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4
13화
“만약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면……. 정말로 잘하는 보컬이랑 팀을 꾸리고 싶어. 대리만족이라도 얻고 싶어서…….”
같이 밴드를 하자는 내 제안에 돌아온 답변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그럼 아까 내 노래는 어땠는데? 네가 보기에 같이 밴드 하기에 괜찮았어?”
“좋았어. 아까 에메랄드 랩소디 노래, 격정적이고 고음 처리도 좋았고. 나는 특히 반주에 잘 맞춘 박자 진입이 좋았어. 해외 곡 부르는 사람들이 자꾸 하는 발음 실수도 없었고, 단점 없는……. 앗. 응……. 그랬어…….”
혹시 싶어 물어봤는데 내 노래는 괜찮았다는 평이다.
열심히 평가하다가 마지막에 소심함이 돌아와서 말끝이 흐려졌다는 것만 빼면 나름 평가의 잣대도 있어 믿을 만했고, 재차 권유할 발판 정도는 생긴 것 같았다.
“그러면 영입 제안도 받을 만하다는 뜻이네?”
“아……. 응…….”
너무 밀어붙이는 모양은 아닌가 싶었지만 나도 그런 걸 깊게 따질 여유는 없었다.
이대로 두면 이 친구는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바로 밴드에 조인하라는 얘기는 부담스러울 테니까 여지를 좀 두자.”
수현이는 재우와 다르다.
재우를 대할 때는 간식을 주는 사람이면 누구든 반기는 강아지라고 생각한다.
반면 진수현은 야생의 동물, 예컨대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뒷산 다람쥐 정도로 보는 쪽이 옳을 것이다.
‘섣불리 다가가면 도망칠 거야.’
아직은 먹음직한 밤톨이나 한둘씩 던져 주며 거리를 좁힐 때다.
“이렇게 하자. 합주 수업이 열릴 거라는 건 재우한테 들었지?”
“응.”
“그 수업 신청해서 나랑 재우랑 팀업을 지속해 보는 걸로. 만약 마음이 잘 맞는다 싶으면 아예 밴드로 합류하는 거고. 굿?”
“아…….”
천천히, 공을 들여 꼬시기 위해 우선 미끼를 투척했다.
즉시 같은 밴드에서 음악을 만들며 동고동락하자는 제안을 던진다면 이 온순한 야생동물은 분명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것이다.
그러는 대신 여러 차례 합을 맞춰 보고 서로를 탐색한 후, 확신을 가지고서 함께 팀을 이루자는 말이다.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수현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제발 긍정의 뜻이 나오기를 기도하면서.
“그…….”
그리고 기다리던 그녀의 답변.
“만약……. 밴드를 같이 만들게 되면…….”
“응. 응.”
“열 곡 중 한 곡에는 베이스 솔로를 넣어 줘…….”
“아?”
정말 의외인 말이었다.
“보컬은 그만두기로 했지만, 어쨌든 무대에 서게 되는 거라면 잠깐이나마 주목받는 순간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오호…….”
베이스 솔로라.
보통 절제와 조율이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 베이스이기에 꽤 생소한 말이다.
베이스 기타의 무절제한 오버 플레이는 간혹 곡 전체의 균형을 일그러뜨리고, 듣기 거북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기 쉽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워낙 일렉 기타의 위상이 높아 관객들의 반응을 끌어올리려면 기타 솔로를 넣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메이저 한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마음에 쏙 들어! 얘는 무조건 데려가야 돼!’
내게는 자신 역시 밴드의 일원으로 팬 지분을 받아 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는 어필로 들렸다.
예능이 무엇인가?
예술적인 재주를 선보여 사람들의 관심과 즐거움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수현이의 발언은 예술가의 기본이 단단하게 잡혀 있는 훌륭한 포부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흔치 않은 베이스 솔로를 일정한 패턴 안에 끼워 넣어 선보이면 확실히 사람들의 눈에 띌 확률도 높아지고 괜찮을 것이다.
“좋아. 커버 레퍼토리에 베이스 솔로가 있는 곡을 최소 한 곡 넣을 것. 그리고 앨범을 만든다고 치면 열 곡 중에 한 곡에는 무조건 베이스 솔로를 넣을 것. 이러면 괜찮겠지?”
“응……. 고마워…….”
