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32
131화
“여러분 지금 즐기고 계신가요!”
“네에에에에!”
“아하하, 저희도 즐겁습니다. 그럼 오늘 1차 공연의 여섯 번째 곡…….”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밴드 중 하나, 디밴드의 콘서트.
지금 막 다섯 번째 곡 벚나무 아래에서가 끝나고 여섯 번째 곡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모두 꼼짝 마!”
열정 넘치고 흥 넘치고 사람도 넘치는 그곳에 복면을 쓴 괴한들이 등장했다.
“으악! 테러리스트다!”
“전부 무릎 꿇어! 드러머 아저씨도 내려와!”
괴한들은 한 곡의 연주를 마치고 다음 곡을 시작하려던 디밴드의 악기를 빼앗고, 무대 위에 주저앉혀 주변을 장악했다.
그들의 손에는 무시무시한…….
“저 총 뭐야?”
“장난감이지?”
“그렇네.”
장난감 총이 들려 있었다.
“루치야, 총 그거 뭐야?”
“그래도 복면 쓴 괴한 콘셉트인데 총 정도는 드는 게 어떻냐고 하더라고요.”
“아하……. 근데 좀 그렇다.”
대한민국 법률상 모형 총기는 실총으로 오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눈에 띄는 색으로 만들어지거나, 도색 혹은 도금되어 있는 부분이 필요하다.
세명 형, 하은 형, 주영 형, 옥선이가 든 M16 장난감 총처럼 총구 부분에 주황색 플라스틱 파트가 붙어 있거나…….
“네 덩치에 핑크는 좀 아니지 않나…….”
나처럼 분홍색 몸체에 토끼 문양이 그려져 있는 귀욤귀욤한 모습을 가지고 있거나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성 형 이 아저씨가 진짜…….’
알아서 다 준비해 주겠다는 유성 형의 말을 믿고 그냥 손 놓고 있던 내 잘못이다.
‘굳이 이런 걸…….’
다른 멤버들은 다 멀쩡한 걸로 가져다줬으면서, 나한테만 튀는 색을 넘겼다.
분명 놀리려는 수작인데, 전혀 예상 못 한 일격을 맞은 기분이라 타격이 좀 크다.
하지만 견뎌 내야 한다.
“조용! 지금부터 이 무대는 우리 복면 쓴 밴드단이 접수한다!”
야심 찬 홍보 기획의 성공을 위해서.
땅! 땅!
장난감 총에서 비비탄을 발사하며 엄포를 놓는다.
핑크 토끼 소총에서 뭔가 튀어나와 봤자 그리 무서워 보이지는 않겠지만…….
“으악! 너무 무섭다!”
“아이고, 제발 살려만 주십쇼!”
“조용! 조용!”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장단을 맞춰 주는 임대현 선배님과 박창희 형님 덕에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뭐야?”
“준비된 이벤트인가? 얘기 없었는데.”
“초청 아티스트인가 봐.”
“근데 왜 마스크를 쓰고 나왔지?”
“핑크 총 귀엽다.”
관객들은 웃기도 하고, 우리 정체를 궁금해하기도 하고, 복면이나 총 같은 아이템들에 집중하기도 하며 우리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했다.
‘계속 보다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부끄러운 아이템이었는데, 계속 들고 휘두르다 보니 은근히 멋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핑크핑크해서 뭔가 게임 아이템 같기도 하고.
‘아니,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며 다른 생각에 빠질 뻔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상황극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노래로 세상을 지배할 악의 조직……. 뭐였더라?”
“복면 쓴 밴드단.”
“그래. 복면 쓴 밴드단이다.”
진지한 말투에 잔뜩 내리깐 목소리로 보여 주는 다소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운 행동 덕에 재밌는 장면이 연출된다.
“하하하하!”
“뭐야 그게!”
꽤나 우스운 설정이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니, 관객들은 웃음과 환호를 보내 주었다.
나는 여세를 이어 나가기 위해 준비된 멘트를 쳤다.
“쉽게 설명하지. 여기 있는 디밴드라는 사람들은 인질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노래를 한 곡 부를 건데, 만일 여러분의 박수와 호응이 기준에 미달한다면…….”
나는 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애견용 미용기로 인질들의 머리를 밀어 버릴 것이다.”
