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34
133화
“루치야아아아!”
새 활동기를 맞아 금발로 염색해 반짝반짝한 스타일로 변화를 꾀한 유레나.
길쭉길쭉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준수한 작곡 능력과 훌륭한 노래 실력으로 유명한 그녀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온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유레나 선배는 언제나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엇, 어어어. 조심해요, 조심! 앞에! 가방!”
언제 넘어질지 몰라서.
턱!
“으얽!”
와장창!
반갑다며 뛰어오다가 가만히 있던 가방에 걸려 넘어지는 꼴을 보면, 참 저런 사람이 또 있나 싶다.
무대에서 입었던 옷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뒹굴며, 그녀는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밖에서는 초특급 수퍼스타인 내가 대기실에서는 덜렁이 바보 멍청이?’
뭔가 만화 캐릭터 같은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으니, 아마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저 상태 저 모양 그대로가 아닐까 싶었다.
“아핫핫! 누가 이걸 여기다 둔 거야! 루치 안녕!”
“아까도 봤는데 인사를 또…….”
“아핫핫핫! 그렇지, 맞다. 인질로 잡히기까지 했지, 참!”
레나 선배는 호탕하게 웃으며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나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공연이 이제 막 끝나서 피곤할 텐데,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우리 대기실로 와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니.
신경 써 주는 것이 눈에 보여 너무나 고마웠다.
“오늘 완전 멋있었어! 대박이야! 앨범 나올 때 되면 말해 줘! 몇 장 사야겠어.”
그녀는 난입 퍼포먼스를 크게 호평했다.
들어 보니 노래도 좋고, 밴드 사운드가 너무나 좋아서 소장하고 매일매일 듣고 싶단다.
“하하……. 감사합니다, 선배님. 나중에 따로 챙겨 드릴게요.”
같은 회사에서 자주 얼굴을 마주치는 친한 관계였기에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녀의 도움 덕에 오늘로 복면 난입 기획 3회차를 마칠 수 있었다.
“어허. 선배님은 무슨. 눈나 해 봐, 눈나!”
“이모?”
감사의 마음을 담아 경의의 호칭을 뱉었다.
“뒤진다.”
“죄송합니다.”
죽을 뻔했다.
“오늘 일정이 마지막이지? 이제 너튜브에 다큐? 리얼리티?”
“일단은 웹 예능이라고는 하는데, 영상을 못 봐서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예능이라고만 하시면 돼요.”
“그래, 예능. 그것도 올라가고, 앨범 나오면 활동 들어가고?”
“네. 그래야죠.”
“그러면 타이밍 맞춰서 누나한테 얘기 좀 해 줄래? 지유 알지? 걔가 라디오 하잖아. 게스트로 나가서 홍보도 한번 하고…….”
레나 선배는 우리의 앨범 발매와 데뷔를 도와줄 법한 조언과 기회를 퍼주었다.
회사 동료이기도 하고, 오늘 노래를 들어 보니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꼭 잘되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오 그러면 저희야 감사하죠.”
이런 도움을 마다하면 또 도리가 아닌 법.
난 냉큼 라디오 게스트 출연이며, SNS 태그 같은 직간접적인 도움 제안을 수락하고, 선배와 일정을 공유했다.
“그러면 나중에…….”
“네. 유성 형 통해서…….”
다른 가수들 무대에 복면을 쓰고 난입하는 거창한 짓거리를 하다가 온건하고 정상적인 홍보 방법을 제안받게 되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뷰마가 그렇게 칭찬하더니, 난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근데 관객들 반응 장난 아닌 거 있지? 다음 공연에도 너희 왔으면 좋겠어. 락 밴드 초청이 분위기 살리는 데에는 정말…….”
오늘 공연에 대한 감상은 어떤지, 우리 앨범의 트랙들이 어떤 느낌으로 흘러가는지, 요즘 집중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등.
거나하게 먹고 마시는 회식 자리도 아니지만, 소소하게 뒤풀이를 하는 맛이 있었다.
