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40
139화
“가능하면 모두들 일정 이상의 관심은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하하…….”
말하자면 특정 멤버 하나에게 조명이 모두 몰리는 일 없이 인지도와 명성, 그 실력에 대한 온당한 평가를 프로젝트 그룹의 해체 이후에도 가져갈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나도 그렇고, 옥선이도 그렇고, 화려하고 눈에 띄는 멤버가 있는 만큼 철저하게 멤버들을 살려 주는 연주에 역할이 고정된 주영 형이나 세명 형은 그 관심을 덜 받을 수밖에 없다.
“앨범도 같이 만들고, 행사도 같이 하는데 막말로 김루치 밴드 소리나 들으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멤버들 한 명씩 솔로 연주로 분량 만들어 준 거야?”
“네.”
아닌 게 아니라, 채팅창에서도 내 이름이 가장 많이 언급되고, 삵에 대한 소식들이 김루치 근황이라거나 럭키데이를 버린 김루치 같은 제목으로 올라오기도 하니, 밴드보다 내가 더 튀어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회사에서 어련히 잘 해결해 주겠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하은 형이나 주영 형 같은 사람들이 제 몫을 온전히 챙길 수 있겠냐는 걱정이 더욱 컸다.
‘특히 인지도나 팬들의 관심 같은 것들의 경우, 회사가 나서서 딱딱 잘라 분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모두가 각자를 선보일 기회를 받는 것 이외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도 하고, 활동을 하다 보면 공정하게 분량을 챙겨 주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내가 미리미리 대중들의 앞에서 그들 역시 가치 있는 연주자임을 증명할 기회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에서 실행한 기획이다.
끝까지 그래도 괜찮을까, 멤버들이 내 생각을 알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기는 했지만, 프론트맨으로서 고생하는 만큼 알게 모르게 얻는 이익이 있는데, 모른 척 눈 감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넌 진짜…….”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세명 형이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그가 말했다.
“고맙다.”
“뭘요.”
세명 형이 고맙다고 말을 해 준 덕에 나도 안심이 되었다.
혹시나 자신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을 괜히 나서서 챙겨 준다고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피식 웃고는 위로 손을 뻗어 어깨를 두드려 주는 그 덕에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려가자. 밥 먹어야지.”
“넵.”
나는 세명 형과 함께 옥상에서 내려가 연습실로 돌아갔다.
“오. 밥 왔어, 얼른 앉아. 젓가락 가져가고.”
“땡큐.”
마침 주문했던 식사가 도착해 있었다.
“단무지는?”
“여기.”
“하은아 짬뽕 한 입만.”
“으…….”
우리는 주린 배를 가득 채우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다음 연습을 더 진행했다.
딱 한 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연습을 마치니 시간은 저녁 여덟 시 정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집에 가죠. 내일은 합주 연습이랑 예능 출연 대비 대본 분석이 있으니까 일찍 쉴게요.”
“오오오오…….”
“이게 얼마 만의 이른 귀가냐…….”
여덟 시 퇴근도 그리 빠른 것은 아니지만, 평소 연습 종료 시간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빠른 귀가였다.
애초에 공연 직후 피드백이 중점인 연습이라 그렇게 오래 걸릴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봐.”
“빠잇!”
자동차 배웅 없이 각자 알아서 집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걷는 길.
‘덥네.’
벌써 여름이라 꽤 습하고 더운 와중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자니 굉장히 답답한 기분이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하지만 마스크라도 없으면 돌아다니는 것이 꽤나 귀찮아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맥주는 네 캔 만 원……. 안주는 원 플러스 원……. 오예, 오예…….’
냉장고에서 수입 맥주를 네 캔 꺼내고,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인 과자 몇 개를 집어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그간 멤버들을 쥐잡듯 잡아 대며 연습을 몰아쳤는데, 막상 여유롭게 끝내고 일찍 들어가니 내가 더 신나지 않나 싶었다.
‘워후워어……. 집에 가면……. 맥주에 과자……. 오우예아…….’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바코드를 찍는 알바 형님의 눈치가 보여, 속으로만 근본 없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봉투 필요하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구매한 맥주와 과자들을 가방에 담고 잠깐 걷는다.
