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39
138화
“오늘 현장에 계신 여러분, 그리고 화면을 통해 지켜보고 계신 시청자분들 덕분에 이번 삵 미니 콘서트도 꽤 불타오르는 것 같습니다.”
“와아아아!”
“멋지다아아!”
-^^7
-^^7
-삵! 삵! 삵! 삵!
-^^7
야외 공연 무대를 빌려 라이브 방송과 버스킹을 병행한 지 닷새째.
지난 며칠 우리는 나, 세명 형, 옥선이, 주영 형 순으로 각자가 주인공이 되는 공연을 진행했고, 오늘은 하은 형이 주도적으로 무대를 꾸려 나갈 차례였다.
“금방 연주곡 거울성 들으셨고요, 백하은 기타리스트가 보여 주는 북유럽 감성 넘치는 기타의 세계에 다녀오셨습니다. 어떻게 저희가 준비한 무대의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즐거운 시간 되셨으면 좋겠네요.”
-벌써 끝?
-시간 꽤 지나긴 함 ㅋㅋ
-아쉽 ㅠㅠㅠ
-삵! 삵! 삵! 삵!
하은 형은 출중한 실력으로 첫 곡에서 관객들의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두 번째 곡부터는 듣는 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팬으로 만들었다.
이후로도 그의 솜씨는 모든 사람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는데, 역시 연주자가 관심을 받는 방법에는 실력만 한 것이 없다고, 기타 한 자루만 쥐여 주고 해외에 떨궈 놓아도 먹고살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듯했다.
다만 여전히 소극적인 성격 탓에 진행과 멘트는 모두 내가 대신해서 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곡이 남았습니다. 저희 JH 프로젝트 밴드 삵은 내일 앨범 발매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활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추후 활동 및 행사에 대한 공지와, 브이로그와 연습 영상들이 너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니 구독을 눌러 주시면…….”
나는 천천히 여유롭게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게 멘트를 날렸다.
약 두 시간 동안 공연을 진행했고, 남은 것은 마지막 한 곡.
‘드디어 끝이다.’
지난 며칠을 이어 온 행사의 마지막이 보였다.
“그럼 마지막 곡, 사자심왕을 끝으로 저희 삵 물러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
마무리 멘트를 깔끔하게 늘어놓고, 나는 자리를 옮겨 마지막 곡을 준비했다.
기타 둘, 베이스 하나, 드럼 하나가 있는 이 밴드에서 내가 보컬이 없는 연주곡에 기여하는 방법은 지금까지 맡아 본 바 없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
“기타 오케이?”
“오케이.”
“드럼 오케이?”
“오케이!”
“베이스 오케이?”
“준비됐습니다.”
멤버들의 상황을 확인하고, 오늘의 주인공과 눈을 마주친다.
끄덕끄덕.
얕게 고개를 끄덕여 그도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나도 고개를 끄덕여 주고 손을 들어 눈앞의 악기 위에 올렸다.
“후우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흰 건반과 검은 건반 앞에서 나는 익숙지 않은 거대한 긴장감과 마주해야 했다.
‘괜찮아. 연습 때도 잘됐고…….’
플레이리스트의 대부분이 보컬 없는 연주곡으로 채워졌기에 나 역시 밴드의 일원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그 돌파구가 바로 이 전자 피아노였다.
“시작.”
적절히 뜸을 들였다가, 내가 가장 먼저 손을 움직여 연주를 시작했다.
디이잉……. 디디딩딩, 디디딩……. 딩, 딩, 딩, 딩, 딩, 딩, 딩, 딩…….
초원을 떼로 물들이는 사자들을 음표를 통해 그려 낸다.
간격은 빽빽하게, 타건압을 강하게 해서 육중하게 표현해 맛을 살린다.
이윽고 그 뒤로 베이스와 드럼이 동시에 달라붙으며 그 표현에 디테일을 더했다.
두둥, 둥,두둥, 둥……. 두둥, 둥, 두둥, 두두둥…….
순식간에 사자들의 진격이 말을 탄 용맹한 기사들의 전열로 탈바꿈하고.
지이잉……. 지지징, 징징, 지지징…….
전투 시작 직전의 고요함이 일그러지고.
