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그런데 이제 우리 뭐 해?”
녹음을 마치고 의자에 주저앉아 있는 내게 세명 형이 물었다.
난 뭘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 답했다.
“뭐 하냐뇨? 집에 가야죠.”
“아니, 아니. 그 뜻이 아니잖아.”
그러자 그는 고개를 휙휙 젓더니 다시 말했다.
“녹음 다 끝냈으니까 이제 어떤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거.”
“아하.”
알고 보니 향후 활동 방향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뜻하지 않게 동문서답을 해 버렸다.
“우선은 앨범 제작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시간이 남아요. 그동안 홍보 활동이나 연습에만 집중하게 될 거예요.”
“제작은 언제 끝나는데?”
“글쎄요……. 태호 PD가 어련히 알아서 조율하겠지만, 짧아도 2주 정도는 걸릴 것 같던데요?”
녹음은 모두 마쳤지만 믹싱과 마스터링도 남아 있고, 혹여 부족한 부분이 프로듀서들이나 우리의 귀에 들린다면 재녹음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짧으면 2주, 넉넉하게 잡으면 3주에서 한 달은 기다려야 앨범을 본격적으로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볼 수 있다.
앨범 제작 협력 프로듀서라는 직함까지 떡하니 맡고 있는 태호가 엔지니어, 프로듀서들과 함께 제작 마무리 과정에 들어갈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할 일은 연습, 그리고 아주 작은 스케일의 홍보 따위에 더해 밴드 결성 때부터 지금까지 찍어 온 웹 예능 촬영 정도가 전부.
“흠. 홍보라…….”
“그래 봤자 SNS 홍보 정도가 고작일 것 같긴 한데…….”
“홍보 활동이면 뭐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지 않나?”
“아마 회사에서 필요한 일정은 알아서 다 만들어 줄 텐데, 그렇게 바쁜 건 없을 거예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우리가 홍보에 나서 봤자 그 스케일과 효용이란 딱 있는 듯 없는 듯한 정도이니,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물론 내 경우에는 꽤 인지도가 있는 기성 가수이고, 옥선이도 나름 구독자가 많은 인기 너튜버이니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네 이름에 업혀서 갈 수는 없지. 완전히 김루치밴드 취급당할 수도 있는데.”
“그렇죠.”
멤버끼리의 명성의 정도 차이가 꽤 크기 때문에, 나를 전면에 내세워 홍보에 나서는 것도 조금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홍보 활동이라고 해 봐야 그 사이즈가 고만고만할 것이다.
SNS 홍보든, 발매 전 예능 출연이든, 하다못해 버스킹이든, 딱히 미리 대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습에만 더 집중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지금보다 더?”
“지금은 연습 그렇게 많이 안 하잖아요. 초반엔 회의한다고 바빴고, 최근에는 녹음하느라…….”
“야, 야. 우리도 저녁이 있는 삶을 좀…….”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 * *
“아니 그게 말이 돼요?”
나는 유성 형이 우리에게 건넨 그 홍보 기획이라는 것을 듣고 벙찐 표정으로 말했다.
“말이 되지. 딱히 안 될 것도 없잖아?”
이 아저씨는 지금 나만 빼면 사실상 신인이나 다름없는 우리 팀에 이게 가당키나 한 제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싶어 나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어떻게 신인들이 기성 가수들 무대에 난입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요……. 아무리 협의된 거라고 해도…….”
“어……. 안 되나?”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그것도 멤버 전원이 가면을 쓰고! 정체도 안 밝히고! 그게 홍보 효과가 있긴 하냐고!”
공연 난입 퍼포먼스.
아무리 무대 주인에게 양해와 허락을 구하고 하는 일이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무거운 기획이다.
“우리 연습 장면이랑 녹음이랑 이것저것 전부 다 촬영 진행했잖아요? 그거 영상 올리는 정도면 홍보는 충분할 텐데…….”
