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3
12화
“좋다, 좋다. 전부터 좋았던 표현력이지만 오늘도 좋다는 말밖에는 못 하겠네.”
“감사합니다.”
“따로 학원에 다닌다거나 하지는 않고? 가창 스타일이 뭔가 예고 애들 느낌이 나면서도 훨씬 개성적인데.”
“실용음악 발성은 그냥 혼자 공부하고 있어요. 전문적으로 배운 건 성악 발성밖에…….”
“그렇군……. 기본기가 잘 받쳐 주는 느낌인데 전의 경험이 도움이 됐을 수도 있겠다.”
음악을 즐기는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흐른다.
지하 연습실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것만 같은데 벌써 재우, 태호, 그리고 나까지 연주를 끝마쳤고 선우 형의 간결한 피드백이 이어졌다.
“오옹…….”
끄덕끄덕, 도리도리만 반복해서 의사소통을 하던 재우 놈은 피드백을 받고 선우 형의 시범 연주까지 들은 후 두 눈이 반짝이는 채다.
‘이거 설마 자기한테 음악 들려준 사람한테만 친근하게 구는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그런 듯도 했다.
처음 왔을 때는 나랑 저기 있는 수현이라는 친구에게만 말을 걸더니, 피드백을 위한 연주를 하고 나서는 선우 형과도 곧잘 대화를 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서로 음악을 들려주는 과정 자체가 녀석에게는 상호 소통의 방식일 수도.
아무튼 특이한 친구다.
“좋아. 재우, 태호, 루치 전부 들었으니까 이제 수현이도 해 볼까?”
“네……, 네?”
“연주. 근질근질하지 않아?”
갑작스러운 선우 형의 호명에 수현이라는 친구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더니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하기야 그냥 자기 오빠 만나러 왔다가 피드백에 끼어들라고 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가만히 있던 애한테 연주 한 판 때리자고 하면 쟤가 하겠…….’
“네…….”
‘하네.’
한단다.
“오케이. 무기 들고 링으로 올라오도록.”
“네…….”
선우 형이 기쁜 티를 팍팍 내며 손짓하니 수현은 그대로 하드케이스를 열어 자신의 악기를 꺼냈다.
‘퍼렇네.’
짙은 파랑 기반의 배경에 흰 물감이 흩뿌려진 듯한 레진 무늬의 바디를 가진 베이스 기타.
그런데 칙칙하거나 지저분해 보이기는커녕 광채가 번뜩이는 것이 평소에 공을 들여 관리하는 듯했다.
‘베이스 모양은 왜 저래?’
5현 베이스라는 점은 취향 문제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스케일 길이가 줄마다 다르고, 프렛도 부채꼴을 그리는 팬드 프렛 형태가 꽤 특이했다.
현이 굵을수록 스케일 길이가 길고, 얇을수록 짧아진다.
아마 하이 프렛으로 가면서 각각의 진동수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최대한 줄이고, 왼손의 손목 부담도 줄이려는 설계인 것 같았다.
다만 저렇게까지 브릿지, 프렛, 헤드 너트의 각이 크게 그려진 구조는 처음 보는지라, 피치 맞추기는 편해도 태핑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혹시 커스텀……. 그건 아닌 것 같고. 어디 제품이지?’
워낙에 특이한 생김새이기도 하고 내가 베이스 기타에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라서 어느 회사의 물건인지 알 수 없었다.
“오빠……. 이거 연결…….”
“아, 이리 줘.”
그녀는 적당히 의자와 베이스를 세팅한 후, 핸드폰을 연결하기 위한 케이블을 한참 찾다가 선우 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마 MR을 깔고 연주를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얘는 또 왜 이래?’
그 모습을 가만히 앉아 구경하고 있는데 재우가 앞으로 성큼 나오더니 의자를 당겨 앉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고명한 음악가의 연주를 감상하기 직전 관객의 표정 같았다.
똑, 똑, 똑, 똑.
“한다, 한다.”
연습용으로 담아 둔 MR인지 메트로놈 소리가 작게 울리고, 수현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웅, 우웅, 웅, 우웅, 웅…….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못 들어 봤을 리가 없는 전주.
길게, 그리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바이올린 선율.
흔히 캐논 락이라고 부르는 제리 찬 버전 캐논 변주곡이다.
‘오.’
꽤 과감한 선곡이다.
편곡 버전에 따라 다르지만 베이스라는 악기로 캐논 락 같은 화려한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축에 속한다.
대개 기타 버전의 화려함에 묻히지 않도록 상당한 고난도의 테크닉들이 악보를 장식하는 편이다.
또한 톤 역시 잘 들리면서도, 베이스의 특유의 묵직함은 살린 채 화려한 이펙트 또한 제대로 가미되어야 맛이 살아난다.
배우긴 쉽지만 잘하기는 어려운, 까다로운 곡이다.
딴, 단, 다안, 단…….
시작은 우선 가벼운 핑거 피킹.
수현이 현을 살짝 당겨 울리자 캐논의 멜로디가 이어진다.
