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33
132화
관객석이 술렁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살짝살짝씩 귀에 들어오는 소리에 럭키데이니, 김루치니 하는 단어들이 섞여 있다.
‘하긴, 제대로 숨길 수 있을 리가.’
애초에 나처럼 눈에 띄게 큰 체구가 흔한 것도 아니고, 디밴드 공연장에 와 있을 사람들이면 반 정도는 내 목소리쯤은 들어 본 사람인 게 당연하다.
자주 교류하던 선배들이고, 가끔 공연에 도움을 주고받기도 했으니까.
못 알아볼 리가 없지.
‘회사에서 알아서 잘해 주겠지?’
어차피 정체가 들킬 것은 예견된 일이고, 심지어 일정 부분 정도는 의도한 것도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관심이 김루치아노라는 보컬 한 사람에게만 쏠리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웹 예능 업로드와 앨범 발매일 근처까지 그 관심을 유지하고, 한 방에 빵 터뜨리는 것.
여기서부터는 내가 아니라 회사가 할 일이다.
“바윗길, 세찬 강물, 비 오는 날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맛난 꿀도 금도 아닌 따순 햇살이, 나비가 내게 보여 준 보물이라네. 헤이!”
딴, 따단, 따단! 채애앵!
내가 생각할 것은 오직 노래.
집중해서 완벽하게 무대를 그려 내는 것에 족했다.
“와아아아!”
“김루치! 김루치!”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의 환호성이 크게 울렸다.
‘아이고. 이제 아주 그냥 나라고 확신들을…….’
기껏 답답한 복면까지 쓰고 올라왔더니, 목소리를 듣고 알아챈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예 내 이름을 연호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그래도 할 일은 하고 내려가야지.
뒷일은 유능한 우리 직원분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음. 만족스러운 반응이군. 이 정도면 인질을 무사히 해방해도 되겠어.”
점잖은 척, 내리깐 목소리로 준비된 멘트를 날렸다.
“그럼 우리 정체불명의 괴조직! 복면 쓴 밴드단은 물러나겠다. 얘들아, 가자!”
“오우오우!”
“푸하하하!”
“뭐 하는 거야? 하하하!”
우리는 각자 악기를 내려 두고, 팔을 붕붕 돌리거나, 폴짝폴짝 뛰거나, 양팔을 위로 들고 좌우로 마구 흔드는 등,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달려 무대 뒤를 향해 사라졌다.
“휴……. 정말 큰일이었다, 그죠?”
“하하하하!”
“네에에!”
“도대체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저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무서운 짓을 벌이고 다닌다니. 음악계의 앞날이 심히 걱정됩니다.”
우리가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사이, 임대현 선배가 마이크를 붙잡고 멘트를 날렸다.
물론 준비된 대로, 금방 올라왔다가 사라진 괴인들의 정체가 모른다는 콘셉트를 유지한 채 말이다.
“방금 김루치 맞지?”
“응. 나 럭키데이 앨범도 다 있어. 루치아노 맞아.”
“근데 다른 멤버들은 어디 있지? 왜 다섯 명이야?”
“몰루? 그러게?”
퇴장 직전에 애써 정체를 감추는 사람을 연기하듯 뱉은 내 말과, 나와 비슷한 뉘앙스로 떨어진 대현 선배의 멘트.
그것은 오히려 관객들의 의문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왜 김루치아노가 디밴드의 공연에 복면을 써서 정체를 감추고 나왔는가?
그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그 이외의 연주자 네 명은 누구인가?
‘지금 당장의 효과는 괜찮은 것 같은데?’
관객들의 반응이 좋다.
일단 우리가 의도했던 그 의문을 유도하는 것에는 충분히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사전 홍보 일정이 끝난 후, 웹 예능이 올라가고 삵의 데뷔에 관한 보도가 나가고부터다.
“지금 찍은 사람들 많았던가?”
“꽤 되던 것 같은데. 핸드폰 많이 보이더라.”
“저 사람들이 영상 어디에 올리면 나중에 우리 얘기 나가고 다시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한다, 뭐 그런 거지?”
