기에 딱 좋은, 밸런스 있는 소리.
‘괜찮네.’
이제야 뭐라도 되는 것처럼, 밴드의 모든 톱니바퀴들이 하나씩 맞물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밴드의 중심이 잡힌 것을 느끼며, 그러나 여전히 드럼의 밸런스를 신경 쓰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별빛 내린 밤을 따라 기다리던 평화가 왔네, 워어 오오오.”
부드럽게 깔리던 아까보다 훨씬 투박하고 신나는 소리로, 바라 마지않던 평화가 온 후의 적막을 노래했다.
“피어오른 적막 속에 눈물까지 섞어 보내게, 오오….”
내가 튀기보다는 밴드와 화합되는지에 잔뜩 집중력을 쏟으며, 과하게 몰입해서 제 흥을 주체 못 할 때쯤이 되면 시선을 돌려 옥선이에게 한 번씩 주의를 주면서.
그리고 노래가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넘어갔을 때,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주의를 줄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둥둥, 채앵, 둥둥, 타다당, 둥둥, 채앵, 둥둥, 타다다다….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모두와 발을 맞춘 드럼 사운드가 흘렀다.
‘이야…. 괜찮네. 진짜.’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밸런스에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뒤로 돌려 옥선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만면에 가득한 웃음, 힘이 가득 들어간 팔, 흔들흔들 리듬을 즐기며 움찔거리는 몸.
과몰입을 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 옥선이는 다른 팀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싸움이 끝났네. 흔들리는 별빛에 목을 축이고, 이대로 누워 돌을 베고 자야지….”
이 안정감.
규칙적으로 울리는 북소리의 편안함.
이것이다.
‘이게 진짜 A급 드럼이지.’
볼륨의 조절에 성공한 옥선이는 어지간한 유명 밴드의 드러머 못지않은, 팀원들의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유도하는 뛰어난 연주자였다.
징징징징, 지지징징징, 징징징징, 지지징징징.
그 증거로 세명 형도 굳었던 자세를 편히 하고 편안하게, 오롯이 배킹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하게 튀어서 다른 사운드를 잡아먹는 그 아군의 위협이 없으니, 언제 볼륨을 맞춰야 하나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편하게 연주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주영 형의 다소 정형화된 연주 역시, 안정된 드럼 리듬 안에서 훨씬 부드럽게 섞여들기 시작했다.
둠둠둠둠, 둠둠둠둠, 두루룸 두둠, 둠둠둠둠.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된 대로 진행해도 된다는 사실이 인식되니 밸런스가 흐트러질 일이 없었다.
‘드디어!’
내가 원하던 그림이 그려진다.
우리의 첫 트랙, 평화가 이제야 완성되었다.
이제야 시작점이다.
‘후속 트랙들도 천천히 완성될 거고, 합을 맞춰 본 뒤 재녹에 들어가야 해. 더 바빠지겠네. 조금이라도 편해지려 시작한 멤버들 개조 작전이었는데.’
밴드 결성부터 장장 몇 주에 걸친 대장정이 드디어 시작점이라는 절반 지점에 다다랐다.
이제 진짜 앨범 완성을 위해 쉼 없이 달리기만 하면 되는 환경이 완성된 것이다.
* * *
“거…. 그….”
“뭐.”
“음….”
몇 차례에 걸친 연습이 끝난 후, 옥선이가 나를 따로 보자고 해 얼굴을 마주했다.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한 녀석이 쭈뼛대는 꼴을 보자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고맙다….”
생각 없이 즐기는 줄로만 알았던 녀석이 고맙다며 인사를 해 오자 나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알고는 있었어. 합주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거, 절반 정도는 내 탓인 거. 그래서 나름…. 좀 신경도 쓰고 있었고….”
“이야…. 신경을 썼는데 그 정도였어?”
“에라이…. 이게 좀 그렇잖아.”
그도 바보는 아니다.