디링, 둥, 두두두두 둥 둥둥, 둥, 두두두두 둥 둥둥!
하은 형의 멜로디와 함께 말굽이 땅을 다지기 시작했다.
“와아아…….”
“진짜 잘한다.”
하은 형이 육중하게 뜯어 내는 기타 소리가 좁은 공연장을 꽉 채운다.
부드럽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그 소리가 어떻게 저리 당당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지, 기타 실력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현장에서 금방 분석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딩 딩디링, 딩 딩디링, 딩 딩 디디링, 두웅! 딩, 차악! 딩딩 디리링.
끊임없이 이어지는 멜로디가 육중한 몸을 내달리는 기병들을 연상시킨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핑거 피킹.
무섭도록 매혹적이고 장렬해 가슴이 떨려온다.
‘원 투 쓰리 포, 원 투 쓰리 쓰리…….’
그 전율에 잡아먹혀 내가 지켜야 할 박자를 잃지 않기 위해 속으로 셈을 하면서 손가락을 놀렸다.
단다단, 딩딩딩, 단다단 디디단단…….
성악을 배우면서, 보컬 레슨을 진행하기 위해서, 작곡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등. 필요에 의해 곁다리로 익힌 피아노 실력이지만, 코드를 맞추며 곡에 풍성함을 더하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다.
물론 방심은 금물.
디디딩, 디이잉. 딴딴, 디딩…….
가끔 급격하게 코드가 바뀌고, 멜로디를 튀게 하기 위해 빠르게 끊어 줄 필요가 있는 부분도 있어 집중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게 일렉트로닉 피아노라 다행이지, 그냥 건반이었으면 조져도 벌써 조졌다.’
익숙하지 않은 라이브 연주이다 보니 가끔 과하게 힘을 주거나 뮤트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다행히도 기계를 통해 소리에 보정을 넣는 전자 악기이다 보니 어떻게든 뭉개서 내 존재감을 감출 수 있었다.
두두둥, 둥, 디리링, 둥……. 드르륵, 둥 둥 두우웅…….
그리 어렵지도 않은 곡을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소화하는 동안, 하은 형의 부드러운 핑거스타일 연주가 흐르고, 절정으로 향하던 곡이 점차 소리를 죽여 부드럽게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화려하게 뻗어 나가던 소리들이 차차 부드럽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더니.
딴, 단 다단, 딴, 단 다단, 딴, 단 다단, 딴, 단 다라란…….
규칙적인 박자 아래서 천천히 한 점으로 모이며 마무리되었다.
“와아아아아!”
“삵! 삵! 삵!”
-삵! 삵! 삵! 삵!
-삵! 삵! 삵!
-삵! 삵! 삵! 삵!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발음도 어려운 밴드 이름을 연호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삵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이렇게 반응이 좋으니 앙코르곡이라도 하고 갈 수 있는 것이지만, 멤버들도 많이 피로해 하고 있었고, 실시간 스트리밍도 칼같이 종료해 버렸으니 그냥 마무리를 해 버렸다.
‘행사 다니기 시작하면 지겹게 해야 할 앙코르인데, 오늘은 좀 쉬어도 되겠지.’
공식 행사도 아니겠다, 앞으로 바쁘게 움직여야 하겠다, 앨범 발매 전 마지막 날 정도는 조금 여유롭게 보낼 생각이었다.
아, 물론 이 시간에 모든 일을 마치고 해산해서 드러누워 쉬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생 많았어. 연습실로 바로 갈 거지?”
“넵.”
“오케이. 안전벨트들 착용하시고. 출발합니다.”
일일 스케줄인 합주 연습은 마치고 쉬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주 풀어져서 못 쓴다.
‘오늘은 좀 일찍 끝내야지.’
그래도 날이 날인만큼, 최대한 여유롭게, 큰 실수가 없는 이상 빠르게 연습을 마치고 귀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 * *
“루치 짜장?”
“간짜장으로.”
“간짜장 셋, 볶음밥 하나, 짬뽕 하나. 오케이.”
“저 잠깐만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응. 밥 오기 전에 들어와.”
“엉.”