“오오, 맙소사. 우린 너무 잔인해.”
“오는 길에 애견 숍에서 구입했지.”
“현금영수증도 받았다고.”
“소득공제는 중요한 법이지.”
맥락 없는 행동에 어처구니없는 내용.
세명 형과 옥선이가 내 말에 이어 툭툭 던져 대는 헛소리가 기묘한 티키타카를 만들었고, 이것은 관객들에게 큰 병맛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푸하하하하!”
“와아!”
“노래해! 노래해!”
나는 마이크에 이발기를 가져다 대고 스위치를 올렸다.
위이이이이잉!
미용기가 작동하며 진동음을 만들어 냈다.
“제대로 호응하지 않는다면, 인질의 모발 건강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야, 잠깐만. 이거 진짜 작동하잖아?”
“진짜로? 진짜 미는 거 아니지? 형이야, 형.”
“조용!”
순간 화들짝 놀란 임대현 선배와 창희 형님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지만, 과장된 위협으로 입을 닫게 만들었다.
지금은 설정 놀음이 중요한 타이밍이다.
‘집중력은 꽤 올라온 것 같고……. 시작해도 되겠는데?’
끄덕.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복면맨들, 우리 삵의 멤버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그들은 장난감 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각자 디밴드 선배님들의 악기들을 포지션에 맞게 주섬주섬 주워 들었다.
딩, 딩딩, 디이잉.
직전에 불렀던 디밴드의 곡은 벚나무 아래에서.
우리가 준비한 이번 프로젝트 앨범의 타이틀곡, 나빌레라와 톤이 비슷해 그들이 만져 둔 세팅 그대로 연주하기에 괜찮았다.
“설계대로?”
“괜찮은 듯.”
“여기도 괜찮습니다.”
“나…….. 도…….”
미리 합의된 타이밍에 나왔고, 큐시트 내용 그대로 공연이 진행되었으니 우리 퍼포먼스에 지장이 생길 만한 문제는 딱히 없었다.
디밴드로부터 미리 공유받았던 설정 그대로 소리가 세팅되어, 이펙트만 바꿔 끼우면 되게끔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좋아. 여러분의 박수와 호응과 함께 노래를 시작하겠다. 명심하도록.”
위이이잉!
“제대로 된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면 디밴드의 머리는 없다!”
“와아아아아!”
공연 주인들의 머리를 가지고 협박하는데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기묘한 상황.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나조차도 어이가 없을 노릇이다.
‘아니, 이게 왜 먹히지?’
퍼포먼스 자체가 우습고 파격적이라 어느 정도 현장 반응이 괜찮게 나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호응이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
공인이며 콘서트에 자주 오는 충성팬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디밴드가 평소에도 콘서트에서 여러 종류의 이벤트며 초청 무대를 보여 줬기 때문인지, 당황보다는 기대와 즐거움이 그들의 눈에 가득했다.
‘진짜 잘해야겠네, 이거.’
첫 반응은 괜찮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좋은 무대를 만드는 것.
돌발 이벤트로 끌어올린 이 집중력과 관심을 좋은 무대를 통해 데뷔 시점까지 끌어가야 한다.
끄덕.
앞에 앉아서 우리 모습을 지켜보던 창희 형님이 고개를 끄덕여 응원을 해 주었다.
힘이 나는 느낌.
이 기획이 꼭 성공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우우……. 오케이. 박수와 함성!”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나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입에서 마이크를 때고 심호흡을 한번 한 후,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옥선이와 눈을 마주쳤다.
끄덕.
옥선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드럼 스틱을 두드려 합주 카운트를 센다.
딱! 딱! 딱! 딱! 부우우웅……. 두웅, 둥 두둥, 두루루룸, 둠…….
그 소리에 맞추어 주영 형의 베이스 리듬이 연주의 스타트를 끊었다.
톡, 톡, 톡, 톡. 여유 있는 발걸음을 연상시키는 즐거운 리듬이다.
딩, 딩, 딩 디딩. 딩, 딩, 딩 디딩.
하은 형이 오른손으로 줄을 뜯어 튕기는 소리를 만든다.
여유로운 소리 사이 팝 팝 하는 느낌으로 터져 대는 리듬이 흥겨웠다.
판은 깔렸다.