연주 도중에는 흥분 상태를 조절하지 못하니 모를 수 있다고 쳐도, 합주 직후에 나누는 피드백 때나 연습 촬영본을 확인할 때는 자신의 단점과 광기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음악은 아예 모르고 내키는 대로 두드리기만 하는 놈이었다면 그마저도 몰랐겠지만, 그는 나름 오랜 시간 드럼 연주자로서 대중과 함께했던 연주자.
어떤 소리가 듣기 좋은 소리인지, 어떤 소리가 완전히 망가진 소리인지 정도는 혼자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고치지 못했는가?
“드럼은…, 아니, 연주는 나한테 즐기는 거였고, 우당탕탕 때려 부수는 걸 나는 즐겁다고 생각했어. 그러다 보니 배려가 없는 합주를 하게 된 건데, 즐기지 않으려니 연주는 안 되고….”
횡설수설이었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즐기지 않으면 연주를 못 하겠고, 즐기면 갑자기 폭주를 하게 되고. 그렇지?”
“응.”
순수하게 드럼 연주를 즐기며 실력을 쌓아 온 이 친구는 처음부터 어딘가 어긋나 있는 부품이었다.
속 시원히 연주를 즐기려면 드럼을 강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두드려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밴드 사운드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볼륨 조절에 신경을 기울이다 보면, 이게 도저히 즐거운 맛은 없고 몸만 지쳐 힘들어졌다.
밴드 밸런스를 맞추려 노력했던 나름의 결심들이 오히려 자기 자신의 연주 밸런스를 망가뜨렸던 것이다.
“너도 고생 많았겠다. 문제를 몰랐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너 스스로 알고 있었으니….”
“힘들었어. 나 위로 좀 해 줘.”
“족발 저리 치워.”
“쳇.”
슬쩍 내 어깨로 올라오려던 옥선이의 손을 멀리 뿌리치고, 나는 문득 의문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근데 오늘은?”
“오늘? 뭐가?”
“오늘은 그 뭐냐, 즐기는 자 모드로 끝까지 완곡했잖아. 그것도 여러 번.”
“아하.”
폭주기관차에 브레이크가 달린 것은 오로지 인이어 이어폰 하나만의 공이 아니다.
내가 그의 폭주와 볼륨 증폭을 막은 방법은 조금 튀려고 하는 순간 이어폰을 통해 전체 사운드를 확인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조절하라고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주의와 지적 없이도 알아서 밴드와의 밸런스를 맞춘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옥선이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내게 답했다.
“그…. 이게 되게 웃기는 말인데….”
“뭔데?”
“웃으면 안 된다?”
“아, 뭐냐고.”
뜸을 들이던 그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네가 처음 지적했을 때 있잖아. 그때 인이어로 소리 들으면서 소리 고쳤잖아.”
“응.”
“그다음부터는 내가 신경 쓰면서 연주를 했거든. 이 마스터 볼륨? 거기에서 드럼 소리가 혼자 안 튀게끔….”
“응.”
뭔가 비밀스러운 얘기라도 하듯 장황하게 설명하는 옥선이의 말에 적당히 호응을 해 주며 계속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섬세하게 다른 사람들 볼륨에 맞춰서 딱 제자리에 드럼 소리를 갖다 맞추는 게, 되게 재밌더라고.”
“응?”
“뭔가 젠가 쌓는 느낌? 아니면 도미노 줄 세우는 느낌? 뭔지 알아? 뭔가 신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어. 이제 진짜 밴드가 된 것 같고….”
“아니,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펑펑펑, 쾅쾅쾅쾅 안 해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그런 말이냐?”
“오, 그렇지. 딱 그거지.”
소리를 맞추려면 즐길 수가 없게 되고, 한껏 즐기면 소리가 안 맞게 되는 진퇴양난을 벗어나게 한 깨달음.
마구 달리지 않아도, 드럼을 때려 부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옥선이는 지금 밴드 사운드를 맞춰 나가는 재미라는, 그 간단한 이치를 무슨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되는 듯 여기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지 않냐? 음악의 신이 갑자기 찾아와서 귀띔이라도 해 주고 간 거 아닌가 싶어.”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이 될 일이었나?
고작 마음가짐이 아주 살짝 달라진 것 하나로?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미친놈.”
이것도 정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