방송을 위한 거리 공연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우리는 잠깐 동안 연습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시간을 맞이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끼니는 챙겨야 하는 법.
밥을 시켜 놓고 나는 멤버들이 떠들고 있는 사이 잠깐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왔다.
“뜨으으읏, 뜨어어어…….”
옥상으로 올라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쳐다봤다.
“엣취!”
높고 맑고 파란 하늘을 보니 재채기가 절로 나온다.
‘덥다, 더워…….’
어느새 위대한 발명가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 선생의 업적, 에어컨이 없으면 불편한 계절이다.
군대에 다녀온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고, 지금 삵의 멤버들을 만나 밴드를 결성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아마 앨범 활동을 마치고 행사 일정까지 다 소화할 때쯤이면 시간이 훌쩍 지나 가을쯤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오늘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마쳤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하늘에 달려 있어.’
진인사대천명이라고, 마땅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 마쳤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릴 시간이다.
“요.”
그렇게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정문으로 나간 줄 알고 밑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네. 옥상으로 간다고 말 좀 해 주지 그랬어.”
“아, 하하하.”
세명 형이었다.
“하늘 보면서 여친 생각이라도 하냐?”
“그런 거 없는데요?”
“……없었어?”
“아뇨. 없어요.”
“있었는데?”
“아뇨. 없어요, 그냥.”
“…….”
그는 어색하게 내 근처로 오며 쓸데없는 질문으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삐걱삐걱 움직이며 다른 말을 하는 것이,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왜요? 뭔데?”
“뭐가?”
“뭐 하고 싶은 얘기 있는 거 아니에요?”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있으면 밥 먹으러 내려가기도 해야 하고, 나는 직설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잠깐 생각하다가 내게 물어 왔다.
“배려해 준 거지?”
“네?”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고, 그는 피식 웃고는 부연 설명을 했다.
“솔로 분량 잔뜩 채워서 방송 진행한 거, 행사 공연하는 것처럼 야외무대로 꾸민 거. 전부.”
“음…….”
“솔직히 전처럼 대충 얼개만 짜서 했어도 됐잖아? 라이브 스트리밍이라는 게 뭐 완벽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들 하는 것처럼 소통만 해도 괜찮은데 말이야.”
아무래도 세명 형이 이번 홍보 목적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하면서 내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 낸 듯했다.
‘끙……. 역시 세명 형이랑 대화를 제일 많이 해서 그런가? 의도를 바로 파악해 버리네.’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말하지 않고 있었는데, 대놓고 말하니 괜히 뒷공작이라도 부리다가 걸린 것처럼 당황스러운 기분이다.
대화도 제일 잘 통하고, 연장자로서 멤버들의 컨트롤도 잘해 주고 있는 세명 형이라 그간 제일 많은 교감을 나눈 결과물인 것 같았다.
“일부러 애들 챙겨 주려고. 맞지?”
사실 이 멤버별 솔로 테마를 기획한 것은 세명 형의 말처럼 다른 멤버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맞았다.
“하하……. 티 많이 났어요? 의도가 확 읽히면 기분 나쁠 수도 있을 텐데…….”
“아니, 별로. 뭔가 티가 났다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느낌이 그렇더라고.”
사실 삵이라는 밴드는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그 태생 탓에 먼 미래를 그릴 수가 없었다.
정해진 기간을 모두 채우고 활동 일정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설계한 거지? 삵 활동으로 얻은 인지도를 이후의 활동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하하…….”
그때가 되어서 누군가는 성과를 온전히 손에 쥔 채 떠나고, 누군가는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괜히 일부러 그랬다는 거 티 내면 자존심 상할 것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하필 형이 딱 잡아 버렸네요.”
그렇지 않은가?
모두들 함께 개같이 고생했는데, 이 활동을 통해 얻어 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했다.
그것이 인지도이든, 실력이든, 수익이든.
한 밴드로서 함께 활동했으니 어떻게든 그것을 나눌 기회 정도는 받아야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무래도 그대로 진행하면 한쪽으로만 쏠릴 것 같더라고요. 팬들의 관심이든, 밴드의 주요 이미지든요.”
나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 방송의 테마를 핑계로 멤버들을 조명해 주는 시간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