“흠흠, 흠, 흠흠…….”
이제 관객들을 복면 쓴 괴한의 노래로 유혹할 차례다.
“한 걸음 앞의 향기로운, 꽃밭에 앉은 저 하얀 나비.”
소리를 살짝 띄우고, 순수하고 천진한 듯한 화자의 이미지를 만든다.
“활짝 웃는 해님 아래 따사로우니, 나를 봐도 도망치지 않네.”
두둠, 둠!
“이야…….”
“괜찮은데?”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와 연주자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하는 복면 괴한들.
그 기괴한 설정과 달리 따뜻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노래가 나오니 순간 분위기가 반전된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사뿐사뿐 걸어 다가가니, 팔랑팔랑 제자리에서.”
다라단!
“네가 오든, 말든 나는 상관없으니. 빛을 가리고 있지 말라 말하네. 후!”
딴딴, 딴, 따단! 드르륵! 딴딴, 딴, 따단! 드르륵, 채애앵! 딴따단 딴, 딴따단딴 딴따다다단, 딴따단딴 딴따단딴. 채애앵!
다분히 동요스러운 스토리텔링.
가볍고 따뜻한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가사와 보컬.
듣는 귀가 피로하지 않게 설계된 노래다.
“와, 이거 좋다.”
“노래 제목이 뭐지?”
일부러 달리는 곡인 벚나무 아래에서 다음에 올라와 부른 보람이 있었다.
열심히 듣고 뛰노는 동안 즐거웠을 테고, 관객들은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라 땀을 흘리는 상태.
피로를 풀어 주듯 따뜻한 노래를 끼얹어 반전 매력을 보여 준다.
괜히 올려 둔 분위기를 팍 식히는 선곡이 아닌, 과열된 열기를 다스리고 피로를 풀어 주는 선곡.
‘세명이 형이 은근 세심하단 말이야.’
선곡과 배치, 난입 타이밍 등을 조율할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세명 형의 의견이었다.
“바윗길, 세찬 강물, 비 오는 날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맛난 꿀도 금도 아닌 따순 햇살이, 나비가 내게 보여 준 보물이라네. 헤이!”
신나게 노래했다.
가사가 감히 청자를 가르치는 내용처럼 들리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듣는 사람이 삵의 여행에 합류해 함께 즐기며 걸을 수 있길 바라면서.
그리고 내 기도에 응답하듯 후렴이 모두 끝난 간주 타이밍, 관객들은 웃는 얼굴로 호응해 주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박수와 함께 쏟아지는 함성.
‘크……. 좋다.’
미칠 듯이 짜릿했다.
“흠흠흠, 흠, 흠, 흠흠……. 흠흠흠흠, 흠, 흠흠……. 흠흠…….”
순간 신이 나서 커지려던 소리를 겨우 조절해 콧노래 소리를 간주에 섞어 보냈다.
살랑이는 바람처럼 느껴지도록, 아주 작게, 여리게.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고, 눈을 감고, 작게 미소를 짓고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편히 들리도록.
3분 남짓의 짧은 노래 시간이 힐링이 되도록.
“흠흠 흠흠, 흠, 흠흠…….”
우리 노래에 공감해서 다시금 우리를 찾을 수 있도록.
* * *
“잘한다…….”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콘서트장을 찾은 관객 박지혜는 복면을 쓰고 미스터리를 유지한 채 노래하는 게스트 아티스트들을 보며 감탄했다.
‘기성 가수인가?’
예고 없는 깜짝 난입에 놀라고, 우스꽝스러운 그들의 모습에 크게 웃고, 이어진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노래에 감탄했다.
그녀는 정체를 감추고 등장한 저들이 대체 누구인지,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때.
“목소리가 좀 익숙하지 않아?”
“그러게. 많이 들어 본 음색인데.”
이 따뜻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다는 듯, 떠드는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라? 그러게? 이 목소리 뭔가 익숙한 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분명 자주 듣던 소리였다.
그녀는 목소리를 감상하며 무대를 매의 눈으로 살펴봤다.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
얇게, 따뜻하게,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주제에 꽤 멀찍이 떨어뜨려 놓은 마이크.
큰 키에 커다란 덩치.
그리고 그녀는 알아챘다.
‘럭키데이? 저거 럭키데이 보컬 김루치아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