얘기가 은근슬쩍 밴드에 합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수현은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듯, 내가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줌에 그저 기뻐했다.
‘얘도 살짝 나사가 빠져 있구나.’
이걸 뭐라고 할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모르는 아저씨가 사 주는 솜사탕에 홀랑 넘어갈 애들만 둘을 모은 기분.
아직은 먼 이야기일 테지만 다음 멤버를 받을 때에는 비교적 성숙하고 제대로 된 친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다가올 재앙부터 막고 시작하자.’
나는 은근슬쩍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아, 밴드 결성을 하게 되면 아마 단체 채널을 개설하게 될 거야. 무명에 어린 우리 입장에서는 홍보하기 딱 좋은 장소니까.”
“응.”
“그러니까 미리 이미지를 소모하는 일이 없도록 개인 채널 운영은 뒤로 미뤄 줬으면 좋겠어.”
“아……. 그렇구나……. 알았어.”
얼토당토않은 소리지만 그녀는 쉽게 내 말을 믿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얘가 걱정돼서 하는 소리라지만 너무 억지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 정도로 순수한 영혼이면 오히려 걱정이 더 되네.’
순박하고 유순한 성격 탓일까?
옛날부터 개인 채널을 운영해 온 재우는 어떡하냐는 질문쯤은 던질 수 있을 텐데, 그냥 수긍하는 모습이 어디서 사기라도 당하기 딱 좋을 것 같아 다소 걱정이 들었다.
“그럼 수강 신청 날……. 언제더라.”
“사흘 뒤.”
“그래. 사흘 뒤에 밴드 합주부터 신청하고, 천천히 손바닥 맞춰 보는 걸로. 괜찮지?”
“응.”
“오케이.”
귀하디귀한 드러머야 워낙 매물이 없어 등장하는 순간 낚아야만 하니 뒤로 미뤄 두고, 드러머 못지않게 개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드물어 찾기 힘든 베이스를 이렇게 만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거기다가 연주 재능도 특출나고 편곡 능력까지 완비한 전천후 밴드맨이라니!
‘인복이 흘러넘친다!’
나는 갑자기 로또라도 당첨된 듯한 기분이 들어 크게 웃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운이라는 것은 파도 같은 모양이라 고점이 있으면 저점도 있다는 것을.
* * *
“예? 심사 위원요?”
“그래. 너희 아빠랑 나랑 같이 가기로 했어.”
“아아……. 그렇게 갑자기…….”
멘토링, 밴드 동료 영입, 그리고 여유로운 커피 한 잔까지 마친 나는 좋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청천벽력을 맞아야만 했다.
“아들이라고 따로 봐주는 건 없는 거 알지? 공정한 심사.”
“그거야 뭐……. 근데 대회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심사 위원을 지금 정한대요?”
“원래 세 자린데 전화 한 통이면 다섯 자리로 늘리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엄마가 누구야?”
“아……. 네…….”
그냥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긴 해야 하니 구색이나 맞출 생각으로 대충 임하려고 했던 서울 동부 1학년 대상 성악 대회에 부모님께서 심사 위원으로 참여한다는 이야기.
난관이었다.
‘조졌다.’
집에서야 음악에 환장하는 아빠와 마음 따뜻한 엄마일 뿐이지만, 밖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국내 최고의 성악가들.
그 이름값이 있는 만큼 두 분은 대회의 무게도 더 무거워질 것이며, 이목이 집중되는 정도도 심해질 것이다.
거기다가 심사에 사심을 두지 않겠다는 천명은 그저 나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요소일 뿐이고, 더 중요한 것은 만일 내가 제대로 된 무대를 보이지 못한다면 큰일을 치르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점이다.
‘탈탈 털리겠지.’
아버지는 분명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며 지옥 훈련을 시킬 것이고, 어머니는 역시 집에서 가까운 자율학교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며 아는 교수님이 잠깐 적을 두고 있다는 예고로 전학을 보내고자 할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철저히 준비해야겠다. 하……. 안 그래도 바쁜데.’
이게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렇게 날려 먹을 수는 없다.
가족의 품에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살겠다는 꿈이 초장부터 막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로 돌아와서 벌인 일 탓에 새로운 시련이 주어지다니……. 아냐. 집 나가는 것보단 훨씬 낫지.’