앨범 제작과 동시에 진행 중이었던 데뷔 리얼리티 예능.
너튜브를 통해 공개될 그 리얼리티 예능에 더해 내가 예상한 SNS 홍보 혹은 버스킹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그보다 더해 봐야 신인들이 얼굴을 비칠 수 있을 법한 소규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정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가면 쓰고 무대 난입한 것까지 촬영해서 올라가면 리얼리티 예능에 그 관람 포인트라는 게 빡 꽂히지 않을까?”
“흠……. 맞는 말이긴 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소재를 챙길 이유가…….”
“그리고 공개 버스킹이나 예능 출연 같은 걸로 홍보의 스타트를 끊으면.”
다소 불평스러운 말투로 답하는 내 입을 막아 버리고, 유성 형이 계속해서 나를 설득했다.
“네 인지도에 기대서 홍보에 임하는 게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어?”
“그, 그건 또 그런데…….”
이건 멤버들끼리도 이미 의견을 통일한 사안이기도 하다.
이중에서는 제일 인지도가 있는 편인 나의 명성에 편승하지 않고, 삵이라는 팀의 음악성을 제대로 믿고 밀어 보기로.
“생각해 봐. 첫 난입 이벤트 때는 저것들은 뭐 하는 미친놈들이지 같은 반응이 나와도, 그게 세 번째까지 이어지면 대체 정체가 뭔가 싶을 거야.”
“그렇긴 하겠죠. 멀쩡한 공연장에 복면 쓴 미친놈들이 몇 차례나 등장하는데.”
“그래. 근데 웹 예능을 통해서 그 미친놈들의 정체가 공개된다? 어떻게 되겠어?”
“입소문 좀 타겠죠…….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그렇지! 근데 조금만 더 희망을 가져 보자고.”
미적지근한 반응을 내비치는 내게 유성 형은 적극적으로 설득을 이어 나갔다.
“우리 회사 소속뿐 아니라 좋은 관계에 있는 다른 아티스트의 콘서트에도 올라갈 거야. 아마 디밴드가 될 것 같은데, 그건 나중 얘기지.”
“그래서요?”
“인기 팬덤의 궁금증, 그리고 멀쩡히 즐기던 공연을 방해한 놈들에 대한 분노. 거기에 너희의 실력이 섞여 들면? 너희의 정체를 알고 싶다는 욕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고, 웹 예능을 통해 그게 해소되면?”
“하…….”
회사는 꽤나 시끌벅적한 노이즈 마케팅을 준비해 왔다.
그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나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너무 요란해요. 희망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 방에 빵 떠 버릴 좋은 기회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마케팅만 시끄럽게 하는 실속 없는 놈들이라는 딱지만 붙는다고요.”
요란스러운 일 처리에 따르는 후폭풍과 부작용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기획이기도 했다.
등장부터 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가수들의 자리를 떡하니 빼앗아 앉으면서 자신들을 알리는 기회로 삼는 신인들?
분명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런 내게 유성 형은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노래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네?”
매니저 겸 프로젝트 입안자가 한 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무책임한 말이었다.
‘아니, 그건 또 뭔…….’
그렇게만 따지면 세상에 안 풀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노래만 잘하면 데뷔도 슥삭이고, 노래만 잘하면 차트 1위에 대상도 금방일 거고, 노래만 잘하면 남북통일이 이뤄지고, 노래만 잘하면 세계 평화가…….”
“설마 루치 너…….”
어처구니가 없어 중얼거리는데, 유성 형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신 없어?”
빠직.
순간 피가 확 도는 것을 느꼈다.
“자신?”
“왜, 있잖아. 얼굴 가리고 뛰면 너라는 걸 모르니까. 그냥 실력으로 밀어 버릴 자신이 없는 거 아니야?”
‘진정하자. 진정하자. 진정…….’
머리로는 알고 있다.
‘도발이야. 이건 도발이야. 격장지계야. 기만전술이야…….’