살짝은 긁듯 거칠게 만들어진 톤이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이펙트를 걸었을 때 호불호가 꽤나 빈번하게 갈린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멋진 소리였다.
다만 첫 부분 몇 마디 정도는 아직 밋밋하게 이어지는 낮은 음역 버전 캐논에 지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감상은 채 20초도 지나지 않아 180도 뒤집히게 되었다.
투웅!
“어?”
세 손가락을 모아 툭툭 현을 때리는 피킹.
멜로디를 만들던 직전과는 달리 훨씬 묵직하고 강렬한 소리가 울렸다.
위잉! 두두두두 두둥, 두두두두 두둥.
그리고 손가락을 짚은 채 슬라이딩을 쭉 당겼다가 돌아오는 리듬.
본격적인 베이스 기타의 자기 자랑이 시작되었다.
“와…….”
“저게……. 대체…….”
재우는 입이 떡 벌어진 채 그것을 감상하고 있었고, 태호 역시 옆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베이스가 저렇게까지 화려할 수 있나?’
평생 음악을 하며 살았지만 내 영역이 아닌 것에 대해 전부 꿰뚫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베이스는 그루브를 살리기 위한 리듬 악기의 역할,
밴드 사운드의 여러 요소를 하나로 모으는 화성 악기 역할이라는 식의 선입견이 어렴풋하게 있는 정도.
그런데 이 수현이라는 친구의 연주는 그런 색안경을 확 벗기는 느낌이었다.
‘베이스 솔로 연주를 아예 들어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얘는 진짜 멋지다.’
어쩌면 내 견식이 좁아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진수현이 끝내주는 연주자라는 사실이다.
정신 차리고 보면 고개를 까딱이며 베이스 리듬을 따라가고 있을 정도로.
실력이야 둘을 놓고 제대로 비교한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특유의 그루브나 속주의 화려함만큼은 저 애의 오빠인 진수영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두구두구두구, 뚱 둥 둥둥둥. 둥둥 둥둥둥…….
쓰리 핑거 피킹으로 시작해 멜로디를 이어 가다가 분위기가 고조되며 주법이 슬래핑으로 전환되었다.
반주 사이로 욱여넣는 음표의 개수는 적어졌지만 훨씬 리듬감이 있다.
딴 단단 디리리리링, 디리리리링!
그리고 또다시 갑작스러운 태핑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저음부부터 고음부까지 세밀하게 두들겨 주며 속도도 잘 살아 묵직하면서도 화려했다.
그녀는 5현 베이스 기타의 장점을 살려 마치 기타 연주하듯 위아래 멜로디를 깔끔하게 찍어 내면서도 여러 주법을 돌려 가며 멋들어진 연주를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멋있었던 것은 속주.
“와……. 손가락 봐. 거의 춤을 추네.”
핑거링과 태핑을 번갈아 이용하며 박자를 가지고 놀고 있다.
더더욱 중요한 점은 빠른 연음에도 전혀 그루브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돼먹은 감각이야?’
이건 말 그대로 감각.
그녀가 타고난 재능이라고 보는 쪽이 맞을 것 같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듣는 사람을 짜릿하게 만들 정도로 빠르고 정밀한 속주. 그리고 가슴을 뛰게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거리도록 만드는 그루브감.
양립하기 힘들 것 같은 개념을 손바닥으로 가지고 노는 사람들 말이다.
지이이이잉! 두두두두두두!
연주는 클라이맥스로 들어가 확실히 리듬감을 살리는 쪽을 목적으로 둔 듯 스피커가 울려 댔다.
그리고 나는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재우 말고도 이런 인재가 있었을 줄이야.’
형재우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잘하지?”
그때 재우가 내게 살짝 물어 왔는데, 혹시 내 속마음을 읽은 것인가 싶었다.
“응.”
그냥 잘한다뿐인가?
구간이 넘어가는 순간마다 아주 자연스러운 주법 전환을 보여 주면서 베이스 특유의 리듬감과 속주의 짜릿함을 모두 산 연주를 보여 주고 있는데.
베이스를 기타처럼 다뤄 보여 주는 솔로잉이 아니라 베이스 기타라서 보여 줄 수 있는 고유의 맛을 제대로 선보이고 있는데!
솔직히 어디서 저런 애가 튀어나왔나 싶을 정도였다.
‘이 정도 실력이면 어떻게든 이름을 날렸어야 정상인데…….’
나는 진수현이라는 이름이 내 기억에 없음에 큰 의아함을 느꼈다.
최소한 재우처럼 진수현이라는 베이시스트가 어떤 채널을 운영했다, 솔로 앨범을 만들었다, 이런 류의 소식쯤은 알고 있을 법도 한데, 아예 이름도, 존재도 모르는 천재가 등장한 것이다.
지이이잉! 징! 징!
저 정체불명의 천재에 대해 혼자 입을 닫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연주가 끝났다.
“어우…….”
“와! 멋짐!”