이것이 나비효과인가 싶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미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크흠! 음…….”
어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방에서 나간 후, 나는 목 상태를 급하게 점검했다.
나쁘지 않다.
“흠. 새벽까지는 거뜬하겠군.”
오늘은 늦게까지 널따란 우리 집 연습실을 써야 할 것 같았다.
* * *
해롱해롱한 느낌이다.
“으어엉엉어…….”
“야, 야. 정신 좀 차려 봐.”
“엉으어어엉엉어…….”
“이거 맛탱이가 아예 가 버렸는데?”
계산을 잘못했다.
“목은 거뜬히 버텼는데……. 체력이…….”
“뭐라는 거야?”
체력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밤을 새운 대가는 오전 수업 딥 슬립이라는 결과물로 돌아왔다.
그나마 전공과는 관계없는 수학이나, 이미 숙련도가 있어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에 큰 지장이 없는 영어 같은 수업만 있었다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멍청한 일이다.
‘철야에 익숙하지 못한 몸이라는 건 어마어마하게 불편한 거구나.’
회귀 전이야 곡 작업이나 이론 연구 따위로 바빠 밥 먹듯 밤을 새우고는 했지만 지금 내 몸은 퓨어한 청소년기.
비록 몸집은 어지간한 성인들보다 강건 건장해도 익숙하지 못한 일을 버티기엔 무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휴……. 야, 이거나 마시고 정신 좀 차려라.”
“아……. 커피……. 아주 좋은 도구지…….”
“뭐라는 거야…….”
나는 태호가 내어 주는 무안단물에 감사를 표하며 어떻게든 잠을 깨려 노력했다.
그나마 정신줄을 놓아도 되는 점심시간이 끝나면 다음 수업은 교양 음악.
전공자로서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 내가 그러고 싶지 않은 수업이다.
“후……. 죽겠다.”
“오전 수업 풀로 날려 먹고도 잠이 안 깨냐?”
“엉. 푹 잔 것도 아니고, 눈치 보면서 졸다 깨다 하니까 더 피곤하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태호와 함께 교양 음악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로 향했다.
“자리에들 앉아 계세요.”
지난번처럼 교탁 앞에서 책 한 권을 들여다보며, 권인찬 선생님이 중후한 목소리로 애들에게 말했다.
다소 불평이 있었던 지난 시간과는 달리 대부분의 학생이 입을 꾹 닫고 교실 앞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기 시작했다.
지난번 수업에서의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만들어 낸 아주 좋은 수업 환경이다.
“시작할 때가 됐군요.”
곧 종이 울리고, 권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이 앉은 쪽을 둘러보았다.
“지난 시간에는 오리엔테이션으로 우리가 교양 음악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맞나요?”
“네.”
“네.”
“좋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아주 짧게 음악의 역사와 발전을 쉽고 간략하게, 그리고 짧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대화를 유도하며 강의를 이어 나갔다.
“사실은 아주 옛날의 음악이나 고전 음악에 대해서 다루자면 겨우 한 교시로는 모자랍니다. 음악사는 길고 그 내용도 방대하며 나름 심오한 깊이가 있는 학문이죠.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짧게나마 이것을 배우는 이유는…….”
노련한 진행이다.
수업의 개요를 설명함에 이어 그것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말해 주면서 학생들의 집중력을 어떤 의미에서는 강제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재밌네.’
사실 그가 해 주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아는 내용이고, 때로는 나 역시 학생들에게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권 선생님의 목소리에 힘입어 다시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새겨들으니 졸음도 잊고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적 의미의 음악이란 상당히 서구적입니다. 도레미파솔라시, 칠음계에 그 규칙의 근간을 두고 있으며, 서양 고전 수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권 선생님은 옅게 미소를 띤 채 수업을 진행했다.
꽤나 높은 학생들의 집중도가 마음에 드는 듯했다.
“음악 전공 학생들이 흔히 수학이나 역사 같은 다른 공통 과목들을 놓아 버리고 오로지 실기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현대 음악의 화성학 기초야말로 여러분이 그렇게 싫어하는 수학의 액기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나는 음악의 기초 강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음악, 고전적인 양식이 정립되는 시기, 근대로 넘어오며 의례와 예식에서 문화로 나아가는 모습.
꽤 많은 영감이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