‘아. 이제 조금 쉬엄쉬엄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
아니, 어쩌면 급하게 준비했던 일이 다 끝났다는 시원함 덕에 더 기쁜 것일지도 몰랐다.
이제 어떤 자세로 난입해야 더 등신처럼 보일지, 복면을 미리 쓰고 있을지 올라가기 직전에 쓸지 따위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똑똑똑!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유성 형인가 보다. 들어오세요!”
나는 노크의 주인공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얘들아, 지금……. 오, 레나 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매니저님도요! 오홍홍!”
아니나 다를까, 공연이 끝날 때까지 차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기다리던 유성 형이다.
“그럼 나도 가야겠네.”
“아, 벌써 가시게요?”
“응! 내일 공연도 있고, 일찍 자야지.”
“벌써 열 시라서 일찍은 아닌데…….”
“습!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넵.”
유성 형의 등장과 함께 레나 선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 늦은 시간이다.
오랜 시간 콘서트를 진행했으니, 혼자서 편히 쉴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아아아……. 시간 좀만 더 있었으면 너희랑 얘기 좀 하고 가는 건데!”
아닌가?
“들어가셔야죠……. 내일 공연도 있는데.”
“그렇지……. 그럼 누나 갈게! 하은이, 세명이, 옥선이, 꽃돌이도 안녕!”
“꽃돌…….”
“조심히 가세요!”
“조……. 감……. 안녕히…….”
“감사했습니다, 선배님.”
레나 선배가 우리의 인사와 함께 퇴장하고,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성 형이 대기실에 들어오면서 뭔가를 말하려 했던 것도 같은데, 차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충분할 것이다.
우리는 짐을 챙겨서 차로 이동해 자리를 채웠다.
“휴……. 고생하셨습니다.”
“수고, 수고.”
“수고했슴다!”
차에 시동이 걸리고 공연장을 빠져나가면서, 우리는 오늘 고생한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일부터는 이제 연습만 하면 되는 거지?”
세명 형이 가방을 주섬주섬 정리하면서 내게 물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스케줄 표를 보고는 답했다.
“네. 금요일 회의 빼고는 아무것도 없네요. 연습만 해도 될 듯.”
“오케이.”
이틀에 한 번쯤 꽤 여러 곳을 돌아다녀야 했기에 연습실보다 자동차가 더 친근한 느낌이다.
우리의 고향, 연습실로 돌아가도 된다는 사실이 퍽 기뻤다.
‘아쉬웠던 점들 모니터링 진행하면서 연습하면 되겠다.’
라이브 무대를 꾸미며 살짝 부족했던 점과 아쉬운 점들을 기억하고 있다.
오랜만에 진득하게 연습을 하면서 지적과 지적이 넘치는 파티를 벌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잠깐 생각하다가 퍼뜩 기억이 났다.
“유성 형, 아까 무슨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응? 할 말? 아, 맞다.”
대기실에 들어오며 하려고 했던 말이 잠깐 끊겼는데, 들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급하게 이어 나가지 않았으니 좋은 소식일 것이라 기대하며, 나는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
“빨리 말해 봐요, 빨리.”
“아, 그래. 알았어, 알았어. 크흠. 일단 너희 영상들 관객들 손으로 풀린 거 알지? 직캠.”
“네.”
“봤어요. 너튜브에서.”
“댓글 보니까 옥선이랑 루치는 알아보는 사람이 꽤 있던데요?”
아닌 게 아니라 벌써 디밴드와 뷰마스터의 공연에서 보였던 퍼포먼스가 현장에 있던 관객들의 손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라이브 현장에서도 정체를 반쯤 들킨 나는 물론이고, 대중들에게 적지 않게 알려져 있는 옥선이도 그 정체를 파악당한 지 오래.
“그래! 일이 제대로 풀리고 있어! 회사에서도 어떻게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리냐고 감탄하고 있다니까? 크으으……. 너희 진짜 제대로 될 건가 봐.”
유성 형은 아주 좋은 현상이라며 껄껄 웃었다.
“좋은 거야?”
“좋죠. 저희가 티를 팍팍 내기는 했지만, 일단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추측했다는 것에 굉장히 만족할 테니까요. 재미도 있었을 거고.”