삑, 삑삑삑삑. 띠리링!
“후!”
집에서 나와 따로 구한 작업실.
오늘은 집에 가지 않는 날이다.
툭.
사 온 것들을 대충 한쪽에 두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대충 씻고 앉아서 음악이나 좀 듣다가 새벽에 있을 앨범 발매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쏴아아아아!
샤워기에서 뜨순 물이 콸콸 나오고,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멍을 때리게 된다.
‘으어어…….’
뭔가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락 말락 하다가 가라앉고 그냥 시큰둥해지는 것이, 차라리 회사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을 그랬다 싶다.
딱히 집에 할 일도 없는데, 그냥 신곡 음원 올라오는 장면이나 같이 보자고 할걸.
‘아니지, 아니야. 멤버들도 가족들이랑 밤을 보낼 자격이 있어. 응…….’
그러다가 머리를 흔들어 끔찍한 생각을 털어 버렸다.
긴 기간 동안 강행군을 펼치며 고생해 온 멤버들인데, 적어도 본격적인 활동 개시 전 마지막 여유 정도는 즐길 자격이 충분하지 않겠는가?
“휴우!”
샤워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와 거칠게 머리를 털어 냈다.
드라이 따위는 하지 않는다.
“상남자 특. 선풍기 바람으로 머리 말림.”
드라이기 붙잡고 손목 돌리며 머리 말릴 시간에 컴퓨터를 향해 1센티미터라도 더 전진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어어어언!
“응?”
의자를 당겨 앉고, 왼쪽 발로는 선풍기를 켜고 왼쪽 손으로는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는 내게 스마트폰 메시지 진동음이 들렸다.
“어? 수현이네?”
확인해 보니 메신저에 들어오라는 말과 함께 링크 하나가 함께 보내져 있었다.
‘뭐지?’
평소 사용하던 대화방이 있기에 새 대화방 링크를 보냈다는 것은 단체 대화방이라는 이야기인데, 누군가 같이 대화를 해야 할 사람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ㅇㅇ
답장을 보내 놓고, 나는 컴퓨터를 통해 메신저에 접속했다.
레이어즈기타 : ㅎㅇ
“어? 재우네?”
그곳엔 재우가 먼저 들어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 ㅎㅇㅎㅇ 무슨 일이여.
나 : 갑자기 왜 단체 채팅방이야.
레이어즈기타 : ㄱㄷ 수현 재접한댔음.
내가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묻자 재우는 대답 없이 기다리라는 말로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리고 곧 수현이가 채팅방에 입장했다.
베이스걸 : 루치 재우 안녕~
나 : 수현이 어서 오고.
레이어즈기타 : ㅎㅇ
나 : 근데 왜 부른 거임??
짧게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한번 뜬금없이 채팅방에 초대된 이유를 물었다.
베이스걸 : ㅎㅎㅎㅎ 라희 와야 말해주지~
하지만 금방과 같이 라희가 없으니 조금 더 기다리라는 답변밖에 들을 수 없었다.
‘뭐야?’
나는 가만히 화면을 보며 이유를 생각했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재우, 공부하러 가야 하는 수현이와 라희가 그냥 심심하다고 모이자 했을 리는 없고, 근래 혹은 가까운 미래에 있는 이벤트라 봐야 하나뿐이다.
‘나 때문에 시간 빼서 이렇게 모여 준 건가?’
이제 몇 시간 뒤에 있을 앨범 발매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레이어즈기타 : 근데 라희는 언제 옴?
잠시 그들의 의도를 어림짐작하고 있는데 재우가 채팅으로 라희는 언제 오냐고 물어 왔다.
그러고 보니 채팅방에 셋이 모이고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접속하질 않는다.
나 : 뭐지? 연락해 볼까?
베이스걸 : 응 부탁해.
그렇게 전화기를 들고 라희에게 전화를 걸려 하는 순간.
딩동, 딩동!
벨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설마…….”
이 시간에 택배가 왔을 리는 없고, 뭔가 배달 음식을 주문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내 작업실에 올 사람도 없는데, 막상 사람이 온 것을 보니 생각나는 인물이 딱 하나다.
“하잉!”
라희였다.
“뭐야? 어쩐 일이야?”