태호는 질린 얼굴로 감탄만 뱉었고, 재우는 환호하며 손뼉을 쳐 보였다.
수현이 멋쩍은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화려하고 강렬한 연주에 걸맞지 않은 소심한 모습이다.
“와……. 수현이는 진짜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느는구나.”
“고맙…….”
“편곡은 직접 한 거야?”
“인터넷에……. 중간에 조금 어레인지를…….”
“그렇구나. 와. 이건 전문 베이스가 아닌 내가 피드백을 주기 어려운 연주였어. 기술적으로 아주 뛰어났다는 점 정도만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고맙습…….”
이어지는 선우 형의 피드백.
사실상 지적도 보완도 없는 칭찬뿐이었고, 진수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렸다.
좋은 말을 해 주는데도 움츠린 모습이 뭔가 직전의 카리스마 넘치는 베이시스트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재우야.”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재우에게 말을 꺼냈다.
“이응?”
“쟤 어디 밴드 들어간 곳 없지?”
“이응.”
“얘기 좀 해 봐야겠네.”
멤버 단둘인 당나라 밴드에 든든한 베이스맨 한 명 들여오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 * *
“보, 보컬 학원?”
“응…….”
아이고 맙소사.
이런 특 A급 연주자가 왜 미래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한참 고민했는데, 그 이유가 여기 있었다.
“아니, 그 연주 솜씨를 가지고 보컬 지망을 했다고? 왜? 대체 왜?”
“그냥……. 보컬이 멋있어서…….”
이 친구 보컬 지망이었단다.
“아……. 이제는 아니야……. 나 음치거든……. 아무리 배워도 늘지를 않아서……. 베이스도 나름 재밌고…….”
“휴……. 다행……. 아니지. 유감이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보컬 진로는 완전히 접었고, 베이스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배워도 늘지 않는 노래 실력에 좌절하고 예전부터 취미로 즐기던 베이스를 잡게 되었다.
그때 친오빠인 진수영의 연주가 귀에 들어왔고, 그가 가르치는 대로 따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테크닉과 감각을 익혔다고 한다.
‘허……. 아무리 가족이 연주자라 직접 배울 기회가 많았다고는 해도 이런 실력을 단숨에 쌓아 올렸다고?’
그럴 의도는 아니겠지만 하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진짜배기 천재라고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보다 보컬은 반쯤 놓고 베이스로 전향했다면서 왜 알려진 연주자가 되지 못한 거지?’
그때 내게 의문이 들었다.
수현이가 끝까지 보컬을 고집하며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지 못했다면 미래에 유명한 베이시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말하기로는 이제 베이스에 집중하기로 했다는데 이 실력으로 뜨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때였다.
“그래도 노래를 아예 하기 싫은 건 아니라서 너튜브 채널을 만들려고. 이거 볼래?”
“응? 이건…….”
“처음 올릴 노래…….”
수현이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영상 하나를 틀어 내게 건넸다.
둥, 두두둥, 둥둥, 둥, 두두둥.
드럼과 기타 MR에 라이브로 깔끔한 베이스 연주가 올라타 흐른다.
‘크……. 끝내주네.’
확실히 일류라 부르기에 충분한 실력이다.
그런데 좋은 노래를 들으며 좋아졌던 기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살 나고 말았다.
이즌→ 쉬↗ 프리↗티! 이즌↗ 쉬→ 뷰! 티! 푸우울!
“컥! 콜록! 콜록콜록!”
재앙이다.
‘이 땅에 재앙이 떨어지니, 세상을 그르다 본 파멸의 신께서 천벌을 내리는…….’
“괘, 괜찮아?”
“앗, 아……. 괜찮아. 응. 그래. 괜찮아.”
나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 실력으로 끝까지 어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이유는 이 노래를 너튜브 채널 첫 영상으로 올렸기 때문이 아닐까?’
끔찍한 노래였다.
환상적인 베이스 슬랩, 가상 악기인 덕에 개성은 없다지만 음정 박자 정확한 기타와 드럼의 백업.
그리고 그에 더해지는 지옥의 보컬.
‘하늘이 얘한테 베이스 재능을 주고 보컬 재능을 앗아 간 거구나.’
어쩌면 신은 공평할지도 몰랐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가져갔으니.
‘반응이 아예 없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악플이라도 달려서 멘탈이 조각났을 수도 있지. 딱 봐도 소심해 보이니까.’
유약한 그녀의 성정에 불같은 악플 세례는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고, 그 후로 명성 없이 묻히게 되었다.
꽤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안 돼. 얘는 꼭 베이스를 전문적으로 해야만 해.’
베이스라는 악기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은 나조차도 이 사람은 대박이다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연주 실력.
아까의 캐논 락과 지금 들려준 Isn’t she pretty의 베이스 라인을 통해 언뜻 내비친 편곡 센스와 톤 메이킹 능력.
심지어 더 성장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짧은 경력까지.
‘이건 못 참지.’
당장 모셔 가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밴드맨 실격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이 친구를 어떻게 설득해 밴드로 꼬셔 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