“하긴. 대놓고 김루치입니다, 하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좀 의도적이었지.”
“알아보라고 떡밥 던진 거니까요.”
정체를 감추는 것에 신경 쓴 첫 무대, 살짝살짝 설정을 보여 주며 흥미를 끌려고 했던 두 번째 무대에 이어, 세 번째 무대에서 나는 절대 나는 김루치아노가 아닌, 가면 쓴 복면단의 리더라는 언급까지 하며 어그로를 끌었다.
“뭐라고 하지? 참여형 콘텐츠?”
“하하. 비슷한 느낌이긴 해요.”
대놓고 정체를 보여 주면서 숨기는 척도 하고, 설정을 내 입으로 직접 언급하기도 함으로써 우리의 행사는 데뷔 직전인 그룹의 홍보 퍼포먼스를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추리 콘텐츠처럼 꾸며 내는 것에 성공했다.
광고처럼 보이는 것보다는 흥미 본위의 놀이처럼 접근하는 것이 훨씬 낫기에, 아주 성공적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웹 예능 올라가기 시작하면 불 제대로 붙을 수도 있겠어.”
“그런 거야?”
“네, 뭐, 그렇죠. 저 복면 쓴 밴드단이 우리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사람들의 흥미가 유지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예능 공개까지 며칠 안 남았으니 상관없을 거예요.”
“오오오…….”
만일 지금의 관심이, 아니, 지금의 관심 중 반만이라도 웹 예능 공개 타이밍까지 유지된다면 조회 수는 눈에 띄게 올라갈 것이다.
해당 장면을 발견한 사람이 이제는 흥미를 잃은 사람들에게도 전파하여 퍼뜨리면 다시 관심에 불이 붙기도 할 테고, 그 관심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애초에 나와 옥선이의 정체가 대충이나마 짐작되게끔 두는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제 팬이나 옥선이 구독자들은 우리 둘이 밴드를 꾸리는 예능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가질 테니까요.”
“확실히 그렇긴 하네. 지금 복면 쓴 밴드단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그 웹 예능에 유입될 테고.”
“네. 우리 난입 퍼포먼스는 숯, 저와 옥선이의 정체를 깨달은 팬들은 번개탄, 웹 예능은 토치가 되겠죠.”
“고기 먹고 싶다.”
“저도요.”
아무튼 그렇다.
우리는 준비한 그대로 멋지게 퍼포먼스를 수행했고, 원했던 결과물을 제대로 눈앞에 깔아 놓을 수 있었다.
“댓글 내용 읽어 줘?”
“어.”
가만히 스마트폰으로 화면을 보던 옥선이가 직캠 영상에 달린 댓글을 읽기 시작했다.
“김루치 왜 저러냐. 덩치가 대놓고 김루치다. 얼굴만 가려 놓고 온몸으로 자기 정체를 말하고 있다. 뭔가 더 큰 것 같지 않냐.”
“푸하하하!”
“고소. 다 고소.”
“칭찬이잖아. 크흡!”
어째서인지 목소리보다 몸집과 덩치에 대한 언급이 더 많았다.
‘나 그렇게 눈에 띄나…….’
고등학교 때에 비하면 무게도 10kg 넘게 빠졌는데 더 커진 것 같다니.
아무래도 살을 조금 더 빼야 하는 건가 싶었다.
물론 음색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김루치아노 목소리 확실하다. 럭키데이 앨범 1, 2집 다 있고 요즘도 듣는데 실력은 더 늘고 목소리는 그대로인 듯.”
“이야……. 역시 대가수 갓루치.”
“에이……. 그냥 제 팬이겠죠.”
나는 익명의 팬분이 남긴 댓글에 마음속으로 무한히 감사를 표했다.
“저거 뷁드럼 아니냐. 드럼 부수려고 팔 높이 드는 거 보면 확실하다. 이야, 내 팬도 있네?”
“나도. 나도 볼래.”
“어허. 읽어 드린다니까요.”
“직접 볼래!”
뜬금없는 옥선이 핸드폰 쟁탈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