나는 문을 열어 그녀가 들어오게 한 후, 어쩐 일로 찾아온 것이냐를 물었다.
“뭐긴! 다 같이 우리 루치 프로젝트 앨범 발매되는 거 보려고 왔지!”
“엥?”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어떻게 다 같이 본다는 말인가?
나 : 라희 지금 여기 왔는데?
베이스걸 : 엥?? 라희 루치 작업실 갔어???
레이어즈기타 : 뭐임 왜 거깄음
라희가 내 작업실로 왔음을 얘기하자 수현이와 재우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답한다.
그러자 라희가 항변했다.
“뭐야! 다 같이 보기로 했잖아? 자정에 앨범 발매되니까 새로 고침 눌러서 올라오는 것도 보고! 새 앨범의 타이틀곡을 제일 처음 듣는 영광을 쟁취하기로…….”
베이스걸 : 아, 같이 보기로 하긴 했지 라희야…….
그 말을 전해 주자 수현이가 답했다.
베이스걸 : 메신저로 다 같이……. ㅎㅎㅎ…….
나 : 아하.
그제야 나는 사건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메신저로나마 모여서 같이 보자고 한 걸, 한곳에 모여서 보자는 뜻으로 알아들었군.”
“아, 아니었어?”
“애초에 수현이는 외국에 있고, 재우는 내일 출근이잖아. 여기 모여서 볼 수 있을 리가…….”
“힝…….”
각기 유학과 사회복무로 한 달은 넘게 지나야 민간인으로서 한국 땅을 밟게 되는 두 사람인데, 그것도 다른 어떤 장소가 아닌 내 작업실에서 볼 것이라 생각하고 달려오다니.
참, 뭔가 한 생각에 꽂히면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극히 라희다운 행동이었다.
베이스걸 : ㅎㅎㅎㅎ 화면 띄워두고 같이 카운트도 하고, 소리 켜서 같이 들으려구 했지 ㅎㅎㅎ
레이어즈기타 : 나도 거기 갈까
베이스걸 : 내일 출근 아니야?^^
레이어즈기타 : 하…….
“아. 괜히 왔네, 그럼.”
“쩝……. 일단 앉아나 있다가 가. 뭐 좀 마실래?”
“앗, 그래도 돼? 아하하하.”
쉬는 날 기껏 찾아온 정성을 무시하고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
잠시 앉아서 애들이랑 얘기나 하도록 하고 보내기로 했다.
“엇. 음료수 다 먹었네. 라희, 생수? 맥주?”
일단 앉혀 놓고 음료수라도 꺼내 주려 했는데, 어떻게 오늘따라 남은 음료수도 없다.
하긴 작업실의 탈을 쓴 이 자취방과 본가보다 회사 연습실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보니, 집에 어떤 물건이 얼마나 남았는지 제대로 기억할 리가 있나.
“맥주 있어?”
“응. 네 캔에 만 원짜리 편의점 캔 맥주긴 한데, 흑맥주랑 그냥 맥주 있어.”
“흑맥주!”
대충 편의점에서 사 온 캔 맥주 중 하나를 건네주고, 과자들도 봉지를 뜯어 책상에 늘어놓았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아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노트북을 꺼내 메신저에 접속할 수 있게 했다.
“흘리지 말고 먹어. 가루 떨어지면 키보드에 들어가니까.”
“엉, 엉.”
블랙더드러머타이거 : 하잉하잉!!!!
레이어즈기타 : ㅎㅇ
베이스걸 : 라희 안녕!
치이익!
내 경고를 들었는지 어쨌는지, 라희는 메신저에 로그인을 하고는 인사말 하나를 덜렁 올려놓은 채 맥주 캔 뚜껑을 열었다.
“오, 탄산 살아 있고.”
꼬꼬마 고딩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저렇게 자연스럽게 드러눕듯 앉아서 맥주 캔을 기울이고 있다니.
세월이 무상하다는 말이 참으로 적절하다.
그때, 잠깐 감상에 젖어 있는 나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뭐 해? 앉아.”
나는 마치 제집인 양 편하게 앉은 그 모습이 묘하게 얄미워지는 것이 착각인지 아닌지를 한참 동안 고민해야 했다.