“그렇죠.”
지금은 왜 김루치아노가 럭키데이 멤버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가린 채 공연에 난입하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데에서 끝.
여기서 의문과 관심을 차근차근 쌓았다가 우리의 활동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때, 그 의문이 풀리면서 관심이 펑 터지고, 우리 삵의 활동의 부스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래야 한다.
그때 그 또라이들이 얘네였구나, 삵이라는 놈들 정체 감추고 무대 오른 거 봤는데 괜찮더라, 같은 반응이 생기며 우리 앨범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모이는 식으로 말이다.
“후……. 계획했던 그대로 일이 좀 풀렸으면 좋겠는데…….”
“잘되겠지.”
“그럴 겁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계획을 수행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기획 자체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다소 불안한 감이 가시지 않았다.
복면을 벗고 땀을 식히며 말하는 내게 세명 형과 주영 형이 응원을 건네왔다.
“그렇겠죠? 그래야 돼요…….”
그래도 멤버들이 옆에서 다독여 주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후우우우우…….”
길게 숨을 내뱉었다.
대충 달아올랐던 흥이 식었고, 몸에서 힘도 다 빠졌으니 다음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도 될 것 같았다.
“오케이, 오케이. 일단 고생 많았어요.”
“너도.”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수고!”
바들바들바들바들바들바들바들바들바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덜덜 떨며 자기 기타를 꼭 껴안고 있는 하은 형을 제외한 모두가 내 말에 반응하며 오늘의 성과를 자축했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이고, 앞으로 무대가 두 개 남았어요.”
“뷰마스터 형님이랑 레나 누님.”
“네, 맞아요. 우리 회사 동료 아티스트들의 콘서트 난입이죠.”
우리가 난입 퍼포먼스를 보이기로 예정되었던 무대는 셋.
그중 첫 번째인 디밴드의 콘서트는 금방 끝났으니, 남은 것은 솔로 락 가수 뷰마스터의 야외 공연과 솔로 뮤지션 유레나의 콘서트다.
“오늘 한 퍼포먼스 되게 좋았어요. 그런데 디테일에서 조금 차이를 줘야 해요.”
우리는 그 난입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이랑 비슷한 맥락으로 가긴 하겠지만, 어제 말씀드린 대로…….”
“연속성이 눈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지?”
“네. 맞아요.”
나는 세명 형의 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속성.
나는 이 이벤트를 연속성을 가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다.
“웹 예능을 통해 보여 줄 무대 뒤의 모습과 이어지는, 하나의 드라마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비슷하되 다른 모습이 필요하겠죠.”
“어떤 부분에서?”
“미리 생각한 것들이 몇 개 있는데, 일단은…….”
1편부터 3편까지를 모두 시청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걸 다 보고도 궁금해 웹 예능을 찾아보고, 발매된 앨범의 노래들을 찾아 듣게 되는 드라마로 말이다.
* * *
“으하하하! 모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고개를 숙여라!”
“여기는 우리 복면 쓴 가면단이 접수한다!”
같은 회사의 선배 아티스트 뷰마스터의 무대.
우리는 전과 같은 복면을 쓴 채 난입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며칠 전 우리는 한국 최고의 밴드, 디밴드의 무대에 올랐다.”
나는 비장한 톤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았지.”
“후…….”
“이놈의 인기란…….”
세명 형과 옥선이가 추임새를 넣으며 멘트 사이사이에 개그 포인트를 넣어 주었다.
“하하하!”
“저게 뭐야? 미쳤나 봐!”
“나 따북에서 봤어. 디밴드 콘서트에 난입해서 한 곡 빠르게 부르고 퇴장했다던데?”
“임대현 붙잡아 두고 호응 별로면 머리 밀어 버린다고 협박하면서.”
“복면 쓰고?”
디밴드의 콘서트에서 벌어졌던 일이 입소문을 탔는지 지금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있었다.
그렇게 큰 성과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고무적인 일임은 틀림없었다.