유성 형이 내 걱정이 뭔지 다 알면서 억지로 자존심을 긁어 회사에서 한 기획을 밀고 나가고 싶은 것이라는걸.
‘도발인데…….’
하지만 가슴은 머리와 달리 울컥 솟아오르는 열불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열받네.’
이 아저씨가 나를 뭐로 보고.
“합시다, 해요.”
“오? 정말? 역시, 우리 루치! 이럴 줄 알았어!”
나는 결국 그 독이 잔뜩 발린 사과를 크게 한입 베어 물고 말았다.
눈에 훤히 보이는, 서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 도발을 받아서.
‘아……. 이거 좀 아닌데…….’
역시 한번 떠올린 불안감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일단 일을 받았으니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 전에 팀원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일단 멤버들이랑 구체적인 검토는 해 보고요. 괜찮죠?”
“응, 그럼. 당연하지.”
만일 멤버들 중 이 기획에 반대하며 타당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부 백지화를 시키게 될 것이다.
럭키데이 때부터 지금의 삵에 이르기까지, 리더 역할을 맡아 내가 해 온 것이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유성 형은 기획이 어그러질 것이라는 걱정은 전혀 없다는 듯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지었다.
‘뭐지?’
묘한 자신감.
혹은 자신이 설계한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듯한 음습한 기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나는 그 자신감의 근거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난 좋아.”
“나……. 도…….”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자마자 세명 형과 하은 형이 동의의 의사를 표했다.
“오, 그거 제가 낸 아이디어입니다. 복면 난입.”
주영 형은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대폭 반영되었다며 좋아했다.
“아……. 얼굴 가리는 건 좀 아쉬운데. 일단 찬성.”
옥선이는 아쉬워하면서도 찬성을 입에 담았다.
“아……. 그렇구나……. 다들 찬성이구나…….”
알겠다며 기획에 찬성한 한편 마음 한구석으로는 멤버들 중 반대 의사가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어쩌면 유성 형은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 아저씨…….’
당했다.
당해 버렸다.
‘이미 판 다 깔아 놓고…….’
아이디어는 주영 형이 냈겠다, 세명 형, 하은 형이야 돌발적이고 난폭한 퍼포먼스가 넘치는 인디 출신이겠다, 옥선이는 뭐 하자고 하면 반대하는 성격도 아니겠다, 전부 계산을 세워 둔 것이다.
“그래요……. 하는 쪽으로 얘기하고, 연습 계획 짜 볼게요…….”
“어째 힘이 없다?”
“하하……. 아닙니당…….”
한 줄기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난입 퍼포먼스……. 너무 무례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충격적인 비주얼은 가지도록…….’
무대를 어떻게 꾸밀 것인지, 어떤 내용을 화면에 담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결과물을 만족스럽게 뽑으려면 이거 설렁설렁은 못 하겠는데?’
결국 그런 생각이 들었다.
‘퇴근 시간은 못 지켜 주겠어.’
우리 밴드가 워라밸 따위를 지키는 일은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잠깐 모여 볼까요?”
“응?”
“회의?”
“응. 연습 일정이랑 계획 좀 짜게.”
지금부터 앨범이 완성되기까지 몇 주 동안 연습으로 한참 굴러야 할 우리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스으읍…….”
“뭐야, 왜 그래?”
“뭔가 도축장 돼지가 된 느낌인데.”
“착각입니다, 착각.”
군침이 싹 돌았다.
‘굳이 힘들고 어려운 홍보 기획을 받아들인 대가는 치러야겠지.’
모두 그들의 선택이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나는 천천히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매일 출근과 추가 합주 연습. 가끔은 주말 출근에 연장 연습까지.
하나하나 일정 계획이 추가될수록 멤버들의 표정들이 눈에 띄게 굳어 갔다.
뭔가 스트레스가 쫙 풀리는 느낌이었다.
“구르자, 굴러! 빡세게 굴러서 제대로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