‘좋아, 좋아. 오늘 것까지 퍼지면 주목도는 꽤 올라가겠어.’
우리 퍼포먼스가 아예 관심 밖으로 사라질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니, 연속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소문을 탈 여력이 충분했다.
내 생각은 아니고, 유성 형과 홍보팀 김 팀장님이 말해 준 추상적인 판단 기준에 따른 추측이었다.
나는 관객들을 향해 말을 이어 나갔다.
“아쉽게도 우리 악의 조직 밴드 쓴 복면단은…….”
“반대, 반대.”
“아, 맞아. 복면 쓴 밴드단은 지금 당장 정체를 밝힐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한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다니지만, 언젠가 밝은 세상으로 나아갈 때를 대비해 여러분의 마음을 미리 훔치고 있다.”
말인즉슨, 데뷔가 얼마 안 남았으니 시선 좀 끌어 보겠다는 뜻이다.
“오늘도 역시 노래를 하고 내려갈 텐데, 만일 호응이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할 시 여기 있는 뷰마스터는 남은 콘서트 시간 동안 우리가 준비한 이 옷을 입고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끄덕.
뒤에 서 있던 주영 형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옷 한 벌을 꺼내 머리 위로 높게 들어 관객들에게 보여 주었다.
웃음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 저게 뭐야!”
“귀여워어어!”
하얀 배경에 분홍빛으로 그려진 타원형이 눈에 띄는 토끼 머리띠와, 복슬복슬 퐁실퐁실한 꼬리의 질감이 꼭 안아 주고만 싶은 솜털 옷.
유아 대상 행사 때나 입고 나갈 법한 인형 옷이다.
“여러분의 카리스마 락 가수, 뷰마스터의 굴욕적인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아주 좋은 반응을 보여 줘야 할 거야.”
“아주 그냥! 응!”
“박수! 함성!”
바리깡 하나 손에 들고 했던 협박과는 달리 눈에 들어오는 비주얼이 있다 보니 꽤 우스운 광경이 연출된다.
만약 이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다시 본다면, 며칠 전 디밴드의 콘서트에서 보였던 퍼포먼스와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쉬울 것이다.
내용이 조금 바뀐 입장 멘트. 그리고 머리를 밀겠다는 지난번 협박과 달라진 내용의 인형 옷을 입히겠다는 협박.
상당히 잡스럽지만 나는 나름 괜찮은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건, 지난번 퍼포먼스와 다음번 퍼포먼스를 비교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도록 만들 수 있다는 뜻이지.’
물론 다른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럼 지금부터 노래를 시작하겠다.”
“모두 박수와 함성!”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손뼉과 환호성을 등에 업고 노래를 시작한다.
지징, 징징, 지지징, 지징, 징지징, 지지징…….
“작은 주둥이에 고길 물고, 바닥을 기는 저 악어. 웅덩이에 처박혀, 나아가질 못하네, 아아아.”
세명 형의 클린톤 배킹에 의지해 가사를 뱉는다.
지금 부르는 노래는 앨범의 세 번째 수록곡, 작은 악어.
“와……. 노래 좋다…….”
“라이브는 처음 듣는데, 김루치 진짜 장난 아니네…….”
“근데 디밴드에서 했던 노래랑 다른 곡인데?”
지난번 난입 퍼포먼스에서 했던 나빌레라와 다른 곡.
‘맛보기라고 생각하십쇼, 여러분들.’
디밴드의 공연에서 나빌레라를, 이번 뷰마스터의 공연에서 작은 악어를, 다음 유레나의 공연에서 평화를.
각각의 퍼포먼스에서 각기 다른 노래를 부른다.
그렇다.
‘앨범 나오기 전에 미리 들려주는 거니까.’
나는 이 세 번의 퍼포먼스를 우리 앨범의 티저, 혹은 쇼케이스로 삼을 생각이다.
미발표 신곡 세 개를 마치 시식 코너의 음식처럼 늘어놓고 말이다.
‘한번 잡솨 보셔!’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끔, 나는 부드럽게 반주에 잘 섞여 들도록 노래를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